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칼렛 가문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러 가기로 한 날입니다.
몇 남지 않았던 충직한 부하가, 무어라 했던가요.
이 사람이라면 가장 완벽한 파트너가 되어 줄 것이라 했던가요?
세상에 진정 완벽이라는 게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그야, 한때는 의회에서 큰 발언권을 가질 정도로 전도유망했던 스칼렛 가문은,
그래도 카멜리아의 몇 년 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던 덕에,
그러니 지금부터 멋지게 준비할 필요가 있겠죠.
아무렴요, 이 가문의 미래는 이제 카멜리아 W. 스칼렛, 당신밖에 남지 않았는걸요.
약속 장소는 버킹엄 궁전에서 8마일 가량 떨어진 고급 레스토랑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유행한다는 청바지나 가벼운 옷차림은 격식에 맞지 않으니 분명 입구부터 쫓겨날지도 몰라요.
카멜리아 W. 스칼렛:…한 번의 외출에도 옷장의 상태를 생각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다니…, 스칼렛의 이름이 정말로 바닥에 떨어졌구나……. (씁쓸한 표정으로 옷장을 확인해본다.)
여기저기 일을 다니거나 움직일 일이 많아서였을까요.
정갈한 드레스나 예복으로 가득했던 옷장은 거의 비고,
카멜리아 W. 스칼렛:…아니, 그래도 공적인 자리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을 남겨두었을 텐데…….
그러고보니, 얼마 전의 공적인 외출이 있었더랬죠.
그 옷이 깔끔한 상태일까요? 한 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어요.
카멜리아 W. 스칼렛:(행운 수치가 없는데요)
카멜리아 W. 스칼렛:
rolling 3d6*5
=
30
운
기준치: |
30/15/6 |
굴림: |
41 |
판정결과: |
실패 |
다행히 얼룩지거나 한 부분은 없어요. ……하지만…….
그날 좀 많이 걸었던 탓인지, 옷이 좀 구겨져 있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이제 와서 다림질을 할 시간은 없으니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옷이 사람의 격식을 드러낸다고는 하여도 그것이 전부는 아닌 법, 격식을 차려 마땅한 자리에 낡은 옷을 입고 가는 것은 물론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겠으나 그것을 가지고 지적하는 것도 옳지 못한 일이다. …'완벽한' 파트너라 했으니 그 정도의 이해는… (타인의 이해를 바라고 선택을 내린다는 것이, 예전에는 당당했던 것 같으나 지금은 어째서 이토록 불안해지는지. 가볍게 옷을 몇 번 털어서 먼지와 구김을 적당히 정리하고서 옷을 입는다.)
터는 정도로 사라질 구김은 분명 아니었으나, 그런 게 중요할까요?
낡은 옷인 것이 분명하지만, 카멜리아가 걸치자 제법 근사한 옷처럼 보입니다.
아무리 낡은 옷을 입었다 해도, 사람의 품격은 숨길 수 없는 법이죠.
카멜리아 W. 스칼렛:…스칼렛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 건, 유일한 스칼렛인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이야…. (주먹을 꾹 쥐며 마음을 다잡고서 시간을 확인해본다.)
지금부터 출발하면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아마도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게 분명한 미팅입니다.
완벽한 파트너라는 말 뒤에, 부하가 무어라 덧붙였지요?
알아주는 부자, 서글서글한 성격, 끝내주는 핫 바디에 조각 같은 얼굴이라던가요?
뭐, 카멜리아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일 겁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끝내주는 핫바디에 조각같은 얼굴은 완벽한 파트너랑은 상관 없잖아.)
몰락했더라도, 스칼렛 가의 집은 번화가에서는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있지요.
카멜리아 W. 스칼렛:(유서깊은 가문의 저택을 팔아치울 수는 없는 법이니)
지금은 쇠퇴한 빈민가라는 말도 듣지만, 한 세기 전, 그러니까 스칼렛 가문이 한창 번성하던 때만 해도 시대의 중심이었고요.
거주지로는 빈 말로라도 훌륭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만 나서면 빽뺵하게 들어 선 상점가가 보이는군요.
이 상점가는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 주변 가게에서 흘러나오고, 새로 산 최신 물품들을 자랑하는 졸부들이 가득하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거리가 참, 많이도 변했구나…….
휴대전화니 컴퓨터니 하는 기이한 물건들이 막 발명되었다던가요?
졸부들은 굵은 알이 박힌 보석들을 자랑하며 저들끼리 깔깔거리고 있군요.
경제 상황이 나아진 이후 증권이나 새로운 사업에 투자해 큰 돈을 번 사람들이죠.
당신의 저택이 막 경매에 넘어가던 시절, 저택만큼은 빼앗기지 않도록 월세 형식으로 돈을 갚으라며 거금을 주었던 사람도 이런 부르주아 계층의 인물입니다.
겉치레를 중시하는 그에게 유서 깊은 스칼렛 가문을 도왔다는 말은 꽤 좋은 감투였다던가요.
그 덕에 여러 세입자들의 사정을 봐주기도 하더군요.
집주인:아, 카멜리아 씨? 좋은 저녁이네요. 외출하시는 걸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아, 그렇습니다.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군요. (다분히 공적인 태도로 예의를 차려 말한다. 상대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타입의 인간인 것과는 별개로.)
집주인:어머, 그러셨군요! 어쩐지, 중요한 날에만 입으시던 옷을 입고 계시길래요. (가볍게 소리 내어 웃고는 당신을 슬쩍 위아래로 훑는다)
당신의 차림을 보고 조금 더 뜸을 들이더니, 집주인은 당신의 가까이로 다가옵니다.
집주인:그런데, 보석 하나도 없이 외출하시는 거예요? 공적인 일 보러 가시는 거 아니에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이러한 자리에 보석의 유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사람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자신을 위 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을 모른 척하고서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집주인은 당신의 말에 제법 감명을 받은 것도 같습니다.
가진 건 돈 뿐인 그 사람이 가장 안달 내는 걸 당신은 가지고 있거든요.
여기서 한 번 더 당신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카멜리아 W. 스칼렛:
설득
기준치: |
70/35/14 |
굴림: |
94 |
판정결과: |
실패 |
…보석이란 부를 드러내는 가장 단적인 증거이지만, 그것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낼 수는 없는 법이죠. …저는 오늘 사업에 대하여, 돈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러가지만… 그렇다 하여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돈에 휘둘리는 일 아니겠습니까. 부를 지닌 자일수록 돈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하여야 사람들이 그 자의 부가 아닌 사람됨을 보겠지요.
(말을 꺼내는 순간에 이것이 저 자에게 그리 설득력있는 소리는 아님을 깨달았으나, 그렇다하여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름은 땅에 떨어졌다하여도 자신의 안에 아직 스칼렛의 영혼이 있는 한은.)
집주인:어머, 그런가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안 꾸미면 안 돼요. (백화점의 로고가 찍힌 쇼핑백에서 종이 봉투 하나를 꺼내들며) 카멜리아 씨 말은 항상 참 고귀한 귀족 같아서 좋다니까요. 후후, 이거 한 번 빌려드릴게요. 좋은 자리 가는 거 맞죠? 뭐, 제가 쓰던 거긴 한데요, 오늘 새로 나온 샤넬 워치를 사서 말이에요~
저런, 당신에게 돈 자랑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야말로 돈에 휘둘리는 자의 전형이구나.)
그는 종이 봉투에 담긴 보석 팔찌를 꺼내 당신의 손에 쥐어줍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할 작정이라면 아마도 성공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옛날이었다면 그 누구도 이렇게 대하지 못했을 거예요.
감히 누가 스칼렛 가문에 이런 말을 하며 돈 자랑을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 이번 자리는 정말 중요한 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출발하자구요. 집주인의 그 선의 아닌 선의를 받아 들여, 택시라도 부를 수 있겠죠.
카멜리아 W. 스칼렛:(…차라리 그 때, 저택을 내놓았더라면…….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챙길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내게 남은 유일한 것이었어….) …그만 생각하자. 지금은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택시를 타지 않으면 지각인가?)
걸어서는 한 시간 남짓인 거리입니다. 중간중간 뛴다면 지각은 면하겠지만, 그래서는 녹초가 되어 도착할지도요!
카멜리아 W. 스칼렛:…분명 여유롭게 저택을 나왔던 것 같은데, 쓸데없는 것 때문에 시간을 끌었구나. (택시를 잡는다.)
택시를 잡습니다. 택시는 여유롭게 당신을 태우고, 도로를 미끄러져나갑니다.
고급 레스토랑이라 했던데, 어쩐지 보이는 건 부두와, ……거대한 유람선이에요.
호화롭기 짝이 없는 객선 앞은 다른 배들과 달리 휑하기만 합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겠지?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직원은 말끔한 정장 차림이지만, 따분한 모양인지 이따금 하품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부하로부터 전달받은 '초대장'의 주소지는, 분명 이 객선의 이름으로 되어 있네요.
하얀 선체에 매달린 주황색 전구들이 어두운 밤에도 지지 않고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설마 선상에 있는 레스토랑인가?
한참을 그리 서 있자니, 하품을 하던 직원이 느리게 당신에게 다가오네요.
직원:어, ……혹시 볼 일이… 있으……신… 건가요?
당신의 목적지가 이 안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카멜리아 W. 스칼렛:(초대장을 들어보이며) 이 초대장에 적힌 주소가 이곳이 맞습니까?
그러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혼란 가득한 눈동자로 당신과 여객선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푹 고개를 숙이는군요.
직원:아, 예, 예! 이곳이 맞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바,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약속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 하여… 안내해주시겠습니까?
직원:네! 금방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직원은 과할 정도로 상냥한 태도로 당신을 안내합니다.
바닥에 깔린 융단은 무슨 고급 털을 쓴 건지, 걸을 때마다 소리도 없이 발을 감싸주는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직원을 따라간다.)(…세상이 참, 잔인해졌구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이토록 다르다니. …이래서야…)
양 옆으로 늘어선 직원들이 깎듯이 인사를 하고, 정리를 하거나 서빙을 하던 직원들도 멈춰서서 당신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금세 이상한 점을 눈치챕니다. 이 크루즈 안에는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없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나저나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선상레스토랑을 예약해두다니. 수상쩍은 인물이구나.)
직원은 강이며 선박 내부가 훤히 보이는 발코니 좌석으로 당신을 안내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는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설마 선박을 통째로 예약한 것인가?)
이토록 넓은 여객선에, 손님이라곤 당신 뿐입니다.
정말 맞게 탄 게 맞을까요? 혹, 그 완벽하시다는 비즈니스 파트너께서, 장기라도 노리고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오늘 이곳을 이용하는 자가 더 없습니까? (직원에게 물어본다.)
직원:예, 예? 아, 네. 예약된 테이블은 손님의 테이블 뿐입니다.
곧이어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동백꽃으로 테이블을 장식합니다.
매니저:잠깐만 기다리시면 곧 오실겁니다. 답지 않게 엄청 긴장하시더군요. 꼭 잘 보이고 싶다며 저희에게도 몇 번이나 당부를 하셨구요.
(하지만 비즈니스 미팅 자리치고는 너무 과하다. …이래서야 마치…….)
매니저:후후, 얼마나 굉장한 분이신지. 정말 중요한 자리라고 메뉴얼까지 직접 작성해서 내려보내셨지 뭡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이야기를 들어보니 단순히 예약한 것이 아닌 선박의 주인인 듯 해. 과연, 대단한 부자로구나….)
매니저:남들은 그 분이 피도 눈물도 없다느니, 뭐라느니 하시지만, 사실 그분처럼 아랫사람을 잘 챙겨주시는 분도 없거든요.
뭐, 그 붉은 눈이 무섭다든지…… 하는 말도 있지만.
카멜리아 W. 스칼렛:…겉모습 만큼이나 현혹되기 쉬운 것은 없으니까요.
(기시감이 느껴지는 설명이다. 참으로 익숙한…)
매니저:키도 무척 크시고. 훤칠하시죠, 정말!
옷도 얼마나 패셔너블하게 입으시는지. 명품을 둘러도 명품 같지 않은 사람도 참 많은데 말이에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이 동백꽃도 그분이 직접 지시를 내린 겁니까?
아니 이 계절에 동백이 어디 있냐고… 큼큼, 아니, 꼭 동백이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설명을 듣다 보면 무언가 미묘한 기분이 듭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6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그가 말한 모든 특징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 있지 않았나요?
당신은 이미 그런 사람을 하나 알고 있잖아요.
아니, 아니겠죠. 세상에 설마한들 그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있겠나요.
카멜리아 W. 스칼렛:…아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는데….)(오는 길에 참 많은 수모를 당했다. 잃어버린 것들과 많이도 마주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눈물이 나는 듯 했다.)
그 때, 등 뒤에서 누군가 아…! 하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지릅니다.
정작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건 당신인데 말이죠.
그리고 그 순간, 생각에 빠진 당신의 눈앞으로 와인잔이 쏟아지려 하고 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
운
기준치: |
30/15/6 |
굴림: |
43 |
판정결과: |
실패 |
와인잔은 기어이 테이블에 부딪혀 깨지고 맙니다.
작은 유리 조각 하나가 당신의 발목을 스치는군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당신은 조금도 젖지 않았습니다.
다만 무언가 탄탄하고 말랑한 것에 코를 박고 말았네요.
가는 모발을 타고 붉은 와인이 뚝, 뚝 흐릅니다.
그렇게 방울진 것이 방금까지 당신이 머리를 묻고 있던 가슴팍 위로 떨어집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 (너무 놀라운 것을 보면 말이 안 나온다고 하던가. 구겨지고 허름한 옷, 변변찮은 장식 하나 없이, 그렁그렁한 눈물을 하고서… 이런 몰골로 당신과 재회하다니.) …라, 타?
누가 보아도 한 눈에 잘생겼다는 말을 뱉게 하는 얼굴, 탄탄하게 다져진 몸, 훤칠한 큰 키…….
강물의 푸른색과 섞여 일렁이는 노란 빛이 마침 두 사람의 옆 얼굴을 비춥니다.
저 눈, 더러는 소름끼친다고도 했던 저 붉은 눈, 그러나 당신에게만큼은 더없이 사랑스러웠던, 저 붉은 눈동자.
설마, 부하가 말했던 그 '완벽한' 파트너가,
고작 비즈니스 미팅 한 번 하겠다고 선박 하나를 통으로 비운 미친 놈이, ……
카멜리아 W. 스칼렛: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순간 벌어진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던 당신의 귓가에 너무도 유명한 그 음악, 모두를 열광하게 했던 그 음악,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면 직원들이 괜히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리아. 할 말은 많겠지만…….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내게 많은 것을 말해줘야 할 거예요. …내가 얼마나……. ……말해줄 수는 있는 거죠…?
아그리타 드 플뢰레:……(가만히 웃으며 당신에게 손을 뻗는다) 그건, …….
어쩌면 조금 더 지나면요. 기다려줄 수 있죠, 리아?
카멜리아 W. 스칼렛:……여기서 더, 기다려야하나요. …내게 조금은 알려줄 수도…… 아니에요. 기다릴게요.
아그리타, 당신이 꿈에도 그리던 그 사람이, 당신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는 자리로 에스코트합니다.
이윽고 전채로 프렌치 어니언 수프가 나옵니다.
참으로, 그 옛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표정이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아그리타 드 플뢰레:오느라 힘들진 않았습니까?
아그리타 드 플뢰레:다행입니다. 혹 멀어서 피곤하셨을까 걱정했거든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에 비해 자신은…, 불현듯 부끄러워지는 자신의 상황에 조용히 미소지어 넘긴다.)
괜찮았어요.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도 해주었고…….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런가요? 혹시 무례를 저지르진 않을까 단단히 교육을 시키긴 했는데……. (소름끼치는 눈으로 당신의 뒤에 서있는 직원들을 보다가, 곧 나긋하게 웃으며 당신을 본다)
카멜리아 W. 스칼렛:…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 마지막에 당신이 나타날 때에 와인잔을 놓친 것을 빼면……. 아, 그러고보니 괜찮아요? …너무 놀라서 깜빡했어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아, 그 정도야 뭐. (웃음) 리아는, 괜찮습니까? 다치신 덴 없나요?
두 사람의 앞으로 잘 구워진 관자 요리가 담긴 접시가 하나씩 놓입니다.
요리를 내려놓는 직원은 아까 그 와인잔을 떨어뜨린 직원이네요.
그는 필사적으로 당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안쓰럽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아.)
아그리타 드 플뢰레:……뭐어, 다치신 곳이 없다면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리아가 다치면, 좀 슬플 것 같아서요.
직원이 흡,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를 내더니 후다닥 멀어지는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너무 혼내지는 말아요. 실수였을 테니까.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 말은 다쳤다는 말인가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건 아니지만… 직원들이 …라타, 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안쓰럽잖아요. 아까 매니저는 당신이 아랫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좋은 분이라고 했는 걸요.
그런가요?
(언제 그랬냐는 듯 씩 웃으면서 와인잔을 든다) 그럼, 같이 건배하시겠어요?
카멜리아 W. 스칼렛:(와인잔을 들고서) …그럴까요.
와인이 담긴 고급 크리스털 와인잔이 부딪힙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종종 이렇게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저기, 라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는 물을 수 있잖아요.
와인잔을 입에 대던 아그리타는, 당신의 물음에 기분 좋은 웃음을 합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사실, 나는 리아가 절 보면 기분 나빠할 줄 알았거든요.
그럼에도 제 일을 물어준다는 건…….
(잔을 내려두며, 당신과 시선을 맞춘다)
……그냥, 평범한 삶이었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과 같은 삶이었죠.
모두들 그 말을 들으면 거 엄청 잘 지냈나보구만! 하고 이야기하겠지만,
당신만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어떻게 고백을 했는지 기억하는 당신이라면요.
카멜리아 W. 스칼렛:……우리 서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네요. 정말…, 이러니까… 투정도 못 부리겠어요. (잔을 살짝 흔들었다가,기울여 입을 축인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리아에게 투정을 부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만, ……. (괜히 머쓱한 듯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는, 그는 오래도록 당신을 눈에 담아두려는 듯 당신을 바라본다. 집주인이나 직원이 위아래로 훑던 것과 어쩌면 비슷해 보일지도 모르는 시선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상대를 재거나 판단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보고, 기억하기 위한 시선. 그는 한참을 더 당신을 보다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리아는, 어땠습니까?
어쨌든 이 자리는, 비즈니스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온 자리잖아요. 그 말은, 꽤 많은 걸 해냈다는 것 같은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카멜리아 W. 스칼렛:…나는, …조금 힘들고, …초라한 시간을 보냈어요. ……마음 같아서는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전부 털어놓고 싶다가도, 그 모든 게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어져요. …티끌만큼 작은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어서……. …내가 잘 해왔는지 모르겠네요. 음… 라타와 재회하는 자리는 좀 더, 내가 근사한 상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엉망이네요. (민망한 듯 잠시 웃었다가 시선을 떨구었다.)
그래도, 다시 만나게 되어서… 기뻐요, 라타. 그게 제일 커요. 부끄러움이나, 민망함… 그런 것보다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다른 무엇보다도, 당신이 나를 다시 만나게 되어서 기쁘다고 하는 말이… 좋다고 하면… 저는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겠죠. (어딘가 씁쓸한 표정을 하고는, 제 손을 만지작거린다. 그리고는 곧,) 리아, 리아는 충분히 잘해왔어요. 그건 내가 알아요. 건방진 소리긴 하겠지만. (당신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고서는, 미련 가득한 손길로 손을 떼어내었다)
그 잠깐의 틈 사이에, 웨이터가 두번째 메인 디시인 채끝 등심 스테이크를 내려놓습니다.
아그리타는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당신을 보다가, 이내 체념한 듯 웃고 있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하나 더 물어보아도 될까요, 라타.
카멜리아 W. 스칼렛:…근사한 레스토랑에, 세심한 장식, ……이런 배경음악, 기쁘다는 말……. 그러니까, 그게, …여전히……. (떨어져있는 동안, 지난 시간이 참 거세었기 때문일까 전에는 쉽게도 꺼내었던 것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아 곤혹스럽다. 자신이 이토록 약해졌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여전히 나를 사랑하나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는 오래도록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 눈에 담긴 것은, 3년 전 당신이 그의 눈에서 보았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 붉은 눈이, 타인을 볼 때면 무심함과 냉정으로 가득하던 그 붉은 눈이,
당신을 향한 애정과 온기로 절박하리만치 빛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쉽사리 사랑한다는 말을 내어놓지 못합니다.
저렇게 깊은 눈으로, 저토록 미련 가득한 몸짓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곧 아그리타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엽니다.
그리고 그 순간, 둘의 사이로 웨이터가 마지막 접시를 가지고 오는군요.
아, 귀여운 케이크와 소담하게 담긴 휘핑크림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아……. 내가 너무, …곤란한 질문을……했나봐요.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느낌에, 잔을 들어 한 모금을 넘긴다.) …괜찮아요. 기다리겠다고… 했으니까.
아그리타 드 플뢰레:아, 아뇨, 리아, 나는, …….
카멜리아 W. 스칼렛: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꺼져가는 휘핑크림 밑에서 당신은 커다란 눈알 문양을 발견합니다.
눈알로 보이는 문양 주위에는 촘촘한 이빨이 그려져 있고, 그것의 동공은 일자 모양입니다.
주변에 뻗쳐 나온 검은색 획들은 마치 촉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토록 모독적인 형상을, 이제껏 본 적이 있었던가요?
카멜리아 W. 스칼렛: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 미안해요. 당신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
…….
언젠가, 언젠가 정말 말해줄게요.
아그리타는 당신이 무얼 발견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거면 됐어요. …이렇게 되고, 내가 잃은 것이 참으로 많지만…… 그럼에도 얻은 것이 있다면 인내심일 테니까요.
그럼, 이제 다른 시설들을 둘러볼까요? 내일 아침은 돼야 육지에 정박할 테니, …시간은 많거든요. (당신의 손을 잡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이러려고 일부러 선박 위를 약속 장소로 잡은 거군요? …좋아요. 그럼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에스코트를 부탁하는 숙녀처럼,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난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저런, 내가 백 년은 더 살아도 리아 눈치는 못 따라가겠는데요. (장난스레 웃으며 당신의 손을 조심스레 잡은 채로 걸음을 옮긴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이런 커다란 선박은 대체 언제 구한 거예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저런, 이게 제 거란 것까지 알아채셨습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직원들이 이렇게까지 주의하는데, 모를 수가 있나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냥 빌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작게 웃고는) …당신을 보고 싶어서요.
걸음을 옮기자, 층별 안내도가 어느새 눈에 들어옵니다.
풀장, 워터슬라이드, 클럽&바, 도박장, 극장&보드게임장, 스포츠 시설, 조깅 트랙, 쇼핑몰, 스페셜티 레스토랑…….
과연 비싼 크루즈답습니다. 있을 건 죄다 있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뭐가… 정말 많네요. 배 안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어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후후, 길을 잃으면 제가 찾으러 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이 넓은 곳에서 제가 부르는 소리를 라타가 들을 수 있을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언제나 그랬잖아요. (죄책감과 후회가 조금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하며, 그는 가볍게 안내도를 짚는다) 그래서, 어디를 가장 가고 싶으신가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음…그랬죠.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건 조금 더 기다린 이후의 일로 미루어두었기에 안내도로 눈길을 돌렸다.) …도박장이, 있네요…? (의아한 눈으로 당신을 돌아본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뭐, 간단한 도박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제 취향은 아니긴 하지만……. 이 시대의 부르주아들은 퍽 좋아하니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안타까운 일이죠. 간단한 도박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카드 게임 같은 걸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네. 포커나 블랙잭 같은 카드 게임 위주입니다. 관심이 있으신가요?
카멜리아 W. 스칼렛:도박엔 관심이 없지만… 라타와 함께라면요.
미니 카지노, 라고 적힌 홀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서둘러 판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포커, 블랙잭을 위한 판과 이런저런 잡다한 도박판이 널려있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어떤 것이 좋을까요. 라타는 무엇을 제일 잘해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딱히 가리지는 않습니다만, …….
같이 하려면 블랙잭이 편할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블랙잭이라면… 카드의 합계가 21에 가까운 쪽이 승리하는 것, 맞죠?
카멜리아 W. 스칼렛:좋아요. 그럼 블랙잭으로 할까요? 음…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도박이니 무언가 걸어볼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러죠. 무얼… 거는 게 좋을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조금 진부하긴 해도… 소원?
딜러, 준비하게.
우리 둘이 하는 거니, 제가 딜러를 맡겠습니다.
속임수는 쓰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장난스레 말하고선 카드를 섞는다)
아그리타는 유려한 손길로 카드를 섞기 시작합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웃으며 카드가 섞이는 걸 바라본다.)
자신의 카드를 확인하고, 더 받을 건지 선택하시면 됩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음…한 장 더 받을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한 장 더. (웃으며 카드를 건네준다)
카멜리아 W. 스칼렛:어라, 조커 카드를 빼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일단 조커는 빼두죠.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여기선 한 장 더 받는 수밖에 없겠네요.
아, 이런.
카멜리아 W. 스칼렛: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나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음, 아뇨. 카드를 그만 받고 이번 판을 끝내는지를 묻는 거였어요.
카멜리아 W. 스칼렛:끝내야겠어요. 버스트거든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저런. 이번 판은 연습으로 넘기고 한 판 더 할까요?
조커를 미처 빼지 못했으니까요.
(카드를 다시 거둬 섞기 시작한다)
자, 두 장 받으세요.
카드 확인하셨나요? 더 받으시겠어요?
카멜리아 W. 스칼렛:딜러의 카드를 오픈해주시죠.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러게요. 이거, 한 판 더 해야겠는데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후후, 그럼 저야 즐겁죠.
카드, 추가하십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어차피 이대로라면 지는 게 확실하니 한 장 더 받을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좋아요. 그럼 저도 한 장 더.
버스트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하지만 딜러는 버스트가 되어도 지지 않잖아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뭐, 그렇기는 하지만요…….
참가자가 리아 뿐이니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이 경우엔 동시에 버스트가 되었으니 다르려나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이렇게 끝내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카멜리아 W. 스칼렛:하하, 원래 블랙잭은 딜러가 유리한 게임인데도요. 음… 그러면 한 판 더 할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저, 그렇게까지 매정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웃으면서 카드를 섞는다)
더 뽑나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좋아요. 저는 한 장 더 뽑을게요.
저런, 또 동점인 걸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러게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신기해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마음이 이어져 있다, 뭐 그런 걸까요? (웃고는)
다음에도 동점이 나올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어떠려나요? 한 번 해볼까요?
카드 추가하나요?
그대로 가기엔 버스트 확률이 너무 높고… 멈추기엔 확정패니까요. 원래대로라면 죽었겠지만…… 우리는 베팅을 따로 하지않았으니… 여기선 한 장을 더 받는 도박을 한 번 해볼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좋아요. 그럼, 한 장 더?
이런, 역시 버스트에요.
운이 안 따라주네요.
언제 따라준 적이 있었냐만은…….
아그리타 드 플뢰레:소원은 제가 갖게 됐네요.
그럼, 여기서 소원을 말해도 되나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럼요. 무슨 소원인지 한 번 들어볼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리아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제 소원이에요. (웃음)
풋, 그런 게 어딨어요.
그래서야 내기의 의미가 없는데….
아그리타 드 플뢰레:왜죠? 그거야… 제 마음 아닌가요? (웃음)
카멜리아 W. 스칼렛:음… 그치만 제 소원은… (사실은 묻고 싶은 것이 많아서,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것이 당신에게 바라는 가장 큰 것이지만…, 그것은 아직 기다리기로 했으니까. 그 다음으로 들어주었으면 하는, 적당한 소원을 생각해본다.) 음, 좋아요.
…그럼 안아주세요.
그 순간, 아그리타의 뺨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
카멜리아 W. 스칼렛:무르기 없기니까, 빨리 들어주셔야 해요.
그는 곧 삐걱거리는 손으로, 천천히 당신의 어깨를 감아 안습니다.
당신의 가느다란 몸을 짚는 손은 여전히 커다랗고, 따뜻하군요.
그는 마치 어리광이라도 부리는 듯이, 당신의 머리에 입을 맞추며, 숨을 뱉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또 참으로, 안정이 되는 품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말하는 게 조금 늦었네요. (안아주는 당신의 가슴에 고개를 잠시 묻었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보고서 천천히 말을 꺼낸다.) …보고싶었어요. 내게 다시 라타를 만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저도요. 보고 싶었어요. 참으로…….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한 채로, 그는 당신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어느새 밤입니다. 12시를 알리는 괘종시계의 커다란 종소리가 빈 선박 안을 메우기 시작합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시간 가는 줄을 몰랐네요.
아그리타는 미련 가득한 손길로 당신의 어깨를 짚더니,
당신의 이마에 한 번 더 입을 맞추고서 떨어집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러게요. 즐거운 한 때였어요.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의 소원은 정말로 없나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나중에 말해도 되나요?
카멜리아 W. 스칼렛:(…또, 나중에…….) …좋아요. 하지만 너무 나중은 안돼요. 아무리 늦더라도 내가 들어줄 수 있을 때에 말해줘야 해요.
카멜리아 W. 스칼렛:좋아요. 그럼 기다릴게요. (당신의 손등 위에 짧게 입을 맞추고 고개를 들어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그리타, 그는 당신에게 늘 나중에, 를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평소의 당신이라면, 이토록 미적지근하게 구는 사람은 딱 질색이라고 했을 텐데 말이에요.
카멜리아 W. 스칼렛:(…나중이란, 대체… 언제일까. …마음 같아서는 나중이 어디있느냐며 당장 모든 것을 털어놓으라고 하고 싶어. 하지만…… 지금 가장 괴로운 것은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라타일 테니까…. 기다리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면…….)
아그리타 드 플뢰레:……리아. 저기 좀 봐요.
카멜리아 W. 스칼렛:(당신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그리타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굽이 치는 워터 슬라이드가 보입니다.
높이가 꽤 높은 것이 아마도 1층 풀장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들렀다 갈까요? 많이 늦기는 했지만…….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럴까요. 늦긴 했어도…, 이 선박의 절반도 다 보지 못했으니까요.
로비로 더 걸어 들어가니, 거대하게 본인의 존재감을 뽐내는 워터 슬라이드 외에도 자잘한 것들이 보이는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이렇게 물과 가까운 곳에 신문함을 두어도 괜찮은 건가요? (신문함을 살펴본다.)
신문함입니다. 선내 소식을 알리는 자체 신문을 모아두고 있네요.
이런 발행물까지 있다니, 제법 규모가 있는 수준이 아닌 모양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신문을 꺼내어본다.)(직업병)
카멜리아 W. 스칼렛:
자료조사
기준치: |
40/20/8 |
굴림: |
52 |
판정결과: |
실패 |
꼼꼼히 신문들을 펼쳐보면, 당신은 약 한 달 전의 신문에서 이 크루즈의 소유주가 변경되었다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박의 전 소유주는, 당신도 익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 전, 아그리타와 행복한 연애를 하던 시절, …….
카멜리아 W. 스칼렛:(처음부터 아그리타의 명의로 건조된 선박이 아니었구나.)
아그리타가 종종 친한 친구라 소개해주었던 그 사람이로군요.
그리고 이 선박을 인수한 사람은, ……아그리타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
운
기준치: |
30/15/6 |
굴림: |
1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선박 그레이트 레이나 호의 주인이었던 루시아 클라우스의 사망 직후 친우인 아그리타 드 플뢰레가 그 선박을 인수하여……
(…대체 언제……. 해당 신문의 날짜를 확인해봅니다.)
양도가 이루어졌다는 글이 적힌 한 달 전의 신문이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 괜찮은 걸까. 내게 소개시켜줄 정도로 절친했던 친구를….)
(신문을 내려놓고 라타를 돌아본다.)
아그리타는 다이빙대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도 같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다이빙대는 왜…?)(다이빙대를 바라봅니다.)
다이빙대 앞에는 커다랗고 빨간 글씨로 뭔가가 적혀 있는 팻말이 있습니다.
아니, 이런 말을 써놓을 거라면 뭐하러 만들어 둔 걸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오는 게 좋겠어요. 뛰어내리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어요. (크게 불러본다.)
아그리타는 물끄러미 팻말과 당신을 번갈아 보더니, 느리게 미소짓습니다.
이 다이빙대는 일반인이 뛰어내리기엔 제법 상당한 높이라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 뛰어내리면 영원히 사랑이 이어진다는 전설이 생겼어요. 선박의 명소가 된 건 당연한 얘기였겠죠.
…뭐, 그런 덕분에 사고도 자주 나서, 이젠 그냥 이용을 금지해버리게 됐지만요.
……하지만 저는, 도박이라도, 그게 미신에 지나지 않아도, 기어이 뛰어내린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고.
카멜리아 W. 스칼렛:…그렇군요. 어떤 낭만들은 종종 위험을 동반하고는 하죠.
…평소라면 그런 도박같은 건 제 취향이 아니라고 큰 소리를 쳤겠지만…….
방금 막 도박장에서 나와서 그럴까요.
…조금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아그리타는, 뛰어내리지 말라고 적힌 팻말을 젖히고 다이빙대 위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을 돌아보는 시선에는, 더없이 선명한 그 붉음이.
어느 순간에도 변치 않음을 맹세하던 그 감정이.
…영원히?
…….
아그리타 드 플뢰레:…내 소원이 뭔지 알아요, 리아?
그건 말이죠, 이런 미신이라도 붙잡고 싶을 정도로, 그 절박한 소원은 말이죠…….
아그리타 드 플뢰레는,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높이 솟구치는 물줄기, 수면으로 떠오르는 새틴 셔츠. 비치는 파랗고 노란 불빛까지.
목숨마저 걸 수 있다는 듯이 뛰어내려 놓고서, 왜 사랑한다는 그 한 마디만은 하지를 못한단 말인가요.
1층 풀장으로 떨어진 아그리타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이었습니다만, 엄살이라도 부릴 작정인지 퍽 장난스런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 (말하지 못해도 괜찮아. 어떤 것들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이 있으니까. 나는 다만, 확신이 필요했을 뿐이야. 내가 기다릴 수 있다는… 기다리면, 당신이 내게 와줄 거라는 확신이…….)(물에서 빠져나온 라타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정말 멋있었어요.
(흠뻑 젖어 물을 뚝뚝 흘리는 당신의 품 위로, 따스한 눈물이 같이 스민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멋있었나요? 그렇, ……. (말을 하다 말고서 그는 가만히 당신을 끌어안았다. 예전과 같이, 변함없이. 그는 천천히 당신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오늘은 같이 자요. 오늘 밤을 같이 보내게 해줘요.
카멜리아 W. 스칼렛:…….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그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표정으로 웃음을 그리며.)
아그리타 드 플뢰레:…이런, 이러다간 리아가 감기에 걸리겠어요. 얼른 들어갈까요? (당신의 눈가를 조심스레 살살 닦아 주며, 그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선박에서 가장 넓고 아늑한 스위트 룸으로 둘은 걸음을 옮깁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물에 빠진 것은 라타인데요. 억울해라.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야, 저는 튼튼하잖아요? 아무리 봐도 감기 걸리는 건 저보다 리아일 것 같은데요.
카멜리아 W. 스칼렛:…할 말이 없네요. …그치만 그렇게 튼튼하다고 자만하다가 하루 아침에 아플 수도 있는 걸요?
…그니까 음…….
…같이 씻을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 그래도 되나요……?
카멜리아 W. 스칼렛:젖은 사람은 둘이고… 아무리 스위트룸이라 해도 욕실은 하나잖아요.
강이 바로 보이는, 리버뷰 스위트룸은 퍽 호화롭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부끄럼을 타는지 머뭇거리는 손길로 젖은 새틴 셔츠를 벗고는) ……따뜻한 물을 받아놓겠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벨트를 풀어 코트를 한 겹 벗자, 물에 젖어 속살이 살짝 비칠 듯 말 듯한 셔츠 한 장의 가벼운 차림이 된다. 물을 받고 있는 욕조의 한 쪽 벽에 걸터앉는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 (무심코 당신을 돌아보았다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홱 고개를 돌린다. 드러난 귀가 완전 새빨간 것을 보니 단순히 추워서 같은 시시한 이유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 어, 어, 아, 음, 어, 그, ……!
카멜리아 W. 스칼렛:…너무 뜨겁게는 하지 말아줘요. 조금은 미지근하더라도 천천히 온도를 올려주었으면 해요. …처음부터 너무 뜨거우면, …오래 있을 수 없으니까…….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잖아요. 조금 더 오래… 라타랑 함께 있고 싶네요. (무엇을 비유하는지, 확연히 드러나는 말들로 조용히 물이 채워지는 욕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 그으, 그, 그럼요! 미, 미지근하게, 네! 그렇게 맞출게요! (답지 않게 버벅거리며 말을 주절거리다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고서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그러더니 또 다시 당신을 돌아본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오래 당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제 얼굴을 두 손에 파묻는다) ……당신은…… 예뻐요, 너무. 그 어느 것도 당신에게… 당신에게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당신의 근처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젖은 머리칼에서는 여전히 한두 방울, 차가운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그리타는 눈을 감았고, 단단한 손으로 욕조를 짚었다. 간질거리는 입맞춤이 이어진다)
카멜리아 W. 스칼렛:(당황스러워하는 당신의 모습이 참으로 여전히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작게 웃는다. 입 맞춰오는 당신의 입술을 머금고, 3년의 시간 동안 맛본 적 없는 짙은 행복감을 느낀다.)(…역시, 나의 행복에는 당신이 필요해, 아그리타 드 플뢰레. 라타, 나의 사랑하는 라타.)
아그리타 드 플뢰레:(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당신이 가르친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입맞춤이었다. 숨을 뱉는 방식, 혀를 얽는 순서, 그리고 이따금 눈을 떠 당신을 보고는 다시 감는 것까지. 이것이야말로 그가 단 한 시도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명이지 않겠나. 어느새 물이 넘쳐 옷을 적시고 욕실을 뿌옇게 메우기 시작했지만, 아그리타는 당신에게 전념하느라 그런 것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 것 같았다)
카멜리아 W. 스칼렛:(불순한 생각이었으나, 그것은 마치 보상을 받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3년 동안의 이별, 그리고 이어져온 불행… 마치 그에 대한 달콤한 보상을 받는 것처럼…. 찰박이는 물소리가 발끝에 걸리고, 당신의 허리를 타고 손을 감고서 달콤한 키스를 이어나간다. 주고받는 숨이 너무 벅차서 더 많은 숨을 갈구할 때에 언뜻 마주친 붉은 색의 눈을… 너무나 오래 그리워했다. 모두 잃은 줄 알았는데, 언제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멀어지기만 하던 것이 나의 손에 있다는 확연한 감각, 피부 위로 실제하는 감촉을…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자꾸만 당신에게 닿는 손길을 쓸어내리고, 부드럽게 어루어만져본다. 실로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좁은 욕실에 가득찬 더운 것이 비단 뜨거운 물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선연한 금발과 동백을 닮은 붉은 머리칼이 뒤엉킵니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것은 단순한 욕망이 아닙니다.
서로를 향한 애정, 서로를 감싸고, 탐하는 그 붉고 아름다운 것.
카멜리아와 아그리타, 3년 만에 만난 그 더없이 행복했던 연인은,
서로의 살갗에 붉은 동백을 피우느라 그 긴 밤마저 짧다고 여겼을지도 모르지요.
지평선은 여전히 저 멀리, 눈으로 쫓기에도 먼 곳에 있습니다.
아무리 초인 같은 체력을 지닌 아그리타라도 지난 밤은 조금 벅찼던 모양인지,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채 챙겨입지도 못하고서 잠들었던가요?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흔적이 가득하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이마를 짚고서 생각한다)( …천천히 온도를 올린다니, …그런 게 될 리가…… 없구나.)
……. (말없이 잠든 아그리타를 바라보다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다.)
당신의 손길에, 아그리타는 작은 신음 소리를 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나 여기 있어요, 라타.
일어날 시간이에요. (이마 위로 짧게 입맞춘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종종 이런 밤을 보낸 날이면 유독 일어나기 힘들어 하곤 했죠.
잠자는 숲 속의… 아니 선박 위의 공주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잠시 손끝으로 당신의 입술을 살짝 만져보았다가 그 위로 입을 맞춘다.)
입술이 닿자, 아그리타는 느릿하게 눈을 뜹니다.
곧장 손을 뻗어 습관처럼 당신의 목덜미를 감아 안는 것도 잊지 않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이 순간을 꽤 좋아했다. 라타를 잠에서 깨울 적에, 눈꺼풀 뒤로 숨었던 붉은 색을 바라보는 것을.) 아쉽게도요. 벌써 해가 떴네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아……. (아쉬움 가득 담긴 눈으로 당신을 보다가, 짧게 기습적으로 쪽, 입을 맞춘 후 팔을 풀어낸다) ……잘 잤어요, 리아?
카멜리아 W. 스칼렛:…덕분에요. (그러니까 덕분에 편한 객실에서 잘 잤다는 뜻인지, 덕분에 지난 밤에… 그런 뜻인지 그런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서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크음, 흠, ……. (속뜻을 알아차린 건지 또다시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슬그머니 시선을 옮긴다) …그, 일단, 오늘은 조식이 준비되어 있으니 가볍게 먹고 오는 것도 좋겠어요. 그러고 나면 배가 육지에 도착할 거예요. …나갈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럴까요. 어제의 저녁도 참 근사했는데… 조식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카멜리아는 지금 옷을 입고 있는가? 아니라면 아그리타의 상상에 맡긴다.)
아그리타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불로 당신을 칭칭 감아버립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쿡쿡 웃으며) 금방 입고 나올게요. 음… 여분의 옷이 준비되어 있을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아, 네. 옷장에 여러 벌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카멜리아 W. 스칼렛:
크기
기준치: |
40/20/8 |
굴림: |
90 |
판정결과: |
실패 |
있으면 그 옷이 당연히, 아그리타의 옷이겠죠.
카멜리아 W. 스칼렛:(나한테는 조금…아니 많이 클 것 같은데…….)
당신에겐 제법 품이 큰 옷들 사이에서, 비교적 당신과 맞는 사이즈의 옷을 찾아냅니다.
아마 아그리타는 짧은 기장으로 입는 옷인 것 같지만…….
카멜리아 W. 스칼렛:이…정도면 얼추 맞으려나?
당신이 입으니 제법 귀여운 블랙 미니 드레스처럼 보이네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잘 어울리는데요? 그래도, 입고 온 옷은 저 때문에 못 입게 된 것 같으니……. 도착하거든 새 걸로 사드릴게요.
카멜리아 W. 스칼렛:(…너무 짧지 않나?) …음, 괜찮은 것 같아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사실 당신이라면, 뭘 입어도 예쁘지만요.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가 보기에 예쁘다면, 상관 없어요.
아그리타도 능숙하게 옷을 꺼내 입습니다. 제법 파격적인 정장 차림이네요.
스위트룸으로부터, 6층의 레스토랑까지 걸음을 옮깁니다.
둘 밖에 없는 손님이지만, 선상의 모든 시설은 평소와 같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을 함께했던 레스토랑은 이미 두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군요.
수프가 먼저 서빙되고, 곧이어 갓 구운 따뜻한 빵이 식탁 위로 오릅니다.
버터를 아낌 없이 넣은 듯, 고소한 향기가 가득해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들어요. 어제, 많이 피곤했을 테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도요. 아, 음… 제가 대접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조심스레 식기를 든다.)
달그락거리는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어 바삭하게 구운 연어 스테이크가 나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아주 잘 맞아요. 라타가 따로 신경을 써준 건가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후후, 아니라고 하고 싶지는 않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러고보니 묻지 못햇는데, 이 배는 어디에 정박하는 건가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죠. 유람선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어째서인지 비단 배의 행선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어라 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웨이터가 다가와 테이블을 치우고 아이스크림이 소담하게 담긴 그릇을 내려놓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식사를 마치면, 갑판에도 올라가 볼래요?
카멜리아 W. 스칼렛:좋죠. 이렇게 큰 배의 갑판이라면 바다가 무척 넓어보이겠네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좋아요. 곧 배가 육지에 다다를 거예요. 그 풍경도 굉장하거든요.
마침내 식사가 끝나고, 아그리타는 어제와 같이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당신의 손 위로 제 손을 얹는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할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물론이죠. (당신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짓고는, 보폭을 맞춰 걸음을 옮긴다)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태양이 어쩜 그리도 커 보일까요.
아침 나절의 바닷바람이 둘을 스쳐 지나가는군요.
마음껏 나부끼는 두 사람의 머리칼은, 어쩌면 그리도 자유로워 보이는지.
새파란 하늘 아래, 짭짤한 바닷바람을 커다란 유람선의 갑판에서 마주하는 두 연인, 아니, 두 사람.
카멜리아 W. 스칼렛:(수평선 너머의 태양이나, 너울 거리는 바닷바람보다 그에 반사되어 빛나는, 그에 함께 나부끼는 당신의 머리칼이 더욱 아름다워 그것을 잠시 말없이 바라본다.)
그 순간, 아그리타가 시선을 돌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 눈은, 단 한 번도 다른 곳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진중하고 올곧은 시선을 하고 있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이렇게 만났으니 묻는 건데, 리아….
혹시, 우리가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많은 걸 희생해야 한다고 해도… 그래도 저와 함께하고 싶을 만큼, 저를 사랑했습니까?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아그리타 그인데도.
카멜리아 W. 스칼렛:……내게 그 어떠한 것도 알려주지 않고, 다만 기다리게 했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비겁해요, 라타.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러네요. 내가 비겁했네요.
단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오로지 선명한 애정만을 담아서, 아그리타는 당신의 손을 잡고, 이어 당신을 끌어 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당신은 분명 이번에도 내게 기다려달라 말하겠지만, 그럼에도 물을게요, 라타. 그날… 3년 전에, 당신이 내게……. …이별을 말했을 때, 그게 정말로 최선의 선택이었나요. 지금 그걸 묻고 싶었던 거죠. 그게 정말로 당신의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다른 선택이 있었을지…. 내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다만 그 때의 선택에 대해 다른 택지가 있었을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그걸 묻는 것, 맞죠? ……내가 묻고 싶은 것을 어떻게 라타가 먼저 물어볼 수가 있어요. 내겐 기다리라 했으면서. (당신의 품에 조금 더 고개를 묻고서, 팔에 힘을 주어 더욱 세게 끌어안는다.) …비겁해, 진짜. …네, 사랑했어요. 사랑하고, 사랑할 거예요. …내게 더 희생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것이 있다면 얼마일지 모를 생명이라고 한다면 그것마저 희생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한다고, 우리가 처음 사랑을 진심으로 입에 담았을 때부터 그러했다고……, 그렇게 답할게요.
당신은 그가 당신을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과 마주할 때면 언제나 평소보다 미묘하게 빠르던 그 박동이 더 거세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진정 온몸으로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면서, 또다시 한참이나 말을 아끼더니, …….
당신을 만나 사랑을 했다는 게 꿈만 같을 정도로, 나는 당신을 갈구하고 있군요.
지금 이 순간에도요.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도, 처음으로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아, 그 빌어먹을 기다림, 그 빌어먹을 비밀.
3년이나 지났으니, 그만 둘 수도 있을 텐데도.
카멜리아 W. 스칼렛:(이마 위로 내려앉는 부드러운 감촉에 눈을 잠시 느리게 감았다가 떠본다. 여전한 금빛과, 붉은 빛의 당신이 나의 앞에 있다.) …꿈이 아니잖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잖아. ……그런데, …아……. (당신을 끌어안은 가는 팔이 떨릴 정도로 꾹, 힘을 주어 제 품에 당신을 가두어본다.) …잘 들어요, 라타. 나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지나간 날들을 잊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내게 이별을 말했던 3년은, 내게 아주 비참하고, 잔혹하고, 잔인했던 날들이었으니까. 내 생애 가장 불행했던 날이었으니까. 라타는 나의 불행이, 내 가문이, 스칼렛의 몰락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요. 라타가 내게 남긴 것이 얼마나 지독한 흔적이었는지 알아야 해요.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이 내가 얼마나 라타를 사랑하는지… 내게 라타가 어떤 존재인지를 매일같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으니까.
…원망하고 싶지 않았는데, …라타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고 싶었는데……. (고급스러운 재질의 옷깃을 그러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그것을 잔뜩 구겨버린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 (그는 천천히 당신의 손을 감아 쥐었다. 살살 어르고 달래듯이 당신의 손등을 손끝으로 간지럽히고, 이내 장난스레 웃으며 당신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분명 장난스러운 미소였으나, 여전히 물기 가득한 눈은 당신의 말이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여실히 말하고 있었다) …그마저 리아다워요. 나는 리아가 단순히 고귀한 아가씨였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가진 그 불꽃이 너무도 사랑스러웠기 때문이지. 솔직하고, 용맹하고, 그래서 이토록 눈부시고. 그러니, …그러니 내가 당신의 고통이었다고 말하는 게…….
아그리타 드 플뢰레, 혹자는 신의 사랑을 받은 게 틀림 없다고들 말하는 그 사람입니다.
선박이 육지에 도달했다고, 선원이며 항해사가 뛰어다니는군요.
아그리타는 짧게 소리 내어 웃으며, 당신의 뺨을 두 손으로 매만집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내리는 게 낫겠어요.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우는 걸 보았다간, 내가 질투에 미쳐 날뛸지도 모르거든요.
카멜리아 W. 스칼렛:…나만 운 것도 아닌데요, 뭐. (조금 전의 격정과 눈물이 민망한 듯 잠시 부루퉁하게 대답하고서는 손을 들어 당신의 눈가를 쓸어본다.) …그래도 배가 멈추었으니 내려야겠죠.
아그리타 드 플뢰레:좋아요. 그럼, 이번에도 에스코트 할 영광을 주시겠어요? (장난스러운 웃음을 하고서, 그는 당신의 손을 잡았다)
카멜리아 W. 스칼렛:…기꺼이. (또 다시, 당신과 맞잡은 손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감상에 젖어 도착한 곳은 차도는 커녕 인도조차 없는 허허벌판입니다.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단 하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 빼고는요.
카멜리아 W. 스칼렛:(…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더니.)
주위를 둘러보면, 들판 가득 핀 [스위트피] 꽃과 [비석 두 개], 그리고 묶여있는 [말] 한 필이 보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꽃이 참 많이 피었네요. (들판을 가득 메운 꽃들을 살펴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
교육
기준치: |
90/45/18 |
굴림: |
8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름다운 보라색 꽃이 피는 이 식물은 비슷하게 생긴 완두와는 다르게 독성이 강합니다.
다만 향이 좋아 향수나 화장품 따위의 원료가 되기도 하지요.
절절한 꽃말로도 유명한데, 스위트피의 꽃말은…
기쁨, 가련, 추억, …그리고 나를 기억해줘요, 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참, 애절한 꽃이구나.)
(이런 꽃이 핀 들판에 세워진 비석이라면…)(비석을 바라봅니다.)
비석 주위로는 스위트피 꽃이 빙 둘러져있습니다.
그 비석에 적힌 이름은, 당신에게도 익숙하군요.
다름 아닌, 아그리타의 조부와 조모의 성함입니다.
당신을 따라온 아그리타는 물끄러미 비석을 바라봅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냥, 여긴 한 번 같이 와보고 싶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아, …음. ……데려와줘서 고마워요.
(모자를 벗고, 그것을 두 손에 바르게 들고서 배꼽 위로 손을 얹고 정갈하게 허리를 숙여 비석을 향해 인사한다. 몇 초 동안의 묵념이 이어지고서야 허리를 핀다.)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겠죠? (당신을 돌아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그런 당신과 두 사람의 묘지를 바라보는 아그리타의 시선에 어떤 감정이 깃들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럴 리가요. 두 분도 좋아하실 거예요.
(묶여있는 말에게로 시선을 흘끔 보낸다.) …말은 원래 이곳에 두는 말인가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글쎄요. 하지만 여기서 이동수단으로 쓸 수 있는 녀석은 이 아이 뿐이겠죠.
퍽 능글맞은 소리를 하며, 아그리타는 근처 간식통에 든 당근 조각을 말에게 먹입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같이 타야 할 것 같은데. 어떠신지?
카멜리아 W. 스칼렛:그렇다고 하니 신세를 좀 져야겠구나. (말을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카멜리아 W. 스칼렛:
승마
기준치: |
5/2/1 |
굴림: |
33 |
판정결과: |
실패 |
아그리타 드 플뢰레:저런……. 잠시만 맡겨주시겠어요?
승마
기준치: |
80/40/16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능숙한 승마 솜씨에 기분이 좋은지 크게 흔들림도 없는 길입니다.
긴 갈기를 바람에 휘날리는 말도 신이 난 모양이지요.
이 틈을 타 은근슬쩍 당신의 허리를 둘러 안는 아그리타의 손은 얌전하지 못하긴 하지만요!
어쨌든 밤을 보낸 사이니, 이런 것마저 들뜨지 않겠어요.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드디어 국도가 보이는군요.
오픈카의 창문 너머로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이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군요.
차에서 내린 남자는 이쪽으로 다가와 대신 고삐를 쥐고, 당신에게 손을 뻗어 말에서 내리도록 돕습니다.
아그리타가 사람 하나 태워죽일 시선으로 이쪽을 보고 있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죄송하지만 에스코트 해줄 사람이 따로 있어서. (안장 위에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려 아그리타를 바라본다.)
아그리타는 언제 그런 시선을 보냈냐는 듯 웃으며 당신에게 손을 뻗습니다.
(손을 뻗은 채로, 당신의 허리를 감아 안고서 가볍게 들어 올려 내려준다)
카멜리아 W. 스칼렛:(손을 뻗어 잡으려다 안겨서 당신의 목에 팔을 감았다가 가볍게 땅 위에 내려선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리아도 참.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이다)
카멜리아 W. 스칼렛:(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한 명 살렸구나.)(아까 차에서 내린 남자와 오픈카를 흘겨본다.)
당신의 시선을 따라 아그리타의 시선도 옮겨 갑니다.
당신과 이야기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가운 음성입니다.
그나저나, 이 말의 이름이 베엘놉인 모양이에요.
억울해하는 비서에게 차키를 건네 받은 아그리타는 자연스레 당신의 어깨를 둘러 안고 오픈카의 조수석 문을 열어줍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말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줘도……되나? 라타의 말이니 괜찮은 건가…?)
아그리타 드 플뢰레:이제 그만 갈까요?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새빨간 오픈카가 햇빛을 받아 과하게 반짝거립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럼요. 끝까지 에스코트 잘 부탁드려요. (약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넘긴다.)
도대체 오픈카가 있으면서 말까지 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뭐, 그것도 변덕이겠죠.
아그리타 드 플뢰레:……리아, 가문의 재건은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습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글쎄요. 얼마나 걸릴까요. 우선은 갚아야 하는 돈이 있으니 그것을 먼저 해결하고… 이름의 가치를 되찾으려면… 내가 잘하는 수밖에 없겠죠. 단지 부를 되찾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얼마나 걸릴까요. 실은 무엇을 해야 좋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요즘의 시대는 물질과 황금 이외의 가치에 대해서는 그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으니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럼에도 결국 당신은 해낼 거예요. 그런 물질과 황금을 손에 쥔 자들은 결국 당신이 가진 고결을 탐내고, 그를 닮고자 하니까요. 그들은 평생을 배워야 하는 품위를 갖지 못했지만, 당신은 그 품위를 가지고 있죠. …그러니 머지 않은 일일 겁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렇게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그래도 목표는 있어요. 그 거리, 나의 집, 스칼렛의 역사가 머문 그 거리에 그 옛날의 활기와 아름다움을 되찾아주고 싶어요.그건 곧 그 거리를 오가는 이들에게 스칼렛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주겠죠. 변화에 적응하는 것보다도 다음 변화가 더욱 빠른 시대이니,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당신의 대답에 그는 퍽 즐겁고 행복한 기색을 합니다.
당신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세상에 선함이 옳다는 증명이 되어주리라는 게.
바로 그 점이, 아그리타 드 플뢰레가 사랑했던 카멜리아 윈터 스칼렛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니까요.
곧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차가 주유소로 들어섭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음, 미안해요. 기름이 떨어진 것 같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하긴, 이런 차들은 연비가 좋지 않은 법이죠.
카멜리아 W. 스칼렛:괜찮아요. 기다릴게요. 어쩐지 이 말을 무척 자주하는 것 같네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미안해요. 고마워요. (짧게 당신의 뺨에 입을 맞추고 차에서 내린다)
조수석의 서랍 안에는 아그리타의 것으로 보이는 [다이어리]가 보이는군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콘솔박스에는 영수증이며 수표 같은 [종이 뭉치]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 다이어리도 쓰는구나. 하긴, 그토록 유려하게 편지를 쓰는 이니까.)
아까부터 잔잔한 소리가 흘러나오던 [라디오]에서는 잠시 방송을 틀어주고 있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이건 뭐지? (종이 뭉치를 집어본다.)
카멜리아 W. 스칼렛: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종이뭉치들 사이에서 엊그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복권을 하나 발견합니다.
억만장자가 이런 걸 구매하는 이유는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종이뭉치 사이사이에 온갖 곳에서 날아온 부고 전보가 꽂혀 있습니다.
날짜는 가장 먼 것이 2달 전, 가까운 것은 사흘 전이었네요.
단순히 그가 아는 사람이 많아서 이리도 많은 부고를 받은 걸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무슨 부고가 이리도 많이…….)
카멜리아 W. 스칼렛: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이름이 적힌 부분들은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그와 가까운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최근에 죽은 모양입니다.
카멜리아에게도 익숙한 이름 하나가 보였으니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클라우스인가……. 어제 선박의 신문함에서도 보았지. 어쩐지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도 같아. …어렵네.)
카멜리아 W. 스칼렛:
지능
기준치: |
70/35/14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부고장에 적힌 이름은 율리우스, 어려서 가문을 나가 살았던 아그리타의 친척이라고 들었던가요.
분명, 그 역시 아그리타와 제법 가까운 사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라디오에서는 이번 주의 복권 당첨 번호를 읊고 있습니다.
벌써 몇 주째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벌써 300만 파운드의 상금이 걸린 복권이었죠.
당첨번호는 16, 23, 45, 12, 33, 27…….
카멜리아 W. 스칼렛:(300만 파운드면…… 어마어마하네.)
(종이 뭉치 사이에 있던 복권을 꺼내어본다.)
16, 23, 45, 12, 33, 27… 그리고 02, 07.
카멜리아 W. 스칼렛:(이 종이 조각의 값어치가……, 300만 파운드?)
…….
앞으로 보고 뒤로 봐도, 완전히 당첨 복권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허탈한 마음으로 복권을 다시 원래 위치에 돌려놓는다.)
어느새 당신의 뒤에서 나타난 아그리타가 언짢은 표정으로 콘솔박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알고 있었어요? 방금 전, 라디오에서 말하길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300만 파운드짜리 복권이 당첨되었음에도, 아그리타는 그리 기뻐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운전석에 가 앉더니 시동을 겁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는 기쁘지 않나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기쁠 수 없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거예요.
카멜리아 W. 스칼렛:…왜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건, 답할 수 ……. (답할 수 없다, 고 말하려다가, 다시 깊게 한숨을 쉰다. 당신을 부르고도 왜 죄다 말할 수 없는 것들 뿐이란 말인지) …… 모든 일엔 대가가 있다고 하잖아요.
이런 행운들이 거저 쥐어질 리가 없죠.
카멜리아 W. 스칼렛: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라타에게도 대가가 주어지나요. ……대답해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말하기 어렵다면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요. 이미 기다리겠다고 했으니까….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 사랑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겠죠.
주유소를 빠져나가 도시로 들어가는 톨게이트를 지나면, 제법 많은 차량이 도로를 막고 있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카멜리아, 그래도 단 하나만은 말할 수 있어요.
내가 바랐던 건 오로지 당신 하나였어요. 이 빌어먹을 부도, 명예도, 영광도 아니고, 당신 하나. …결국 일이 이렇게…….
카멜리아 W. 스칼렛:……하긴, 라타는 신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데, 신의 사랑이 달가울 리 없군요.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조금은 장난스레 웃어보인다.) 내가 신의 질투를 조금 산다 하여도 억울할 게 없겠어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신의 질투를 당신이 사면, 나는 진정으로 견딜 수 없을 겁니다.
제법 진중한 말이었지만, 아까보다는 퍽 풀어진 말투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신이 아닌 나를 사랑한다는 말에는 부정하지 않는구나. 퍽 귀여운 모습에 작게 소리내어 웃는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음, 차가 좀 많이 막히는데.
잠시만요.
자동차 운전
기준치: |
80/40/16 |
굴림: |
2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운전석에 앉은 아그리타는 마치 보란 듯이 당신 쪽을 한 번 돌아보더니, 여유롭게 한 팔을 창틀에 걸치고서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습니다.
요리조리 늘어선 차들 사이를 휘젓고 지나가는 빨간색 스포츠카.
이 차가 조금만 덜 비쌌어도 분명 여기저기 치였을지도 모르죠!
질주하는 차량, 질색하며 우리가 탄 차를 보는 사람들의 놀란 시선들…….
카멜리아 W. 스칼렛:(데려다준다고 하지 않았나…?)
평소 당신의 집으로 가는 길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새로 생긴 대형 백화점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런데 라타, 우리 지금 어디로…? 백화점?
집주인이 신상 샤넬 워치를 샀다던 그곳이군요.
저 때문에 예쁜 옷을 못 쓰게 됐잖아요.
그는 당신의 손을 잡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섭니다.
내부의 직원들은 일렬 종대로 늘어져 서 있다가, 둘이 카펫을 밟자마자 일제히 고개를 숙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아니, 그치만… 이렇게 갑자기……엇…? (백화점 내부의 상태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고개를 돌려 설마하는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데이트를 방해 받는 건 싫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벌어졌던 입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합, 하고 닫힌다.) …….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예요. 오늘 이곳 백화점을 이용하려고 했던 다른 손님들에게 무례하잖아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으음, 알았어요. 그래도 오늘은 봐 주는 거죠?
카멜리아 W. 스칼렛:…이미 벌어진 일을 다시 무마시키려면 더 혼란스럽겠죠. 뭐… 그래요. 오늘만.
혼난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있던 그가 다시 활짝 웃으며 당신을 봅니다.
힐끔 이쪽을 보던 직원 몇이 귀신이라도 본 표정을 지었지만, 뭐 알 바는 아니겠죠.
아무튼, 당신과 아그리타는 직원을 따라 완전히 다른 통로로 들어섭니다.
그렇게 들어선 라운지는 백화점의 바깥 공간과 비교해도 퍽 화려합니다.
그와 사귈 때도 한 번도 와본 적 없던 곳을 이제야 와보네요.
벌써부터 짐을 들 준비를 하며 뒤를 따라다니는 짐꾼도 있네요.
아니, 정확히는, 둘은 매장 한 가운데 앉아 있고, 직원들이 당신에게 어울릴 옷들을 골라 가져오고 있어요.
직원들이 수십 개의 행거를 들이고 또 빼내기를 반복하고,
그 중 몇 십 벌의 의상이 마침내 최종 선택을 받아 눈앞에 늘어집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입어 보십시오, 리아. 퍽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까.
당신을 보는 눈빛에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미 맛이 간 것 같아요.
직원은 그런 당신에게 드레스룸의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 (잠깐 사이에 벌어진 어마어마한 돈부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룸으로 다가선다.) …라타, 다음을 위해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라타와 함께 옷을 골라야 한다면 함께 걸으며 매장을 둘러보고, 함께 옷을 고르고… 어찌 보면 소박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더 즐거울 거예요. 물론 예쁜 옷을 사주고 싶은 라타의 마음이야 잘 알지만……. 어쨌든 이 옷들, 라타가 고른 거죠?
아그리타 드 플뢰레:…미안해요, 오늘은 시간이 없었지 뭡니까. 직원들 퇴근도 챙겨줘야 하고……. 내가 너무 내 입맛대로 골라왔나요? 물론 리아, 당신은 뭘 입어도 잘 어울릴 것 같아 고르는 데도 오래 걸리긴 했지만요, 네. 제가 고른 겁니다.
아그리타의 발언에 직원 몇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합니다만, 프로답게 금방 갈무리하는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럼 됐어요. 금방 입고 나올게요. 이번엔 라타가 기다릴 차례군요? (드레스룸으로 들어간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옷들이 커다란 드레스룸으로 함께 들어갑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직원1:근데, 저 플뢰레 가문은 진짜 신기하지 않아?
직원1:아니, 부자도 3대는 못 간다고 하잖아. 근데 내내 돈이 저렇게나 많았다는 게 말이 돼?
직원1:게다가 저쪽 주식은 전부 완전 우량주잖아. 떨어지는 꼴을 한 번도 못 봤대.
직원2:어떻게 그렇게 돈이 많지? 사업 머리도 타고 나는 건가?
카멜리아 W. 스칼렛:(…직원들 입이, 참…… 가볍구나.)
직원1:야, 어떻게 몇 백 년 내내 사업 천재들이 나오냐?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고 있었지만, 당신에게는 확실히 들렸습니다.
그의 가문이, 기이할 정도로 오래도록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는 걸요.
곧이어 다가오는 아그리타의 목소리에, 떠들던 직원들이 황급히 몸을 피합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음? 기다림은 어디로 가셨죠, 아그리타 드 플뢰레 양? (옷 매무새를 마저 정리하고서 장난스레 웃으며 드레스룸을 나온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음, 그, 아, 음, …….
……정말 잘 어울립니다.
기껏 꺼낸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일 정도로요!
카멜리아 W. 스칼렛:…누구의 안목인데 당연한 소리를.
이토록 아름다워서는.
제 욕심을 채우려면 밤을 새도 모자라겠어요.
거기. 이거 전부 포장해서 이쪽 주소로 보내도록.
카멜리아 W. 스칼렛:……말려도 소용 없겠죠.
백화점 의류매장의 하루 치 실적을 아무렇지 않게 다 채운 아그리타는, 당신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 이끕니다.
그의 퍼스널 쇼퍼 중 한 명이 두 사람을 화이트골드 톤으로 디자인 된 화장품 코너로 안내하는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옷이 끝이 아니었구나.)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이번 시즌의 신상, 저기부터 여기까지는 모두가 믿고 사는 베스트 제품의 컬렉션 상품…….
직원은 의욕이 넘치는 목소리로 당신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이거, 화장품은 필요 없다고 했다가는 저 직원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이상하지 않네. 응. …….)
화장품 매대 직원:……참! 그러니까, 이거 한 번 써보시겠어요? 이번 시즌에 새로 나온 향수예요!
(작은 목소리로) 사실, 아그리타 회장님의 회사에서 나온 건데요…….
3년 전부터 조향사들을 달달 볶아서 만들었던 동백꽃 향수가 드디어 완성되었거든요!
카멜리아 W. 스칼렛:(달달 볶았구나.) …그럼요. 자, 손목이면 될까요? (셔츠를 살짝 걷어 손목을 내어준다.)
화장품 매대 직원:어우, 이건 별로고 저건 너무 세고, 얼마나 까다롭게 지시하시던지! 평소에는 가이드라인만 주시던 분이 말이에요…….
어머! 이것봐, 피부도 이렇게 좋으시고!
직원은 신이 나서 당신의 손목에 가볍게 향수를 뿌려줍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
관찰력
기준치: |
70/35/14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손목을 코로 가져가, 향을 잠시 맡아 보다가 뒤를 돌아 아그리타에게 다가간다.) 이 향수를 라타가 그렇게 까다롭게 검수했다면서요? 자, 그래서 어때요? 좀 마음에 드나요? (괜스레 한바퀴 빙그르르 돌아본다.)
물끄러미 당신과 직원이 이야기를 나누던 것을 보던 아그리타는, 당신이 다가오자 화들짝 놀랍니다.
어이구, 시뻘개진 귀나 숨기고 대답하지 그래요.
아그리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손을 뻗어 당신의 손목을 쥐고는 제게로 끌어 당기는군요.
눈을 감고, 손목에 고개를 대어 당신의 향기를 맡습니다. 그리곤 짧게 손목에 입을 맞춘 뒤, 당신의 손을 놓아주는군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당신이 떠오르는, 그러면서도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향수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것만큼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었어요.
카멜리아 W. 스칼렛:……. (매번 이런 것에 놀라고 당황스러워 얼굴을 붉히는 것은 당신이었는데, 드물게도 제 얼굴이 붉어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조향사분들에게 나중에 보너스라도 챙겨줘요. 저도 마음에 드네요. (향수보다는, 그것을 만들라 지시하였을 당신의 마음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서도…. 뒷 말은 삼키며 다소 장난스럽게 웃어보인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래야겠습니다.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들었으니, 응당 어울리는 보상을 줘야죠. (당신을 향해 마주 웃으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뒤에 있는 직원에게 눈짓으로 물품들을 포장하라 이른 뒤에, 이번에는 다정하게 팔짱을 낀다)
잠시 쉬다 갈까요? 피곤하죠?
저쪽 카페테리아에서 음료를 좀 마실 수 있어요.
카멜리아 W. 스칼렛:(사실 개인 쇼퍼니, 프라이빗 룸이니 하는 덕에 그리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 그럼 그렇게 할까요.
VIP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카페 시설은, 사실상 찻집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서재 안에서 음료도 제공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서적]들이 잘 구비되어 있고, 큼지막하고 편안한 가죽 소파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일반 카페가 아니라 VIP전용이었구나.)
…음, 북카페 컨셉인 걸까요. (서적들을 둘러본다.)
카멜리아 W. 스칼렛:
자료조사
기준치: |
40/20/8 |
굴림: |
2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서가 한 쪽 면에 연도 별로 정리된 경제 잡지가 보입니다. 언제나 그 표지를 차지하고 있는 건, ……아그리타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사실 내가 거대한 아그리타 세계관 안에 들어와 있는 건 아닐까.)
각종 잡지 속에는 매 해의 경제와 관련된 기사가 적혀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어딜 가도 아그리타의 이야기가 잔뜩이네.)
플뢰레 가문이 소유한 사업체들을 세세히 분류해 둔 이 기사들은, 전부 칭찬 일색입니다.
자세히 살피면, 플뢰레 가문에 대한 가십거리도 실려 있네요.
하지만 이 정도의 재력이라도 모든 불행을 막아 줄 수 는 없었던 것일까?
플뢰레 가문에서 꾸준히 일어나는 불행한 인명 사고는 모두의 탄식을 불러 일으킨다.
충분한 돈이 있다면 행복을 살 수 있다고 한 이들에게,
카멜리아 W. 스칼렛:……. (눈살을 찌푸린다. 수준 낮은 가십지. 이런 것이 어쩌다 이런 공간에 흘러 들어 왔을까. 그러나 동시에 꾸준한 인명 사고에 대해서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꾸준하게 계속 발생하는 사고는, ……사고가 아닐 가능성이 있으니까.)
당신의 뒤로 양 손에 홍차를 든 아그리타가 걸어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잡지를 다시 서가에 정리해두고는 다가오는 당신을 바라본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좀 둘러 봤습니까? 홍차를 달라고 했어요.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와 함께하는 티타임이라, 정말 오랜만이네요. (좋지 않았던 기분이 다시 부드럽게 풀리는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애프터눈 티 세트를 든 직원이 열심히 걸어와 두 사람의 사이에 내려주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좀 둘러 보았지만… 아무래도 안에 들이는 잡지들은 조금 더 신뢰가 가는 곳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어요.
가십지가 섞여 있던 걸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아, ……. 흠, 좀 더 주의하라고 일러둬야겠어요.
물론, 이 백화점의 VIP들은, …그대같지 않은 사람들로 바뀐지 오래지만…….
그러니 좀 더 신중을 기울여야겠죠.
(장난스레 웃으며 홍차를 한 모금 들이킨다)
카멜리아 W. 스칼렛:(사실 그들이 가십을 소모하든, 생산하든… 기분은 좋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그들이 소모하는 가십의 중심에 당신이 섞여 든다는 것이 싫었다. 아까 그 입이 가벼운 직원들도 그렇고……. 모두가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조금 악취미 같은 생각이라며 머릿속을 깔끔히 치워버리고는 홍차를 한 모금 넘긴다.)
…생각을 해 보았어요, 라타. 그러니까, 라타가 3년만에 나를 만나려고 한 이유에 대해서요. 아직은 아무 것도 대답해줄 수 없다고는 했지만……, 어쩌면, 조금 더 지나면은 말해줄 수도 있다고 했으니…. 나는 그걸 라타가 이제서야 다른 선택지를 손에 쥘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한 모금 더, 홍차를 입에 머금었다가 부드럽게 넘긴다.)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 말을 듣는 아그리타는 그다지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희미한 고통마저 배어 나오는 낯이었다. 그는 느릿하게 잔을 내려놓으며 당신과 눈을 맞춘다) ……어쩌면, 다른 선택지가 더 없기에 마지막으로 부리는 욕심일지도 모르지만…….그래도 그렇게 믿어주시는 겁니까? …당신을 또 상처입히게 될까봐 무섭습니다. 하지만, 욕심을 내었으니, 용기도 같이 낸 것이라, 그렇게만 알아두어 주세요. …적어도 지금은.
욕심을 내었으니 용기를 내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당신은 문득, 그가 아주 나이 든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 소원을 빌 수 있는 건, 내가 들어줄 수 있을 때까지…라고 한 말… 기억하죠?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럼 됐어요. 내가 너무 늦지만 않게 해줘요. 너무 늦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남지 않아서,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지만 않는다면…… 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요, 라타.
희미한 웃음이 담긴 그 붉은 눈, 붉은 감정, 붉은 시선으로.
아그리타 드 플뢰레:…물론이에요, 리아. 물론이죠. 물론이고 말고요…….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변함없이 당신을 향하고 있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자, 그럼 자리를 옮길까요. 계속 앉아 있으려니 직원에게 미안하네요.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나긋하게 웃어보인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아, 그럴까요. 그럼. (이번에도 당신에게 손을 먼저 뻗는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 손을 잡고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론 더 전문적인 매장에서 볼 수도 있겠지만, …….
그 어떤 매장을 가도 이 프라이빗 룸에 준비된 상품들만한 것을 찾을 수는 없겠지요.
조명 아래 찬란히 빛을 뿜는 보석들 사이로, 가느다란 [브로치]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눈에 들어온 그 브로치를 잠시 바라봅니다.)
귀금속 매대 직원:어머, 손님! 이 브로치가 마음에 드셨군요!
이 브로치는 50년 넘은 역사를 가진 물건이랍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아, 그렇군요. …어쩐지 한 눈에 들어서요.
귀금속 매대 직원:여기 박혀있는 이 보석은 루비예요. 그 주위에 새겨진 음각에는 블루 다이아몬드가 수놓이듯 놓여있답니다.
그리고 이 브로치에는, 재앙으로부터 사람을 구해준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것 참, 대단한 물건이네요. (미신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서도…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흥미로운 듯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귀금속 매대 직원:먼 옛날에, 한 공작님이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 보석으로 세공한 팔찌를 주었고, 그래서 그 여인이 저주에서 벗어나 공작님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발견될 당시에는 팔찌는 거의 부서지고 이 붉은 루비만 남아, 이렇게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어졌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래서 그런 전설이 생겼군요. …역사적인 유물로써도 상당한 가치일 것 같은데… 어떻게 이 백화점에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귀금속 매대 직원:그거야, 이곳이 플뢰레 가문의 백화점이니까 그렇죠!
귀금속 매대 직원:후후, 혹시 이 브로치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카멜리아 W. 스칼렛:관심은 있지만… 이야기를 잘 들었으니 이제는 괜찮습니다.
(사실 관심이 있더라도 구매할 재력은 없고, 그렇다고 깊이 관심을 보였다가는 라타가 당장에 손을 쓸 테니…….)
그러고보니, 회장님하고 친밀한 사이이신 거 맞죠?
카멜리아 W. 스칼렛:…그렇, 긴 합니다만…….
(눈을 꽉 감았다 뜨고는) 제가 이거 그냥 드릴게요!
…대신, 다음에도 꼭 두 분 같이 방문해주셔야 해요.
카멜리아 W. 스칼렛:아니, 잠깐만요. 그만두세요. 이런 건 받을 수가….
이런 식으로 백화점을 통으로 비우면, 진상 손님도 없고…….
게다가 회장님은 손님께는 전부 퍼주시려는 것 같, 앗, 이건 못 들은 셈 쳐주세요!
카멜리아 W. 스칼렛:(…정말 기상 천외한… 직원이다… 이런 직원을…… 백화점에 두어도 되는 건가…? 그것도 귀금속 매장에……? 혼란스럽다.)
귀금속 매대 직원:저 진짜, 손님이니까 이러는 거예요.
카멜리아 W. 스칼렛:(아그리타는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나?)
귀금속 매대 직원:저 회장님이 저렇게까지 유순하게 대하시는 거, 진짜 처음 보거든요.
아그리타는 당신에게 선물할 보석을 고르고 있습니다. 정신이 없네요.
귀금속 매대 직원:그래서, 받아 주실 건가요……?
제법 어려 보이는 이 직원은, 눈까지 초롱초롱 빛내고 있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고) …받을게요. 하지만 온전한 증여가 아닌 대여나… 조건부 증여 따위의 형태로 받겠어요. 그 이상은 안돼요.
카멜리아 W. 스칼렛:…제게 호의를 보이고 싶으신 것도 이해하고, 플뢰레 회장을 신경쓰는 것도 알겠어요. …하지만 그냥 받기엔, ……제게도 자그마한 자존심이란 것이 있으니 아무것도 없이 받아가기는 힘들어요. 적어도 일정 기간 후에는 반환한다거나 브로치의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차후 갚는다는 조건이 있어야 해요.
귀금속 매대 직원:흠, 좋아요! 그러면, 할부로 드리는 걸로 할게요.
대신 진짜로, 회장님께는 비밀이에요?
카멜리아 W. 스칼렛:…좋아요. 라타에게는…… 뭐, 음… 제가 잘 말해보죠.
직원은 얼른 당신의 손에 브로치를 쥐어주고는, 브로치의 금액이 적힌 계산서를 적어 건네줍니다.
그리고는 슬쩍 당신과 아그리타의 눈치를 보곤,
귀금속 매대 직원: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카멜리아 W. 스칼렛:(…저질렀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그냥 받을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도 잠시… 얼결에 손에 들어온 브로치를 바라보았다.)
계산서에는 15파운드라는 어처구니 없는 금액이 적혀있군요.
물론, 당신의 심미안에 이 반짝거리는 커다란 루비와 다이아들이 가짜로 보이지는 않으니,
카멜리아 W. 스칼렛:(급히 고개를 휙 돌려 직원을 찾아본다.)
대신 저 멀리서 아그리타가 당신에게 손을 흔드네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리아, 여기 재밌는 게 있는데. 같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그래요. 뭔들 재미가 없을까요. 지금의 이 허탈한 마음에 비한다면……. (짧게 한숨을 쉬고서 라타에게 다가간다.)
아그리타가 보던 것은 다양한 찻잔이 늘어선 코너였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이건… 찻잔이네요.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찻잔이 있네요. 무척 독특한 형태의 찻잔입니다.
접시 매대 직원:아, 그건 찻잎점에 쓰이는 찻잔이에요.
접시 매대 직원:여기서 시험 삼아 [점]을 봐드리기도 하는데, 어떠세요?
후후, 찻잎의 모양을 따라 점을 치는 거죠.
카멜리아 W. 스칼렛:어…음, 어때요 라타? 한 번 해볼래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럼 한 번 점을 쳐주실 수 있을까요.
직원은 생글생글 사람 좋은 얼굴로 잔 두 개를 각각 당신과 아그리타 앞에 늘어놓습니다.
찻잎을 담고, 물을 부어 짧게 우린 찻잔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잇습니다.
접시 매대 직원:이제 한 번 쭉 드셔보세요. 바닥에 남는 찻잎을 봐야 하니, 적당량을 남겨 주세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흐음. (손을 뻗어 차를 마시고 찻잔을 내려둔다)
카멜리아 W. 스칼렛:(잔을 들고서 적당량을 마신 후 내려놓는다.)
당신의 잔 속에 남은 찻잎이 반지 모양으로 동그랗게 놓여 있습니다.
연애와 결혼을 의미하는 점괘네요! 호호, 손님께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접시 매대 직원:네에, 네에. 반지 모양의 점괘인 걸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 말에 무심코, 제 옆에 있는 사람, 라타를 바라본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것 참 신기한 점괘네요.
…라타는 어떻게 나왔나요?
직원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아그리타의 찻잔 속을 보더니, 표정이 굳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음… 뭔가 불길한 것이라도 나왔나보죠…? (조심스레 묻는다.)
(잠시 더 아그리타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여기, 별과 뱀 모양 점괘예요. 이건… 마법과 고통을 의미한답니다.
이상하다……. 이런 게 나올 리가 없는데…….
카멜리아 W. 스칼렛:(의미심장한 내용의 점괘에 슬쩍 아그리타를 바라본다.)
어째서일까요? 분명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거나 다름이 없을 텐데.
카멜리아 W. 스칼렛:…뭐, 재미있는 방식의 점괘였어요. 신기하네요. 찻잎으로 점을 볼 수도 있다는 게……. (일부러 살짝 웃어보이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러게요. 재미있는 일입니다. 옆에 찻잔도 좀 사둘까요? 새 잔에 우려 마시는 홍차는 또 맛이 다르잖습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그래요. 티타임에 어울리는 찻잔을 마련해두는 일은 언제나 즐거우니까요.
아그리타는 금테를 두른 찻잔 세트와 동백이 그려진 찻잔 세트를 각각 주문합니다.
그러다보면, 문득 창밖으로 어둠이 내린 것이 보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이럴 때만 참 시간이 빠르게 가네요.
아그리타 옆을 따라 걷던 직원은 물건의 목록을 다시 체크한 후, 전부 카멜리아의 집으로 도착할 거라고 이야기한 뒤 사라지네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러게 말입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했건만.
……슬슬, 돌아갈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오래 걸릴까요?
차가 막히진 않을까요. 늦은 시간이잖아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글쎄요. 아주 많이, 막힐지도 모르죠.
카멜리아 W. 스칼렛:…그리고 가는 길에 기름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럼 아주 오래 걸리겠네요.
카멜리아 W. 스칼렛:……어쩌면 같이 별을 볼 수도 있을 테고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별자리도 같이, 말이죠.
아그리타는 느릿하게 웃으며 당신을 차에 태웁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느릿한 발걸음으로 차에 올라탄다.)
부드럽게 시동이 걸리고, 거의 막히지도 않는 길을, 그는 부러 뉘엿뉘엿 돌아 갑니다.
창밖으로 내리는 어둠, 스치는 나트륨등의 뿌연 불빛.
아니, 정확히는, 말을 하지 않아도 상관 없는 거겠죠.
그저 같은 곳에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그 증명은 고작 몇 바가지의 돈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당신을 보던 눈빛, 당신의 손을 잡던 손길, 다신을 안던 품과 그 터질 듯한 박동, 그리고 그 달아오른 체온이.
이 기나긴 침묵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할지도 모릅니다.
30분 남짓이면 충분했을 거리를, 빙 둘러 도착했습니다.
아그리타는 당신의 손을 잡아 차에서 내리도록 돕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이제, 진짜 돌아갈 시간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당신의 손을 잡고, 천천히 차에서 내린다. 아쉬움이 걸린 발 끝이 어찌나 느리게 움직이던지.) …그러네요.
…이제 갈 건가요, 라타.
마음만으로는 그대 곁에 더 오래 있고 싶습니다만, …….
그래서는 안 됨을 알기 때문에.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러면 내가, 라타를 붙잡으면… 안 되는 걸까요.
리아.
내일이 되고도 여전히 제가 보고 싶거든, …….
그때는 그대가 절 찾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오늘, 이 밤이 무척 길게 느껴질 거예요.
카멜리아 W. 스칼렛:…아주 춥게 느껴질 거예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예, 저 역시도. 설원 위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내일 봐요, 라타. 당신을 맞이하러 갈게요. 가요. 돌아가서… 날 기다려줘요. 나 역시 해가 뜨기를 기다릴 테니까요.
그러면, 떨어져 있더라도 기다림은 함께니… 조금은 덜 외로울 거예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예, 그리 하겠습니다. 리아, 이번에는 함께 기다리는 것이니, ……. 덜, 외로울 겁니다.
당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서, 아그리타는 걸음을 옮깁니다.
그 걷는 걸음에서, 진득한 미련을 읽은 것은, 비단 당신 뿐만은 아닐 테지요.
이제 이 긴 밤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해야겠지요.
벽지나 천장을 제때 갈지 못해 세월의 때가 탔지만, 곰팡이나 누수의 자국 따위는 없는,
아침부터 분주한 소리가 들리며 복도와 홀을 물건들이 채워가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그에게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해가 떴구나. (태어나 가장 긴 밤을 지새었다. 복도를 채우는 백화점 상표의 물건들 사이에서 구김 하나 없이 잘 도착한 옷을 꺼내어 입고는 잠시 심호흡한다.) 가자, 라타에게로.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한다 하여도…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지금 이 순간, 라타를 보고 싶은 거니까. 라타와, …함께 있고 싶은 거니까. …아무래도 좋아.
그런 결심을 하며 나갈 준비를 할 무렵, 이틀이나 확인하지 않은 [음성사서함]의 수신음이 울려대는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이틀이면, 내가 미팅을 다녀온 사이에 쌓인 건가. 음성사서함을 확인해본다.)
……그게, 사실은 그 분이 백작님의 전 연인이셨다는 이야기를 오늘에야 들었습니다.
플뢰레 회장님께는 상대가 백작님이란 걸 미리 말씀드렸는데, ……거절하시질 않으셔서.
저도 정말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장님께도 전화 드렸는데, 그 어떤 연락도 받질 않으시더군요.
혹시 싶어 가능한 모든 연락을 다 돌렸습니다만, …….
백작님과 헤어진 뒤, 매일을 술로만 보내셨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자세한 건 돌아오시면 직접 대면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파트너 건은 체결하는 걸로 되신 모양입니다. 플뢰레 가에서 사업 아이디어 몇 개를 넘겨준다고 했다면서요.
그나저나 참 신기하네요. 분명 여전히 백작님께 마음이 있으신 것 같은데…….
연심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일언반구도 하질 않으셨다고…….
런던의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집이라니. 정말 호화롭기도 합니다.
아무튼 집 주소도 제대로 알게 되었겠다, …….
카멜리아 W. 스칼렛:…하하. 사업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던 것 같은데. ……자네에 대한 처분은 이 일을 모두 마무리 한 다음으로 미루겠어. 아무래도 차일피일 미뤄졌던 답을 들으러 가야 할 것 같으니……. 내가 답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거야. (음성사서함에 대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서는 이내 담판을 지을 주소를 찾아 저택을 나선다.)
런던 시내 중심가, 붉은 벽돌로 짓고 장미 화단이 가꿔진 고급 멘션.
한 아파트 내에 딱 한 세대만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용기를 내자. 라타가 나를 만나러 온 것도, 용기를 낸 일이었을 테니까.)(초인종을 누릅니다.)
미모의 여인:옷 빌려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돌려줄게?
문을 열고서 적발의 아름다운 여성이 걸어 나옵니다.
가운 차림의 아그리타가 그를 마중하고 있군요.
집을 빠져나온 여성은 당신을 입구에서 맞닥뜨리네요.
미모의 여인:어머,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제가 길을 막았죠?
카멜리아 W. 스칼렛:…아니요. 괜찮습니다. (하마터면 댁은 누구시기에 저 집에서 나오느냐고 물을 뻔 했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아그리타는,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봅니다.
그런 둘은 신경도 쓰지 않고서, 여인은 멀어져만 가는군요.
카멜리아 W. 스칼렛:(주먹을 꽉 쥐느라 파르르 떨리는 것도 모르고 고개를 치켜들고서 이번에야말로 초인종을 누릅니다.) …계십니까. 문 좀 열어주시죠? (당신과 마주친 눈길을 조금도 피하지 않으면서.)
들어와요, 제발. 부디.
제가 설명할 기회를 줘요.
카멜리아 W. 스칼렛:…좋아요. 이 모든 게 사실 어디까지 내가 인내하고 기다리며 사랑할 수 있는지 테스트 하는 것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빼고 다 들어줄 테니 얘기해봐요.
그 말에 거의 웃을 뻔하긴 했으나, 아그리타는 잘 참아내고서 당신을 안아 올려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아그리타의 넓은 집에는 오로지 두 사람, 당신과 아그리타 뿐입니다.
새의 지저귀는 소리도, 하늘을 떠도는 구름의 영롱한 빛도, 갇혀있는 이 공간에서는 무엇도 보이지 않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그러니까, 미모의 적발 여인과, 가운 차림으로… 아침에 내가 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같이 있었다는 거죠? 어떤 말로 해명할지 궁금하네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오늘이, 상담일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그쪽이 커피를 쏟아서요.
아그리타가 가리키는 곳에는 선명한 커피 얼룩이 있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당신이 오면, 이번에는 정말로 다 말해줄 생각이었습니다만.
…카멜리아, 내 말이 황당무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들어주세요.
저는, ……. 예, 리아, 저는, 정말로 '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맞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
……플뢰레 가 전부가 대대로,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신의 사랑'을 받았고, …그 대가로, 우리를 내어주어야만 했습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영원한 부, 영광, 명예, ……. 그 모든 것들이 주어지는 대가로, 한 세대에 꼭 한 명을 신의 제물로 내어줍니다.
…그리고 그 인간은, 늘 굉장한 불행과 죽음을 겪습니다. 마치, 이제까지의 사랑을 모두 거둬들이는 것처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변인들이 휘말려 죽고는 합니다.
…그걸 처음, 알게 된 것이, ……
예, 제가 그대에게 감히 모진 말을 했던 그 날, 3년 전의 그 날이었습니다.
……리아,
저는 이번 대의 제물입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제 조모께서는 평생을 조부님 곁에 계시겠다 결심하셨고, 그 결과, …….
두 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카멜리아,
저는 도저히 그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가 그리 될 거라는 건, 도저히…….
그는 그 이기적인 이유로 무엇도 알려주지 않고서 당신을 밀어냈습니다.
오로지,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이기적인 이유로.
수 년 전, 아그리타는 그만의 결정을 내렸고,
우리는 서로 헤어져 참 오래도 힘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필사적으로 그가 헤어지고자 했던 이유를 찾아 헤메던 밤도,
그가 필사적으로 당신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써야만 했던 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어 외로움과 추위 속에서 울었던 밤도.
이제 이곳에 결정권을 쥔 사람은 단 한 명 뿐입니다.
당신은, 이 이기적인 사람의 곁에 계속 남아 있을 건가요?
아니라면, 당신만의 길을 위해, 힘들겠지만 그를 잊고 살아갈 건가요?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는, ……내가 화를 낼 수 없게 만드네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작고 사소한 일로 라타에게 화를 내려 했던 내가 무척이나 부족한 인간처럼 느껴져요. ……내게 그러한 사정이 있었으니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라타는?
아그리타 드 플뢰레:…감히, 이해를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떠나겠다 한다면 내게는 잡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알고도 제 곁에 남겠다고 한다면, 그 역시도……. 그러니 그저, …….
……그저, 그대의 마음 가는 대로 행하십시오.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 이 모든 이야기를 3년 전 그 날의 나에게 해줄 수는 없었나요? 아니면, 어떠한 사정이 해결되어서 3년 전에는 말할 수 없었지만 이제서야 내게 말해줄 수 있게 된 건가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때는,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매일 밤 꿈에 당신이 나와 여전히 웃어주는 걸 보면서도, 제정신으로 잠드는 것이 두려워 가까이한 적 없던 것들을 입에 물면서도, …….
그러다가, 참으로, ……. 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
그대를 딱 한 번만,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너무도 사무치게 보고 싶어서…….
……예, 이기심이었습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고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것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
아니면, 훨씬 더 오래 살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그리 짐작했을 뿐입니다.
…제 주변에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으니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 제발 내게 무엇이든 숨기려고 하지 말아요. 내게 말해주었다면…좋았을 거예요. 3년 전에, 라타가 그 잔혹한 진실을 알아버렸다는 날에라도, 내가 밤낮으로 라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보려고 하던 때에라도, 몇 번이고 반송되어 돌아오더라도 수십,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었던 그 때에라도…… 내게 말해주었다면… 우리는 3년이라는 시간을 더 함께 보낼 수 있었겠죠. ……이런 것에 대해 말해서 무엇할까요. 라타도 지난 시간 동안에 무척 힘들었다는 것을 아는데… 내가 이런 것들에 대해 불평한다면, 당신을 탓한다면… 내가 나쁜 거겠죠. …혹시 그래서 내게 물었나요. 3년 전에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달라지는 것이 있었겠느냐고……. 그래서 물은 건가요? ……. 다른 방법은 없나요. 라타가 제물이 되는 것은… 이미 정해져버린, 바꿀 수 없는 결과인 건가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예, 그것만은, 바꿀 수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어요.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 …제가,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그대가 이토록 강건하고 곧은 사람임을 알았으면서도, …그 모든 선택은, 제가 아니라 그대의 몫이어야 함을 알았으면서도, ……. 당신이 고통스러운 게 싫었다는 말은 핑계였겠지요. 우리에겐, ……. 그런 죽음이나 불행따위 보다, 함께할 수 없음이 더 큰 괴로움이었을 텐데도…….
카멜리아 W. 스칼렛:(…그 말에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조금 더 부드러운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좋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타.
아그리타 드 플뢰레:…제 욕심대로 답해도 되겠습니까?
카멜리아 W. 스칼렛:라타가 잊은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라타에게 아직 소원권이 남은 건 알고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말이 하고 싶었는데요, 헤어지자고 한 건 라타니까, 붙잡는 것도 라타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날 대체 얼마나 더 자존심 없는 여자로 만들 셈이에요. (조금은 부루퉁하게, 약간은 장난스럽게 말해본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카멜리아 윈터 스칼렛, 그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제 욕심을 더하자면, ……. 평생의 운과 소원을 모두 당신을 붙잡는 데 쓰고 싶습니다. 그대가 떠난다 하면 볼썽사납게 바닥에 누워 떼라도 부리고 싶습니다. 예, 저는, ……. 당신이 오래도록 제 곁에 있어주셨으면 합니다. 이 뒤에 무엇이 있을지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참으로… 이기적인 사람이지요. 그러나, 그러나 그대에게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대를, 그대를 이토록이나, …….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카멜리아 W. 스칼렛:……그 말이, 그 진심이 듣고 싶었어요.
내가 얼마나 비참한 죽음을 맞든, 얼마나 잔혹한 말로를 맞이하든 상관 없어요. 내게 가장 비참하고 잔혹했던 건 라타와 이별했던 지난 3년이니까. 그보다 더 잔인한 건 내게 없으니까. …그러니까 좋아요. 그 소원, 이뤄줄게요 라타. 다행히, 그건 내가 아직 이루어줄 수 있는 소원이거든요.
사랑해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 라타. 변함없이,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지금 이 순간부터, 나 아그리타 드 플뢰레는, 무수한 기다림의 끝에 피어난 동백 앞에서,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 단 한 치의 은닉도, 거짓도 없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아그리타는, 그 말을 끝으로 당신의 손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3년 전, 헤어지기 전까지 썼던 반지보다는 덜 화려하고, 어딘가 낡은 듯도 한 그 반지는, …….
아그리타 드 플뢰레:……제 어머님께서 주셨던 반지입니다.
오로지 한 사람, 제 인생을 걸어도 좋을 사람에게만 전하라 하셨습니다.
너무도 늦었습니다만, ……. 받아주시겠습니까?
당신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는 그 손에는, 당신과 맞추었던 커플링이 여전합니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응. 진짜… 진짜로 맹세 한 거예요. 내게, 단 한 치의 은닉도, 거짓도 없이… 온 마음으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단 한 번이라도 어겼다간, 진짜, 진짜, 진짜로 용서해주지 않을 거니까… 이젠 소원권도 다 써버린 거니까요….
카멜리아 윈터 스칼렛, ……그 맹세를 받습니다.
새카맣게만 보였던 거실 안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마치 둘만의 엄숙한 맹세를 축복이라도 하듯, 말이에요.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손을 맞잡고, 입을 맞춥니다.
마치 길고 길었던 3년의 외로움을 서로에게서 보상받길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지러지는 빛 아래서, 둘은 더없이 충만한 애정을 느낍니다.
붉은 담벼락까지 장미 덩굴이 타고 올랐습니다.
분명 예전에는 꽃이 가득해도 휑해보였던 정원입니다만, 이제는 여기저기 소담하게 심어진 동백 나무가 화사합니다.
의회에서 막 퇴근하고 돌아오니, 이 사람은 또 소파에 대충 늘어져 있어요.
한 마디 잔소리를 해주려는데,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배시시 웃으며 마중을 나와 당신에게 입을 맞춥니다.
아그리타 드 플뢰레:오셨습니까? 미안해요, 정신이 없어서 못 들었지 뭐예요. 용서해줄 건가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아니요. 무엇이 내가 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라타의 정신을 빼앗았는지… 궁금하긴 하여도 라타를 용서해줄 수는 없겠는데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아, ……. (왠지 혼 나는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서 당신을 꼭 껴안고 있다) …진짜로요?
카멜리아 W. 스칼렛:음… (잠시 짧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장난스럽게 웃는다.) …그럼 안아주세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그것으로도 충분한 사죄가 된다면야. (이번엔 퍽 능글맞게 웃으며 당신을 폭 껴안아 품에 가둔다)
카멜리아 W. 스칼렛:이런, 그 새 너무 익숙해진 거 아니에요? (아쉬운 듯 말하다가) 그럼, 마지막으로 내게 입 맞춰주세요. 그러면 용서해줄게요.
아그리타 드 플뢰레:정말이지, 그대에겐 못 당하겠다니까요. (눈을 감고서, 천천히 당신에게 입을 맞춘다. 언제나처럼 변함 없는, 당신이 가르쳐 놓은 순서대로, 그 붉은 눈을 이따금 반짝이며)
몇 년 전, 그 모든 진상을 들으러 왔을 때는 그토록 넓어 보였던 이 집은, 더 이상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습니다.
현관에서부터 서로를 사랑함에 여념이 없는 덕분이겠지요.
누군가 우리의 사정을 듣는다면, 이 이야기의 종말이 머지 않았음을 알고 우리를 동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입니다.
당신과 아그리타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매일 눈을 가리고 영원한 데이트를 이어갈 테니 말입니다.
당신과 아그리타,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당장의 행복을 아낄 정도로 현명하지 않아 천만다행입니다.
흰 벽지 위에는 두 사람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의 당신과 사신 밖의 당신은 모두 그가 선물한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당신도, 아그리타도, 서로를 위해서라면 이젠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더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것보다는 더 자주, 더 심하게요.
어쩌면 모든 동화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날 수 있었던 건,
……기사님과 백작님이 남들보다 조금 더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언제 서로에게 끔찍한 죽음이 찾아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