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GM - https://youtu.be/kYler4YSTb0 ::
혜성은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악몽에서 깨어났다.
땀에 젖은 그의 몸이 사정없이 떨려왔고, 악몽이 남긴 짙은 절망감에 절어 눈 앞이 깜깜했다. 의식적으로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보았지만, 불안만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방금 겪은 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제 옆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사실을 알 수 있음에도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방금 그것이 꿈이 아니었을까봐. 그래서, 그 절망이 사실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적막이 내려앉은 침실에 진정되지 않는 거친 숨소리가 가득찼고, 혜성은 필사적으로 절망적인 생각을 멈추고자 했다. 절망을 부추기고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을 끝없이 부정하며 공황에 빠졌다.
"...조교님?"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잠에 잠긴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사랑스러운 이를 바라보았다. 어둠에 적응한 시야에 비치는 부스스한 은발과 걱정과 애정이 담긴 자색의 눈빛. 떨고있는 저를 보고 일어나 제 뺨을 어루만져주는, 그 손길에 담긴 온기에 비로소 혜성은 악몽에서 온전히 벗어나 현을 바라볼 수 있었다. 혜성은 말없이 제 뺨을 어루만지는 현의 손등 위로 손을 겹쳤다.
"괜찮아요? 땀이..."
"...괜찮아. 그냥, 꿈을 꿨을 뿐이야."
현아, 네가 죽는 꿈을 꾸었어.
혜성은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을 입에 리는 것만으로도 부정을 탈 것 같았다. 제 입으로 현의 죽음을 담는 순간, 그것이 어떤 복선으로 작용해서 현실이 되어버릴것 같다는, 평소라면 웃음도 나오지 않았을 비과학적인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서, 그는 자신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 입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저 어떤 꿈을 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리며 이제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자 현은 혜성을 끌어안고 천천히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이 감각이 꿈일 수는 없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선명한 애정과 온기에 헤성은 벅차오르는 현실감을 느끼고 한참을 현에게 안긴 채 여러 감정을 곱씹었다. 눈 앞의 현이 살아있다는 안도감, 극도의 불안감이 해소되며 찾아온 나른함, 토닥이는 손길과 품안의 온기가 주는 안정감, 그리고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현을 보고 느끼는 사랑스러운 감정들. 곱씹을 수록 커지는 그 감정을 혜성은 현의 이마 위에 입맞추어 쏟아부었다.
"더 자, 현아."
"...조교님은요?"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찝찝하니까, 샤워라도 하려고."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정말로 괜찮아. 현이 네가 있으니까."
혜성은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는 현을 도로 눕히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난 넓은 창으로 밤하늘이 보였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서 밤하늘을 보았다. 도시의 밤하늘에서 별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럼에도 저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혜성은 새까만 하늘을 보면서도 우주를 보는 듯한 기분에 잠겼다.
우주를 마주할 때면 수많은 감정들이 그를 찾아와 그의 이성을 잠시 잠재우고 폭력적이고 거센 감정으로 그를 지배한다. 그것들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경외감이거나, 아룸다움에 사로잡혀 흘리는 감격스러운 경탄이거나, 미지를 마주하는 신비로움과 그것을 알아내고 싶어지는 호기심,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을 손에 넣고 싶어지는 소유욕, 광대함과 적막함이 주는 평온감, 그대로 그 속에 안주하고 싶어지는 나른함 같은 것이다.
그는 문득 그 모든 감정들이 현을 바라볼 때에 감정과 같다고 느꼈다. 정확히는, 현이의 두 눈에 담긴 애정을 읽어낼 때면 자신을 사로잡는 감정들이 그러했다. 경외감과 경탄, 신비와 호기심, 소유욕, 나른한 평온감. 그러나 현을 바라볼 때에 느끼는 감정은 그것들에 하나를 더해야 했다. 행복.
혜성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로 새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주를 마주하는 감정, 그것에 행복을 더해 벅차오르는 어떠한 감각', 그것이 사랑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는 '사랑'이 담고있는 감정은 그보다 더 많을 것임을 짐작했다. 그가 우주를 바라볼 때에 그러하듯, 현을 마주할 때에 느끼는 감정들은 고작 몇 개의 단어로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적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그 많은 감정을 전부 나열하여 정의할 수 없는 것은, 사랑을 마주하는 순간의 자신은, 사랑에 속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는 자신이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모두 모아 부를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편리한 단어라고 생각하면서 욕실로 걸음을 돌렸다.
'Logue > CP'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멜로오네]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 (0) | 2020.11.07 |
---|---|
[Cherish Cherry] 사랑 (0) | 2020.09.23 |
[이드레이] 벌과 상 (0) | 2020.09.20 |
[엗벤] 이토록 선명한 것 (0) | 2020.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