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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오네]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 멜로 문 바르그하티는 죽었다. 그는 웃음도, 분노도, 억울함도, 눈물도 그 무엇도 표하지 않은 무표정을 하고서 죽음으로 환원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이제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단한 과학으로도 어떤 불가사의한 마법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떴다. 생기를 머금고 바람에 산들거리는 푸른 꽃 사이에서 멜로는 죽음 이후의 밤하늘을 눈에 담았다. 밤하늘은 저가 죽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서, 짙푸른 어둠 사이로 눈썹달 하나와 수많은 별이 빛을 내고 있었다. ‘사후세계는 참으로 친절하구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더라면, 멜로는 언제까지고 푸른 물결로 가득 찬 들판을 사후의 세계라 생각했을 것이다. 내딛는 걸음마다 조심스러워..
[Cherish Cherry] 사랑 키리는 지금 누군가 자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코 제 남편의 선물을 고르는 일이라 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생일이 다가오기 한 달 전부터 고민했는데도 당일 날인 오늘까지도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한 달 내도록 남편이 출근해 혼자 있는 동안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하고 집 밖에 나가 여러 수공예점이나 브랜드관을 열심히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생일 당일이 될 때까지 정하지 못한 것이다. 진작에 정했더라면 주문 제작이나 해외 배송과 같은 시간이 드는 선물까지 고려해볼 수 있었을 텐데 괜히 고민하느라 여태 빈손이라는 점이 허탈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헛웃음이 새었다. 하지만 남편의 선물을 정하는 것이 어려운 데에는 다 이..
[이드레이] 벌과 상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Moon] 달그림자 당신과는 닮은 점이 참 많았다. 하나하나 언급하지 않더라도, 당신도 그것을 알고 있겠지. 그렇기에, 만약 그 순간, 당신과 저의 입장이 반대였다면... 만약 그때, 바닥으로 고꾸라져 차게 식어간 것이 저고, 그 맞은편에 당신이 있었더라면, 저 역시 당신처럼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잊어달라고. 기억되는 것은, 남겨진 자들에게 너무나도 괴로운 형벌이니까. 제발 나로 인해 괴로워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달을 볼 때면, 이중적인 마음이 항상 자신을 괴롭혔다. 누가, 제게 그랬다. 달을 보면, 내가 떠오른다고. 그게 참 좋았다. 누군가 나를 떠올려준다는 것도 좋았고, 달을 보고 나를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내가 곁에 있지 않은 시간에도 나를 떠올리며 함께라고 여길 수 있다는 뜻이니까. 제 소..
[Moon] 밤하늘을 수놓은 별의 의미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 넌.” 하지마, 더 이상 말하지 마, 세레나. 제발, 부탁이야. 다리가 후들거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절박한 시선이, 끔찍한 이별을 고하는 당신의 입을 향했다. 제발, 그 이상 말하지 마. 그러나, 당신은 입을 열었고, 잔인한 말은 입 밖으로 나와 제 마음을 할퀴었다. “.....내게 필요하지 않아.” 현실을 인정해 멜로. 사고가 정지하는 것 같았다. 제게 필요하지 않다는 당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서. 그런 의미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은데, 당신을 아는 나 자신이, 자꾸만 그것이 맞다고 답을 내려주어서. 그래서 차라리 생각을 멈추고 사라져버리고만 싶었다. 이대로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신이 뱉은 말..
[Moon] 메시지 링 L4 변신을 해제하자, 익숙해진 파란 제복 소매가 눈에 들어왔다. 걱정과 무색할 정도로 제게 잘 어울리는 제복이, 어찌나 끔찍해 보이던지,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엄마.” 일렁거리는 마력을 매개체에 불어넣고 키워드를 읊었다. 변신의 매개체이기도 한 이 반지는, 어머니의 유품이자, 유언이 담긴 ‘메시지 링’이었다. 그것이 메시지 링이라는 것도, 키워드도 알려준 적이 없고, 심지어는 키워드가 ‘엄마’였으니, 그가 자신의 유언을 딸이 듣길 바라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이 매달 받는 급료를 전쟁 피해자와 고아원 같은 곳에 전액 기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이렇게 하면, 실은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
[Moon] 맹세할 맹(盟) ※약 유혈주의 맹세 (盟誓): 반드시 이룰 것을 굳게 다짐하는 것.: 약속, 목표, 계획 따위를 하겠다고 말로서 약속함. 盟(맹세할 맹)은 밝을 명(明)과 그릇 명(皿)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해(日)와 달(月) 앞에서 술잔(皿)을 나누어 마시며, 약속을 지키기로 맹세함을 의미한다. 혹자는 밝을 명(明)의 좌형좌변인 해 일(日)을 빛날 경(囧)으로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이라 해석하고그릇 명(皿)이 아닌 피 혈(血)의 획 줄임으로 해석하여 밝게 빛나는 달빛 아래서 피를 나누어 마시며 하는 약속을 盟이라 하였다고 한다. ... "하나만 더 추가하지. 그 누구에게도 귀관의 맹세를 말하지 않을 것." "귀관은 여론의 동정을 받고 있는데, 이런 사실이 알려져서 좋을 건 없지 않나." "언론을 통제하는 것은 우리로서도 귀찮은 ..
[Moon] 첫번째 약속 * 아침 7시. 너른 창으로 아침 해가 들어오고, 일찍 일어난 새들의 울음소리나 서서히 활기를 찾아가는 거리의 소리 같은 것들이 거실로 스며들었다.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작은 아이가 도도도 달려서 거실을 가로질렀다. "아빠, 오늘은 일찍 돌아와서 멜로랑 같이 자요!" 이제 대여섯살쯤 되었을까 하는 아이가 큰 눈을 반짝이며 제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아빠는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느라 정신이 없었고, 시야 아래서 아이가 저를 올려다보는지도 모른 채 거울 속 제 모습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네? 아빠아~ 오늘 한 번만요!" "어, 어어. 알았다, 알았어. 아빠 출근해야 하니까 이따 돌아와서 얘기하자." "...또 늦게 들어오실 거잖아요." "오늘따라 우리 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