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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오네]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

Bsle 2020. 11. 7. 19:23






멜로 문 바르그하티는 죽었다.

 

그는 웃음도, 분노도, 억울함도, 눈물도 그 무엇도 표하지 않은 무표정을 하고서 죽음으로 환원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이제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단한 과학으로도 어떤 불가사의한 마법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떴다. 생기를 머금고 바람에 산들거리는 푸른 꽃 사이에서 멜로는 죽음 이후의 밤하늘을 눈에 담았다. 밤하늘은 저가 죽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서, 짙푸른 어둠 사이로 눈썹달 하나와 수많은 별이 빛을 내고 있었다.

 

 

사후세계는 참으로 친절하구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더라면, 멜로는 언제까지고 푸른 물결로 가득 찬 들판을 사후의 세계라 생각했을 것이다. 내딛는 걸음마다 조심스러워 불어오는 바람 소리만으로도 묻혀버릴 그 희미한 소리를 좇아 눈을 돌렸을 때 스티오네를 보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사후세계에서 눈을 떴음을 부정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대신에 그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어떤 힘에 의해 온전히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음 이후에도 눈을 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억지를 부려본다면 짐작이 가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절대성을 타고난 자신의 마법이라거나 판도라 프로젝트로 인해 변형되어 버린 고유마력, 또는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어떤 절대적이고 신비한 이의 개입 같은 것이었다. 그런 근거도 무엇도 없는 가설에 기대고 싶을 정도로, 멜로는 이곳이 사후세계가 아니길 바랐다.

 

 

있지, 멜로.”

 

 

그래서, 스티오네가 제 이름을 불렀을 때, 멜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행히도, 그의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이 하나씩 드러났다. 바람이 불어도 머리카락이 흩날리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도 꽃잎 하나 밟지 못하는, 세계와 분리된 듯 어떤 물리력도 행할 수 없는 자신과는 달리 스티오네의 두 발은 온전히 땅을 밟고 서 있었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그의 짧은 머리카락이 허공을 나부꼈으니까.

 

무엇보다 스티오네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고, 그가 뻗은 손을 잡지도 못했다.

 

 

……, 스티오네?”

 

 

부름에 의문으로 답했을 때, 스티오네는 멜로를 돌아보지도, 물음에 반응하지도 않고 청자를 가정하지 않은 혼잣말을 읊으며 비석 앞에 꽃을 내려두었으니까. 그 모습에 손을 뻗었을 때, 스티오네의 손은 여전히 비어있었으니까.

 

안도와 함께 짙은 탈력감이 어느 날의 기억과 함께 멜로를 덮쳤다.

 

 

우리가 친구인 동안에, 서로 멀리 있지 않다면, 외로운 밤에 함께 있어 주기. 약속이야.”

 

"이제 우리 손을 잡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약속을 지켜야 해."

 

 

다시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음에, 다시는 우리가 서로의 외로운 날에 함께할 수 없음에,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그럴 수 없어서, 멜로는 차라리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은 것은 자신이었고, 당신은 남겨졌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견딜 수 있으리라고 착각했던 자신이 오만했음을 깨닫는다. 죽음 이후에 남은 감정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거대하고 비극적이었다.

 

푸른 꽃이 뒤덮은 묘지에 바람이 일었다. 희미한 빛을 받아 더욱 파랗게 보이는 꽃잎이 바람결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꽃잎을 따라서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여전히 자그마한 눈썹달이 떠 있었고, 별들이 곳곳에 박혀있었다.

 

 

괜찮아, 스티오네. 네가 부르면, 언제든 답해줄게. 내가 계속 이곳에 있을게. 너의 외로운 밤마다 내가 함께할게.”

 

 

비록 네게 들리지 않을지라도, 네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약속이 절대적인 힘을 잃었다 할지라도…….

 

왜냐면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남긴 메시지를 들었을 너 역시도, 여전히 나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에. 네 사랑이 여전한 동안에는, 너는 내 바람을 들어줘야 하니까. 내 사랑이 여전한 동안에, 나의 바람은 언제나 같을 테니까.

 

 

……행복해져. 그게, 내가 가장 바라는 거야. 약속했잖아. 행복하기로, 행복 하려 노력할 거라고.”

 

 

그것은 어느 반지에 남겨두었던 제 마지막 말과도 같은 말이었다. 훨씬 길게 남기려 했으나 결국 모두 지우고 짤막한 진심만을 남겼던, 모두에게 남겨진, 네게 남겨진,

 

 

……사랑해라는 말에 대답하는 마지막 메시지.

 

 

나도 사랑해.’

 

 

그러니까,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도 행복할 거야.”




멜로 문 바르그하티는 죽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대를 떠난 적은 없다. 그것이 언젠가 당신이 돌아와달라 하여도 그럴 수 없는 이유였다. 죽은 자가 되살아날 수는 없기 때문에. 오직 떠나간 이만이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