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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 심장이 얼어붙은 용 이야기 - 아서제이 플레이로그 수정본

 

:: CoC 7th ::

:: W - 꿀비 ::

:: KP - 비슬 ::

:: KPC - 아서 ::

:: PC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 플레이 일자 - 2022.01.11 - 2022.02.04 ::

:: 플레이 타임 - 약 37시간 ::

 

 

チャットログ

이야기꾼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먼 왕국에 심장이 얼어붙은 용이 살았습니다.
용은 전지전능한 존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천사의 날개처럼 부드러운 깃털 침구에도, 짝을 잃고 우는 나이팅게일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왕국은 천년간 평안했으나, 용이 마음을 잃어버린 이후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갈수록 강해지는 날카로운 바람에 숲과 샘은 식어가고, 추위를 타고 찾아오는 죽음이 사람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왕은 대신들에게 물었습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용의 겨울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야기꾼 그러자 부유한 공작이 말했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용에게 더 많은 재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야기꾼 연이어 유명한 신관이 말했습니다.

루시안 F. 세인트월 “용에게 더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야기꾼 이어서 똑똑한 학자가 말했습니다.

섀넌 A. 벨허스터 “용에게 더 높은 지식을 깨쳐야 합니다.”

이야기꾼 하지만 용은 많은 재물도, 깊은 믿음도, 높은 지식도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자 “용의 심장을 녹여주어야 합니다.”

이야기꾼 그러자 왕은 왕자님에게 무슨 희생을 치뤄서라도 왕국을 구해내기를 명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제레미아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놓인 회의실에 앉습니다.
맞은 편 테이블, 상석에는 왕이 앉아 있으며, 테이블 위에는 보고서가 놓여 있습니다.
아직 빈 의자가 세개있습니다.
용의 탑으로 가기 전날, 선생님들을 만나기로 한 시간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폐하, 제가 왔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래. 잘 와주었다. 무슨 일로 너를 이 자리에 오게하였는지는 알고 있겠지?
이런 일을 시키게 되어 미안하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용의 겨울을 거두기 위해 저를 탑으로 보내려 하시지 않습니까.
후계가 하지 않으면 그 누가 하겠습니까. 이해합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실로 그러하다. 막중한 임무이니 왕자의 어깨가 무거울 테지. 오늘은 네 임무를 도와 조언할 이들을 불렀으니 그들에게서 지혜를 얻어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길 바라마.
선대부터 기온이 떨어질 기미는 있었으나, 이러한 추위는 이례적인 일이다.
벌써 이 추위의 시대를 '겨울'이라 명명하고 맞선지도 27년이 지났으나 여태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지요. 그 결과 무수히 많은 목숨들이 죽어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래. …어쩌면 이것이 우리 왕국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리 하지 않기 위해 제가 왔사오니 근심은 내려놓으시지요, 폐하.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왕국을 지키는 로흐파르샤의 일원으로서, 왕국의 후계자로서 네가 이 문제에 실로 큰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임해주기를 바란다.
너를 지목한 것은 다름아닌 '아무것도 아닌 자'이니, 너는 반드시 '겨울'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리 된다면 참으로 기쁘기 그지 없을 테니, 필중의 각오로 노력하겠습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래. 너는 그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겠으나, 그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용과 함께 로흐파르샤를 돕기 위해 많은 일을 한 왕가의 비밀이자 구원자이다.
그가 너를 지목하였고, 너 역시 왕국을 지키고 수호하는 로흐파르샤의 일원으로서 각오가 남다르니 너를 믿고 있겠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폐하. 이 왕국과 로흐파르샤의 안녕을 위해, 폐하의 믿음에 답할 수 있도록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이야기꾼 *노크 소리
대화가 끝나자, 회의실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물끄러미 문쪽을 바라본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너를 도울 스승들이 도착한 모양이구나.
그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타고난 이들이니, 그들의 이야기를 잘 새겨듣도록 하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폐하.

이야기꾼 시종이 왕의 명에 따라 회의실의 문을 열면, 세 명의 사람이 줄지어 들어옵니다.
한 명은 매력이 풍부한 공작

나디아 H. 미뉴어트 나디아 H. 미뉴어트, 폐하의 명을 받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야기꾼 다른 한 명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신관

루시안 F. 세인트월 용을 보필할 수 있는 자리에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 루시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야기꾼 마지막으로 까다롭기로도 지혜롭기로도 유명한 학자입니다.

섀넌 A. 벨허스터 섀넌 벨허스터 부름에 답하여 지혜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이야기꾼 왕과 함께 나라의 극비 사항을 모두 알고 있는 ‘대신’들이 차례대로 원탁에 앉으면, 이어서 왕이 입을 엽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대들을 부른 것은 용을 만나 겨울을 끝낼 임무를 맡은 왕자에게 선대로서 조언을 해주었으면 하기 때문이오.
왕자에게 조언과 바람이 있다면 편히 말해보시오.

이야기꾼 먼저 공작이 일어나 말을 합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용은 영원을 사는 존재.
영원을 사는 이에게는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레미아 왕자께서 용의 '환심'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명심하겠습니다, 미뉴어트 공.
두 대신께서도 제게 자애롭고 지혜로운 가르침을 나눠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야기꾼 그러자 다음으로 신관이 일어나 말합니다.

루시안 F. 세인트월 바뀌지 않는 믿음으로 선을 추구하는 것만이 천년의 시간 이 나라를 지켜보신 용의 자비를 받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왕자님께서 용의 '신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명심하겠습니다. 루시안 신관님.

이야기꾼 학자는 조금 언짢은 표정으로 일어나 말합니다.

섀넌 A. 벨허스터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가 용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무엇이 있지?
우리는 용의 말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을 뿐, 실은 전해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네.

섀넌 A. 벨허스터 나는 용에 대해 아는 것이 상황을 타파할 열쇠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어.
그러니 왕자께서는 용의 '정보'를 얻어오시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섀넌님. 명심하겠습니다.

이야기꾼 대신들의 말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왕이 일어나 말합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왕가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용의 힘을 빌리는 대신, 국가를 유지해 용을 지키고 있으며 이 계약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로흐파르샤의 의무이다.
제레미아 윈터 로흐파르샤. 나는 그대가 왕국의 3왕자이자 후계자로서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용의 '힘'을 얻길 바라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힘?) ……예, 폐하. 부디 명심하겠습니다.

이야기꾼 네 명의 스승이 말을 마치자, 회의실에는 정적이 찾아옵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들이며, 이전에 용을 만나본 적이 있는 자들이다.
왕자는 네 명의 스승들로부터 그들의 경험과 조언을 살펴 그대가 용을 만났을 때에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선례를 통해 용과 가까이 할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왕자는 내일 아침부터 용의 탑에 다녀온 뒤 본 것을 토대로 배울 곳을 찾아가 해답을 찾길 바란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폐하. 왕국과 왕조를 위해 반드시 올바른 답을 찾겠습니다.

이야기꾼 그렇게 첫 번째 저녁, 네 명의 스승들과의 만남이 끝이 났습니다.
왕자는 회의실을 나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습니다.
왕자가 거처하는 별궁에 도착하면, 어느덧 시간은 밤입니다.
캐노피가 달린 커다란 침대 반대 편에는 부드러운 커튼이 덮힌 창이 있습니다.

이야기꾼 창문이 열렸는지 커튼이 가끔 펄럭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밤이구나.

이야기꾼 벽난로와 가까운 곳에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타오르는 벽난로가 가끔 딱, 딱 무언가 튀기는 소리를 내며 방을 데우는 편안한 장소입니다.
[이 방은 언제든 조사할 수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피곤하구만. (가만히 눈가를 쓸고는 한숨을 쉰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여전히 추운 날씨……. (한숨을 쉬며 벽난로 근처로 다가갔다) (벽난로를 살펴봅니다)

이야기꾼 왕자가 벽난로 근처로 다가가니,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던 듯 부지깽이가 벽난로 안에 놓여있습니다.
벽난로 안쪽으로는 금속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주변에는 탄 종이조각이 흩어져 있습니다. 불길 때문에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잘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부지깽이를 들어 인상을 찌푸리며 안쪽을 휘저어 금속을 끌어내본다)

이야기꾼 부지깽이로 적당히 벽난로 안의 물건을 끌어내자 빨갛게 달아오른 금속이 벽난로 밖으로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을 그냥 집으면 화상을 입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게 대체 뭐야?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대충 부지깽이로 질질 끌어 창가로 가져간다)

이야기꾼 창가에 잠시 두고 그것을 바라보니 충분히 식어 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집어서 살펴본다)

이야기꾼 이것은 손바닥안에 쏙 들어갈법한 원형의 금속 세공품입니다.
얼핏 회중시계와 비슷해 보이지만, 바늘과 시계판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고, 빈 구석 한 군데엔 [꽃 모양 금속]이 꽂혀 있습니다.
이 식물은 주변에서 본 적 없는 모양새지만 어쩐지 그립고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대체 이건…….
(일단 챙겨서 넣고 테이블 근처로 가 테이블을 살핀다)

이야기꾼 벽난로 근처에 있는 테이블과 소파는 간단히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된 것으로 벽난로의 열기가 가까이서 닿는 편안한 자리입니다.
그러고보니 내일부터는 이곳에 앉아 기다리면, 밤에 개인적으로 스승을 요청하여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보고서 몇 장이 놓여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보고서라. 겨울과 용에 관한 건가. (보고서를 집어들어 읽어내려간다)

이야기꾼 [보고서]
최근 왕국의 상태에 대해 적혀 있습니다.
용은 원래 신성하고, 예언과 마법을 쓰며 천년간 왕국을 도와왔지만, 심장이 얼어붙은 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앓고만 있다고 합니다. 설상가상 찾아온 겨울은, 성 바깥에 있는 겨울 민족인 [야만인]을 불러왔고, 덩달아 작물의 소출도 떨어져 백성들은 근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힘든 삶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불안한 시대를 [겨울]이라 명명하고 대비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용한테 마법 맡겨놨나. (저도 모르게 툭 뱉고는)
(보고서를 다시 테이블 위에 얹어두고는 소파 위에 털썩 주저 앉는다. 혹시 소파 위엔 무언가 다른 것이 있나)

이야기꾼 [행운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행운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7 > 7 > 대단한 성공

이야기꾼 푹신한 소파 위로 편하게 기대어 누우면, 테이블 아래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뭐지, 이건……. (물끄러미 보다가 떨어진 것을 줍는다)

이야기꾼 주워서 살펴보니 그것은 타다 만 종이조각입니다.
‘봄은 죽은 나무도 움 틔우는 생명의 계절.’ 이라는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봄이라…….

이야기꾼 왕자는 이런 글을 쓴 기억이 없습니다.
애초에 봄이나 계절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생명의 계절…이라. 생명이라 하는 걸 보니 겨울 이전의 세계를 말하는 건가?)
…용은 뭐든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물어보도록 할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고 창문을 닫는다)
(그 와중에 무언가 다른 게 보이는 게 있었나?)

이야기꾼 창 너머 저 멀리로 용의 탑이 보입니다.
정원의 관목들은 전부 추운 날씨를 견디는 종류로 대체되어, 푸른색과 검정색, 갈색만이 일렁입니다.
선대 때부터 이 시대를 [겨울]이라 부르기로 결정 했다는 걸 배운 기억이 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황량하고 춥구나.
그래, 이 긴 고난의 떄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나아가야만 하겠지.
일찍 자자. (침대로 다가가 이불을 한 번 탁 털고 눕는다)

이야기꾼 하인들의 손길이 닿은 푹신한 침대가 왕자의 몸을 포근히 감쌉니다.
어떤 위험도 없을 듯한 안온함을 느낍니다.
그러고보니, 어릴 적 하인들이 떠든다고 늦게 자면 성 바깥에 사는 [야만인]들이 찾아와 잡아갈 거라고 겁을 주곤 했죠.
그들은 큰 덩치에 거대한 팔을 가지고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빠져나온 아이들을 해친다고 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동화였지. 착한 아이를 만들기 위한 동화. ……그들은 겨울의 종족들인가. 한 번 얼굴은 보고 싶군. 누님은 종종 봤으려나.)

이야기꾼 포근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서서히 잠이 오는 것 같습니다,
왕자님, 이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에 들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자자.)
…….

이야기꾼 내일 아침이면 용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왕자님이 용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용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용에 대한 일로 심란해진 마음에 술렁, 어느 날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왕자가 용의 분노를 사서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목소리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젠장)

이야기꾼 …용은 정말로 왕자에게 분노한 걸까요?
내일 아침이면 알게 될 일인데도 괜스레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노크 소리
이른 아침,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이마를 짚다가 침대에서 일어난다) 들어오시죠.

하인 왕자님, 오늘은 아침부터 일정이 있으십니다. 준비를 마치시면 내려와주시지요.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이야기꾼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부터 용의 탑으로 가야 했었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금방 내려가겠다. (제 손으로 환복을 마치곤 한 번 새삼스러운 눈으로 방을 돌아본다) 하……. 천 살 먹은 용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군. 커다란 공동을 채우는 산만한 도마뱀이려나. (짧게 웃고는, 이내 문을 연다)

하인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마차까지 모시겠습니다.

이야기꾼 준비를 끝마친 왕자는 마차를 타고 왕궁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용의 탑으로 이동합니다.

이야기꾼 *지도

이야기꾼 용의 탑은 왕성 제일 안 쪽에 있는 외진 곳입니다.

이야기꾼 탑은 빽빽한 가시나무로 조성된 숲길로 들어갈 수 있으며, 숲 전체는 두껍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이야기꾼 숲 길로 들어가는 유일한 열쇠는 ‘왕’ 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숲 길 입구에서 사병 몇과 함께 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먼저 와 계신 줄 몰랐습니다. 폐하를 뵙습니다. (마차가 멈추자, 곧 내려 왕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는다.) 왕국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일이다. 왕자에게만 일을 맡기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인을 시켜 왕자에게 찻잔과 함께 티포트, 간단한 티푸드와 생필품을 건넨다.)
빈손으로 찾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테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감사합니다. (잔잔하게 웃으며 건네주는 것들을 받아든다) 용의 취향은 이런 것이었군요.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용을 만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용의 몸이 좋지 않으니 오후엔 돌아와 그가 쉴 수 있도록 해주거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명심하겠습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또한, 용은 천 년의 세월을 산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너를 현혹하려 할 수도 있으니 그의 요청을 다 들어줘서는 안된다는 것을 주의하여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폐하.

이야기꾼 왕은 조금 후에 용과 만나게 될 왕자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이내 숲의 문을 열어 줍니다.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왕자님뿐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다녀오겠습니다.

이야기꾼 왕자가 문 안으로 들어가자, 왕은 문을 도로 잠근 뒤 경비병 하나를 문 앞에 세우고 돌아갑니다.
좁고 험하고,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가시나무 오솔길을 걷다보면, 거의 하늘에 닿을 듯한 탑 하나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바로 찾기 어렵고, 하나 밖에 없는 창은 탑의 맨 꼭대기에 있어 마치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갇혀 사는 거 아냐?
이걸…… 보호라고 불러도 되나.
(황당해하면서도 일단 탑 안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야기꾼 걸음을 옮겨 탑을 오르면, 꼭대기에 작은 나무문이 보입니다.
나무문은 가끔 덜컹, 덜컹 작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용님. 들어가도 됩니까?

이야기꾼 나무문 안쪽에서 '들어오게.' 하고 작은 소리가 들립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선다) 안녕하십니까. 제레미아 윈터 로흐파르샤, 신성한 용께 인사 올립니다.

이야기꾼 문을 열고 문 안쪽으로 들어서면 원형의 방이 보입니다.
원형의 방 구석에는 큰 벽난로와 침대가 놓여 있고, 중심에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있습니다.
원형 테이블에는 잡다한 물건이 가득합니다.
닫혀있는 유리 창으로 햇빛이 들어 오지만,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책이 사람 키만한 높이로 쌓여 있어 방 안은 마치 미로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쌓여있는 책 무더기 사이로, 걸터 앉아있는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칩니다.

아서 …….

이야기꾼 용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본 적이 있었던가요.
천 년을 산 신적인 인외의 생물? 커다란 공동을 채우는 산만한 도마뱀?
그러나 그 존재는 왕자의 상상 속 모습과는 달리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색이 바랜 미로 같은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그 색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존재.
귀한 비단에나 쓰일 법한 선명한 붉은 색의 머리카락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신록이 깃든 외눈이 이 찰나의 눈맞춤에 대해 약간의 동요를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용님?
안녕하세요……?
간식을 좀 가져왔는데요. 같이 나눠드시겠습니까?

아서 아, 그래…. 드디어 왔군. 이리 와서 앉게, 제레미아. (제 앞의 책 무더기를 가리킨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잔잔하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당신의 앞에 툭 앉는다)

아서 그래 프레데릭은 여전히 단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지, 제이? (당신의 손에 들린 것들을 간단히 살펴보고선 살풋 웃는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아버지와 많이 친분이 깊으셨던 모양입니다.
제 이야기를 많이 하던가요? 그 애칭은 이제 거의 부르는 이가 없는데.

아서 프레데릭과 만난 것은 한 번이 전부라네. 네 이야기도 전혀 하지 않았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다면 어떻게…….

아서 나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탑 꼭대기에서 세상을 들여다보고 읽는 것이 용의 직책이지만, 내 이름은 아서라네.
제이, 너는 용에게 겨울에 대해 물으러 왔겠지.
그러나 나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 네게는 미안하게도 헛수고라는 말을 해주어야겠구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아서. 용의 혜안과 지혜가 필요하여……. 예?

아서 듣지 못했는가? 겨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 네게 말해줄 것은 없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찌 그리 매정하십니까. 바깥의 수많은 목숨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울며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아서 말이란 그것을 청해 듣는 이가 믿어줄 때에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
듣는 이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은 법.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매우 복잡하여,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악영향이 되어 돌아올 뿐이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제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서 님? ……더 많은 것을 알아내고 나면 제게 답해주시렵니까.

아서 …사람들은 눈보라 뒤에 있는 것을 모르지.
그러니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뿐이네.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직 저를 신뢰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좋습니다. 아서 님. 그리하다면 당신께서 저를 신뢰토록 하기 위한 첫 방법으로 아버님께서 내어 주신 다과를 함께 하는 것을 택하지요. 한 잔 드시겠습니까?

아서 (말없이 당신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미소를 지은 채로.)
그러도록 하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님도 단 걸 좋아하십니까? (당신의 앞에 잔을 내려두고는, 바구니 속에서 티푸드와 찻주전자를 꺼내든다)

아서 좋아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 프레데릭이 나를 만나는 이들에게 단 것을 들려보내는 것은 본인이 단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지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하하, 그렇습니까? 무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소소한 즐거움이 될 테니 좋습니다. (당신의 잔에 찻물을 부어주며 웃었다) 그럼,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하나 골라 보십시오.

아서 그것도 맞는 말이지. 다과보다는 다과를 함께하는 이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개중 가장 모양이 나아보이는 것을 집어본다.) 흠… 이것으로 하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후후……. 좋습니다. 한 잔 드실까요? (제 잔에도 찻물을 채우고는 잔을 들어보인다)

아서 (당신을 따라 잔을 들어마신다.) 그나저나, 제이. 용을 본 감상이 어떤가? 다른 이들과는 썩 다른 반응이라 괜히 궁금하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는 잔을 입에 대어 한 모금을 마시고는, 곧 답한다) 흠……. 저는 사실 당신이 굉장히 거대한 존재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몸이 고작 당신의 손톱만하면 어쩔까 싶었는데…….
무어, 다행히도 인간의 모습과 흡사하시어 제가 놀라는 일은 없었군요. ……다만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하시었으니, ……. 그래, 아서 님, 용의 혜안으로 내다본 미래에는 저희가 어떤 관계던가요? (이번에는 숫제 짓궂은 웃음이다)

아서 하하, 상상과 달라 실망한 건 아닌 모양이니 다행이군.
미래라…….
너는 내가 답하기 어려운 것만을 꼽아 묻는구나.

아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입밖에 내는 것을 예언이라 하지. 그건 어떤 방법으로도 변하지 않아. 미래의 일을 섣불리 말하는 건 미래를 피하고 싶은 이에게도 미래를 실현시키고 싶은 이에게도 불이익을 줄지 모른다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습니까. 후후…….
저는 당신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데, 어쩌면 좋을런지요. 앞으로 매일같이 찾아와 당신의 신뢰를 건네달라 소네트라도 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봄……. 그래, 봄을 위해서. (잠시 고민하는 듯 하고는)
……아서 님께서는 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서 봄이라… 나는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노라 결심했으나 이 정도는 말해주어도 괜찮을 듯 하구나. 그것은 겨울의 다음에 오는 것을 뜻하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겨울의 다음? …….
……어제 한 쪽지를 보았습니다. 봄은 죽은 나무도 움트게 하는 생명의 계절이라고. 저는 그것이 겨울 이전의 왕국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는데…….
겨울의 후에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 겨울이 끝이 나리라는 예언이겠군요, 아서 님.

아서 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그런 일을 할만한 자라면 아무것도 아닌 자겠구나.
그래, 예언…. 그런 것이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무것도 아닌 자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자입니까? 그 자가 저를 당신께 보내라 지목하였다 했습니다.

아서 그는 다른 시간에 있는 사람이야. 우리와 달리,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힘을 지녔지.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쪽지나 목소리, 선물 같은 것으로 제 뜻을 표한다네.
나는 단 한 번 그의 얼굴을 본 적 있으나…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비밀로 해두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흐음. 그렇습니까.
아서 님. 저는 내일도 찾아올 겁니다.

아서 그렇겠지.
아침마다 찾아올 것 아닌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당연하죠.
제게 무어, 궁금한 점이 있습니까? 뭐든 알고 계신다 하셨지만서도.

아서 궁금한 것은 없으나,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있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말씀하시지요.

아서 내가 이 탑에 얼마나 오래 있었다고 생각하나, 제이?
나는 잠시라도 좋으니 탑의 밖으로 나가 왕국을 돌아보고 싶네.
네 말대로 제이, 너는 나를 만나러 내일도 이곳에 오겠지. 프레데릭에게 말해 탑의 열쇠를 받아와주겠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곳에서 나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서 완전히 떠나버리겠다는 말이 아니야. 이 왕국을 두고 도망칠 생각은 없어.
걱정이 된다면 내일 오전 너와 함께 이곳을 나서, 오후에는 다시 탑으로 돌아오겠다.
다른 날은 안돼. 반드시 내일이어야만 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째서죠?

아서 ……다른 이유는 없어. 내일이어야만 하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정말이지, 무엇도 설명해주지 않고서 하라고만 하시면…….

아서 …조각. 조각을 주겠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제가 어린 아이도 아니고, 무작정 들을…… 예?

아서 봄에 대해 물었다는 것은, 계절의 시계를 손에 넣었다는 뜻 아니겠나? 그 기물은 4개의 조각을 다 모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 그 중의 하나는 내게 있지. 그걸 네게 줄게, 제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재밌네요.

아서 …그러니 부디 내 부탁을 들어주었으면 좋겠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확답은 드리기 어렵습니다. 폐하께서 제 말을 들어주실지는 모르니까요.
그러나, …….
노력해보지요.

아서 …그래. 그거면 되었어.
고마워.

이야기꾼 어느덧 짧은 오전의 해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아서 네가 프레데릭에게 허락받은 내 시간은 여기까지겠지. 이만 돌아가 봐.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요.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 …….
좀 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아서 부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되어주길 기대해보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 내일 뵙죠. 아서 님.

이야기꾼 인사를 마치고 들어왔던 길을 따라 나오면, 숲의 입구에서 열쇠를 들고있는 신하와 함께 올 때 탑승했던 마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제 가지. (미련이 조금 남는 표정으로 탑을 돌아보곤 마차에 오른다)

이야기꾼 왕자가 마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신하는 열쇠로 숲으로 통하는 길목의 문을 단속합니다.
이 신하의 이름은 카야.
왕만이 가질 수 있는 열쇠를 맡긴 것을 보면, 왕의 신임을 받는 자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종종 왕의 곁에서 본 적이 있었죠.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 사람을 꼬드겨야 하나?)

마부 탑에서 볼일은 전부 마치셨습니까, 왕자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 모두 보았지.
수고가 많군, 카야.
폐하께서 열쇠를 그대에게 주었나?

noname 마부와 카야는 다른 인물이얌 알지?

Monii ……
그랫구나,

카야 예, 물론입니다. 제가 곁에서 폐하를 모신지 올해로 30년이지 않습니까. 그만큼 저를 신뢰해주시고 계시지요.

Monii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확실히 그대만큼 충직한 신하도 드물지.
……그래, 그래서 그 열쇠는 곧장 반납하는 건가?

카야 하하, 왕자님께서 제 충심을 칭찬해주시니 기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업무가 바쁘셔서 제가 대신 왔을 뿐, 열쇠는 곧장 반납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 그럼 폐하를 바로 알현하러 가는가?

카야 으음, 당장은 폐하께세 알현 요청을 받지 않으실 테니 업무를 마치시면 바로 만나 뵐 생각입니다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 그러면 내가 전달해드려도 괜찮겠나? 용의 일로 보고를 드릴 것도 있고 하니, …….
그대라면 물론 이 중요한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겠지만, 그러기 위해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 그대같이 충직한 신하에게는 더 과중한 업무가 있을 터.

카야 왕자님께서 말입니까? 왕자님께서는 이번 일로 어깨가 무거우실 텐데 제가 어찌 이런 일로…

이야기꾼 [대인 기능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60 말재주 (1D100<=6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58 > 58 > 보통 성공

카야 왕자님께서 저를 이렇게나 생각해주시다니, 몹시도 감명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무얼. 카야, 그대는 이 왕국의 중요한 일원이지 않나.

카야 그런 말을 왕자님께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럼, 폐하께는 왕자님께서 부디 잘 말씀드려주십시오. (열쇠를 건네준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맡겨주어 고맙네, 카야. 그대는 그대의 업무에 더 힘써주도록 하게. 언제나 기대가 커. (건네주는 열쇠를 챙겨 옷 안쪽 깊은 곳에 넣고는 웃어보인다)
 

마부 대신들은 오후까지 업무를 보고 있으니, 대신들을 뵈려면 저녁까지는 기다리셔야 하실 겁니다, 왕자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 …흐음, 그렇다면…….

마부 그 전에 마을 산책이라도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고보니 그는 바깥을 구경하고 싶다 하였지. 내일 가볼 곳을 미리 보아두어도 좋겠군.)
좋다. 그대가 추천하는 곳이 있나?

마부 지금 시간이라면 광장이나 상점가, 주택가, 호숫가 같은 곳이 어떻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흠, 그렇다면 상점가로 가보도록 하지. 나도 오랜만의 외출이니 사람이 많은 시끌벅적한 곳이 보고 싶구나.

마부 예이~ 그럼 상점가로 가겠습니다~

마부 이곳에 마차를 세워둘 테니, 왕자님께서는 편히 주변을 둘러보시고 오시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고맙네. 그대, 무어 필요한 것이라도 있나? 오는 길에 사다줄 수 있네만.

마부 예에?! 아이고, 됐습니다요. 제가 어찌… (그러다 잠시 눈치를 보는 듯 괜히 눈을 굴리다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고선) 아유, 그러면 제가 염치 불구하고, 저어 다른 게 아니라 제 딸래미가 곧 생일인데 이 겨울이란 것 때문에 먹을 것 하나 구하는 것이 전부라 선물을 구하기가 영 마땅찮아 가지고……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는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흐응, 그래서, 딸에게 줄 선물이 필요하다, 이거로군. 무언가 봐둔 것이 있나보아?

마부 어휴,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어린 나이이니 너무 비싼 것일랑 필요없고 장난감 같은 것이 어떨까 하는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평소 좋아하는 것이 있었나? 무언가 흥미를 가지는 물건이라든지, 분야라든지.

마부 으음 (잠시 고민하다가) 실은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술래잡기 같은 것이 유행인지 하루 종일을 뛰어다니고 와서 신발이 영… 아이고 그치만 아이들 신기는 신발은 이렇게 덥썩 받기엔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그냥 작은 인형 정도면 될 듯 싶습니다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무어, 좋네. 그럼 포장도 예쁘해 해서 가져다 달라 하지. 그럼, 수고하게. 다녀오겠네. (작게 웃고는, 슬쩍 손을 흔들고서 상점가 안쪽으로 걸어들어간다)

마부 예, 예~ 조심해서 다녀오십쇼 왕자님~ (허리를 꾸벅 숙인다.)

이야기꾼 이 거리는 귀족들이 후원하는 여러 길드들의 본거지로 이루어진 거리입니다.
필요한게 있다면 이 곳에서 구매할 수 있겠지요.
상점가 안 쪽에는 공방들이 있고, 바깥 쪽에는 상점들이 즐비합니다.
그리고 상점가의 중앙에는, 길드의 대표들끼리 회의를 하는 사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유쾌한 거리로군.
……신비주의 용께 드릴 선물도 하나 골라볼까.

이야기꾼 상점가 안 쪽으로 들어서면 각종 세공품이나 철물, 가죽 등을 작업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합니다.
어떤 가게든 전부 무기나 갑옷 같은 군납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공방의 장인들도 어쩐지 낯선 사람인 왕자님을 경계하는 듯한 눈치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뭐야?)
……. (황당한데)
말 좀 묻겠네만.

장인 (쭈뼛거리며) 예~, 어서오십시오. 무슨 일이십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린 여자 아이에게 선물하면 괜찮을 신발이나 인형을 찾고 있는데……. 어찌 분위기가 심상찮군. 죄 병장기나 두들기고 있지 않나.

장인 아이구, 요즘 주문이 밀려서 어쩔 수 없죠. 안쪽으로 더 들어가시면 악세사리나 공예품을 파는 공방도 나올 겁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주문이 밀려? ……최전선의 말인가? 누님에게서 별 연통은 없었는데…….

이야기꾼 장인은 바쁜 척 자리를 뜨며 휘파람을 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주문서나 납품서 따위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나?)

이야기꾼 [관찰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관찰력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5 > 15 > 대단한 성공

이야기꾼 심상치 않은 느낌에 가게 안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 공방의 무구에는 군납품에 쓰이는 문양을 새기지 않았고, 전부 귀족들의 개인 문장을 새겼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 미친자들이?)

이야기꾼 이 문양은…최근 왕성에서 거주하다 공작이 거주하는 살롱으로 이사를 간 귀족들의 문장이네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지금 저 혼자만 살겠다고 내빼겠다는 건가, 아니면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주변의 다른 가게들을 살펴본다. 무기와 갑옷류 외에는 만들어지는 것들이 없나?)

이야기꾼 상점가 안쪽으로는 쭉 철물점이나 가죽 공방 같은 것이 나란히 있어 각종 무구들을 만들어내거나, 이따금씩 공예점 같은 것이 보입니다.
상점가 바깥 거리에는 호객행위 같은 것이 즐비한 상점들이 쭉 늘어서 있네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흐음…….
일단 바깥쪽으로 가서 선물이라도 사두어야겠군. 안쪽은 다 이런 것들이니…….
(그러고는 저 중앙쪽…으로 한 번 가볼까. 무기를 주문했다는 게 영 신경 쓰여)
(일단은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겨 아동용 신발을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봅니다)

이야기꾼 상점가의 바깥 거리에는 빵을 굽는 가게라던가, 양장점 같이 호객 행위가 중요한 가게들이 모여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호오…….

이야기꾼 추운 날임에도 상점가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왁자지껄한 이야기 속에는 약간의 따스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군.

이야기 조금만 걸음을 옮기자, 아동복을 전문으로 하는 듯한 옷가게가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주인장 계신가? 어린 여자 아이가 신을 신발이 좀 필요하네만.

옷가게 주인 어서오세요~ (버선발로 달려나와 손님을 맞이한다.)
어린 아이가 신을 신이란 말이지요? 이런 디자인은 어떠십니까? (주인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조그마한 털신들이 여럿 놓여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귀엽군. 아이가 좀 활동적인지 신발이 자주 헤진다 하여, 퍽 튼튼하게 재봉된 것이면 좋겠는데.

옷가게 주인 아이구, 튼튼한 것보다도 따뜻한 게 제일 아니겠어요? 요즘 같은 날에 튼튼하다고 가죽 신을 신었다가는 발에 동상 걸리기 일수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러하군. 따뜻한 것으로 하나 주시게. 생일 선물이라 하니…… 혹 선물 포장도 되는가?

옷가게 주인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게 그래도 여기 상점가 물건들 중에는 아이가 신기에 제일루 예쁘고 따뜻하답니다.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며 능숙하게 박스와 리본을 가지고 와서 포장한다.) 저어, 가격은 3 은화 입니다만… 헤헤헤…. (손을 비비며 실실 웃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 가격이 정확한가?

옷가게 주인 어휴, 조금 비싸지요? 요즘 물가가 장난이 아니잖습니까~ 날이 이러니 농사 한 번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고 식량 가격이 오르니 먹고 살려고 사람들이 물건을 죄 비싸게 판다니까요~ (능글스럽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이 신발이 제법 좋은 털로 만들어졌답니다. 귀족 나리님들도 어린 자제분들 신기는 물건이라 품질만큼은 왓땁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하단 말인가……. 실로 겨울의 피해가 막심한가 보군.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가) ……굶어 죽는 이들도 많겠지. 그래. 참으로 긴 겨울이니…….
……그래, 내 살 터이니 이쪽으로 주게나. (은화 3개를 꺼내어 건네준다)

옷가게 주인 어유 말도 말아요~ 매년 소출 양은 주는데 그마저도 대부분은 군대로 가버리니 백성들 먹을 게 남아나겠습니까~ (중얼중얼 불만스레 말하면서도 웃으며 은화를 받아든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손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군대로…….

옷가게 주인 예~ 그럼요~ 위~대하신 국왕 폐하께서는? 백성들 생각일랑 하나도 않고 낮에나 밤에나 군대만 먹여살리니, 어디 군인 아닌 백성들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옷가게 주인 그나마 미뉴어트 공작님께서 남는 생산품을 길드 쪽으로 돌려 주셨기에 망정이죠. 아니었으면 쫄쫄 굶다가 상인들도 죽고 손님들도 죽고 나라에 군인만 남았을 걸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신나게 나랏님 욕을 하다가 그제야 화들짝 입을 가리며 멋쩍게 웃었다.) 하하, 거 살기 팍팍하면 나랏님 욕도 하고 그런 거죠.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미뉴어트 공께서……. 그렇군. 그나저나 저 안쪽 상가는 죄 귀족들을 위한 무구를 생산하던데……. 혹 상가에 떠도는 소문 같은 것이 있나? 무어, 그것은 눈치껏 못들은 척 할 테니 걱정 말고.

옷가게 주인 (3은화짜리 손님이 물어보는 말인데 여부가 있을까. 주인은 신이 나서 입에 구멍이라도 난 듯 말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에휴, 요즘 소문이 워낙 흉흉하지 않습니까~ 거 밖에 나갔다가 미쳐서 돌아오는 이들도 많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감감 무소식인 사람들도 많고… 거 반란이니 뭐니 하는 살벌한 이야기도 들리니 고귀하신 귀족 나리들도 제 한 몸 살 길은 찾아 나서는 것 아니겠습니까~

옷가게 주인 뭐, 귀족 나리는 제 한 몸 지킬 것을 구할 수 있어서 좋고 장인들은 돈벌어 먹고 살 수 있으니 좋고…
좋은게 좋은 거죠~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 확실히 그렇지. 세상이라는 게 어떻게 될런지……. (말끝을 흐리고는 포장된 선물을 들고 웃어보인다) 고맙네. 그대도 고된 겨울을 따뜻하게 이겨내길 바라지.

옷가게 주인 예에~ 살펴 가십시오, 손님~~ 다음에 또 오시구요~ (얼굴에 만연한 웃음으로 손님을 배웅한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선물을 들고 디저트 가게에 들러 수제 사탕 한 병을 산 뒤에 상점가 중앙으로 간다)

이야기꾼 상점가의 중앙에는 길드의 대표들이 회의를 하는 사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1층에서는 술이나 음료, 뜨거운 음식을 팔고 있고 2층은 개인적인 용도로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방을 내주는 듯 합니다.
날이 추운 탓인지 아직 이른 오후임에도 1층에는 술을 마시는 손님들이 여럿 보입니다.

취객1 자네 그거 들었나?

취객2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그래?

취객1 왜 그~ 그 소문 있잖어~ 군인들이 밤마다 괴성을 듣고 미쳐버린다는 소문!

취객2 아이고 이 양반 또 시작이네. 왜 또 자네 아랫집 처녀가 배를 곯다 군에 들었는데 미쳐가지고 나왔다는 소리 하려고 그러지?

취객1 아니 이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았나!? 어디서도 한 적이 없는데!

이야기꾼 …정말 시끌벅적하네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군인이 미쳐서 돌아온다는 얘기가 제법 많이 퍼져있군. …이 정도면 기정사실이라 보는 게 낫겠지)
(2층으로 올라가볼 수 있나?)

종업원 손님? 죄송하지만 2층은 현재 길드 연합에서 회의중이기에 사전에 허락받지 않으신 분은 출입하실 수 없으십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 잠시만 구경하고 내려오면 되는데……. 내가 곧 돌아가야 하거든. 방해하지 않고 금세 내려올 테니 안 되겠나?

종업원 길드 회의는 법적으로 기밀 유지에 대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회의 참여자 외의 사람을 허가 없이 올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종업원을 미세하게 젖은 눈으로 바라보며 처연한 표정을 짓는다) 정말… 안 되는가? (곧 한숨을 쉬며) 사실 안에 계신 누님께서 급하게 필요하다 하신 물건을 가져왔는데, 누님께서 내가 있는 것을 숨기고자 하시는지라 내 직접 드러낼 수가 없네…….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되겠는가. 내가 아니라 누님을 위해서라도…….

종업원 예, 예?? (동생의 존재를 숨기려 하는 누나라니? 지금 종업원의 머릿속에는 온갖 금단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정말 미안하네. 신분을 밝히고는 싶네만, 그리 했다간 집에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부탁하네…….

종업원 아이고 저는 모, 모르는 일이에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앞을 가로막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기, 길드 회의실은 뒷문 연결 통로가 따로 있지만 열쇠는 제 손에 있으니 절대 몰래 올라가실 수 없으실 걸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며 흔들어 보이다 눈에 띄게 떨어뜨린다.) …어, 어라. 이게 어디로… 갔을까… (형편없는 연기실력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정말 감사한 사람이다)

종업원 (힘내세요 금단의 사랑!)(?)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감사합니다, 정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살짝 웃으며 열쇠를 줍는다)

종업원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2층으론 못가신다니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 저는 돌아가볼게요. (뒷문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아련하게 한 번 더 돌아본다)

종업원 (주먹을 꽉 쥐고 화이팅 포즈를 해보인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2층으로 올라갑니다!)

이야기꾼 조심스레 2층으로 올라가면 문 너머 회의실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상인 연합 길드장 …국가의 존속을 위해 길드는 세력가들의 후원을 받아 지금껏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점점 날씨는 추워지고, 생존이 어려워지는데도 불구하고 왕가는 용을 감싸고 있을 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습니다.
이래서는 국가가 우리에게 아무런 보답을 해주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충성은 대상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기나긴 겨울을 막아 줄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용을 죽여서라도 막아 줄 사람을!

이야기꾼 길드장의 연설이 끝나자 그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크게 울립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와……)
(아버지 얘네 반역 모의 해요)
…….
(정말로 국가는 이제 아무런 힘이 없는가……)
(아무런… 의미도 남지 않게 되는 건가…….)
(겨울이 끝나면 믿을 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극명하게 갈리게 되겠군.)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깁니다)

이야기꾼 그런 엄청난 이야기가 오갔음에도, 거리의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슬슬 해가 지는 듯 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돌아가자.

이야기꾼 마부가 있던 장소로 돌아가면 완전히 저녁입니다. 마침,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네요.

마부 아이구, 왕자님 딱 맞추어 오셨네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벌써 돌아갈 시간인가……. 기다리느라 그대가 고생이 많았군.

마부 아닙니다! 제 일인데요, 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딸아이의 선물을 사왔으니 집에 가서 확인해보게나. (손에 들고 있던 잘 포장된 선물을 건네준다)

마부 아이고 이렇게 대단한 걸...! (잘 포장이 된 박스를 받으며 감격스러운 눈으로 왕자님을 바라보인다.) 정말 감사합니다, 왕자님...!
아이고 그렇지, 오늘 저녁엔 어디로 가시렵니까?

이야기꾼 왕자님은 오늘부터 저녁마다 네 명의 스승 중 한 명을 만나러 갈 수 있습니다.
[왕궁] [살롱] [신전] [도서관] 중 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궁으로 돌아가지. 첫날인데, 아버지께 어찌 되었다 한 줄 말씀부터 올리는 게 자식된 도리 아니겠나.

마부 예, 그럼 왕궁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야기꾼 마차에서 내려 본 왕궁은 굉장히 낡았지만 웅장한 건물입니다.
예전에는 귀족들이 왕궁 내에 살았다고 하지만, 이제는 직계 왕가와 대신들만 출입 합니다.
왕자님의 별궁과 용의 탑 역시 이 왕궁 안에 있습니다.
왕의 집무실은 왕성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왕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긴다)

이야기꾼 둥근 원형의 방에 도착하면, 전면 창을 등지고 책상에 앉은 왕이 왕자님을 바라봅니다.
책상 위는 무언가 서류로 어지럽습니다.
왕의 책상 앞으로 커다란 소파와 작은 탁자가 보입니다.
탁자 위에는 보고서들로 보이는 것이 가득 합니다.
또한, 벽 면에는 왕국의 지도가 가득 붙어 있습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배우러 온 게 있는가, 아니면 네가 앉게 될 방을 둘러보러 왔느냐.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폐하께 오늘의 일을 말씀 드리러 왔습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래.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말해 보거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에게 겨울을 끝내는 법을 물었으나, 아직 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인지 말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첫날부터 해답을 찾을 수는 없으니 더 품을 들여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미 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더군요. 그것이 예언이었을까요?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럴 것이다. 용은 미래를 알고 있을 테니….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리고 오후에는 상점가에를 갔습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상점가라. 공작의 후원하에 설립된 길드의 거점이지. 그래, 어떻더냐?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퍽 수상하였습니다. 혹 폐하께서는 그들의 거동을 알고 계신지요.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글쎄… 어떨 것 같으냐? 왕도의 끝과 끝을 하루면 갈 수 있을 이 작은 나라에서 말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네가 밤에 나를 스승으로 청해 부른다면 해주도록 하겠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그러면 결정하기 전에 제가 훗날 머물 곳을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먼저 살펴본다)

이야기꾼 책상 위에는 여러 서류들이 가득합니다.
[관찰력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관찰력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79 > 79 > 실패

이야기꾼 [……가 제레미아 3왕자님을 후계자로 정하길 원한 이유를 알지 못 했지만, 용의 심장을 녹이고 이 겨울을 끝낼 사람으로 지목한 후 깨달았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아마 이 때를 위해 후계자가 되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야기꾼 앞 부분이 다른 서류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릴 적, 후계자로 지목되어 이 방에 온 날이 떠오릅니다.
때는 막 겨울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였죠.
왕자님을 후계로 지목한 이는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그는 정말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자님을 후계자로 선택한것일까요?
후계로 정해지던 그 때, 그 날에도 이렇게 막막한 기분을 느꼈을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머릿속이 복잡하군)
(어제 본 쪽지는 그가 남긴 것이라 했지. 그렇다면 그 '계절'…… 이라는 것이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정말로 모두가 행복한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서도,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시선을 옮겨 탁자 위 보고서를 훑어본다)

이야기꾼 탁자 위에는 최근 내역으로 보이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야기꾼 [최근 이어진 날씨로 인해 왕가를 신뢰하는 이가 적어지고, 대신 부를 소유한 세력가들이 공작을 필두로 반발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야기꾼 그런 내용의 보고가 계속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해당 보고서의 아래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있습니다.

이야기꾼 [힘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은 힘들지만, 꼭 해야하는 일이다. 나는 사람들의 생존에 집중하느라 그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힘의 균형이라. 공작과의 이야기인가) (이번에는 지도를 바라본다)

이야기꾼 집무실에 붙은 낡고 오래 된 지도를 살펴봅니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1. 세계]
왕도의 지도입니다. 특이하게도 금지된 숲 너머에 털이 난 투구벌레처럼 보이는 생물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섯개의 팔은 인간과 비슷한 모양의 손이 달려 있으며, 두 발로 걷거나, 네 발로 기거나, 여섯개의 발로 뛰어다니는 모양도 보입니다. 그리고 숲의 북쪽에는, [라그나로크]라 명명 된 제단 같아 보이는 것이 있고, 제단 위에는 머리가 하늘까지 닿아있는 거대한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람의 상체은 구름에 덮혀 희미하지만, 두 눈만은 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게 무슨?)
……폐하, 이, 생…물, 은? 무엇입니까?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 지도는 왕국이 세워질 때에 바깥 세상에 있는 외적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작성된 지도다.
제레미아, 왕국의 바깥에 있는 것은 야만인 따위가 아니다.
그것들은 괴물이다.
…왕가는 대대로 바깥의 괴물들로부터 왕국을 지켜왔다.
왕국의 수호자로써 용과 왕국을 지키고, 용은 예언과 마법으로 이를 보조하는 것.
그것이 왕가의 힘이자, 용과의 계약이었다.
그러니 용의 심장을 녹이는 것은 계약을 이행하라 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그렇습니까. (가만히 지도 속에 그려진 기괴한 것을 들여다보다가,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이 [라그나로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괴물만이 존재하는 바깥이라면 이것은 왜 저곳에 존재하는 겁니까?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제법 놀란 모양이구나. 그래, 어찌 겁이라도 나느냐?
그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알지 못한다. 천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서서히 잊혀진 왕국의 역사이거나, 전설이었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닙니다. 겁이 날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곧 고개를 돌려 왕을 바라본다)
혹, 세계의 전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가 있습니까?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래… 겁이 날 것이 무어 있겠느냐. 누군가는 괴물들로부터 살아날 길을 찾아 나라를 유지해야하고, 그것이 로흐파르샤인 것을… 네 형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지. 쯧.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세계의 전설에 관해 알만한 자라면 역시 신관들이겠지. (턱을 쓸며 잠시 고민하다 답하였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제가 아직 알아보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곧장 아버지를 만나길 청할 수 없을 것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너무 서운하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되었다. 네게는 가장 막중한 임무를 맡겨두었으니 개인적으로 나를 청하지 않는다 하여 서운할 것도 없다.
나는 다만 네가 이 겨울을 끝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믿고 있겠다, 제레미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폐하. 폐하의 믿음에 답하여 왕국을 위해 분골쇄신하는 후대의 왕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래. 더 볼 일이 없다면 이만 물러가 처소에서 스승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도록 하여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폐하. 부디 평온한 밤 되시길.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물러난다)

이야기꾼 밤이 되어, 왕자님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습니다.
소파에 다가가 앉으면, 얼마 있지 않아 시종이 다가옵니다.

시종 왕자님, 어떤 스승을 청할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오늘은……. 신관님을 뵈어야겠구나.

시종 예, 알겠습니다. 루시안 F. 세인트월 신관님 말이지요? 요철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꾼 그리고 다시 얼마 후,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노크 소리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신관님이신지요? (문을 연다)

루시안 F. 세인트월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용의 자비가 함께 하시길. 그새 평안하셨는지요, 왕자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덕분에 평안하였습니다. 신관님께서도 평안하셨는지요.

루시안 F. 세인트월 예. 저 역시 무탈하였습니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선다.)

이야기꾼 방 안에 들어선 신관의 손에는 양피지 뭉치가 들려 있으며, 대동하는 시종이나 호위도 없이 단정한 모양새입니다.

루시안 F. 세인트월 그럼, 무슨 일로 왕자님께서 저를 스승으로 청하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신관님께서 신학에 대해 정통하니, 그에 대해 여쭙고자 함이지요. 신관님께서는 이 왕국의 바깥에 [라그나로크]라 이름 지어진 제단이 있음을 아십니까?

루시안 F. 세인트월 제레미아 왕자님께서 신학과 전설에 관하여 그리 관심 깊으실 줄은 몰랐군요. (기쁜 듯 표정이 대번에 온화해진다.) 왕국의 후계가 신학에 관심을 두니, 매우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라그나로크란 종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침 오늘 왕자님께 전해드리고자 한 내용이 이와 관련이 있으니, 이 얼마나 필연적인 일입니까. 용께서 안배하신 일임에 틀림 없겠지요.

이야기꾼 신관은 품에 있는 두루마리를 펼쳐 내용을 보여줍니다.
방금 쓴 듯, 잉크가 채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11. 세계의 윤회, 라그나로크]
죽고 죽이는 바람과 겨울의 시대가 지나면 이어서 태양과 달을 삼키는 늑대의 시대, 흔들리는 땅과 떠는 나무들의 시대, 불길의 시대가 차례차례 번성하고 멸망하리라..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될 것이니…

라그나로크 이후, 숲 속에 숨어 있던 두 명의 인간이 살아남아 그의 피조물들이 번성 하겠지만,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여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러자 최초이자, 최후의 두 명의 인간은 영혼에 강한 상처를 남겨 서로를 묶은 뒤, 다시 윤회를 반복할지어다. 이렇게 우리의 우주는 거대하고 끝 없는 순환 속에 있으며, 끝과 시작은 하나이니 모든 시대에서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리라.

루시안 F. 세인트월 이것은 신관들에게 구전으로 내려오는 종말에 대한 내용입니다, 왕자님.
저는 이 추위가, 이 겨울이 언젠가 다가온다는 종말의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아마 이것은 용의 죽음으로 이 세계가 일종의 끝을 맺는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용의 심장을 녹이는 일이 방법적으로 용을 죽여, 용의 머리로 가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다면 신관님께서는 윤회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설 속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묶어 윤회를 반복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용을 죽인다는 것은 그 용을 죽인 이가 다음 대의 용이 된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을 과연 저처럼 신에게 귀의하지 않은 이가 함부로 행해도 되는 일일까요.

루시안 F. 세인트월 …실로 깊은 생각이십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신을 섬기는 일과 신학에 관심을 두시면 될 일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왕국을 위하는 일이기도 할 테니 말입니다.
용의 죽음이 또 다른 용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용을 죽이는 자가 바로 그 새로운 용이 될 수도 있는 일이지요.

루시안 F. 세인트월 다만, 신학에서는 용은 진정한 죽음이 없는 존재로, 용의 소멸을 두고 '문 꼬리를 놓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저희가 실로 두려워 해야하는 일은 용이 꼬리를 놓고, 윤회와 순환을 그만두는 일이겠지요.
우리는 용의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순환되는 원 안의 존재이니 말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지금의 겨울 후의 종말은 예정된 종말이고, 새 시대의 초석이 될 테지만…….
만일 제대로 된 죽음을 맞지 못하고 꼬리를 놓아버린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영원한 종말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군요.

루시안 F. 세인트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정된 종말 앞에서 그것을 어떻게 벗어날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결말을 맞이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선으로 두고 세상의 끝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순환되는 원 안에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겨둘 '나'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하여 새로이 시작될 시대는 어떠한 세계이고 싶은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을 확고히 하고 용의 대한 믿음을 지닌다면, 많은 이들이 무엇을 남길지 생각할 테고… 그것은 곧 더 나은 시대의 발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혹 놓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많은 것들을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의 뜻을 한낱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고는 하나, 신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작은 안배들을 놓아두곤 하시니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 파편들을 모아 신께서 만들고자 하는 뜻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그 보살핌 아래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요.

루시안 F. 세인트월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루시안 F. 세인트월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더 묻고 싶은 게 생기거든 그때는 제가 신전으로 찾아가도록 하지요.

루시안 F. 세인트월 좋습니다. 그러면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왕자에게 보여주었던 양피지를 벽난로에 던져 태워버린다.) 밤새 평안하시기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밤새 평안하시기를.

이야기꾼 어느새 시계가 자정을 가리킵니다.
정신없는 하루였습니다.
용과의 만남, 상점가에서 들었던 수상한 모의, 바깥의 야만족에 대한 진실, 신관과의 대화….
그러고보니 용이 왕자님께 마을을 둘러보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죠.
열쇠는 미리 빼돌렸으니,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용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부탁을 들어주어도 되는 걸까요?

이야기꾼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눈을 감으면 스르르 잠에 듭니다.

이야기꾼 *노크 소리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들어오거라.

이야기꾼 어느새 아침입니다.

하인 왕자님, 오늘 오전 일정은 어제와 같이 용의 탑으로 가는 것입니다.
준비를 마치고 나오시지요. 마차를 준비해두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 속히 출발하는 것이 낫겠지. 금방 나가도록 하지.
(간단히 환복을 하고 옷 매무새를 정돈한 뒤 열쇠를 챙겨 나간다)

이야기꾼 준비를 마치고 나와보면 거처 앞에 마차가 당도해 있습니다.
용의 탑으로 가는 길은, 어쩐지 어제보다는 날씨가 조금 더 부드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용의 심장이 얼어붙은 이후로 이 겨울도 찾아왔다고 했었지요.
오늘은 용이 조금 기운이 나기라도 한 걸까요?
탑으로 향하는 숲의 길목에는 어제와 같이 왕이 마중을 나와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폐하. (부드러운 웃음을 하고서 가볍게 목례를 한다) 간밤 평안하셨습니까?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래, 비록 왕가의 일로 더 없이 바쁜 밤이었으나, 네 고생과 노력을 아는 만큼 마음은 조금 더 가볍더구나.
그러나 왕자, 지난 밤 카야 경으로부터 듣자 하니 네가 열쇠를 가지고 있다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폐하. 제가 잠시 맡아두었습니다. 탑에 매번 드나들어야 하니, 공사 다망하신 폐하께 매번 청하기보다는 제가 가지고 있는 편이 나으실 것 같아서. 혹 저의 판단이 틀리었거든 엄히 꾸짖어주십시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좋은 판단이었으나 그런 중대한 사안에 대한 보고는 제 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통의 부재로 인한 마찰은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지 않으니.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명심하겠나이다, 폐하.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하마터면 카야 경이 다른 마음을 지녔음을 의심하고 그를 문초할 뻔 하였구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럴 리가요. 그는 언제나 폐하의 편이지 않습니까.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제레미아. 너를 믿으니 이제는 따로 아침마다 나와보지 않겠다. 다만, 잘못된 판단으로 용에게 현혹되어 나라에 위험을 가져올 행동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알겠느냐.
네가 열쇠를 맡게 되었으니, 그만큼 더 책임을 가져야겠지. 열쇠는 용을 보호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 나라와 왕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폐하. 늘 심사숙고하고 또 명민히 판단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폐하께서 보내주신 신뢰에 답할 수 있도록.
공사다망하신 와중 직접 마중을 나와 주시어 큰 은혜를 입습니다.

프레데릭 N. 로흐파르샤 그래. 이제 가보거라. 더는 이르지 않겠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조심히 살펴가십시오. (왕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 뒤 걸음을 옮긴다)

이야기꾼 열쇠를 들고 탑으로 가면 채 탑을 다 오르기도 전에 용이 문을 열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용은 이미 외출 준비를 전부 끝마친 듯 보입니다.

아서 그래, 열쇠는 챙겨왔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오, 기대 가득한 모습이신데요. 제가 안 가져왔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아서 용은 미래를 볼 수 있으니까. 미리 준비를 해두었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잠시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이미 들킨 거였군요. 좋아요,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할까요?

아서 그러도록 하지. 아 그렇지, 제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에?

아서 몰래 나가는 것이니 차림을 바꾸는 게 좋겠어. (당신의 로브를 여미고 자신의 것과 똑같은 브로치로 고정한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앗……. (로브를 여며주는 것을 보며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느릿하게 시선을 피한다) 그, 그러네요. 들키면 안 되니까……. (괜히 쑥스러워져 당신이 고정해준 브로치만 한참 내려다보다가) …예뻐요, 이거. 아서가 만든 건가요?

아서 뭐, 오래된 탑에는 무엇이든 있는 법이지. 흠… 출발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어 먼저 내려가 있을 테니 천천히 내려오지. (탑을 빠르게 내려간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아아, ㄴ, 네……. (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당한 기분이다. 슬쩍 용이 있던 자리를 보곤 계단을 내려간다)

이야기꾼 용을 쫓아 탑을 내려가보면, 이미 용은 오솔길의 입구에 있는 듯 합니다.
그곳을 지키던 경비병과 마부는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고, 마차에 있던 말이 용의 뺨을 핥아주고 있네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귀엽다)

아서 이 정도면 저녁 때 쯤 일어날 것이다. 그 때까지는 안심하고 밖을 돌아다녀도 괜찮겠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용의주도하시군요. (용의주도? 용이 주도했으니까 용이주도라고 불러도 되지 않나? 이런 실없는 농담 생각하면서 가까이 다가간다) 마차를 타고 가나요? 저 마차는 몰 줄 모르는데…….

아서 걸어서 가지. 모처럼 탑의 밖으로 나서는 것이니 하나하나의 풍경이 퍽 소중하여.

아서 설마, 걸음도 못하겠다 하는 것은 아니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럴 리가요. 그러면, ……손 잡고 갈까요. 좀 추워서. (슬금 시선을 피하며 손을 내민다)

아서 그거 좋지. 좋은 생각이야.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생경한 것을 대하는 듯, 아주 살며시.) 그래서, 이 귀중한 나들이로 어디를 가볼 생각인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흐음……. 무얼 보고 싶으신가에 따라 다르겠죠? 사람이 보고 싶으신가요, 자연이 보고 싶으신가요?
(가만히 웃으며 제 손을 조심스레 잡는 당신을 바라본다)

아서 무엇이든 좋네. 탑이 아닌 다른 곳에 가는 것 만으로도 족하니. 제이의 귀중한 시간을 나의 부탁으로 함께 쓰게 되었으니 어디를 가면 좋을지는 제이가 정하는 것이 옳겠지.

비슬 메타적 사유로 선택지를 탐사자에게 넘기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 광장에 가볼까요? 탑에 계속 혼자 있었잖아요. 사람 구경 먼저 해요.

아서 광장이라. 좋군. 내 기억 속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그 추억을 유지하고 있을지, 놀랄 만큼 변하여 내게 신선한 기분을 줄지 제법 궁금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후후. 좋아요. 길은 알아요? 모르면 제가 안내해드리고. (제법 새침하게 이야기하곤 작게 소리 내어 웃는다)

아서 용이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 모습이 제법 귀엽다는 듯 실없는 웃음을 짓고서 잡은 손을 이끌고 걸어나갔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정말 잘생겼군 하여간…….) (보폭 맞춰 걸으며 힐끔힐끔 쳐다본다)

이야기꾼 그렇게 왕자님과 용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빠져나와 왕궁 밖으로 나갑니다.
왕궁 앞, 두개의 조각상이 있는 넓은 광장입니다.
작은 연극 같은 것을 공연하는 아티스트들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북적이는 곳입니다.
광장 여기저기에는 불을 쬘 수 있도록 작은 난로 같은 것이 있고, 그 주변에 경비병이나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아서 (익숙한 곳을 보듯 주변을 살핀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광장은 여전하구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추운 날씨인데도 분위기는 따뜻하죠? 사람 냄새도 나고.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아서 어떠냐고?
아주 마음에 들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다행이네요. (눈을 접어 웃으며 당신의 손을 이끈다) 그럼 어서 구경해요! 시간을 알차게 써야죠.

아서 (시선은 광장의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운 사람들에게로 둔 채,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하고선 당신이 이끄는 대로 걷는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들키면 안 되니까 신나게 인사를 할 수는 없겠네요. 그건 아쉽다. 겨울이 끝나고 제가 왕이 되거든 같이 나와요. 그때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게 해줄게요.

아서 지금도 충분히 즐거우니 괜찮아. (광장의 풍경을 눈에 선명히 담아내는 그 모습을 보면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였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연극 구경? 아니면 저기 사람들이랑 이야기 좀 나눠보는 것도 좋구요. 조각상 구경은 어때요.

아서 오랜만에 나왔으니 어느 것 하나 빼놓기가 어려워. 모두 한 번씩 보는 게 어떻겠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 구경 먼저? (당신의 손을 이끌고서 조각상 앞에 선다) 아서는 이게 무슨 조각상인지 알아요?

아서 용은 모르는 것이 없지. (들뜬 기분에 자랑 아닌 제 자랑까지 곁들이니 실로 사람 같은 너스레였다.)
이것은 용의 조각상이다.

이야기꾼 금속으로 만들어진 오래 된 동상입니다.

이야기꾼 광장 북쪽에 있는 것은 다리가 없는 거대한 용처럼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책 모양 조각들이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음……. 이거 혹시 아서 본체?
(조각상에 관찰력 판정 하겠습니다)

아서 어떨 것 같은가? (조금 의미심장한 눈으로 당신을 보다가 씩 웃었다.) 뭐, 어떻게 보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을까. 조금 다르지만.

이야기꾼 [관찰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관찰력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7 > 87 > 실패

아서 음, 이 반대편… 그러니까 광장의 남쪽에 있는 조각상도 볼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좋아요. 가볼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관찰력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9 > 49 > 보통 성공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미련이 남은 듯 자세하게 용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꼬리부터 머리까지 뜯어보았다. 바닥에 흩어진 책 모양의 조각들의 배치나 세부적인 부분까지 찬찬히 손끝으로 쓸어가며 자세히 살핀다)

아서 그 조각상이 그리도 마음에 걸리는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생김새가 영 신경쓰여서요.
이게 아서의 진짜 본체면…… 꼬리를 무는 습관은 좋지 않아요. 비늘에 상처가 생긴다구요. (눈을 가늘게 뜨며 당신을 바라본다)

이야기꾼 조각상을 천천히 살펴보면 개중에는 용이 쳐다보고 있는 종이가 하나 있고, 그 곳에는 ‘신들조차 삶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파괴로 향하고 있으나, 파괴는 끝이 아닌 하나의 재생일 것.’ 이라는 표지의 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서 쓸데없는 걱정을. 설마 정말로 내 본모습이 저런 뱀같은 형상일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호오…….)
저것보다는 예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건 기대되는데요. (눈을 접어 곱게 웃어보인다)

아서 저런. 제이, 그대는 비유를 알아채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 보여. (픽 웃으며 남쪽의 조각상 쪽으로 걸음을 돌린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흐응, 이런 표정을 볼 수 있다면 영영 배우지 않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난스레 웃으며 당신을 따라 걷는다)

이야기꾼 용의 조각상과 마주보고 있는, 광장 남쪽에 있는 동상은 후드를 쓰고 있는 사람의 동상입니다.
특이하게도 조각상의 얼굴은 비어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건 왜 이래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다)

이야기꾼 [관찰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관찰력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50 > 50 > 보통 성공

이야기꾼 동상에는 [흐름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발치에는 부서진 시계잔해의 조각품이 있습니다.

아서 이 동상이 바로 '아무것도 아닌 자'라네.
그가 다른 시간에 있는 사람이며,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은 저번에 이미 말해주었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네, 기억하고 있어요.

아서 '아무것도 아닌 자'에 대한 것은 극비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동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지.

이야기꾼 잠시 그러고 동상을 보고 있었을까요? 광장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이야기꾼 길거리 악사로 보이는 사람이 바이올린을 켜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아서 예전 광장에서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많았지. 이리 보니 기억이 나는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춤이요?

아서 관심은 있었지만, 늘 왕궁 안에서 창으로 내려다보는 것이 전부였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왕궁이요? (항상 탑에만 있던 게 아니었나? 눈을 끔뻑이며 당신을 바라본다)

아서 설마 내가 용으로 지내는 동안에 줄곧 탑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야 탑을 나온 것은 실로 오랜만이지만 천 년이나 되지는 않았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런, 저는 천 년이나 탑에 갇힌 가엾은 용님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렇지는 않았던가봐요. (작게 웃고는)

아서 아무리 그래도 천 년은 너무 오래지 않나.
그래서, 제이. 나와 함께 춤을 춰주겠나? (잡고 있던 손을 잠시 놓았다가, 이내 다시 손을 내민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가 파트너라면, 얼마든지요. (유쾌한 웃음소리가 하늘을 넘실거린다. 그는 당신이 내민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고는 가볍게 당신과 눈을 맞추었다)

아서 이거 귀한 분을 모시고 춤을 추려니 스텝이 꼬이진 않을까 걱정이군. (바이올린의 선율에 맞추어 가볍게 발을 떼고선 광장의 다른 이들과 맞추어 돌았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걱정은요. 제게만 집중하시면 돼요. (시선을 떼지 않는다. 그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신록이 당신의 눈동자 속에 있고, 그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붉은 꽃이 당신의 머리칼 위에 있었으니 눈부신 한때를 모른다 해서 아쉬울 게 있을까. 당신이 움직이는 것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그는 알 수 없는 해방감마저 느꼈다. 더없이 밝은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테다)

아서 (광장에 흘러나오는 선율은 참으로 경쾌하고 밝은 종류의 것이라 빠른 박자에 맞추어 빙그르르 도는 동안에 당신의 발을 밟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굳은 몸이 풀리는 듯 조금씩 박자에 익숙해지면 조금 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발을 놀린다.) 이런, 이제 발이 조금 움직이는군. (로브의 자락이 날리며 후드 사이로 얼핏 당신의 얼굴이 비칠 때마다 보이는 환한 웃음에 잠시 멈칫하고서 이쪽도 역시 밝은 웃음을 틔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하하! 정말 구경만 한 거 맞아요? 그런 것 치곤 너무 잘 추시는데요! (당신의 웃음에 기분이 좋아진 건지, 목소리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싱그러운 기쁨이 가득했다) 탑에서 혼자 춤 연습 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아서 달리지 않고 산 세월이 한 세월이라 하여도 뛰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과 같은 법이지. (너스레를 떨며 가볍게 턴하고선 박자에 맞추어 당신을 한바퀴 빙글, 턴 시킨다.) 물론, 심심하고 외로우면 혼자서 뭐든 못할까마는… (스스로 말하고도 웃긴지 푸핫,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정말요? 아서 혼자 춤 연습 하는 건 꼭 저도 보고 싶은데요.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주나요? (괜히 또 장난스레 말을 건네며 당신의 리드에 몸을 내맡긴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살랑거리는 후드의 밑단이 넓게 꽃처럼 펼쳐지고) 그 뒤엔 물론 저와 한 곡 더 춰야 하겠지만요!

아서 파트너가 버젓이 있음에도 혼자서 춤을 추라니 그것 참 짓궂은 청이구나. (그 장난스러움에 괜스레 다시 웃는다.)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지금 실컷 용의 춤 실력에 감탄하게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너무한데요, 그건! (바짝 몸을 붙여 웃고는 다시 두 걸음 멀어졌다 돌아온다. 자유롭게 휘날리던 후드자락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곧 딛는 걸음을 따라 가볍게 흩날리는 것은 비단 옷자락 뿐만이 아니었다. 후드 안에 숨긴 빛나는 밀밭색 머리칼도 이따금 함께 살랑대며 눈 앞을 간지럽힌다) 그래도 만족할게요, 지금으로요. 아서의 말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다시 광장에서 춤을 출 날이 오길 바란다는 걸로 받아들이고요.

아서 저런. 이게 그리 흔한 기회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가보구나. (뻔뻔한 듯 아닌 듯 장난스레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본 자라면, 그리고 그가 용이라는 것을 아는 자라면, 용의 심장이 얼어붙었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으리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글쎄요, 아서가 정말 저를 좋아하게 된다면 흔한 기회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장난스런 목소리와 다르게, 그 눈동자 속에는 제법 진중함이 깃들어있었다. 그는 잡은 당신의 손을 끌어와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곧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임을 멈추기 시작하자, 저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고서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전 아직 젊으니 충분히 기다릴 수 있거든요.

아서 …그래. 얼마나 오래 기다리게 할지는 기약할 수 없으나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이 광장에서 춤을 추도록 하자. (잠시 머뭇거린 것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온화하고 따스한 말이었다.)

이야기꾼 서서히 멎어가는 바이올린 연주에 맞추어 움직임을 멈추면, 신기한 광경이 보입니다.
함께 춤을 추었던 몇몇 페어가, 춤이 끝난 후 자신이 가진 악세서리나 물건을 상대와 교환하는 것입니다.

아서 춤을 춰 보고 파트너가 마음에 든 사람은 상대에게 저런 선물을 주는 것이 관행이라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호오……. 그렇다면…….
(제 몸을 슬쩍 내려다본다……. 줄 수 있는 악세서리가 있는가?)

아서 (후드를 벗고 제 안경줄을 걷어내고선 당신의 숨이 닫는 거리까지 가까이다가가 허리를 약간 숙인다. 잠시 부스럭거리더니 당신의 후드를 여민 브로치에 걸어준다.) 지금은 후드를 걸치고 있으니 이렇게 쓰고, 그대 마음에 들었다면 언젠가는 안경줄로도 써주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상냥하네요, 아서. (부드럽게 웃고는 손을 뻗어 당신이 걸어준 안경줄을 잠시 매만져본다) 저는 지금 당장 줄 것이 없는데……. (잠시 고민하는 듯 당신을 올려다보다가 곧 씩 웃어보인다) 답례로 입맞춤 같은 건 기분 나쁘시겠죠, 역시? 대신 내일 올 때 선물을 가져올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신록이 가득한 눈과 꽃의 색이 가득한 머리칼을 가졌으니 얼음과 같은 귀걸이를 드릴게요.

아서 내일이 기대가 되는군. 이거, 파트너께서도 나를 마음에 든다 해주니 제법 기뻐. (괜스레 웃다가도 입맞춤 소리에 헛기침을 몇 번.) 흠, 흠… 제이, 그대는 선물의 답례로 입맞춤을 주는가 보아. (멋쩍게 웃으며 아까의 입맞춤을 기억하는 듯 제 손등을 쓸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니까요.
제가 아무한테나 키스하는 사람은 아니지만요, 아서니까. (이번엔 퍽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함께 흐른다)

아서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야. 다만 입을 맞추는 건 그만 두는 게 좋겠어. 제이, 그대도 알다시피 용의 심장은 얼어붙었다고 하지 않나. (그리 말하며 슬 그려보이는 미소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것이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에? 입맞추면 혹시 저도 심장이 얼어붙는다든지 뭐 그런 건가요? (이해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고 생각하고서는, 그는 가볍게 답하고는 다시 당신의 손을 붙잡는다) 그럼 이번엔 저기 있는 연극 구경하러 갈래요?

아서 좋지. (의문스러운 미소는 떨치고 이내 다시 온화한 미소로 돌아오며 당신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야기꾼 연극은 작은 무대에 설치된 연극입니다.
지금은 [신들의 운명과 황혼]이라는 극이 상영중인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제목 신기하네요. 신전에서 하는 연극일까요?

아서 글쎄. 내가 알기로 이건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옛이야기다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옛이야기요? (흥미가 생기는지 신기한 눈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5. 신들의 운명과 황혼]
불이 꺼진 무대 위, 구석에서 얼굴을 가린 사람이 극을 바라보고, 그를 관객들이 바라보는 액자식 구성의 연극입니다. 액자의 안 쪽인 불이 켜진 주무대에서 배우들이 여러 모양을 가진 이계의 신 분장을 한 채,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불타는 얼음의 신, 늑대의 이를 가진 신, 해저에 가라앉은 신, 영리한 벌레의 신, 뱀인간과 수십 수백개의 신들이 차례대로 번성하고 멸망한 뒤, 불이 꺼진 무대에서 극을 관람하던 배우가 일어섭니다. 그러자 그 배우 주변을 괴상하게 분장한 신들이 느리게 춤을 추며 돌기 시작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다시 극이 처음부터 시작됩니다. 마치 극 내내 반복 된 신들의 싸움이 무의미한 발버둥처럼 느껴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저 얼굴을 가린 사람이 주인공인걸까요…….

아서 이 이야기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대에서 일어난 배우가 비유하는 것은 무척이나 거대한 것이라, 시간도 공간도 꿈처럼 여기는 무언가라는 것만을 알아볼 수 있겠어. 그 개념을 짐작하려 하자면 미쳐버릴테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좋아. 위험에 대한 암시라고 해두는 것이 좋겠어. 사람들이 너무 거대한 것에 호기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그럼에도 연극에 대해 한마디를 해보자면, 이는 수많은 시대가 피고 지는 과정을 은유하고 있는 것 같구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려운 이야기로군요. 이해하지 않아야 하는 은유라니. (잠시 시선을 굴렸다가, 다시 당신을 바라본다) 무어, 더 묻거나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답해주지 않겠죠? (가볍게 웃고는)
그럼, 저기 모닥불 근처에서 몸이나 좀 녹이고 가요. 춤출 땐 오히려 조금 더웠는데, 지금은 다시 추워지기 시작했거든요.

아서 배움이 빨라서 좋은걸. (싱긋 웃어보인다.) 땀이 식으려니 한기를 느끼는가 봐. 어서 가보지.

이야기꾼 연극의 모호한 내용에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겠지요. 불이 피워진 곳으로 가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얼핏 스치는 말을 듣자하니 시민들은 정치적 의견을 나누고 있고, 군인들은 군에 관한 새 소식을 나누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군인도 같이 있나봐요. 옆에 가서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요?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린다)

아서 이런,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취미라도? 하지만 그거 재미있겠군. (덩달아 작게 속삭인다.)

시민1 최근 살롱에 모인 귀족들 이야기 들었나?

시민2 아아, 왕성에서 공작의 살롱 근처로 거처를 옮긴 그 철새같은 귀족들 말인가?

시민1 그래~ 그 박쥐 같은 놈들. 살롱에 모여서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을 모은다고 정신이 없다더군.
왕과 군대가 금지된 숲의 야만인을 막는다고 고생하는 사이에 그런 일을 벌이다니. 이건 숫제 배반이나 다름없지 않나 하는 게 내 생각이네.

시민2 아무렴, 그렇고 말고. 나라의 혼란을 틈타 제 살길만을 찾아서 빌붙는 귀족들이라니… 왕께서 얼마나 한숨이 깊으실지….

시민1 나는 차라리 왕께서 공작의 목을 쳐야한다고 봐.

시민2 뭐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조금 심하지 않나.

시민1 심하기는! 이런 고난한 시기에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백성들은 어쩌란 말이야! 그 불씨를 초장부터 아주 확 잡아버려야지…!

시민2 자네 말이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아서 (소곤소곤) 저런, 미뉴어트 공이 욕을 꽤나 듣고 계신 듯 한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소곤소곤) 그러게 말이에요. 근데 또 어제 길드에서는 아버지가 욕을 먹고 계시던데. 신기하네요.

아서 (속닥속닥) 뭐… 미뉴어트 공은 프레데릭의 친척이기도 하니 백성들이 반란을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속닥속닥) 그런 걸까요……. 하긴, 상점가에 가보니 미뉴어트 공을 위시한 귀족 세력을 지지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거든요. 일반 백성들은 상점가의 소문에도 귀가 밝을 테니 합당한 걱정인 것 같아요.

군인1 (한숨을 푹 내쉰다.) 아이고, 요즘 야만인들 때문에 걱정이다 걱정이야. 갈수록 공격이 거세지니 군대도 몸집을 늘리기만 하고…

아서 오, 이쪽은 군인인가 보군. (조근조근)

군인2 뭐, 어쩌겠어. 성벽을 빙 두르고 지켜서도 화살을 수십 대 부어도 역부족이니 사람이라도 충원하는 수밖에.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게요. 무슨 이야기를 할지 들어볼까요? (조근조근)

군인2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배에 바람구멍을 뻥 뚫려서 오고 몸뚱이에 커다란 손자국 여럿 남겨서 돌아오니…
거 야만인은 분명 크기가 매우 크고 잔인한 게 틀림없어.

군인1 왕궁도 바쁘겠어. 그나마 왕성이 바깥의 야만인들로부터 내부를 지키고 있으니 다행이지.

아서 …군인들도 고생이 참 많구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게요…….
……하기사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 어디 쉽겠느냐만은, ……. 승산이 전혀 없을 법한 일에 뛰어드는 것은 또 다른 일이죠.

아서 …제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나? 목숨을 내놓고 승산이 전혀 없을 법한 일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글쎄요……. 지금으로썬 다같이 죽지 않기 위해서 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요. (한숨을 쉬며 당신과 눈을 맞춘다) 대체 그 어느 누가 그런 일에 쉬이 목숨을 내놓는단 말이에요. 사실, 앞에서 새는 물 막아보겠다고 옆 항아리에서 물 퍼다 붓는 것과 똑같은 행동 같아요. …본인들이 그 숭고함에 만족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씁쓸해지는 건 별 수 없네요.

아서 그렇다면 그대는 차라리 물이 새는 것을 두고보는 편인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럴 수는 없죠. ……그래서 별 수 없다고 한 거예요. 하지만 다른 최선이 있다면 그 최선을 찾고 싶네요. 누구도 고통받거나 괴롭지 않을 방법이요. …너무 이상론일까요.

아서 글쎄.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지. 이상을 이루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그래도 언젠가 제이, 그대가 이상론을 펼칠 때에 내가 그 이상을 같이 들어주겠네. 아무렴 혼자 그리는 것보다야 나을 테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항상 상냥하네요, 아서는. (괜히 잡은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 꼭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예요.

아서 …그래. 약속하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 이만하면 광장에서 둘러볼 것은 모두 보았겠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변치 않는 것이 있어주어 참으로 반가웠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자, 아직 저녁이 되기까진 시간이 꽤 남았다네. 이번엔 어디로 나를 안내할 생각인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흠, 사람 많은 데를 봤으니 이젠 좀 한적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겸사겸사 조금 멀리 나가보고…….
음……. 호숫가 어때요? (빙긋 웃으며 당신을 바라본다)

아서 호수라. 용의 탑이 있는 숲 속에는 호수가 없어 늘 아쉬웠지. (익숙하게 잡은 손을 이끄는 모양새에서 억누르지 못한 들뜸이 느껴진다.) 얼른 가지.

이야기꾼 나란히 손을 잡고 어느정도 걸어나가면 게이트 근방의 호숫가가 나옵니다.
이곳의 대부분이 호숫물을 끌어와 밭이나 낙농을 하는 경작지입니다.
근처 경작지에는 일하는 농부 하나가 보이고, 게이트 근방에는 군인들이 경비를 서는 초소들이 있습니다.
초소 앞에는 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불을 쬐고 있고, 호숫가 근처에는 사람들이 몰려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서 반가운 광경이야. 여기도 변치 않은 모습이로군.

이야기꾼 용은 변하지 않은 장소가 보이는게 반가운 듯 왕자님을 이끌고 호수 쪽으로 뛰어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전에도 와본 적이 있나요? 천 년 전은 아니겠죠? (장난스레 말하다가, 당신이 뛰자 덩달아 같이 이끌려 뛰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아서 (당신의 장난에 어울려 일부러 의문스럽게 웃어보인다.) 글쎄, 어떤 것 같나?

이야기꾼 호숫가에 다가가니, 얼음 위에 올라가 미끄럼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스케이트를 타는거지요.
한 구석에 푼돈을 받고 바닥에 날이 달린 신발을 대여해주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호오……. 아서, 저거 혹시 타본 적 있어요?

아서 타본 적은 있으나 그리 능하진 않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하하, 그럼 오늘 같이 타보는 건 어때요? 겨울이 끝나면 저것도 영영 못 타게 될 것 아니에요. 이때에만 즐길 수 있는 추억거리인 거죠. (당신의 손을 잡고서, 이번엔 제쪽에서 당신을 이끌고 한쪽 구석으로 간다)
여기, 이 신발 두 짝을 빌릴 수 있나?

노점상 물론이죠. 두 분이 사용하실 건가요? (눈대중으로 둘의 발 크기를 재어본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다네.

노점상 어디보자~ 그렇다면 이 정도 사이즈가 맞으실 것 같은데… 대여료는 합쳐서 10동화 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고맙네. (상인의 손 위에 동화 10개를 얹어주고는 내미는 신발을 받는다)
자, 어서 신어보자구요. 누가 먼저 저기까지 가는지 내기라도 할래요?

아서 저런, 나야 그렇다치고 제이는 이번이 처음일 텐데 내기까지 걸어도 되겠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그러네요. 그럼 연습 먼저 하고! ……그런데 이거 이렇게 신는 거 맞나요? (어정쩡한 자세로 신발끈을 잡고서 당신을 올려다본다)

아서 흠… 가만히 있어보게. (잠시 한쪽 무릎을 굽히고 당신의 앞에 앉아 스케이트의 끈을 단단히 묶어주고선 고개를 들었다.) 혹시 모르니 조금 더 단단히 해두는 것이… (고개를 들었을 때에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에 잠시 놀랐다가도) …좋겠네. (이내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두고 제 스케이트를 신는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감사…….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마주친 시선 탓인지 얼굴에 묘한 열감이 돌았다. 그는 곧장 멀어지는 당신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느리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요. 덕분에 빙판에서 신발이 벗겨져 구르는 일은 없겠어요.

아서 그래. 그럼 천천히 일어서서 걷는 것부터 해볼까?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넘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는 것이 포인트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넘어지지 않도록, 균형, 을, ……. (얼음 위에서 넘어지는 건 좀 무서운지 당신의 손을 단단히 붙들고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본다. 제멋대로 미끄러져 나가려는 날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갖은 애를 쓰더니, 곧 어설프게나마 서는 데에 성공한다) …저 성공했, ……! (그 말이 마치 신호라도 되는 양 제레미아는 그대로 당신의 품 속으로 훅 무너져 안기고야 만다)

아서 …위험…! (넘어지려는 양 무너지는 자세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제 품에 안기는 당신을 휙 잡아끌어 넘어지지 않도록 품에 가둔다.) ……넘어지진 않았어. (품에 안긴 당신은 어쩌면 차가운 냉기를 느꼈을 테지만, 스스로는 홧홧한 열감을 느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제 몸을 감싸 끌어안는 손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는 그대로 당신의 품에 고개를 묻은 채로, 여전히 겁을 먹어 뻣뻣한 손으로 당신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그리 당신의 품 속에서 숨을 고른다. 당신의 가슴팍에서 흐르는 냉기 탓에 맞닿은 가슴께가 차가워질 법도 했건만, 기이한 온기가 뺨에서, 심장으로, 손끝으로, 닿은 모든 살갗으로 흐른 탓에 뜨겁기만 했다. 그는 제가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제 스스로도 놀랄 만큼 커다란 아쉬움을 느끼며, 당신을 올려다보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미안, 해요, ……. (후드 아래로 반짝이는 벽안. 따스한 날의 꽃을 문 듯 발갛게 달아오른 뺨은 이것이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설렘 탓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서 …미안할 것까지야. (제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이의 모습이 퍽 사랑스럽다 할만한 것이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스함이 담겼다.) …어떤가. 다시 한 번 더 시도해 보겠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여기까지 아서랑 같이 와서 무섭다고 그만둘 수는 없죠.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온 거잖아요. (저를 보는 눈길 속에 담긴 온화함에 그는 눈을 접어 웃으며 답했다) ……그, 그치만 꼭 잡아줘야 해요. 왕자가 빙판에서 미끄럼 타다가 굴렀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그건 좀 부끄럽, 잖아요…….

아서 음, 넘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 넘어질 것 같으면 지금처럼 잡아줄 테니까. 왕자의 체면을 죽일 수는 없지. (장난스레 웃으며 품에 안은 당신과 다시 거리를 두고서 손을 꽉 붙들었다.) …나를 믿고 다시 한 번 천천히 발을 떼어보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조, 좋아요……. (떨어지는 순간에 제 심장으로 밀려드는 감정은 진실로 단순한 아쉬움 뿐이었을까. 그는 한 번 더 당신을 올려다보고는, 그 시선을 천천히 옮겨 꽉 붙든 손을 바라본다. 곧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발을 떼어 보았다. 이번에는 아까보다는 나은 자세였다) …균형이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거였군요.

아서 그럼. 무엇이든 균형을 잡는 것은 어려운 법이지. 비단 얼음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그러나 놀아보겠다고 날이 달린 신을 신고서 얼음 위에 서기까지 했는데 여기서 또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며 용의 일을 하긴 싫었기에 짧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제이, 그대는 배우는 것이 빠른 것 같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뭐든 배우는 게 빠른 학생을 가르치는 쪽이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요. (이제는 조금씩 미끄러지기도 한다. 그는 당신을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마도 아서가 좋은 선생님인 덕이겠지만요!

아서 … (당신이 제법 타는 듯 하자 한쪽 손을 놓고서 저 역시도 얼음 위를 슬슬 미끌어져 본다.) 좋은 스승이 좋은 제자를 두었다는 걸로 하지. 으스대었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민망할 테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하하, 그런 걸로 하죠! (떨어진 손끝이 오래지 않아 추위로 차게 식는다. 좀 더 오래 붙잡아도 좋았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그는 조금 더 속도를 내보았다) 그럼 어디 한 번 잡아보실래요? 열심히 도망가 볼 테니까요!

아서 좋지. 어디 한 번 달아나보아. 얼마나 잘 배웠는지 봐야겠으니까. 이러면 그대가 나보다 빨리 달려 내가 잡을 수 없었다 하여도 내가 잘 가르친 덕분이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좋아요. 저 잡으면…… 음, 소원 하나 들어줄게요! 아서는 잘 타니까 제가 저만큼 먼저 가면 출발하는 거예요? (그는 신나는 듯 큰 목소리로 외치고는 저만치 미끄러져가기 시작했다)

아서 이런, 무슨 소원이 좋을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하나? (먼저 앞서나가는 당신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로브를 날리며 나아가는 뒷모습을 그 감정을 상상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뒤따라 얼음 위를 달린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으앗, 아서 엄청 빠른데요! (금세 좁혀지는 거리에 화다닥 놀라며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얼음을 제친다) 이러다가 금방 잡히는 거 아닌지 몰라!

아서 내 마음 같아서는 오늘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그대를 무참히 잡아버리고 싶지 않지만, 내기에 걸린 것이 탐이 나는 것을 어쩌겠어. (유려하게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방향을 전환한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저한테 빌고 싶은 소원이 있었던 거예요? 뭘까아, 그게~ (부러 장난스레 웃고는 아무튼 최선을 다해 도망가본다)

아서 그대를 잡아 소원을 빌기 전까지는 비밀이지. (방금 막 얼음 위에 서는 법을 배워 넘어질 뻔 하였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당신의 모습에 소원권을 타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할 듯 하여 고민하는 듯 잠시 속도를 늦추었다. 그 사이 좁혀두었던 거리는 훅 멀어진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거 너무 궁금한데, 못 잡으면 꼭 말해주기예요? (키득거리면서 도망치다가, 속도를 늦추는 당신을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한다. 왜 그러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움직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잊지 않는다. 안 그러면 넘어질 테니까!)

이야기꾼 이상한 느낌에 왕자님이 고개를 돌려 저를 쫓아올 터인 용을 찾아 보았지만, 거리가 멀어진 탓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아서?

이야기꾼 그 순간, 왕자의 뒤를 정직하게 쫓는 대신 호숫가를 빙 돌아 반대 편에서 왕자를 잡으러 온 용이 왕자를 품에 안습니다.

아서 잡았다, 제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앗!

아서 위험하게, 뒤를 보며 달리면 안되지. (실없는 웃음을 짓고서 당신을 놓아준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렇게 잡는 게 어디있어요, 정말. (툴툴거리면서 말하지만 그리 기분이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당신에게 답싹 안겨들며 시선을 맞춘다) 그래서, 소원은 뭐예요, 아서? 나한테만 들리게 살짝 얘기해봐요.

아서 반대로 돌아선 안된다는 말은 없었지 않나? (보란듯이 웃었다가, 이내 소원 이야기에 척 보아도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내 소원은…
…….
아니야. 사실 따로 생각해둔 것은 없고 그저 조금 더 제대로 해볼까 하여 그랬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네에? 뭐야, 그러면 재미 없잖아요. 사소한 거라도 괜찮은데. 아니면, 나중에 빌래요? 내가 왕이 되기 전까지는 유예하게 해줄게요.

아서 …그러면 잠시 유예해두도록 하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요. (그는 싱그러운 웃음을 하고서는 가볍게 고개를 기대었다) 지금 당장 못 듣긴 했지만, 재밌었으니 됐어요. 아서도 재밌었어요?

아서 그래. 아주 오랜만에 참으로 재미있었어. (그 말과 함께 지어보이는 미소는 오늘 쭉 보았던 것들보다도 밝은 것이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다행이네요. 근데 저, 진짜 미안한데요…….

아서 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좀, 안아, 주실, ……래요…….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당신의 품 속에 고개를 파묻는다)

아서 이런. (제 품에 묻히다시피 한 당신을 내려다 보고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실컷 뛰어다니며 놀 때는 모르더니 다 놀고서야 힘들다며 안겨오는 것이 참으로 아이같아. 퍽 귀여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귀, 귀엽다니요, ……. (부끄러운지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열에 귀끝까지 새빨개지고 만다. 그는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다가 다시 당신과 눈을 마주하고는) 무, 무거울지도 몰라요. (어물어물 변명처럼 말을 뱉는다)

비슬 이 수작을 받아줄지 진행을 할지 고민중

Monii 받아줘 받아줘 받아줘 진행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하는 김에 키스도 하면 더 좋아

비슬 ㅇㄴ 키스를 왜 기왕하는 김에 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Monii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서 느낀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야. (피식 웃고서는 당신을 안아올렸다.) 이러한 것을 공주님 안기라 부른다 하던데, 제이는 왕자이니 왕자님 안기라 바꾸어야 겠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흐아아아……. (번쩍 들어올려지는 느낌에 꾹 눈을 감았다 뜬다. 바로 앞에서 보이는 당신의 낯에 부끄러운지 또 시선을 이리저리 옮겨본다. 그러다가, 머뭇거리며 당신의 목덜미에 고개를 기댄다) …그, 그, ……다들 이렇게 안기면 이런, 이런 걸 하길래……. 이러면 더 편할까 싶어서요……. (자연스레 당신의 목에 닿는 숨결은 열에 들떠 뜨겁기까지 했다)

아서 …그대가 편하다면야.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그것을 꺼내지 않는 모양새였다.) 춥지는 않은가? 로브를 입었지만, 나는 꽤 차가울 것인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ㅇ, 예? 에? (전혀 몰랐다. 본인이 매우 뜨거운 상태라서) 아, 아뇨, 괜찮은데요, 완전……. (부끄러움에 또 웅얼거리다가 이번엔 입술이 닿는다. 물론 후드 위지만. 제쪽이 더 화들짝 놀라서 움찔 몸을 떨고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아서 그래…? 그대는 제법 둔감한 편인가 보아. (당신을 안아들고서 빙판 위를 미끄러진다.)

이야기꾼 [듣기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65 듣기 (1D100<=6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3 > 43 > 보통 성공

이야기꾼 문득 기이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언가 갈라지는 듯, 깨어지는 듯한…

아서 이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Monii 둘이 같이 퐁당 빠지는 건가

아서 조심. 최대한 살살 던질 테니 충격에 대비하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ㄴ, 네에?!

이야기꾼 짧은 경고가 끝나자, 다음 순간 왕자님은 잠시 붕 뜨는 감각을 느낍니다.

Monii ㅇㄴ

비슬 그러게 안기기 전에 스진을 했어야 했는데 쩝
수작 받아주느라
(ㅈㄴ

Monii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흐, 흐아악?!

이야기꾼 빙판 위로 살짝 쿵 온몸을 슬라이딩 하며 미끄러지듯 착지하면, 용이 서있는 곳 아래로 커다랗게 금이 간 빙판이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아서!!!!

이야기꾼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날씨가 제법 따뜻했던가요.
호수의 얼음이 조금이나마 녹은 모양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이야기꾼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방금의 움직임으로 금이 더 커진 것을 확인한 용도 그 자리에 멈춰 섭니다.
보는 눈이 많아 마법은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저, 저기요! 저기요! 혹시 밧줄 같은 거 있는 사람 없나요?! (사람들 쪽을 간절하게 바라보며 소리친다)

이야기꾼 주변에 과연 쓸만한 도구가 있을까요?
[행운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행운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24 > 24 > 어려운 성공

이야기꾼 운이 따라주네요. 다행히 스케이트를 대여해주었던 노점상이 허겁지겁 밧줄을 들고 달려옵니다.

노점상 여, 여기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감사합니다!! 저쪽 사람한테 던져주세요!

노점상 자, 잠깐만요! (밧줄을 던진다)
cc<=20 투척 (1D100<=2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4 > 84 > 실패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헉…….

이야기꾼 노점상이 있는 힘껏 밧줄을 던졌으나 모자른 듯 합니다.
그 사이 얼음은 조금씩 더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밧줄 끝을 잡아 다시 당겨 잡고는 아서를 바라본다)
던질 테니까 잡아요! 알겠죠?!

아서 …이해했네. 최선을 다해서 받아주지. (자신있는 듯 미소지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좋아요! 아서!
(그제야 다시 웃으면서 당신 쪽으로 힘껏 밧줄을 던진다)

이야기꾼 [투척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20 투척 (1D100<=2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3 > 13 > 보통 성공

이야기꾼 비장했던 직전의 장면과는 달리, 왕자님이 던진 밧줄은 너무나도 쉽게 용의 손에 잡힙니다.

아서 (손을 들어 보이며 밧줄을 잡았음을 어필한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좋아요, 이제 당길게요!
(신중하게 밧줄을 살살 당겨 당신을 제쪽으로 올 수 있도록 이끌었다. 신발을 빌리길 잘 한 것 같아, 다행이야, 같은 생각을 연신 하면서)

이야기꾼 [손놀림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50 손놀림 (1D100<=5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69 > 69 > 실패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나요? (간절한 눈으로 상인 바라보며)

이야기꾼 왕자는 최대한 조심스레 밧줄을 잡아당겼지만, 영 신통치 않습니다.

이야기꾼 다급하게 주위에 도움을 청하려 할 때, 기이하게도 힘을 주어 당기지 않았음에도 앞으로 끌려오는 용을 볼 수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이야기꾼 마법…일까요? 용은 모른 척 윙크를 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헤실 웃으며 아서를 바라본다)

이야기꾼 주위의 시선이 있으니 당기는 척은 하지만, 어째 잘 짜인 연극 속의 배우가 된 기분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멋지다 아서)

이야기꾼 아슬아슬 하게 금이 간 빙판 위를 빠져나오면, 그 직후에 쩍 하고 얼음이 완전히 갈라져버립니다.

아서 위험할 뻔 하였어. 고맙네, 제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으와……. 진짜 위험했네요. 무사해서 다행에요, 아서! (활짝 웃으면서 당신을 꼭 껴안는다)

아서 자아, 어쨌든 무사히 빠져나왔으니 얼마 남지 않은 외출을 끝까지 즐겨볼까. 곧 돌아가야 하니 다른 곳에 가는 것은 힘들 테고, 주변이나 한 번 살펴보지.
(품에 안긴 당신을 괜히 토닥여본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둘러볼까요? (토닥이는 손길에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잠시 뺨을 부비고는, 당신과 시선을 맞춘다) 아, 그 전에 신발부터 갈아신어야 겠네요. 기다려봐요. (이번에는 제쪽에서 몸을 낮춰 당신의 신발에 지어진 매듭을 풀어낸다) 됐다.

아서 (굳이 그것은 제가 할 수 있었다는 말은 꺼내지 않고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한 번 더 건넨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제 갈까요? 돌아보기 전에 호숫가 경치 제대로 보고 가는 것도 좋겠어요. (저도 신발을 갈아신고는 자연스레 당신의 손을 꼭 잡았다)

아서 그래. 노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야기꾼 방금 전까지 사람들이 모여 스케이트를 타던 호수 위에는 얼음이 깨어지며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물결이 반짝입니다.
호수의 뒤쪽으로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다리에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서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뭐지? (도서관 쪽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인다) 저 사람 좀 특이한 것 같지 않아요? (소곤거리며)

아서 (당신의 말에 시선을 옮긴다.) 흠, 사제로 보이는데. 가까이 가볼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네. 그렇게 해요. (당신의 손을 꼭 잡고서 들키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가까이 다가간다)

이야기꾼 조심스레 다가가서 보니, 손에 종교적 문양을 쥔 사제 한 명이 다리 앞에서 홀로 시위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사제 사람이 죽어가는 연구를 멈추세요! 연구를 핑계로 사냥을 가는 농부들과 그들을 눈감아 주는 경비병, 샘플을 가져오면 돈을 주는 도서관의 학생들을 규탄합니다!
바깥은 위험합니다!
신전은 환자로 가득하여 매일이 비명과 절규로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밖에 나가는 이들이 점점 늘어 환자 역시 늘어만 가는 형편입니다!
당신의 가족이나 이웃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꾼 그는 홀로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이야기꾼 그러나 곧, 다리 위에 있던 학생들이 그 소리에 답합니다.

학생 이 추위에 배를 곯느니 나가는 것이 낫지!
누가 나가라고 시켜서 나가는 줄 알아? 다 자기들이 원해서 나가는 거야!
억지로 시켜서 나가는 것도 아닌데 다쳐서 돌아오든 반 죽어서 돌아오든 아예 죽어버리든 무슨 상관이야!

학생 신전에 들어가는 헌금도 다 그렇게 밖을 다녀온 이들로부터 나오는 것 아닌가? 우리가 먹여 살리는 거나 다름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신전이 우리를 규탄하는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굶어 죽는 거나 찢겨 죽는 거나 그게 그거라는 말일까요? 어째, 당사자들이 아니라 고용주가 저렇게 말하니 영 달갑잖게 들리는 게…….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당신을 올려다본다)

이야기꾼 학생들은 사제를 향해 맹비난을 하더니 다음 순간, 사제를 밀쳐버립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저런 무도한…….

이야기꾼 학생들에 의해 밀쳐진 사제는 호숫가에 풍덩 빠지고 맙니다.

이야기꾼 그러거나 말거나 학생들은 뒤로 휙 돌아 도서관으로 들어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도와줘야겠어요! 이런 날씨에 물 속에 빠지다니, 얼어 죽을지도 몰라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황급히 사제가 빠진 곳으로 달려가서는) 저기요! 괜찮으세요? 잠시만요, 도와드릴게요.

사제 (허우적거리다가 손을 뻗는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올라오세요! (뻗은 손을 꽉 잡고는 제 쪽으로 힘껏 당긴다)

아서 (상황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경비대 초소로 가서 물기를 닦을 것과 여분의 옷이 있다면 얻어오겠네. (뒤로 돌아 경비 초소 쪽으로 향한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부탁할게요, 아서! (다시 사제를 바라보며) 조금만 더 힘내세요!

사제 (제레미아의 손을 잡고 호수를 빠져나온다.) 고마, 고맙습, 니다… (추위에 덜덜 떠느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 하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런……. (일단 젖은 옷의 물기를 짜내주며 아서가 갔던 쪽을 돌아본다) 일단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 일행이 옷가지와 수건을 가지러 갔어요.

사제 (고개를 꾸벅 숙여 재차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아서 (멀리서 뛰어온다. 손에는 담요와 수건이 들려있다. 지체없이 사제에게 수건을 건네주고선 담요를 둘러준다.) 생각해보니, 옷을 갈아입으려면 실내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더군. 우선은 그것을 덮고 있게. 경비를 서는 군인들에게 물어보니 갈아입을 옷 정도는 있다는 듯 하니 그리고 가는 게 좋겠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휴, 정말 이게 무슨 일인지…….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저희가 그쪽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사제의 옆에서 부축을 하듯 팔을 잡고는 당신을 바라본다) 아서, 괜찮겠죠?

아서 물론이지.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제를 함께 부축하였다.)

사제 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저는 신전에서 간호 일을 하는 렌이라고 하니, 언젠가 신전의 도움이 필요하실 때 꼭 저를 불러주세요. 그, 무 물론 이런 일이 없었더라도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선한 일을 하시는 분이셨군요. 헌데 방금 도서관 학생들과 하시던 대화는 어떤 것이었는지 여쭤도 될까요? ……쉬이 들어 넘기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던 것 같아서요.

사제 아아… 도서관은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조장하고 있어요. 연구니 뭐니 하는 명목을 붙이며… 그 때문에 바깥에 나갔다가 크게 다쳐 오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서…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바깥으로요? …하지만 바깥으로는 군인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나갈 수 없을 텐데……. 설마, 경비병들이 뒷돈을 받고 나가도록 눈감아 주는 겁니까?

사제 그런… 것까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바깥에 나가 연구에 필요한 것을 구해오면 돈을 준다는 듯 하니, 돈을 쓰면서 까지 나가진 않을 겁니다만… 그렇다곤 해도 이러한 행태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서 ……그것 참 심경이 복잡하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하아……. 그러게요. 어찌 이런 일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한참을 도서관 쪽을 바라보다가) 도대체 무슨 연구기에 그런 일을 하는 걸까요…….

이야기꾼 초소 앞에 도착하자 그 앞에 모여있는 군인들이 보입니다.
다들 왁자지껄하게 경비를 서면서 듣거나 본 소문에 관해 떠들고 있고, 누군가 그런 소문들을 받아 적고 있습니다.
왕궁에서 보았던 학자, 섀넌입니다.

아서 이크. (몸을 숨긴다.) 근처에서 기다릴 테니 볼일을 보고 나오도록 해, 제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앗, 알겠어요. (작게 속닥거리고는 사제를 부축한다) 저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안녕하십니까, 섀넌 님.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섀넌 A. 벨허스터 음? 이 목소리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후드 속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아하, 3왕자셨군. 여기는 어쩐 일이신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잠시 왕국을 둘러볼 겸 하여 나왔습니다. 작은 왕국이라고는 하나, 아직 제가 모르는 미지가 많으니까요. 그러던 중, 이 사제 분이 호수에 빠진 것을 발견하여 이곳까지 데려왔습니다. (나긋하게 웃으며 제가 부축하고 있는 사제를 바라본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제 분을 먼저 안으로 들여도 되겠습니까?

섀넌 A. 벨허스터 (못마땅하다는 듯 사제를 바라보았다.) 아, 안면이 있는 자로군. 뭐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서 들어가보세요. (사제를 안쪽으로 안내해주고는, 섀넌의 옆으로 다가간다) …그런데, 섀넌 님께서는 어쩐 일로 이곳까지 나오셨습니까? 늘 도서관 안에 계신 줄로만 알았는데.

섀넌 A. 벨허스터 바깥에 나갔다 들어온 사람들이 겪거나 본 것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네. 이런 종류의 것은 도서관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니.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바깥 말이십니까? 아, 그래서 군인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계셨군요. ……저도 궁금한데, 어떤 것들인지 짧게나마 나눠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지식은 재산과 달라서 나누면 나눌수록 더 값지고 빛나는 불멸하는 가치라 하지 않던가요. 제레미아 윈터 로흐파르샤, 고명하신 학자 섀넌 님께 지식을 청합니다.

섀넌 A. 벨허스터 오호, 왕자께서 보는 눈이 있군.
소문이야 모두 과장되고 부풀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그것을 모아두고 보면 제법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예를 들어 소문의 공통점이라든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나긋한 웃음을 하며 눈을 반짝인다) 소문의 공통점 이요.

섀넌 A. 벨허스터 내가 지금까지 듣기로는 '사람의 손과 같지만 커다란 손'이나 '털이 난 뿔'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공통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것이었지.
아직 자료가 부족하여 입증하긴 어려우나, 나는 바깥에 있는 야만인이 인간이 아닌 인간과 비슷하지만 더 강한 괴물이거나, 근본부터가 다른 종류의 짐승에 가깝지 않을까 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근본이 다른 것이라……. 그럴 수도 있겠군요. 짧은 식견이나, 어제 상점가에서 들었던 소문은 그 상처들이 평범한 인간이 낸 것보다 훨씬 큰 크기였다 하니까요. 실제로 보지 않았으니 명백히 무어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섀넌 님은, 계속해서 조사를 이어간다면, 언젠가는 이토록 많은 이들이 희생하지 않아도 그들을 물리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섀넌 A. 벨허스터 흐음, 그거야 모를 일이지. 그러나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네.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자료와 데이터가 필요하지. 그러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가설에 그칠 수밖에 없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옳은 말씀입니다. 무엇이든 충분한 자료가 없다면 제대로 움직이도록 만들 수 없으니까요. (잠시 초소 쪽을 바라보다가)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바깥에서 자료를 가져 와야 충분한 양을 만들 수 있을까요?

섀넌 A. 벨허스터 그것은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의 정체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에 따르겠지. 모호한가? 지식이 다 그렇지. 확실한 것을 알아내기가 이렇게 힘들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하지만 아직은 많이… 먼 일인 거겠지요. 하루 빨리 왕국의 근심을 해결하길 바라는 조급함에 제가 성급히 입을 떼었나 봅니다. (어딘가 쓸쓸한 웃음을 하고는) 더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거든요.

섀넌 A. 벨허스터 하하, 왕자. 너무 가슴 아파 하지는 말게. 밖을 왕래하는 이가 늘고 자료와 증인이 풍부해지면 연구는 빠르게 진척될 것이니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요. 사람들이 밖에서 혹 다치거나 죽어 올까 걱정입니다. 나라가 작으니 한 사람의 인력도 소중한 탓에……. 아, 정말 이리도 모순적인 상황이로군요.

섀넌 A. 벨허스터 …뭐어, 그로 인해 죽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야. 때론 희생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잠시 쓸쓸한 눈으로 굳게 둘러진 성벽을 바라보았다) 예,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고서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 오길 바라는 건……. 겨울의 폭풍 속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것과 같겠지요.

섀넌 A. 벨허스터 뭐, 좋은 대화였어. 나는 이만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니 가보겠네.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저녁에 도서관으로 오거나 밤에 따로 스승으로 요청 하도록.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섀넌 님. 양질의 지식을 선뜻 나눠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모쪼록 바라시는 바 뜻을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떠나는 섀넌에게 짧게 목례를 한다)

이야기꾼 말을 마친 학자는 목례를 하고서 도서관으로 돌아갑니다.

아서 대화는 잘 끝냈나? (슬그머니 다가온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죠. (미묘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당신을 올려다본다) ……도서관이 사람들을 자꾸 밖에 나가도록 부추겨서, 그 사람들이 주워온 부산물로 새로 연구를 하고 있나봐요. 바깥의 것들이 인간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던데.

아서 표정이 어둡구나.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리 걱정이 된다면 다른 이들의 말도 한 번 들어보는 게 어떻겠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잠시 침묵하고는) 아서, 나는… 그 어떤 사람도 희생되지 않길 바라요. 너무도 이상론적인 말이겠지만, 아서는 제 이상을 들어주시겠다고 했으니까요. (당신의 손을 잡으며 가벼이 눈을 감았다 뜬다) 무수한 약자들의 죽음을 대가로 주어지는 삶과 지식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서 (잠시 말없이 당신의 손을 잡고 걸었다.) 어떤 사람도 희생되지 않는다, 라……. 단 한 사람도 말인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네, 단 한 사람도요. 어떤 사람도, 고통받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아서 …그래. 참 어려운 이상이구나.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꾼 무거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잠시 걷다보면, 저 근처에 농부 한 명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농부 분이시네요. 가까이 가볼까요?

아서 가지. (그대로 손을 끌며 농부에게 다가간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안녕하세요? (나긋하게 웃으며 농부에게 인사한다) 항상 고생하십니다.

농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작물들을 보다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린다.) 음? 누구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잠시 호숫가 구경을 왔다가, 여기 계신 게 보여서요. 어떻게 작물은 좀 괜찮은가요? 날이 추워 다들 작물 기르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더라구요.

농부 아이고, 말도 마쇼. 그나마 도서관 학생들이 냉해 피해 줄이는 법을 가르쳐주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거지, 아니었으면 진작 죽었어~ (살벌한 말을 하면서도 껄껄 웃는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휴,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길러주시는 덕분에 다들 어떻게든 먹고 살고 있습니다. 농부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이리 긴 겨울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지요.

농부 아암, 그렇고 말고. 이 악물고 일하는 우리 농사꾼들 아니었으면 큰일 났지~ 뭐, 그래도 요즘엔 이것만으론 입 많은 집 먹고 살긴 부족한지 성 밖에 나가서 야생 작물을 캐오거나 짐승 사냥도 하고 그러더만.
밭에서 일하는 것보단 짐승을 잡아와서 먹든, 학생들 심부름을 하는 편이 벌이가 더 좋으니 원.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작게 목소리를 낮추며) 짐승 사냥이랑… 심부름이요? 벌이가 많이 괜찮은가요? (관심이 있다는 듯이 농부를 바라본다) 급전이 좀 필요한데… 위험하다는 말도 있고,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사람마다 하는 말이 달라서 정보를 찾기가 힘들더라구요.

농부 아이고, 걱정도 많다. 어차피 뒤질 거 밖에서 죽나 안에서 굶어죽나 뭔 상관이람.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죽기 전에 진수성찬이나 먹고 뒤지면 좋은 거지, 뭘. 이게 불법이긴 해도, 경비나 학생들이나 전부 우리 사정들 아니까 어느 정도는 눈감아 줘. 걱정 하덜 말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면 가서 학생 심부름이라고 하면 경비 분들이 문을 열어 주시는 건가요? 나가다가 잡히면 어머님께 약도 못 전해드리고 감옥에서 옥사할 게 뻔해서 제가 좀 조심스러워요. (슬픈 표정으로 성벽을 잠시 돌아보다가 다시 농부와 눈을 맞춘다)

(…웃음을 참고 있다.)

농부 어휴 괜찮아 괜찮아. 거 어머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 본데 사정을 말하면 다들 들어준다니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쩝, 세상이 말세야. 옛날엔 사람이 아프면 신전에 갔는데… 뭐, 기도한다고 갑자기 눈 앞에 용님이 짠하고 나타나서 모든 일을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아서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용님 보다가)
그럼요, 어쩔 수 없죠. 그러기엔 용님도 몸이 하나 뿐이기도 하고.

농부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너무 걱정 말고 힘내시게, 젊은이. 어머님이 꼭 쾌차하시길 바라네. (일하러 간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감사합니다. 덕분에 금방 어머님의 밝은 웃음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들기)

아서 (농부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연기를 무척 잘하더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요, 그것도 왕자의 덕목이죠. 우리 형님 연기하시는 거 보면 기함하실 겁니다. (장난스런 웃음)

아서 (가볍게 웃어보인다.) 그래서, 고민은 조금 해결 되었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덕분에요. 역시 도서관을 멈춰야 할 것 같아요.

아서 그런가. 어느쪽이든,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얼굴이구나.
뭐, 그렇다면 아쉽지만 이만 탑으로 돌아가보도록 할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나요. 아쉽네요.

아서 그래도 제이, 그대 덕분에 많은 것을 둘러보았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후후,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아서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 ……사실 제가 더 즐거웠던 것 같지만!

아서 나 혼자만 즐거웠던 것은 아니라니 다행이야. 그럼, 늦기 전에 어서 돌아가도록 하지.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네. (맞잡은 손을 잠시 새삼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당신을 바라본다)

이야기꾼 탑 앞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거의 다 져물어 가고 있는 저녁입니다.

아서 오늘, 부탁을 들어주어 정말 고마웠네. 들키기 전에 어서 돌아가보도록 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네, 돌아가야겠죠. 시간이 늦었으니까. (못내 아쉬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아서 그리 아쉬워하진 말아. 내일 또 볼 것 아닌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요. 내일도… 보게 되겠죠.
그런데……. 밤까지도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
큰일이네요. 아서가 날 신뢰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이거… 제가 먼저 아서에게 반해버린 걸지도 모르겠어요.

아서 …….
……제이, 나를 너무 좋아하지는 말아.

아서 그건…

이야기꾼 그 순간, 용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기침을 하다, 비틀거리며 쓰러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 어쩌지? 젠장……. (당황하며 당신을 열심히 둘러메고 부축하여 탑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아서 …잠, 나는 괜찮아. (당신의 부축을 받고서 일어선다.)

이야기꾼 옆에서 부축하며 본 용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몸은 차갑기 그지없고, 성에가 목까지 올라온 것이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무슨 일이에요, 이게…….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걱정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어제보다 훨씬 심해졌는데!

아서 …괜찮다니까. (로브의 안주머니를 잠시 살피다가 무언가를 꺼내어 당신에게 준다.) …그대가 부탁들 들어주었으니 나 역시 약속을 지켜야겠지. 이것이 여름의 조각이네.

이야기꾼 용이 주는 것을 받아들면, 그것은 태양 모양의 금속 조각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여름의, 조각이요?

아서 그래. 봄의 조각 아래에 꼭 들어맞을 거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지금 끼워봐도 돼요?

아서 물론이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품 속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계절의 시계를 꺼내어 여름의 조각을 맞춰본다) ……아, 꼭 들어맞네요. 신기해라.

아서 이런, 경비병이 곧 일어나겠어. 이만 가봐야 하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놀라며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당신과 눈을 맞추며 웃어보인다) 그럼, 가볼게요. 잘 자요, 아서. (당신의 손등에 짧게 입을 맞추고, 탑 바깥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이야기꾼 마지막으로 바라본 용은, 조금 지친 기색이지만 기분만은 굉장히 좋아보입니다.
숲의 입구로 나오면, 경비병과 마부가 잠에서 깨어 후다닥 일어나는 것이 보입니다.

마부 아이고, 왕자님. 깜빡 잠이 들어서 그만…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저녁까지 기다리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닐세.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대가 많이 무리했나보아.

마부 (무척 죄송스러워하며) 벌써 저녁이 다 되었군요. 그럼 오늘은 어느 스승의 처소로 가시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도서관으로 가도록 하지. 어제 밤엔 신관님을 청하였으니 학자님의 의견도 들어 보아야 할 듯 싶어.

마부 예, 그럼 그리로 가겠습니다.

이야기꾼 방금 전까지 있었던 호수의 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섬에 있는 도서관입니다.
가장 큰 건물은 높은 탑모양의 서고입니다.
내부에선 늘 학생들이 사다리에 매달려 책에 있는 먼지를 터는 척, 짬짬히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학자의 방은 도서관 꼭대기 층에 있습니다.
빙글빙글 도는 나선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커다란 다락방이 나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짧게 노크를 하고는) ……계십니까, 셰넌 님.

섀넌 A. 벨허스터 아아, 그래 왕자로군. 들어오시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실례하겠습니다. (가볍게 문을 열고 들어가 목례를 한다) 일전 가르침을 청한 것들 중 더 여쭙고 싶은 게 있어 방문하였습니다.

이야기꾼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닥엔 복잡하게 생긴 뼈나 오래된 나무등걸 같은 것들이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중앙에 있는 책상 전체에는 계산식 같은게 휘갈겨진 페이퍼들이 어지럽게 쌓여있고,
벽 한쪽 면 전체에는 무언가를 한참 연구한 흔적이 가득합니다.

섀넌 A. 벨허스터 벌써 시간이 저녁인가? 볼 거 있음 보고 물을 거 있음 물어봐도 좋네. 그렇다고 아무거나 건드리진 말고.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언제나 지식을 탐구하는 것에 열중하시는 모습이 참 본받을만 합니다. 그럼 질문을 드리기 전 방을 먼저 보아도 되겠습니까?

섀넌 A. 벨허스터 마음대로. 어지르진 말고.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감사합니다. (짧게 웃고는 연구의 흔적으로 가득한 벽면을 바라본다)

이야기꾼 벽에 있는 것은 속기를 흘려 쓴 듯 보이는 글자들입니다.
대부분은 알아보기 힘들지만, [적절한 기능이나 지식]이 있다면 어렴풋하게나마 무엇에 대한 연구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흠……. 그러고보니 셰넌은 고명한 학자라 후계자 교육의 마무리 단계에서 몇 번 친필 편지를 통해 중요한 지식을 전달해준 적이 있으니, 흘려 쓴 글씨도 잘 떠올려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으로 판정하겠습니다)

이야기꾼 [교육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교육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28 > 28 > 어려운 성공

이야기꾼 가만히 그것을 살펴보며 기억을 되새겨보니, 이것은 용에 대한 연구자료인 것 같습니다.

섀넌 A. 벨허스터 흠. 용을 숭배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나는 그로부터 의문을 가져 용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지.
지식은 세계의 구성을 사실에 근거하여 검토하는 것이지. 모두가 거창하게 용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신이라기엔 너무 인간적이야.
종교적인 비유나 국가 기밀로 취급되지만… 내가 짐작하기에 그는 단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식에 당도한 인간일지도 모르지. 근 천년간 얻은 자료로 도출한 가설일세.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인간적인 신이라) (그는 잠시 오늘 하루 용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그 다정함이나 유쾌함 따윌 생각하다가, 곧 가만히 섀넌을 바라보았다) …인간적이라……. 그에게서 본 어떤 요소 때문에 그리 생각하셨는지요?

섀넌 A. 벨허스터 탑 안에 가두었다고 가만히 갇혀 지낸다는 점? 뭐, 그 자와 대화라도 해보았다면 조금 더 데이터를 쌓을 수 있었겠으나… 내가 용과 만났을 때에 그는 지식은 깊어지면 마법과 같다는 말 외에는 입을 다물었지. 그러나 가설을 생각해보면, 그 말 역시 어딘가 의미심장하게 들리지 않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그는 정말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째서 그를 신으로 추앙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겨둔 것처럼 구는 걸까요? (고심하는 얼굴로 책상 위의 페이퍼들을 집어들어 읽어본다)

섀넌 A. 벨허스터 뭐, 나였어도 그런 지식을 통달한 자가 지혜를 나누어주고 나라를 보살펴 주겠다고 하면 신으로 모셔서라도 붙잡고 싶겠네. (어깨를 으쓱인다.)

이야기꾼 책상 위에는 수 많은 자료들이 놓여 있습니다.
왕자는 이것이, [겨울]에 관해 수집한 데이터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4. 계절]
왕국이 건립한 직후부터 지금의 기온 변화는 4단계의 특징을 보인다. 편의상 이 변화를 [계절]이라 하고, 아래와 같은 단계로 나누어 시대 별로 구분한다.
[봄] 왕국 초기, 온난다습한 기후,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비]가 자주 내리며, 싹이 트고 대지가 습기를 머금는다.
[여름] 왕국 중기, 고온다습한 기후, 식물이 빠르게 성장하며 생물들의 대사활동이 활발해진다.
[가을] 왕국 말기, 온난건조한 기후, 식물이 잎을 떨어트리고 열매를 맺는다.
[겨울] 현재, 저온건조한 기후, 겨울이 심화되면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비]가 얼어붙은 것이 떨어지는데, 이를 [눈]이라 칭한다. 침엽수를 제외한 나무들이 전부 잎을 떨군다. 동물들은 대부분 생을 마감하지만 살아남는 소수의 종이 삶을 이어간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흐음……. (계절이라고? 용이 말했던 것과 같은 단어다)

섀넌 A. 벨허스터 아, 그것은 왕국 벽 너머의 천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주변 토지를 조사해 얻은 결과일세.
건국 초기에는 날이 무척 따뜻했을 터인데, 기온이 점차 떨어지고 있어. 우리는 그 단계를 각각 하나의 시대로 규정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라는 이름을 붙였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섀넌 님. 그, 겨울이라는 계절은 27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겨울이 오기 이전의 왕국은……. 여기 적힌 것처럼, [가을]이었습니까?

섀넌 A. 벨허스터 그렇지. 이전에도 기온이 서늘해지는 낌새는 있었으나 기온이 뚝 떨어지고 작물이 자라지 않으며 얼음과 찬 바람이 일상이 된 것은 그때부터였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그렇다면 섀넌 님은 [봄]과 [여름]을 경험한 적은… 있으신 겁니까?

섀넌 A. 벨허스터 없다. 그러나 선대의 자료를 통하여 그 시대가 어땠는가는 알 수 있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 기간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까?

섀넌 A. 벨허스터 봄과 여름 말인가? 각각 400여년은 되었을 것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혹, 겨울의 뒤에 올 것에 대한 기록도 있었습니까?

섀넌 A. 벨허스터 그것은 아직 조사 중에 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딘가에서는 겨울이 종말의 증거라고도 합니다만. 종말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더군요. (잠시 바닥에 놓인 뼈들을 보다가) 겨울의 뒤에는…… [봄]이 올까요? 과연 그 새로운 [봄]을 수호하는 것은 지금의 용일까요. 섀넌 님은 용이 더 살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오늘 해질녘 보았던 용의 모습을 떠올린다)

섀넌 A. 벨허스터 하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군.
글쎄, 내 생각에…….
아니, 내 가설에
겨울은 용의 죽음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든 끝날 것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다면 우리는 용이 없는 봄을 맞이하게 되겠군요.

섀넌 A. 벨허스터 뭐, 신전 나부랭이들이나 징징짜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용이 없는 봄이라……. (작게 중얼거리고는, 이어 바닥에 놓인 것들을 진득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건… 뭐죠?

섀넌 A. 벨허스터 어어, 함부로 만지지 마!

이야기꾼 바닥에 있는 뼈는 인간의 팔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람보다는 훨씬 큰 모양입니다.
또한, 나무 등걸에는 딱 그 손이 긁었을 법한 손톱자국이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엉거주춤 손을 허공에 멈추었다가 내려놓는다)

섀넌 A. 벨허스터 야만인의 뼈다. (비밀이라는 듯 손가락을 들어 코앞에 쉿, 하고 세운다) 이걸 내가 얼마나 어렵게 구했는데…!
뭐, 물론 내가 발로 뛰어서 가져온 건 아니지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야만인도… 죽기는 하는군)

섀넌 A. 벨허스터 금지 된 숲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이니 귀한 샘플이지. 얼핏 동물 뼈 처럼 보이지만 사람과 구조가 완벽하게 같아. 개나 늑대보단 유전적으로 가까운 모양이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사람과 구조가 완벽하게 같다고요? ……아까 호숫가에서 뵈었을 때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일 것이라 하셨던 것 같은데. 아인종일 것이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섀넌 A. 벨허스터 바로 그거야!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으나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 야만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으나 과연 그것에게 인간을 뜻하는 글자를 써붙일 수 있는 것일지 의심이 가는 기이한 존재! 정말 재미있지 않나?!
이렇게 삭은 뼈가 아니라 온전한 샘플을 구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텐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호오……. (하긴, 사람이 죽였을 것 같지는 않았다) 군인들은 야만인과 대적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야만인을 죽인 적도 있지 않을까요?

섀넌 A. 벨허스터 하하,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런 게 가능했다면 왕과 왕의 군대가 속수무책으로 속앓이만 하고 있진 않았겠지.
그런데 자네, 계속 그러고 있을 건가? 내가 그리 시간에 여유가 넘치는 인재가 아니라 이만 돌아가줘야 할 것 같네만? 더 필요한 지식이 있다면 정중하게 스승으로 요청하여 부르도록.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알겠습니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섀넌 님. 다음에 또 뵙도록 하지요. (나긋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선다)

이야기꾼 이야기를 마치고 도서관을 나오자 왕궁으로 향하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이야기꾼 처소로 돌아갑니다.
처소로 돌아가 소파에 앉아 있으면 시종이 다가옵니다.

시종 오늘은 어떤 스승님을 부를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미뉴어트 공을 뵙도록 하지. 물을 것도 있고, 하니…….

시종 네, 미뉴어트 공작저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이야기꾼 …….

이야기꾼 *노크 소리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들어오십시오.

나디아 H. 미뉴어트 들어가겠습니다.

이야기꾼 공작이 방 안으로 들어와 우아하게 인사합니다.
태도는 예의바르지만 여유롭고 빈 틈이 없으며, 공작의 뒤를 따라온 시종이 품 안에서 봉인이 된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사라집니다.
시종이 나가고 나면 공작은 느긋한 태도로 자리에 앉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사적으로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은 뭘 보셨고,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미뉴어트 공.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실, 어제 공과 뵙고 싶었으나 문득 든 의문이 있어 먼저 청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루 늦게 청한 점 너무 서운히 여기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그 점은 개의치 않으니 그리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왕자님께서 저를 마음에 두고 그리 생각해주셨다니 기쁠 따름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리 여겨주시니 감사를 표할 길이 없군요. (짧게 웃고는) 작일 방문하였던 상점가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귀족들이 병장기를 사들이고 있다고 하였는데, 혹 공께서도 이 상황을 알고 계셨습니까?

나디아 H. 미뉴어트 상점가의 일이라면, 상인들의 호소를 들어주어 개인적으로 그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무기를 만드는 것은 곧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귀족들의 독단적인 행동입니다.
왕자님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오나, 제가 지시를 내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하여 귀족들의 지시를 받고 주문을 받는 상인들을 제가 저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먹고 살 길을 방해하면 그것이 한 때 자신을 후원해주었던 인물이라 하여도 물어뜯게 되지 않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귀족들의 독단, 이요……. 그렇다면 그들이 살롱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도 그들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한 것이라는 거군요. 그렇다면 공께서는 어째서 궁 밖으로 거처를 옮기신 겁니까? 이리 보면 귀족들이 퍽 쉬이 오해할만 한 상황이라 미뉴어트 공의 저의를 여쭙고자 합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흠, 글쎄요. 제가 왕궁에 남아있었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 나라에 이득이 되는 일이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이 어떤 시대입니까. 이웃이 어느 날 아침 얼어 죽고 굶어 죽어 발견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이지 않습니까. 백성을 지키고 수호하겠다 맹세한 이 나라의 기조에 반대되는 일이, 나라를 수호하는 왕의 힘을 벗어나는 일이 반복되는 시대입니다.
그러한 시대에, 왕궁에 모여 살고 있는 권력자들이라…….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굶주린 백성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권력이 한 곳에 모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는 백성을 지지하고 돌보는 위치에 서서 인망을 얻어야 하는 일이죠.

Monii 말 ㅈㄴ 잘해 이 사람 문과야

나디아 H. 미뉴어트 왕이 나라 밖을 견제하고 나라의 형태를 지키는데 고군분투 하느라 그 일을 하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왕궁을 나갈 수 밖에 없지요.
같이 모여 있는 자들은 뜻을 같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왕자님께서도 살롱에 모인 귀족들의 생각과 저의 생각을 일치시키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왕과 공작은 분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분리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한 쪽은 권력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유지된 권력은 다음 시대의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가장 높은 권력자로, 당신을 꼽습니다. 제레미아 왕자.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공께서는 왕위에는 진정 관심이 없으시군요. 저 궁 바깥의 당장 내일을 걱정하는 이들은 이를 기만이라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공의 의지가 어디로 기울어 계신지는 잘 알겠습니다. 공께서는 겨울이 끝나면 곧장 저를 왕위에 올리실 작정이시군요.
그리 되면……. 폐하는 어찌 되는 겁니까? 그대가 후환을 남겨두리라는 생각은 들지가 않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왕자께서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정당한 후계이자 시대의 구원으로 남기 위해서는 구시대의 지도자에게 혹독했던 겨울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그 책임은 더욱 엄중히 물어야 할 것입니다.
왕께서도 제 생각을 알고 계시겠지요. 그러나 동시에 제 뜻 역시 왕국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러니 제가 이 일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 목으로 화답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수호자로써 나라를 이어온 로흐파르샤니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습니까.
……공께서도, 용을 뵌 적이 있으십니까?

나디아 H. 미뉴어트 물론이지요. 용의 심장을 녹일 인물로 꼽힌 왕자의 스승 자리에 용과의 일면식도 없는 이를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나 다른 이들도 저와 같겠지만, 용과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눠본 것은 아닙니다. 제게는 그저 '당신의 방식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라는 말만을 남기고 침묵했으니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어째서인지 안도감이 드는 것 같은 기분에 미묘한 웃음을 하고는, 다시 나디아를 바라보았다) ……공의 말씀은, 겨울이 끝나더라도 무너진 왕의 권위를 위해서는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군요. 공께서 바라는 것은 그저 왕국의 평화 뿐인가요? 제게 왕위를 주어야 한다 생각하시는 것은… 단지 제가 공께 선택받았기 때문인 겁니까?

나디아 H. 미뉴어트 제가 제레미아 왕자님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아는 제레미아 왕자님은 이 나라의 후계로써 왕위를 이을 생각이 없으신 걸로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될 의지가 없다면 그 출중한 능력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다만, 아무것도 아닌 자가 왕자님을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시대의 변화라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왕자님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씨앗이나 다름 없다는 보증이 됩니다.
그러니 제가 원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권력을 확고히 유지한 채로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가장 보증된 방법이, 바로 왕자님이시기에 저는 이 방법을 택했다고… 그리 말씀 드리면 될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공께서는… 변함없는 권력을 바라시니 왕위를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로군요. 그러나 귀족들은 그를 모르니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병장기를 사들이는 것이고요. 겨울의 끝이 다다랐을 때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공께서는 영영 굳건하시겠으나, 그들은 또 아닐 테니까요.
오늘의 가르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미뉴어트 공. 참으로… 혼란하며 잔인한 겨울이나, 그대의 앞은 지난한 봄과 같을 것입니다. 이제까지처럼, 앞으로도.

나디아 H. 미뉴어트 …그 말씀은 왕자께서 제 뜻을 지지하여 확실한 다음 시대의 지도자가 되시겠다는 의지의 표방으로 보아도 되는 것일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공께서 저를 지지해주신다 하시는데, 제가 그에 반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아직 돌아보지 못한 곳이 있으며,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아래를 돌보는 자가 되고 싶은 것이지,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왕이 해야 할 일이겠지요. 공께서 권력을 바랐기에 이 자리 대신 공작 위를 택하신 이유도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좀 더 세상을 둘러보아야겠습니다. 결심이 서거든 공의 살롱을 찾아가도록 하지요.
너무 오래 기다리도록 하지는 않겠습니다. 공께서도 공사가 다망한 몸이시니.

나디아 H. 미뉴어트 …참으로 사려 깊으십니다. 그러고보니 방금 전에도 그러셨지요. 무기를 든 귀족들에 대해 걱정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의뭉스럽게 웃어보인다.) 그러나 그들을 걱정해주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제가 보증을 믿지 못하여 보증된 방법이 아닌 확률 높은 도박을 시도할지.

나디아 H. 미뉴어트 그러니 너무 오랜 시간을 끌어선 안될 것입니다. 변화하기 시작하는 순간의 흐름은 너무나 거세고 빠른 폭풍이어서, 여유롭게 생각할 틈이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것을 보여드리고 저는 이만 물러나보겠습니다.

이야기꾼 공작은 시종이 가져왔던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보여줍니다.
그 안에는 아주 오래된 듯한 그림들이 여러개 있습니다.
각각의 그림은 어떠한 상황을 나타내는 듯 보이며, 순서는 뒤죽박죽 섞여있습니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10. 천년 전 그림]
ⓐ 얼음 위에서, 알에서 태어난 아기용이 자신을 품고있던 용의 꼬리를 먹고 있는 그림
ⓑ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자신의 꼬리를 문 용이 허물을 벗고 자라는 그림
ⓒ 비가 오고, 새순이 나는 나무 아래 아직 덜 자란 것 같은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그림
ⓓ 낙엽 위에 자신의 꼬리를 물고 똬리를 튼 용과, 똬리 가운데에 있는 알

나디아 H. 미뉴어트 이 그림은 천 년 전, 그러니까 왕국이 건국되었을 때 그려진 그림이라 추측됩니다.
발견 된 것은 최근이지만, 저는 이것이 용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어쩌면 이 추위는 용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나디아 H. 미뉴어트 그렇다면 알은 직책이나 능력이 옮겨가는 것을 뜻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러한 변화가 왕자님을 기점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자가 왕자님을 선택했기에.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미뉴어트 공.
만약…… 제가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린다면……. 그때에도 제가 왕이 되기를 바라실 겁니까?

나디아 H. 미뉴어트 …그것은 생각해 본 바가 없어 말씀해드리기 어렵지만, 만약 왕자님께서 왕으로써 자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하더라도 이 폭풍의 중심에는 왕자님이 계실 테니 그 때에 제 뜻을 한 번이라도 더 살피어 주시길 바랄 따름입니다.

이야기꾼 어느새 시계가 자정을 가리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왕성 문이 닫히기 전에 이만 가보아야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시간이 벌써 그리 되었군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미뉴어트 공.

나디아 H. 미뉴어트 물론 왕자님께서 다른 생각이 있으시다면야 밤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왕자님께선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하실 것 같다고 하시니까요.
편안한 밤 되시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편안한 밤 되시길, 미뉴어트 공.

이야기꾼 공작은 들어올 때와 같이 우아한 인사를 한 번 올리고는 나가봅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대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하겠다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자야겠군……. 너무 피곤해. (한숨을 쉬며 침대에 눕고는)

이야기꾼 침대에 누운 왕자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용과 함께 마을을 돌아보았던 일을 회상할지도, 혹은 오늘 하루 돌아다니며 들었던, 공작이나 학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모두 용의 죽음을 점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용과 헤어질 때의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 떠오릅니다.
…창을 두드리는 바람이 점점 매서워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습니다.
*노크 소리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들어오거라.

이야기꾼 하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 생각하고 눈을 뜨면, 그것은 하인이 아니라 창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게 무슨……. (창가로 다가간다)

이야기꾼 커튼을 젖혀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창을 반복하여 두드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거세어진 바람이 나뭇가지로 창을 두드린 듯 합니다.
창 밖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어둡고, 하늘에서 생전 보지 못 한 것이 떨어집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하얗고 반짝이는 결정입니다.
…이것이 도서관 자료에서 보았던 눈이라는 것일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이야기꾼 얼음결정은 창 틀에 닿는 순간, 급속히 녹아 물이 됩니다.
한 눈에 봐도 추워진 날씨에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몸이 떨려옵니다.
[관찰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관찰력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61 > 61 > 보통 성공

이야기꾼 창 바깥으로 용의 탑이 보입니다.
탑 근처에는 군인들이 몰려있고 한 눈에 봐도 부산스러워 보이는 움직임이 눈에 띕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뭐지?
(더 자세히 고개를 빼본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왜 저렇게까지……

이야기꾼 당혹감에 잠깐 창 밖을 살피고 있으면 이번에야말로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립니다.
*노크 소리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들어오게.

하인 (공손히 인사를 하고서 급하게 말을 꺼낸다.) 왕께서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왕께서 말하시길, 용이 크게 아파 오늘은 방문을 거절한다 전하라 하셨습니다. 대신 하늘에서 내리는 것 때문에 백성들이 혼란스러운 것 같으니, 오전과 오후에 마을을 둘러보라 명하셨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그러셨던가……. (아프다고? 어디가? 왜? 역시 어제 너무 무리한 건가? 온갖 걱정을 하다가, 슬쩍 눈을 떠 하인을 바라보았다) 그렇군. 별 수 없지. …용의 상태는 위중한가?

하인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심장이 얼어 붙어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
알겠네. 외출을 해야 하니 마차를 대기시켜주게. 금방 나가지.

하인 예. 문 앞에 대기시켜 두겠습니다.

이야기꾼 하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하아……. 걱정되게 진짜.
……내일은 괜찮아지겠지?
(인상을 찌푸리며 나갈 채비를 한다)

이야기꾼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마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마부 아, 왕자님. 어디로 외출하시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흠……. 둘러보라 하셨으니, 역시 주택가가 좋겠지. 주택가로 가지.

이야기꾼 왕자를 태운 마차가 주택가를 향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주택가입니다.
신전의 주변부터 광장 근처까지 많은 가구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입니다.
신전 앞에 있는 공터엔 언제나 자선과 참회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만, 지금은 천막이 전부 신전 앞으로 이동해 있고, 천막 아래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커다란 소란을 벌이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사람들이 왜 저렇게나 모여있지? 그만큼 … 신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 건가…….) (천막 가까이로 다가가 살핀다)

이야기꾼 천막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은 무수한 시체의 행렬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팔 다리를 잃거나, 커다란 손에 짓눌린 듯한 상처가 있거나, 심한 광증을 앓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들을 치료하느라, 신전은 포화 상태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이, 무슨……!
허, 허……. 하……!
(이 자들은…… 밖에 나갔던 자들인가……? 그렇겠지! 저 상처는 분명 야만인의 것 아닌가!) (입술을 짓씹으며 분노에 잠시 몸을 떤다)
…….
하……

사제 비켜주세요! 지나가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자, 잠시, ……. 이들은 모두 밖에 나갔다 해를 당한 이들인가? 그것만 답해주고 가게!

사제 아, ……예. 그렇습니다. (참담한 얼굴이다.) 모두 왕도 밖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당했거나 광증을 얻어 돌아온 이들이지요. ……나라와 용에 대한 믿음을 잃은 자들의 말로입니다. 신전에서 그리도 경고하였는데…! 도서관의 이들과 경비병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밖으로 나가는 이들을 묵인해주었으니……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허탈한 듯 보인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그렇겠지요. 당장의 살 길이 급급해 기어이 바깥의 것을 탐한 이들이…….
그들은…… 야만인이라 불리나 인간이 아니라 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리도 겁도 없이……!

사제 …눈 먼 죽음보다 코앞의 굶주림이 더욱 두려워 믿음을 져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광인 그들이 온다!!! 바깥의 야만인들이 쳐들어올 거야!!! 나라가 멸망하고 인간은 모두 죽을 거라고! (미친듯이 웃는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바깥에서 무얼 봤느냐.
무얼 봤느냔 말이다! 네가 본 것이 진정 이 나라를 멸망시킬 낯을 하고 있더냐!
(차마 그렇다면 밖에서 죽어버리지 왜 살아와 그런 소릴 지껄이느냔 말은 뱉지 못한 채로, 이를 악 물고서 주먹을 꽉 쥐었다)

광인 내가 본 것은 죽음이다! 멸망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듯 웃기만을 계속한다.)

사제 아… 바깥에서 광증을 얻어 돌아온 이들이 하는 소리는 언제나 같습니다. 바깥의 야만인들에 대한 이야기죠.
끔찍하고 거대한 야만인이 날이 추워질수록 왕국으로 가까워지고 있다거나, 그들은 거대한 뿔과 여러개의 팔을 가졌고 보통의 성인보다 두 배는 더 큰 덩치를 가졌다는 이야기들…
그들의 말을 주의깊게 듣다가 광증을 옮은 이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신전이 돌보아야 하는 이들은 날이 갈수록 배로 늘어나는데, 신전의 인력은 한정되어 있으니 신전이 해야하는 자선 활동을 이어갈 여력도 사람들의 고충을 듣고 이해해주는 일도 지금은 모두 정지 상태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리도… 죽음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 그래, 굶어 죽든, 찢겨 죽든 매 한가지라 여기었던 것이겠지. 부조리한 겨울 앞에서는 왕도 군대도, 심지어는 신도 신앙도 믿을 곳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것인가? 그러나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 삶을……. 그다지도 쉽게 저울 위에 얹을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자신의 숨을 판돈으로 걸 수 있단 말이야…….
……어쩌면 좋겠나. 어찌 해야, 이 부조리한 비극이 끝을 맞을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겨울 속에서, 어떻게 해야 단 하나의 목숨이라도 더…….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사제 (눈을 감고, 깊이 고개 숙여 당신의 마음에 공감한다는 듯, 손을 모으고 짧은 기도를 올렸다.) …이러한 시대가 아니더라도,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수를 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거나 돌연 사고를 당하여 하루 아침에 이승을 떠나는 것이거나 병을 얻고 서서히 이별을 맞이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그러니 이러한 시대에도 언제나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밖으로 나가 죽으나 안에서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밖으로 나가 죽겠다는 식의 최선의 죽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가 신전에서 배운 것입니다.
…이만 가보아야겠습니다. 사정이 이러하여 마음 깊은 이와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없음이 아쉽지만, 부디 이해해주시길.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 어서 가서 더 많은 이를 돌보아야지. 그것이 그대가 택한 최선의 삶이잖나. …말을 나눠주어 고맙네.

이야기꾼 사제는 짧게 고개를 숙이고 바쁜 걸음으로 사라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잠시 늘어진 시체와 광인들을 보다가, 곧 고개를 돌려 몰려있던 사람의 무리 쪽으로 다가간다)

이야기꾼 …….
그들은 커다란 횃불을 만들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백성 이단의 최후를 똑똑히 보아라!!!

이야기꾼 횃불 사이에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타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무얼 하는 거냐!! 당장 불을 꺼라!!

이야기꾼 횃불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는 광기마저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주변에 눈이 쌓여있나?)

백성 저 자는 이단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을 조금 더 일찍 죽음으로 돌아간 것 뿐이다!!!

이야기꾼 횃불의 세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여서, 주변의 눈을 전부 녹이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감히 인간이 누굴 심판하는가! 심판은 오직 신의 몫임을 모르는가! 당장 불을 끄지 못하겠나!

이야기꾼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은 왕자의 외침에 조금도 기울이지 않으며 개의치 않고 거대한 불길 속에 기름과 장작을 던져 넣습니다.

백성들 하늘에서 내리는 이 저주받은 얼음을 보아라!
이건 신앙심 없는 자들을 얼려 죽이기 위한 용의 천벌이 틀림없다!
용에게 사람을 바쳐 정성을 보이면, 이 겨울이 끝날 것이다!
제물을 바치는 불길로 용의 심장도 녹을 것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냔 말이다! 신께서 이런 주제 넘는 심판을 용인하실 것 같으냐!

이야기꾼 그들의 외침 속에서는 들뜨고 흥분된 기색이 가득합니다.
불길 속의 사람의 형체는 이미 절반 가량이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움직임을 느끼고 그것을 황급히 살피면, 그것은 불길에 타들어가는 것이 수축하는 움직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뻘건 화염 속으로 타들어가는 그 면이… 낯이 익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이야기꾼 왕자는 화형당하는 자가 도서관의 그 학생임을 깨닫습니다.
사제를 호숫가에 빠뜨렸던 바로 그 학생입니다.
[이성 판정 1/1d3]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아…… 아…….
cc<=55 이성체크 (1D100<=5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8 > 98 > 실패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1d3 (1D3) > 2

system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SAN : 55 → 53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미쳤구나… 하… 하하……. 신의 이름 아래 타인을 해치다니……. 필시 죽어서도 천국의 문을 밟지 못하고 영영 고통받으리다…….

이야기꾼 인간의 형체는 불길 속으로 사라져 이제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신에게 올리는 광기어린 기도문을 읊습니다. …이들의 광기를 막으려는 시도는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그 누구의 자비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신조차도, …….
(입술을 꽉 깨물고서 떨리는 걸음으로 등을 돌려 멀어진다)

이야기꾼 불길로부터 멀어지면 그들의 광기로부터도 멀어진 기분이 듭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가자. 호숫가로 가 보아야겠다. 도서관, 도서관이 있는 쪽으로……. (마차에 오르며 혼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야기꾼 …주택가를 벗어나 호숫가로 이동합니다.
호숫가에 도착하면, 어제 보았던 풍경이 새삼 낯설게 느껴집니다.
눈이 내리기 때문일까요….
게이트 앞 경비 초소 쪽에서는 어쩐지 사람이 많고 싸우는 소리가 나며, 도서관으로 가는 다리 쪽에서는 무언가를 손에 든 학생 하나가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도서관 쪽으로 먼저 가본다) ……저기.

학생 예? (바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목소리를 바라보았다.)

이야기꾼 학생의 손에는 얼음이 섞인 흙 같은 것이 담겨있는 유리병이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게, 뭐지? (손에 들린 것을 물끄러미 보며 묻는다)

학생 아! 이건 말이죠! (굉장히 상기된 표정으로 들떠서 말하기 시작한다.) 최신 연구 샘플이에요! 섀넌 교수님께 전달될 예정이죠, 엣헴! (뿌듯한 표정으로 가슴을 쫙 편다.) 위대한 발견이 될 거라구요! 기왕이니 한 번 보실래요? (유리병을 들어보이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음, 그래. 위대한 발견을 미리 보는 영광을 준다니 거절할 수 없지. (희미하게 웃고는 유리병을 들여다본다)

이야기꾼 유리병을 살펴보면 이것은 지층을 옮겨 담은 샘플 같습니다.
새로 싹 트는 씨앗과, 잎사귀가 있는 지층 아래에, 지금처럼 눈이 쌓이고 얼어붙은 지층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학생 대단하죠! 이건 그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보존된 땅에서 얻은 샘플이에요.
사람들이 꾸준히 밖으로 나가 얻어낸 귀중한 결실이죠!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7. 세계의 재생]
새로 싹 트는 씨앗과, 잎사귀가 있는 지층 아래. 지금부터 약 천년 전 지층에서 지금처럼 눈이 쌓이고 얼어붙은 곳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천 년 더 이전에 겨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무언가로 인해, 다시 봄을 맞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학생 샘플의 시기로 따지면 이 나라가 건국 되었을 때와 거의 일치해요. 용은 천 년이나 살아서 겨울의 진상을 알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조용한 건지 의문이 들지 않나요? 의심스럽잖아요! 사람들이 용을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해요!
그런데도 신전은 용을 믿어라,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는 말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니… 두고보라죠, 이 발견이 곧 인류 도약의 발판이 되어줄 테니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
그러나 한 가지 그대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용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침묵하는 것은, 어쩌면……. 침묵하는 것이 곧 순리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밝히는 것이, 그대가 택한 길이라면……
……그래.
그리 해라. 사람들에게 그대가 본 것을, 그대가 알게 된 것을 알려라.

학생 …순리라니, 신전의 사람들과 똑같은 말을 하네요. 순리대로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그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죽을 날 받아놓고 사는 게 이미 죽은 것과 뭐가 다르죠? 삶은 곧 죽음과 반대되는 말이니 삶은 죽음에 반항하는 일이잖아요. …뭐, 좋아요. 어차피 저도 신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으니 그쪽이 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 없다구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나는 겨울을 끝낼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봄을 가져올 것이다. 반드시. 그러니 그대의 발견은 또다시 반복되는 새 계절에 대한 예언이자 그들이 새 계절을 믿고 인내하도록 하는 희망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이상, 누군가가 밖으로 나갈 이유는 없지 않겠나? 그대의 발견은 충분히 미래를 가리킬 수 있는 가치를 지녔잖나.

학생 …그래도 맨날 같은 말만 읊는 신전보다야 당신이 백 배 낫네요. 그만큼 대단한 발견이긴 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살고자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제 맘대로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죠. 이 겨울이 끝날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한 희소식이지만… 당장 사람들의 굶주림을 막아줄 순 없으니까요.
아, 이만 가봐야겠어요. 늦으면 교수님이 또 지ㄹ… 흠흠, 실례했습니다. 또 난동을 피울 것 같아서….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 (어딘가 씁쓸한 웃음을 하고서는, 당신을 바라본다) 그래도, 그 빈도를 줄이거나 시기를 더 늦출 수는 있을 테지. 그리 믿어 보겠네. …조심해서 가게.

이야기꾼 학생은 샘플이 담긴 유리병을 소중히 안아들고선 도서관으로 재빨리 들어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제 걸음을 옮겨 사람이 몰려있는 쪽으로 간다)

이야기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곳은 경비 초소가 있는 게이트 앞입니다.
바깥에 나갈 작정으로 보이는 농부 여럿이, 기절한 사제 옷을 입은 남성 하나를 끌고 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아, 이 또한 익숙한 얼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이야기꾼 호숫가에 빠져서 당신이 구해주었던 사제입니다.
분명 도서관 앞 다리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용납하는 경비병과 도서관 사람들에게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죠.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하.
……무슨 일이지?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다)

농부들 게이트 앞에 모여서 할 일이 뭐겠어. 밖에 나가 학생들 연구 자료 구해와서 돈 벌어먹거나, 겸사겸사 식량도 구해서 올 생각으로 모인 거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니, 그 손에 들린 사제에 대해 물은 것이다.

농부들 아, 이 놈? 미끼지, 미끼. 그거 알아? 숲 속의 야만인들에게서 살아서 돌아온 놈들의 공통점은 여럿이 몰려가서 그 중 일부만 돌아왔다는 거야. 거 미끼가 있으면 멀쩡히 돌아온다는 뜻이지.
아아, 형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사람을 미끼로 써먹다니 천벌이니 뭐니 그러고 싶은 거지? (인상을 콱 찡그리며) 오늘 오전에 이 사제 놈을 따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도서관 학생 하나를 잡아갔어! 그 학생을 구하러 다녀온 사람이 하는 말이 글쎄, 그 놈들이 그 학생을 불태워 죽였다잖아! 이 쌍놈의 것들… 그 학생 복수를 해줘야지. 우리가 어떻게 벌어먹고 살았는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흠, 아니,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지, …….
이 사제를 미끼로 쓰면 그들이 더 세를 불리지 않겠나? 그들은 미친 것처럼 보였고, …불을 끄라는 내 말을 듣지 않더군. 그러니 이런 식으로 사제가 보복을 당했다는 걸 알면 다음엔 도서관을 태워버릴 게 분명하네.
그들은, 죽는 게 두려운 이들이야.
겨울이 끝나지 않아 모두가 얼어 죽고, 굶어 죽을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
그러니 사제들을 잡아 죽여 봤자 의미가 없을 걸세.
차라리, ……. (눈을 꽉 감고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 학생을 끌고 간 광인 중 하나를 끌고 나가는 것이 더 적합한 복수가 되지 않겠나?
그리 했다간 본인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나서야, 그만둘 치들일세.

농부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당장 먹고 죽을 것도 없으니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밖으로 나가야 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 않나. 그들은 마침 저들이 감히 심판을 해내었다는 고양감에 한껏 취해 있어, 하나 끌고 오기에도 어렵지 않을 걸세. 그 기회는 지금 뿐이야.
오늘을 놓친다면, 그대들에게 당장 살 음식을 마련해줄 도서관이 불탈지도 모르는 일일세. 당장의 이익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셈인가?

농부들 어차피 우린 다 하루살이 신세야. 그 미쳐날뛰는 것들이 도서관에 불을 지른다고? 우리도 똑같이 신전에 불을 질러주면 돼. 다 같이 죽어보자고, 어디.

이야기꾼 아무래도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적절한 판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열쇠공으로 잠긴 그들의 마음을 언록 가능한지)

비슬 참나
어이업
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nii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 로크!

비슬 열쇠공 왜 65나 되는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기꾼 [열쇠공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65 열쇠공 (1D100<=6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0 > 90 > 실패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언록에 실패했다…… 튕겨나간 마음의 열쇠…)
(그러나 나의 말이 제법 그럴듯 하지 않았나? 말재주로 다시 갑니다)

이야기꾼 왕자가 이번에도 그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다면, 어쩌면 더 큰 패널티를 겪게 되겠죠. 왕자는 그럼에도 이 일을 강행했을까요?

Monii 패널티 뭔지
미래시
해주세요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기꾼 음 이성을 더 깎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까짓거
가보자고

이야기꾼 ㅋㅋㅋㅋㅋㅋ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보너스 주사위
안 주나요??
나 말 대박 잘햇는데

이야기꾼 그치만 이전 판정에서 어처구니 없는 열쇠공 판정을 해서 실패햇는디
강행에 보너스를 주는 키퍼가
어딧
어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마법소년이잖아요

이야기꾼 참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야기꾼 ㅋㅋㅋㅋㅋㅋ
그럼 일단 이야기꾼 대사에 맞춰서
강행한다는 말 올려주시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ㅇㅋㅇㅋ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사람의 삶이 무참히 짓밟힐지도 모르는 상황을 눈앞에서 봤는데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 애에게 빚이 있는 나는 더더욱. 그러니, 계속 시도해본다. 그 길에 무엇이 있든 상관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 그 간절한 마음을 내가 알지. 부디 행운이 따르길.

이야기꾼 [말재주 판정] (보너스 +2)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2)<=60 말재주 (1D100<=6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2] > 13, 53, 3 > 3 > 대단한 성공

농부들 …형씨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지만… 주택가의 그 미친 것들은 언제가 반드시 그 벌을 받아야 할 거야. 그 학생이 무슨 죄가 있다고… 다 살고자 하는 일인데 그 아이를 그렇게…… 그 어린 것이 뭘 그리 크게 잘못했다고….

이야기꾼 사람들은 붙잡아 둔 사제를 그대로 놓아두고 발걸음을 돌려 흩어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 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누구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 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찌 이리도 험난할까요.
……왜, 이다지도 괴로운 선택을 매 순간 해야만 살 수 있는 치열한 곳이 되었을까요.
그 누가 답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 누가…….

이야기꾼 차가워진 거리를 살펴보느라 왕자의 몸 역시 아려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눈이 내려서 차가워진 걸까요, 아니면 사람들의 마음이 차가워진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용의 심장이 얼어서 눈이 내리는 걸까요. 하지만 대체 심장이 언다는 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피부에 닿는 하얗고 반짝이는 결정은, 손이나 뺨에 닿는 순간 급속히 녹아버립니다.
이 눈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얼려버릴 것 같습니다.
왕도는 하얗게, 하얗게 물들어만 갑니다.
마침, 저녁을 알리는 종이 울려퍼집니다.
왕자는 오늘 저녁 어디로 갈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신전으로. …물을 것이 많구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기절한 사제를 마차에 챙긴다)

이야기꾼 왕자는 복잡한 마음으로 마차에 오릅니다.
주택가 중심에 위치한 고상한 옛 건물입니다.
육중한 대리석 기둥들이 여러개 서 있고,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있는 모양의 징표가 여기저기에도 보입니다.
신전에 가득한 환자들을 지나서야 소박한 신관의 방이 나옵니다.
신관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나와 왕자를 맞습니다. 사제의 신분을 의미하는 장신구를 제외하면, 신관의 옷은 너무나도 얇아 보잘것 없기까지 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둘러 메고 있던 기절한 사제를 다시 고쳐 메고는) 저어, 겸사겸사 이 분도 데려다 드리러 왔는데……. 어디에 내려드리면 될까요?

루시안 F. 세인트월 아, 사제를 데려와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일이 바빠 그의 행방을 들여다볼 틈이 없었는데…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으니 제가 그를 사제들이 쉬는 곳에 눕혀두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제를 넘겨주고는 가만히 웃어보인다)

이야기꾼 신관은 사제를 부축하고 방을 나섭니다.
신관의 방에는 두루마리로 된 오래된 필사본으로 가득한 격자 모양의 선반과, 종교적 상징을 나타내는 조형물이 여럿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작은 제단 옆에는 화로와 단촐한 나무의자들이 놓여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조형물을 들여다본다)

이야기꾼 신전 여기저기에 장식된 조각이나 그림들이, 신관의 방에도 놓여 있습니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어 둥그런 원 모양을 한 용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건…….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13. 꼬리를 문 용]

이야기꾼 나중에 신관이 돌아오면 문양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야겠군)
……그나저나 이 그림과 같은 설명은 여러 번 들은 기분인데. 꼬리를 문 용이잖나.
(고개를 돌려 선반을 본다)

이야기꾼 선반 위에는 몇 백 년은 되었을 법한 오래된 두루마기들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하나는 천과 매듭으로 조심스럽게 보관되었으며, 많은 교육을 받고 자란 왕자조차도 본 적이 없는 경전들이 존재합니다.
[자료조사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0 자료조사 (1D100<=7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8 > 8 > 대단한 성공

이야기꾼 선반을 살펴보던 중 왕자는 [라그나로크] 라는 낯익은 제목이 달린 경전을 발견합니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3. 세계의 종말, 라그나로크]
시대의 끝에는 무시무시한 겨울이 닥쳐와, 눈이 사방에서 휘날리고 강력한 서리와 매서운 돌풍이 땅을 지배할 것이다.

온 세상에서 살육이 난무하는 오랜 겨울에 형제들은 서로 죽이고, 자매들의 혈족관계는 더러워질 것이며, 모두가 배신을 거듭해 삶은 긴 겨울보다 냉혹해질 것이다. 세계가 무너지기 전, 자비를 가진 인간은 한 명도 남지 않으리라.

바람의 시대 끝에선, 대지와 하늘이 굉음을 내며 두 갈래로 쪼개지고 모든 것들이 전쟁을 시작한다. 싸움을 시작한 것들 중 살아남는 것은 하나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그대는 여전히 깨달음을 원하는가? 무엇을 깨닫고자 하는지, 스스로 의미를 알고 있는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라그나로크……. 이건 분명 아버지의 방에서…….

이야기꾼 그리고 문득 이 뒤에도 내용이 있어야 할 구성이지만 여기서 끊겨있어, 불완전한 예언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기억 속을 살펴 이 기시감의 정체를 찾아보면, 이전에 신관과 대화할 적에 보았던 [세계의 윤회, 라그나로크]의 앞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이것이…….

이야기꾼 신관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오셨습니까. 그의 상태는 어떻던가요.

루시안 F. 세인트월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약을 사용하여 잠시 재워둔 것으로 보이네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게 말입니다. ……긴 겨울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마저 메말라 이런 일들이 잦습니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지요.

루시안 F. 세인트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한다.)
왕자님께서는 그러면 사제를 신전에 데려다주시러 오신 걸까요. 아니면 다른 용무가 있으신지요. 어느 쪽이든 편하게 계시다 가시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둘 다 입니다. 신관님께 여쭙고 싶은 것도 있었고, 사제 분도 데려다 드려야 했고…….
……오전, 이 앞 주택가에 왔었습니다. 사람들이… 아, 신의 이름을 감히 참칭하며 다른 이를 불태우고 있더군요. ……신관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셨습니까?

루시안 F. 세인트월 그 일에 대해서는 전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 가보았을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들은 그저 다가오는 끝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겠으나,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광기에 발을 들이게 만들었으니…….
감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신전의 인력이 부상자를 살피는 것에 몰려있어 미처 막지 못햇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하였다는 것도, 그리 된 상황도……. 이 때문에 호숫가의 사람들은 사제들을 향해 분노하기도 하더군요. 이러한 고리가 부디 끊어져야만 할 것인데…….
……그리고, 그 앞 천막에 늘어진 시체들과 광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밖에 나갔다 변을 당한 이들이라 하더군요.
……진정 살아나는 이들이…… 있습니까?

루시안 F. 세인트월 부상을 입고 간신히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것은 그렇게 살아돌아간 이가 다시 밖으로 나가 결국 시체로 돌아오는 일이었지요.
일전에도 제가 도서관의 행태에 대해 말씀드렸던가요.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진 연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나간 것이니 희생이 아니라 하겠지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아. 참으로 잔혹한 시대로군요.
그러나 시대에 대한 한탄은 여기까지 해야겠지요. 우리는 어찌되었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위해 연을 맺게 된 사이지 않습니까. ……오시기 전까지 방을 조금 둘러보았습니다. 이, … 그림에 대해 여쭐 수 있겠습니까.

루시안 F. 세인트월 아, 그것은 저희가 믿는 신의 힘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용에게 끝과 시작은 구별할 수 없으며, 시간적 한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용이 그리는 원 안에서 시간적 순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기에 용이 자신의 꼬리를 놓는다면, 원은 파괴되고 세계 또한 멸망할 것이다.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만남에서도 이 순환에 대해 말씀드렸었죠.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그러했죠. 그 순리를 따르는 것이 신전의 일이라고도.
그렇다면 신관님께서는 용이 스스로 꼬리를 놓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무얼 바꿀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루시안 F. 세인트월 …용이 스스로 꼬리를 놓는다면, 용께서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용께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그러니 저는 처음 알현실에서 왕자님께 바라는 것으로 용에 대한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믿음을 사는 것은, 믿음을 주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십니까. (가만히 미소지어 보이며, 제단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그 꼬리를 놓는 것이 세상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대신 그들을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신의 자비일지도 모르지요. 세상은 언제나 미지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감히 신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

루시안 F. 세인트월 지금껏 계속 해오던 일을 그만두는 것은, 더 이상 그 일을 계속할 필요가 없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순환이 필요 없어졌다는 건, 세상이 유지될 필요가 없다는 뜻과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왕자님의 말 또한 이해합니다. 순환 없이도 세상이 유지될 수 있다면 구태여 순환을 유지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순리와 순환을 받아들이는 신관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아닐 것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오늘 본 일들이 너무도 괴로워 실언을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이젠 없으면 해서…….

루시안 F. 세인트월 아, 왕자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세상의 혼란은 언제나 믿음에 흔들림을 주는 것이니, 오늘의 만남으로 왕자님께서 마음의 흔들림을 다잡고 믿음을 굳건히 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필히 그리 될 것입니다……. (가만히 웃고는)
그런데, 이 제단은 무엇입니까?

루시안 F. 세인트월 아, 제가 기도를 올리는 제단입니다. 오랫동안 기도를 해왔지만, 환자를 구제하는 일은 언제나 힘든 일입니다. 부상의 경중을 따지는 것 같아 이러한 말을 꺼내선 안되는 일이지만, 몸을 다쳐 불구가 된 이들은 차라리 덜 하지요. 마음이 다쳐 미쳐버린 사람들은 바깥에 있는 신을 두려워 하며, 그 신을 믿는 야만인들이 왕국을 습격할 것이라 말하는데… 광증이 심각하여 멀쩡한 이들의 마음에도 심마를 남기니 참으로 고된 일입니다.

이야기꾼 제단을 살펴보면, 제단 위에는 작은 향로가 놓여있고, 무릎을 꿇는 곳에는 무릎을 받치는 작은 나무 판자가 있을 뿐입니다.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판자는 사람이 무릎을 꿇은 모양으로 닳아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바깥의 신이요? 그런 것이… 있습니까? ……하긴, 그러니 광증을 얻은 이들이 하는 말이겠지요.

루시안 F. 세인트월 …왕자님께서는 그러한 이단의 발언이나 행태에 관심을 두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들의 말이 당치도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도 결국은 신의 자비 아래 함께 살아가는 이들. 신께서는 이단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실 만큼 너그러우실 테지요. 그들을 다시 올바른 순환과 순리를 따르는 신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두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군의 이야기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격언도 있으니까요.
……야만인들이 믿는 신이라니. 설사 그것이 진정 존재하는 것이라 하여도 그들은 인간이 아니니 우리의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은 언제나 용 한 분 뿐이지 않습니까?
세상을 올바른 순리로 이끌고 새로운 순환을 이어가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광증에 홀려 삿된 말을 읊는 이단들도 참회하고 회개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루시안 F. 세인트월 왕자님께서 믿음이 깊으신 듯 하여 참으로 마음이 놓입니다. 저는 우리의 사이가 믿음과 믿음으로 이어져 다가오는 순환의 고리에서 더 이상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있었던 일로 인하여 왕자님의 마음에서 심마를 본 바, 왕자님께서 믿음에 대한 확고한 맹세와 순리를 받아 들이는 일에 대한 선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믿음에 혼란이 생긴 백성들이 다시금 용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순리를 향해 걷기 시작하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제 청을 들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제가 어찌 하면 될까요, 신관님?

이야기꾼 왕자는 신관의 청을 신중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신뢰를 확인하기 위한 요청이며 신관의 말은 곧 신전의 말이기도 하니, 그와 신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왕자와 신전의 지지관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또한 자동으로 도서관의 학자와는 척을 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왕자는 신관의 청을 들어줄 때에 이러한 점들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루시안 F. 세인트월 앞서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이 믿음과, 이 믿음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 왕자님께서 그리 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제가 그리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신을 올곧게 믿는다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무게를 가지겠지요. 저는 이 왕국의 후계이고, 다음 세대를 이끌 존재니까요.

루시안 F. 세인트월 실로 그러합니다. 왕자님께서는 일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세계가 용의 죽음으로 새로운 순환을 시작할 때에 이 맹세를 떠올리셔야 할 겁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나, 그렇기에 말씀드립니다. 순리는 그것이 온당히 다가오는 것이기에 순리라 불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자연이며, 진리와도 같으니…….
그리 하겠습니다. 나는 백성들의 삶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 의무와 책임이 있는 자입니다. 사람들의 목숨으로 순리를 어그러뜨리는 일은 더 묵과할 수 없습니다.

루시안 F. 세인트월 그대의 믿음과 맹세 속에 용이 함께하기를……. 저의 청을 들어주어 감사합니다.
이것은 신뢰할 수 있는 자에게 주면 그 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누군가 제게 남긴 것입니다. 받아주시겠습니까?

이야기꾼 신관은 그리 말하며 부채꼴 모양의 금속 공예품을 보입니다.
공예품 위에는 낙엽과 열매가 양각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이것은…….
삶이란 진정,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로군요.
(웃으며 공예품을 건네받는다)

루시안 F. 세인트월 그리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이것이 왕자님께 큰 도움이 될 듯 하여 기쁩니다.

이야기꾼 [가을의 조각]을 획득합니다.
가을의 조각은 여름의 조각 옆 부분에 꼭 맞게 들어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참으로 의미 깊은 대화였습니다, 신관님.
바쁘시겠으나, 부디 앞으로도, …겨울이 끝난 후에도, 새로운 순환의 시대에도 가장 낮고 추운 곳의 이들을 위해 신의 가르침을 행해주시길 감히 부탁드립니다.

루시안 F. 세인트월 저 또한 실로 뜻 깊은 대화였습니다. 제 힘이 닿는 곳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신의 광영 아래 평안의 밤을 보내시길.

루시안 F. 세인트월 (왕자를 향해 짧게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 후) …살펴가시길.

이야기꾼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면 어느덧 밤입니다. 처소로 돌아갑시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돌아간다)

이야기꾼 밤이 되어 왕자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탓인지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고, 한기가 듭니다.
…아니, 한기가 드는 것은 거처의 창문이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강한 바람 때문일까요? 창으로 들어온 눈이 창문 앞에 쌓여 있습니다.
[관찰력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cc<=75 관찰력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5 > 15 > 대단한 성공

이야기꾼 …눈 위에 창으로부터 들어와 커튼 뒤까지 이어지는 발자국이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주변에 무기가 있나?)

이야기꾼 [행운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행운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99 > 99 > 실패

이야기꾼 안타깝게도, 주변에 무기로 쓰일만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하, 쓸데 없는 짓을……!)
(침착하게 다시 방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는다) 경비대! 경비대를 불러라!

이야기꾼 왕자의 외침을 조용한 복도에 소란을 일으킵니다.
그러자 곧 이어 방금 전까지 왕자가 있었던 침실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잠잠해집니다.
왕자의 외침을 들은 하인과 경비대가 몰려옵니다.

하인 무, 무슨 일이십니까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방에 침입의 흔적이 있었다.
속히 살피도록.

하인 치, 침입이요?! (무척 놀라며)

이야기꾼 왕자의 말을 들은 이들이 놀라 황급히 그리고 또 조심스레 방을 수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시 뒤, 하인이 다가옵니다.

하인 창문을 통해 이미 도망친 모양입니다. 경비대가 흔적을 쫓아 나섰으니 곧 행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커튼 뒤에서 발견 하였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무엇인가.

이야기꾼 하인은 왕자에게 직인이 찍힌 편지 한 장을 건넵니다.

하인 저는 침입 사실을 알리고, 기사들을 시켜 주변 경계를 더욱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발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 수고하게나. (직인이 찍인 편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소파에 앉아 편지의 직인을 살핀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나?)

이야기꾼 편지의 직인을 살피면, 왕자는 그것이 학자의 것임을 깨닫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럴 줄 알았어. (인상을 찌푸리며 편지를 열어본다)

이야기꾼 편지에는 '왕자를 눈에 띄지 않게 죽인 후 사고로 위장하라'고 적혀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이야기꾼 [이성 판정] (1d2/1d5)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53 이성체크 (1D100<=53)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4 > 14 > 어려운 성공
1d2 (1D2) > 2

system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SAN : 53 → 51

이야기꾼 누군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썼다는 것은 나라의 후계로써 상상해본 적 있는 일이긴 해도, 이리 적나라한 상황을 마주하니 꺼림칙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니 오늘 밤에 스승을 부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차라리 일찍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하…….
권력에 미쳐서는…….
욕망에 눈이 흐려 어느 것이 맞는 길인지 분별하는 눈조차 잃었구나.
그래.
조만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섀넌.
(신경질적으로 편지와 직인을 챙긴 뒤 자리에 눕는다)

이야기꾼 극심한 피로가 몰려옵니다.
심란한 일을 겪은 뒤이기에 잠에 들지 못할 것이란 생각과는 다르게 몰려오는 피로에 순식간에 잠에 빠져듭니다.
그도 그럴게 오늘은 추운 거리를 하루종일 돌아다녔고, 낮에 보았던 일들이나 밤손님의 정체로 인해 정신적인 피로감이 막대하니까요.
용, 용의 죽음, 그리고 네 개의 세력에 대한 일들이 왕자의 잠자리를 어지럽게 맴돕니다.
왕자님은 식은 땀을 흘리며 눈을 뜹니다.
간 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어쩐지 굉장히 슬프고, 긴 꿈을 꾼 듯 합니다.
낯설지만 생각보다 인간적인 용을 만나고, 여러 소문을 모으고, 여러 사람과 마주했지만 해답에는 좀처럼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이 길이 틀렸던 걸까요?
아니, 왕자님은 깨닫습니다.
정답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어렵고 먼 길…
마치 천년의 시간을 외롭게 버티는 것 같은 기분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노크 소리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들어오게.

이야기꾼 몇 명의 군인들이 들어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하아……. 어찌 됐는가?

군인 송구하오나, 흔적을 쫓는 도중 하늘에서 내리는 이 '눈'이란 것에 의해 발자국이 지워져 추적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부상은 없으셨다 들었지만 다치신 곳은 없으신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쯧. 그런가. 됐다. 배후는 잡아냈으니. 그래, 수고 많았네.
오늘은 용의 상태가 어떠한가?

군인 왕께서 말씀하시길 어제보다는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좋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의사들의 소견으로는 회광반조에 가깝다 합니다만… 날이 험해지고 하늘에서 눈이 그치질 않으니 오늘은 꼭 용에게 방문하여 해답을 들어오라 전하라 하셨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 가야겠지. 채비를 하겠다. 마차를 대기시켜라.

군인 마차는 아래 군용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어제의 소동이 있었으니 왕자를 극진히 보호하라 하셨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 (짧게 웃고는) 그래. 가지. 겨울이 충분히 길지 않았나.

군인 모시겠습니다.

이야기꾼 아래로 내려가 마차에 오르면 하인이나 마부와 같이 익숙해진 얼굴들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감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보호를 받으며 왕자님을 태운 마차가 용의 탑으로 향합니다.
눈발이 흩날리는 차창을 보다보면 금방 용의 탑에 도착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다들 수고하게. 다녀오도록 하지. (마차에서 내려 용의 탑으로 걸어간다)

이야기꾼 하얀 눈이 쌓여 조금 어색해진 길을 따라 걸으면 용의 탑이 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탑으로 들어간다)

이야기꾼 탑의 내부로 들어서면, 용은 침대에 누운 채로 왕자를 맞이합니다.
얼굴엔 지친 기색이 완연하고, 땔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 안은 바깥보다 추운 듯 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아서 아, 제이. 왔군. 다친 곳은 없어 보여 다행이야. 그 날 그렇게 헤어지며 원래 해야 했던 경고를 깜빡 잊어 미처 해주지 못해 어찌나 걱정되던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몸은, ……몸은 괜찮은, 거예요? 아서……. 나는, …….
(계속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누운 당신을 끌어안는다)

아서 이런 나는 눈물에 약한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농담을…….
바깥은 이상해요. 전부 미쳐 돌아가고 있어요. 이 세상을 원래대로 돌리는 게 내 의무인가요? 정말 그게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나는…… 당신이 없는 곳은 살아내고 싶지가 않은데……!

아서 워, 워… (진정하라는 듯 웃어보이며) 진정해, 제이. 이것은 약속되어 있는 순환이기에 네가 걱정할 것은 없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신관의 앞에서는 순리대로 따르겠다느니 하는 말을 했지만…….
그게 당신을 잃는 선택이라면,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요.

아서 추위가 이토록 가까이에 왔으니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도 당연해.
제이, 나를 걱정하여 눈물을 흘리는 네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무척이나 미안하지만 내게는 더 이상 이 추위를 버틸 힘이 존재하지 않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왜…… 당신을 잃어야만 하는 거죠?

아서 그래, 이제는 네게 겨울에 대해서 말해줄 때가 왔구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겨울.

아서 그래, 겨울. 왕도의 바깥,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겨울.

아서 왕국에 퍼진 소문은 이 겨울이 나의 우울과 병으로 인하여 찾아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겨울은 원래부터 왕국 너머 북쪽에 존재하고 있던 것으로 나는 용으로써 그것을 막고 있던 것에 불과하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아, 그렇다면, 당신이 죽으면, 내가 용이 되겠군요.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였군요. 순환이라는 것은 그저 끝없이 바깥에서 닥치는 죽음을 막을 방패막이의 피와 살을 채워넣는 과정일 뿐이었다는 거군요.

아서 …그래. 지난 시간 동안 겨울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구나, 제이. 혹독한 말로 이 이야기를 바꾸어 말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그러니 내게 용으로써 남은 일은 죽어서 꼬리를 잇는 일이야. 나는 그것을 제이, 그대가 도와주었으면 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지켜야 할 정도로, 이들이 사랑스러운가요? 아, ―… 나는 도대체 당신과 몇 번이나 이런 대화를 했죠? 도대체 몇 번이나… 당신을 사랑하게 되고, 당신과 이별하게 됐죠?

Monii ……하…………………………… 씨바 착잡하다………………………………………………………
세계야 나야 선택해

아서 이 순환이 끊어지면, 그것은 곧 왕국의 멸망으로 이어지겠지. 그리고 인류 역시도 절멸할 것이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제이? 순환의 연속에서 우리가 재회할 가능성 또한 사라진다는 뜻이지. …그러나 우리가 꼬리를 이어나가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단 찰나를, 단 며칠을 사랑하기 위해 천 년의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단 말인가요.

아서 그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제이, 그대에게 지금 왕국에 대한 애착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음을 이해하네. 사람은 짧은 생을 살면서도 변하는데 우리라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때 그러기로 결정했던 거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다른 방법은 정녕 없었나요?

아서 …이룰 수 없는 희망은 기만이나 다름없으니 말하지 않겠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그 어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거예요. 어쩌면 그 이전의 나나 당신이 시도해보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서 …제이, 나는 그저 그대가 나의 부탁에 대해 생각해주기를 바라네. 그대가 그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 것 같지는 않으니 하는 말이지만, 제이, 그대가 아니더라도 이 상황이 계속되면 다른 이들도 더 이상 이 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원인을 제거하려 하겠지. 그러니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그대가 결정을 내려야 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제게 선택지가 있기는 한가요?

아서 …바란다면, 그대가 꼬리를 잇지 않고 놓아버려도 상관 없네. 이야기의 끝에 세계가 멸망한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랬다간 당신마저 잃게 되겠죠.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로 공허 뿐인 이 세계를 걷다가 재가 되어 날리게 되겠죠.
어쩌다 이 가혹한 세계에 우리가 살게 되었을까요?
……아서.
내일은 내게 입맞춰줄 수 있나요?

아서 …그리하지.
…제이.
괴롭다면, 이 가혹한 세계에 대해 탓할 곳이 필요하다면 나를 탓해도 좋네. 어찌되었든 지금 용의 자리를 맡고 있는 것은 나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사랑하는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천 년을 살 위인은 못 돼서요, 제가.

아서 …그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당신을 지나쳐 탑의 창가에 가 선다) …아서는 항상 이곳으로 바깥을 봤나요?

아서 그래. 좁은 창이지만 제법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이야기꾼 창문 너머에는 왕자님의 처소와, 광장에 있는 커다란 두 동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왕국의 전경 너머에는 금지된 숲도 흐릿하게 보입니다.
분명히 문이 전부 닫혀있는데도 방 안은 어디선가 겨울이 직격으로 부딪히는 듯한 냉기가 느껴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이야기꾼 그 근원지는, 용으로부터 불어오는 겨울의 찬 바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에게서 겨울이 느껴지네요. 춥지는 않아요? (몸을 돌려 당신의 가까이로 다가가 눈을 맞춘다)

아서 외부의 겨울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어서 새어나가고 있는 탓이지. 지독한 추위야. 하지만 추위엔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익숙할 테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요. 벽난로에 장작을 좀 더 때야겠네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볍게 당신의 손등을 만지작거리곤 벽난로로 다가간다)

이야기꾼 용의 손을 만져보면, 그것은 매우 차가워 바깥에 내리는 눈보다도 시리게 느껴집니다.
벽난로 위엔, 검고 흰 재로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그림입니다. 신전에서도 이와 같은 그림을 보았죠.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신전에도 이거랑 똑같은 그림이 있었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벽난로에 장작을 더 밀어넣고는 침대로 돌아온다) 외출했던 게 무리였던 건 아니죠?

아서 나의 상태는 외출과는 무관해, 제이. 그대를 속인 모양새라 미안하지만, 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나는 그저 죽기 전에 마을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싶었을 뿐이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천 년을 지켜온 것인데 죽기 전에 한 번은 더 보아야 할 것 아닌가?

이야기꾼 생활감이 있는 1인용의 침대는 벽난로와 가까이 있어 열기가 직접적으로 느껴집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침대 헤드 위에 무언가 뾰족한 것으로 [망각은 잔인함과 비통함을 없애는 신의 축복] …이라고 새겨놓은 글씨를 발견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망각은……. (가만히 읊조리다가 문득) …설마 아서, 내가 당신을 죽이면… 당신은… 나를… 잊게 되나요?

아서 그렇지. 제이가 지금 나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 단 며칠에 불과한 것처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아서 얼마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전 생의 나도 당신을 사랑했나요? …그리고 당신도… 나를…….

아서 이미 짐작하고 있으면서 재차 묻기는, 짓궂은 구석이 있구나. 그대 생각이 맞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나는 혹 당신은 그렇지 않아서… 내 마음을 당신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거든요.

아서 내게는 그저… 이전 생의 그대도, 나의 용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싶어 퍽 즐거웠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즐거웠다면 다행이구요. 그럼 어디, 아서의 일기장이 숨어있나 한 번 볼까요? (부러 장난스런 웃음을 하고서, 테이블 위로 쌓인 물건들과 이곳저곳에 놓인 책들을 들춰본다)

이야기꾼 테이블 위에는 용이 쓰다 만 책이 놓여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게 뭐죠? (들어서 읽어본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8. 집필 중인 책]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강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며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 바다에 닿으며, 바다에 닿은 물은 증발에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된다. 구름은 무거워 지면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뿌려진 비는 강으로 모여 다시 커다란 흐름이 된다. 비록 강물을 유리병에 밀봉해도 언젠가는 병은 삭고, 지반 아래로 흘러가더라도 결국은 지하수가 바다로 흘러 갈 것이다.
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주는 이런 끝 없는 순환 속에 있어, 무엇이 끝이고 무엇이 시작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다름 없다. 그러니…
…인간이 이 흐름을 거슬러 되돌아가려 한다면 세계를 다시 만들거나, 그런 힘을 가진 존재에게 의탁 할 수 밖에 없다.

아서 이 순환에 대해 생각해본 것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본 것이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순환에 대한 생각들이라…….
천 년 동안 많은 생각들을 하셨군요.

아서 천 년은 긴 시간이니까.

이야기꾼 쌓여진 책들을 살펴보면, 직접 쓴 걸로 보이는 표지가 적혀있지 않은 책들과, 끈적거리는 표지를 가지거나, 인간의 귀와 비슷한 장식이 달린 가죽 표지거나, 혼미한 향이 나는 수상한 책들이 섞여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으……. 진짜 완전 수상하게 생긴 책들이네요.

아서 그 쪽에 있는 책들 중에는 아직 그대에게 위험한 것들이 제법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꼭 책을 살펴봐야겠다면 개중에서 그나마 나은 것들을 추천해 줄 수는 있다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뭐, '아직'이란 건, 용이 되면 다 그냥 읽을 수 있게 되는 책들이란 의미죠? 됐어요. 분에 넘치는 지식은 그다지 바라지 않아요. 아는 것만으로는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아서 좋은 생각이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마음 같아선 여기 더 머물면서 하루 종일 아서 얼굴이나 보고 싶긴 한데요.
내일 당신의 입맞춤을 받으려면 저는 제 할 일을 해야겠죠?

아서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테니, 열심히 할 일을 마치고 내일 보도록 하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 작은 심술은 부리게 해줘요.
(누운 당신의 곁으로 다가가, 짧게 이마에 입을 맞춘다. 당신이 선물한 안경줄이 잘그락거리며 허공에 잠시 흔들렸다. 제레미아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낯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표정은 한없이 잔잔한 호수 같았으나, 숨길 수 없는 애정과 그 아래 짙게 가라앉은 괴로움이 그 푸른 눈 속에 일렁이고 있었다. 사랑해, 그러니 보내고 싶지 않아, 그런 말들을 수천 번째 삼키고서, 제레미아는 이번엔 당신의 콧등에 입을 맞추고서 몸을 떼어냈다)

아서 ……. 그런 점은 어째 천 년만에 보는 그대인데도 변하지를 않아. (피식 웃으며 안경줄을 잠시 만지작거린다.) ……그러고보니 제이, 내게 주는 선물에 대한 소식은 아직인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저런, 그건 청혼할 때 주려고 했는데 말이에요. (장난스럽게 웃고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케이스에 담은 귀걸이 한 쌍을 꺼낸다. 그러다 곧 당신의 두 귀를 확인한 뒤,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아, 귀를 안 뚫었군요. 제가… 해도 되나요? 이거? 좀 아플 건데.

아서 내 목숨을 맡겼는데 귀라고 못 맡길 리가 없지.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무엇보다도 이게 일종의 청혼인 것 아닌가? 청혼할 때 주려고 했다 그러니……. 받지 않을 수가 없군 그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용감하네요, 아서. 그리고 그만큼, 사랑스럽고요. (제레미아는 느리게 웃고는, 당신의 귓불을 살짝 물었다. 겨울의 냉기가 가득한 몸은 그 첨단까지도 시리고 차가웠으나, 기이하게도 제레미아에겐 그마저 따스했다. 천천히 숨을 뱉으며, 그는 이어 혀끝으로 제가 문 곳을 핥고는,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귀걸이가 귓불을 파고든다. 그는 제대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 뒤 클러치를 닫았다) …괜찮아요?

아서 천 년을 살았는데 귀를 뚫는다고 엄살을 부릴 순 없지. 나잇값 못하는 자가 되고 싶진 않아. (귓가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감각에 괜스레 그것을 잠시 만져본다.)
…고마워, 제이. 받아본 것 중 제일 좋은 선물이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의외로 그것도 귀여웠을지도 모르죠. (반대쪽도 마찬가지로 끼워넣고서, 그는 즐거운 웃음을 했다. 느릿하게 제가 끼워 넣은 귀걸이를 보며 그 뺨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래서 청혼은, 받아주는 거예요?

아서 받지 않을 것이었다면, 선물도 거절했겠지. 나를 청혼 선물만 받고 청혼은 거절하는 파렴치한으로 내몰 생각인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럴 리가요. 그냥, 짐작하는 것과 직접 듣는 것은 달라서 심술 한 번 부려봤어요.
……내 사랑하는 아서.
푹 쉬고 있어요. 내일 또 올게요. 사랑해요.

아서 하루 사이에 참으로 간질간질해졌군 그래. 이만 가보아. …제이, 나 역시도 다른 희망이 있기를 바란다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꼭, 행복해지기를. (마지막으로 당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용의 탑 바깥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야기꾼 밖으로 나오면 어느덧 시간은 오후가 됩니다.
바깥에서 군인들이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흘끔 보긴 합니다만, 별 다른 언질 없이 마차의 문을 열어줍니다.
마차에는 늘 보던 마부 대신 군인이 말을 몰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광장으로 가지. 상점가로 가 보았자 좋지 않은 이야기만 볼 듯 하니.

이야기꾼 마차를 타고 내다본 거리는 회색빛깔입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와, 눈발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생활 하기 위해 땔감을 구하고, 밥을 구걸하고, 신에게 기도하여 가족과 친구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용이 죽는 것 정도야 큰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해답을 구하려면 주변을 좀 더 돌아보아야 하겠죠.
왕자를 태운 마차가 광장으로 향합니다.
왕궁 앞, 눈 쌓인 두개의 조각상이 있는 넓은 광장입니다.
예전엔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그저 눈 쌓인 벌판에 경비병들의 기침 소리만 가득합니다.
광장 구석에서는 누군가 한 명이 시를 읊으며 서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정말로, 아무도 남지 않았구나.
……. (아서와 춤을 추었던 날을 잠시 떠올리다, 그는 걸음을 옮겨 시를 읊는 이의 앞으로 다가간다)

이야기꾼 가까이서 보니 그는 맹인인 듯 눈가리개를 하고서 지팡이 같은 것을 짚고 서있습니다. 옷도 제대로 입고 있지 않았으며 누더기 같은 것을 뒤집어 쓰고 흙밭에서 잔뜩 뒹군 모양새라 행색을 알아보기도 어렵습니다.
맹인은 같은 구절의 시를 반복해 읊습니다.
목소리가 떨리고, 희미해 잘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자세히…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꾼 [듣기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65 듣기 (1D100<=6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5 > 5 > 대단한 성공

이야기꾼 가만히 반복되는 구절을 들어보니, 그것은
[둘의 영혼이 하나가 되는 것은 축복인가? 나는 그것을 저주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주박. 혼의 구속.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최초이자 최후의 한 쌍은 수천개의 세계에서 수천번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이번에는 어떠한 여정을 걸을 것인가.]
라는 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순간, 무언가를 물어볼 겨를도 없이 맹인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경비병.

이야기꾼 왕자님의 부름에 가까이 있던 군인이 다가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또 한 사람의 백성이 겨울의 송곳니에 숨을 거두었구나. 그를 옮겨 묻어줄 수 있겠나.

군인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고맙네.

이야기꾼 군인을 시켜 그의 시체를 수습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문득, 방금 전 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낯이 익다는 기분이 듭니다.
시신을 수습하던 이들이 소란스러워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무슨 일인가.

군인 와, 왕자님… 그것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이야기꾼 시신을 수습하던 군인의 뒤로, 거적을 벗긴 맹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눈가리개를 벗겨낸 그 모습은 그제야 익숙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이 나라의 또 다른 왕자, 우리의 왕자님에게는 형님이 되는, 바로 그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입술을 꽉 깨문다)

이야기꾼 [이성 판정] (1/1d3)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51 이성체크 (1D100<=51)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0 > 10 > 대단한 성공

system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SAN : 51 → 50

이야기꾼 그가 한량처럼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경비병. 부탁을 하나 더 해야겠네. 들어줄 수 있겠나…….

이야기꾼 눈은 대체 언제 다친 것일까요. 어째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왕궁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걸까요. 왜 이런 모습으로 광장에서… 왕자님의 부름에 군인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폐하께……. (숨을 잠시 멈추었다. 이성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금세라도 감정이 해일처럼 쏟아질 것만 같아 몇 번이고 말을 고른다) ……폐하께 부고를 전하고, 형님의 시신을 잘 정돈하여 전해드리게. 마차가 저곳에 있으니, 부디……. (끝내 말끝이 흐려져 채 끝을 맺지 못하고서 허공을 배회한다. 그는 멍한 눈으로 한참이나 제 형의 시신을 바라본다) ……부탁, 하네, …….

군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 ……고맙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멍한 걸음으로 조각상 앞으로 다가간다)

이야기꾼 며칠 전에도 보았던 조각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광장 남쪽에 있는 것은 후드를 쓴 사람의 동상….
그 조각상의 얼굴은 분명 비어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누가 그 공간에 얼굴을 그려둔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누구의 얼굴이지?)

이야기꾼 [관찰력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관찰력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53 > 53 > 보통 성공

이야기꾼 그 모양새를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이 왕자님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두 용의 이야기였군.
이 세계 전부가… 하나의 모형정원 같아.
수천만 번을 더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보면, …….
언젠간 정말 이 틀 바깥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걸려도 좋아. 아서, 너를…… 내 곁에 둘 수 있다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 정신 차리자.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경비병에게 다가간다) 추운 날 근무 서느라 고생이 많아. 불편한 것은 없는가?

이야기꾼 굳은 얼굴의 경비병들입니다. 다들 추위로 코와 뺨이 빨갛게 얼어 붙은 채로 두런두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경비병 (제레미아의 얼굴을 알아보고)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다행이군. 언제든 불편한 점이 있으면 편히 이야기하게. 왕국과 백성들을 위해 불철주야 가장 고생하고 있는 이들이 그대들 아닌가.

경비병 …살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별 일은 없는가? …하긴, 날이 추워 다들 집밖으로 나오길 꺼리지.

경비병 하늘에서 얼음이 내리기 시작한 후로는 광장에 나오는 이들이 확 줄었습니다.

경비병 …저, 그런데 왕자님, …왕궁이야말로 별 일이 없는 것이 맞겠지요? (호의적인 왕자의 태도에 군기를 조금 풀고서 조심스레 물어본다.)
요즘 거리에 도는 소문이 심상치가 않아서….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소문…… 말인가?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경비병을 바라본다) 혹, 상점가의 소문을 말하는 건가? …내게 알려줄 수 있겠나?

경비병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쿠데타가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런 소문이 도는데, 왕궁에 남은 자는 왕의 최측근인 소수에 불과하고 둘 사이에서 망설이던 귀족들은 죄다 공작의 살롱으로 도망…, 아니 이사를 가버렸으니 향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도 걱정이 되어서…….
심지어는 어제부터 하늘에서 얼음이 쏟아져내리니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민심이 그쪽을 향하지 않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 이야기가 도는가. 하긴, 상점가의 일도 그렇고……. (가만히 허공에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옮긴다) …그래도 겨울이 끝난다면, 분명 그들도 잠잠해지겠지. 모든 것은 살기 혹독한 겨울 탓이잖나.

경비병 …그렇다면 역시 용이 죽으면 끝날 일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말이 천 년을 수호했다는 용을 두고 해선 안되는 말인 것을 알지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곧, 그 누구도 추위에 떨지 않는 나날이 올 테지. 겨울은 끝난다. 얼음이 녹고 새순이 돋아 모든 것이 생동하는 때가 도래할 것이야. …그러기 위해 내가 지목되지 않았나. (짧게 웃고는)
그대들도 조금만 더 힘내주어. 멀지 않은 시기에 봄을 가져다주지.

경비병 …예, 믿겠습니다, 왕자님. 그 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겨울을 끝내고 왕자님께서 가져오는 것이 그것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만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부디 무사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왕자님을 믿지만, 이러한 믿음이 되려 왕자님께 부담이 되어 무리하게 되는 원인이 될까 두렵습니다. 쉬운 길이 있다면,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지 마시고 쉬운 길을 택하세요. 누구도 왕자님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을 겁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대같은 이들이 있어 내 어깨에 지는 짐이 되레 기껍다네. 언제나 고마워. 내, 더 굳게 내 책임에 몰두하도록 하지.

경비병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이 아니었는데……. 주제넘은 참견을 했습니다. 그저 왕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야기꾼 이야기를 나누던 경비병이 왕자님에게 경례하자,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비병들이 뒤이어 경례를 올립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니, 진심으로 고마워 하는 말이었어. 너무 걱정하지 말게. (느릿하게 웃고는, 저도 경례를 한다) 그럼, 수고하게. 왕국과 백성들의 평화를 위해.

경비병 (여전히 손을 내리지 않은 채) 살펴 가십시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가볍게 경례를 했던 손을 내리고는, 걸음을 옮긴다)

이야기꾼 마침 저녁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집니다.
오늘은 어디로 가야할까요.
폭풍이 눈 앞으로 다가온 것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갈 곳은 빤하지 않나…….

이야기꾼 스승들의 거처를 방문할 시간은 오늘 이후로 존재하지 않겠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살롱으로 가지.

이야기꾼 왕자를 태운 마차가 공작의 살롱으로 향합니다.
부유한 세력가들의 저택 중 가장 큰 건물, 그 내부에 있는 살롱입니다.
공작이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유명 인사들이 모이는 바람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공작의 개인실은 살롱 2층에 있습니다.
개인실은 차분하고 검소하지만 그렇기에 화려한 공작이 더 돋보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오랜만입니다. 작일 찾아뵙고자 했는데, 공도 아시겠지만 일이 좀 있었어서요.

나디아 H. 미뉴어트 이리 방문해주셔서 영광입니다. 하마터면 기다림 끝에 지쳐 쓰러질 뻔했지 뭡니까.

이야기꾼 공작의 방은 어디에 앉던 간에 촛불이 교묘히 얼굴만을 비추도록 배치되었습니다.
방 안엔 커다란 소파 두 개와 테이블, 그리고 수 많은 선물이 쌓인 침대가 있습니다.
침대 옆에는 작은 협탁이 있고, 그 위에는 탁상에 올리는 액자 같은 것이 보입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편하게 둘러보시고, 제가 목 놓아 기다렸던 소식을 전해주실 참이라면 모쪼록.

이야기꾼 공작은 그리 말하며 같이 마실 차를 내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공의 개인실이 참으로 고아하여 먼저 둘러본 뒤에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요. (테이블을 본다)

이야기꾼 테이블에는 여러가지 편지들이 가득합니다. 굳이 내용을 열어보지 않아도, 이것이 은밀한 청탁, 혹은 남에게 들키지 않았어야 할 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일부러 앞 면을 펼친 채, 티 접시 옆에 둔 듯한 편지가 눈에 띕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편지를 읽어본다)

이야기꾼 ‘권력을 얻는것은 쉽습니다. 허나 유지하는 것은 힘과 인망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왕은 균형에 실패했습니다.’ 라는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공작은 그 위에 ‘왕자를 믿어보죠, 그렇지 않으면 왕국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날을 맞이하겠죠.’ 라고 답장을 적어 놓았습니다.
발신인에 쓰인 이름은 '카야'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쿠데타 이야기가 사실이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편지를 내려놓는다) 폐하께서는 진실로 세력을 만드는 데에 실패하셨던 거로군요.
……가장 신임하는 신하마저 돌아설 정도였다니.

나디아 H. 미뉴어트 그런 흉흉한 이야기가 도는 것은 맞으나 '아직까지는' 사실이 아니랍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직까지는' 이라…….

나디아 H. 미뉴어트 믿어본다, 그리 쓰여있지 않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걸음을 옮겨 느린 손길로 협탁을 쓸며 액자를 들여다본다)

나디아 H. 미뉴어트 후후, 그렇지요?

이야기꾼 액자에 든 것은 왕자님의 초상화입니다.
초상화에는 [가장 아름답게 필 씨앗]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액자를 들여다보는 왕자를 바라보며) 왕자님께서는 추위가 찾아온 것도 용이 아프기 시작한 것도 당신의 탄생과 같은 때라는 걸 아십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공께서는 그에 대해 더 아는 것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그저 제 짐작일 뿐이지만, 왕자님은 자각이 없을 뿐 변화의 씨앗이라 생각합니다.
전에 말씀 드렸던 것과 같이, 저는 그 변화의 때에 그 핵심이 될 왕자님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고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과연 미뉴어트 공이시군요. 어쩌면 도서관의 학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점이 있을 뿐이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번엔 침대의 앞이다)
그런가요? 제겐 모든 정보를 쥐락펴락하는 공이 가장 거대해보입니다.

이야기꾼 침대는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에 푹 파묻혀 있습니다. 연정을 속삭이는 카드가 달린 꽃다발과, 귀중하고 섬세한 물건들이 하나같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입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저는 그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에 능할 뿐입니다.

이야기꾼 발신인을 본다면 어지간한 귀족과, 상공업 길드에서 빠짐없이 선물을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흐음…, 왕자님께서 침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저와 논하고 싶으신 것은 아닌 것 같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이런 것은 어떠십니까? (침대로 다가와 그 위에 있는 물건을 하나 내민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정말로 공께서는 상대방을 잘 파악하시는 것 같습니다. (짧게 웃고는 건네는 물건을 받아 들여다본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야기꾼 공작이 내미는 물건을 받아들면, 그것은 일종의 밀서로 보입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읽어보시겠습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편지를 펼쳐본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2. 용이란?]
용은 왕가의 권력이나 다름없는 상징으로, 천년간 왕국을 다스리는 신입니다. 하지만 천년보다 더 전,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희 가문은 수천년을 이어 살아온 얼마 안 되는 명가로, 가주에게 은밀하게 내려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은 신이나,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를 뜻하는게 아니라, 능력과 직책을 뜻하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최근 용의 병환으로 인해, 저희 가문은 고민 끝에 공작님에게 저희의 안전을 위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용은 전지전능한 것이 아니며, 능력이 다하면 사라져, 다른 권력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나디아 H. 미뉴어트 (밀서를 읽는 왕자를 확인하고) 저는 지금의 용은 능력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용이 직책이나 능력을 의미한다면, 지금의 용이 수명을 다하고 사라질 때에 용의 자리에 오를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전에 전해드렸던 그림에 대해서도 기억하시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그렇다면 이제는 지난 밤에 대한 답을 주셔야 할 때입니다. 기다린 만큼 좋은 답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분명 세상은 변혁의 때를 맞이했지요.

이야기꾼 왕자는 이 답변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신뢰를 확인 하기 위한 과정이며, 공작과의 신뢰 관계는 곧 왕과 척을 지는 일.
왕자는 답변에 이러한 점을 유의하여 신중히 말을 골라야 할 것입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실로 그러합니다. 남은 시간은 무척이나 짧고, 변화는 폭풍처럼 거세고 빠르니까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불안하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일 겁니다. 제 손으로 이룩하지 못한 권력은 필시 어느 순간 꺾일 것이며, 나의 방향이 공께서 의도하시는 방향과 다르다면 그때마다 저는 끊임없이 외풍에 시달리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종국에는 저 역시 폐하와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나…….
……미뉴어트 공, 아마도 겨울이 끝난 후의 저는 인간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이 역시도 그대가 저보다 먼저 알고 계신 정보였겠지요.
그렇다면 공께 묻습니다. 그대는 제가 인간이 아니게 되어도 저를 신뢰하실 겁니까?

나디아 H. 미뉴어트 제레미아 왕자, 왕자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저는 어쩌면 그 일에 대하여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왕자께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은 그럼에도 상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왕자께서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제게 의문을 품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미뉴어트 공.
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가 나디아 H. 미뉴어트의 제안대로 상호 신뢰를 맹세하는 바, 서로는 서로에게 굳건한 우군이 되기를 서약합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그 서약을 확인. 나디아 H. 미뉴어트의 이름을 걸고 이 서약을 이행할 것을 맹세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미뉴어트 공, 그 서약의 첫째로 드릴 말이 있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말씀하시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저를 믿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디아 H. 미뉴어트 …그렇군요. 변화의 때가 가깝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것이 당장 내일이 될 정도로 가까울 줄은 예상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였다 하여 이름을 건 맹세를 어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저를 적대하는 이들로부터 저의 행적을 지켜주십시오.
길고 긴 겨울을 맺고, 영원한 새 봄을 이 땅에 퍼뜨리기 위한 방법을, 시도하고자 하니.

나디아 H. 미뉴어트 그렇다면, 왕자님을 감시할 군인들 중에 믿을 만한 이를 시켜 잠복을 명해두겠습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잠깐의 시간을 벌 틈은 만들어드릴 수 있을 겁니다. 위험을 피치 못할 때까지 기다리라 명할 테니 때가 오면 키워드를 외치는 것으로 하시지요.
흠… 키워드는… 씨앗. 씨앗이 좋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좋습니다. 그대의 믿음에 답하여 반드시 [씨앗]이, 생동하는 봄과 함께 움트도록 하겠습니다.

나디아 H. 미뉴어트 우리의 앞길에 따스한 태양이 비추기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우리의 앞길에 따스한 태양이 비추기를.

나디아 H. 미뉴어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준비할 것이 많으실 듯 하니 이만 돌아가보시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예. 공께서도 평안한 밤 보내시길.

이야기꾼 공작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면, 왕궁으로 향하는 마차와 군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돌아가자. 오늘은 정리해야 할 것이 많구나…….

이야기꾼 살롱을 뒤로 하고, 왕자는 처소로 돌아갑니다.
처소로 돌아와 소파에 앉으면 군인이 다과와 어떤 스승을 부르길 원하는지 묻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오늘은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지. 섀넌 님을 불러주게.

이야기꾼 …….
군인이 물러가고 잠시 뒤, 학자가 언짢은 표정으로 들어와 가볍게 고개를 숙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찌 살아서 보는군요, 섀넌.

섀넌 A. 벨허스터 그러게나 말이야. 콱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쯧.

이야기꾼 방 안으로 들어오는 학자의 뒤로 학생들이 연구자료를 가득 들고 따라오다 문틀에 걸려 그만 엎어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너무 그러지 마시죠. 새넌, 당신의 방법을 무턱대고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섀넌 A. 벨허스터 야, 야, 됐으니까 이제 꺼져. (학생을 발로 툭 차더니 내보낸다.)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네가 날 비난한다고 하여 내가 겁을 잔뜩 먹고 멈추기나 할 것 같은가?

섀넌 A. 벨허스터 됐으니까 용건만 짧게 말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럴 위인이었으면 진작 그런 방식의 연구는 그만뒀겠죠.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짧게 웃고는) ……왜 저를 죽일 생각을 하셨습니까? 당신이 그토록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저를 죽이면, 저를 대신할 사람은 있었고요?

섀넌 A. 벨허스터 천하에 널린 것이 사람이다. 자신이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생각은 손가락 빨 적에 이미 그만 두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글쎄요, 제가 정말로 그냥 후계자였으면 겁을 좀 먹기는 했을 것 같습니다만,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섀넌, 당신이라면 절 대체할 사람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섀넌 A. 벨허스터 허. 어처구니가 없군.
신전의 이들과는 이미 관계가 깊다지, 왕자? 세계의 순리를 받아들여야 하니 뭐니 하면서 인류의 발전과 전진에는 눈꼽 만큼의 관심도 없는 것들. 지식의 걸림돌 같은 버러지들.
멸망이 오면 멸망을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멍청한 자가 다음 시대의 지도자라면 나는 그러한 시대를 살아갈 생각이 없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저런, ……. 섀넌. 그대는 신전보다는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하리라 생각하여 징표로써 언약을 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이리 토라질 줄은 진정 몰랐습니다. (유쾌하게 웃고는)
나는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앞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대의 방법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고요. 그것이 단지 당신을 어르고 달래려 뱉는 사탕발림이라 생각하였단 말입니까?

섀넌 A. 벨허스터 유연한 사고? 그것은 그들이 나의 학생을 잡아다 땔감으로 써먹기 전에나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좋은 스승은 아니나 나의 학생을 해하는 자들에게 마저 이해심을 내어줄 정도의 성인은 아니다.
나는 네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정말로 내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섀넌.
나는 진심으로 그들의 행동을 멈추고자 했다.
그 누구도!
그 누구도 타인을 심판할 순 없어!
도대체 한낱 인간이 무어가 그리 뛰어나고 무어가 그리 잘나 타인을 제 입맛대로 심판하여 태워 죽인단 말인가!
하나같이 제 믿음과 아집에 매몰되어 주변을 둘러볼 줄 모르는 외눈박이들이지!
복수에 눈이 멀어 서로를 잡아 먹고, 삼키고, 그 뼛조각을 목에 두르고서 춤을 추고…….
그것들이 도대체 바깥의 야만인과 다를 것이 무언가!
그렇기에 이 세상은 변화해야 해. 그대도 알고 있지 않나?
그러나 변화는 어느 한쪽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다.
천칭이 기울어진 곳에서는 그 어떤 정의도 솟을 수 없어.
순리가 있다면 그것을 부수는 지성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진리가 있다면 그것을 가장 낮고 추운 곳까지 설파하는 자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신전의 것들이 미워 견딜 수 없나? 그래서 여전히 내가 넋 놓고서 멍청하게 테라리움 속에서 번식이나 반복하는 미생물 따위로 보이나?
그대는 이해할 줄 알았어. 꽉 닫힌 신전에 먼저 달콤한 말을 주어 구슬리면, 그 드높은 지성으로 나의 뜻을 이해하고 함께해줄 것이라 믿었는데. 내가 그대를 과대평가 하고 있었나보군.
복수에 미치면 가장 먼저 흐려지는 것이 이성과 지성임은, 그대가 더 잘 알지 않은가!

섀넌 A. 벨허스터 …아무래도 자네는 내 지성에 대한 말만을 들었을 뿐 내 성품에 대한 말은 조금도 들어보지 못한 듯 하군. 들어본 적이 없는가? 벨허스터 교수에게 배울 것은 태산보다 거대하지만, 인품은 조금도 배울 수 없다고.
…좋은 학생이었어.
…성적은 볼품없었지만, 알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대단했지.
…스승을 잘못 두어 도량이 좁고 심술궂은 것이 조금은 단점이었겠지.
……내 탓이야. 그렇게 죽을 녀석이 아니었는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너무 자책하지 말게.
이 겨울이 계속된다면 광신도들은 아마도 계속해서 도서관의 학생들을 공격하려 들겠지. ……그래서 나는 그 고리를 끊으려 하네.
분명 모두가 바라는 바를 충족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걸세. 우리의 봄과 여름, 가을이 그러했듯.
그러니 섀넌, 그대에게 부탁을 하지.

섀넌 A. 벨허스터 ……들어보겠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대는 나아가는 자다. 지성의 첨탑 가장 위에서 그 누구도 탐구하지 못하였던 것들을 찾아내어 참과 거짓을 가리고 진리를 밝히는 자. 앞으로의 왕국에는 그대의 힘이 반드시 필요해. …그러니…….
……내일, 나를 도와줄 수 있겠나.

섀넌 A. 벨허스터 …왕자, 다가오는 시대에, 바뀌어 갈 왕국에 지성의 첨탑을 세우고 지식과 지혜를 구하는 일은 누구보다도 내가, 무엇보다도 원하였던 일이나, 너를 믿을 길이 어디에도 없다. 너는 맹세와 선언을 남발하며 입술에 침만 바르면 할 수 있는 거짓을 일삼는 자다. 네가 진심으로 신전의 뜻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알겠으나, 같은 이유로 나는 너를 신뢰할 수 없다.

섀넌 A. 벨허스터 신전에서 신관과 그러한 대화를 나누며 선언할 때에, 그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는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하지 않았을 리가. 그래, 그대가 무턱대고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던 내가 너무 안일했군.

섀넌 A. 벨허스터 네가 거짓을 일삼는 자이든, 선택에 신중하지 않은 자이든… 어느 쪽도 믿을만한 자는 되지 못한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 믿지 않아도 좋다. 다만 한 가지만 약속해다오. 나는 내일, 겨울을 끝낼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어쩌면 기존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
그저, 그대는, …….
나를 지켜보면 된다.
아니, 오히려 그 방식이 기존과 다르면, 그것이 그대가 바라는 바인가?

섀넌 A. 벨허스터 …되었다.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고 국가의 보장을 받아야만 연구가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숨을 잠시 깊게 들이쉬며 고른다.) …오늘은 그저 이것을 전하러 왔다. (학생이 가져왔던 연구자료를 건넨다.)

이야기꾼 자료를 받아들면 그것은 속기 필기체로 정신 없이 쓰인 문서들과 복잡한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건…….

이야기꾼 [교육 판정] (극단적 이상의 판정이 나와야 성공)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교육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5 > 45 > 보통 성공

섀넌 A. 벨허스터 …눈치를 보니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건네주었던 것을 다시 잡아채고선 내용을 읽어준다.)

이야기꾼 학자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12. 용의 광기]

이야기꾼 용은 천년 간 왕국에 일어나는 대소사에 관해 예언을 해왔는데, 겨울이 도래하고 나서는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말 뿐 예언을 하지 않고, 정신 나간 듯 광기 어린 문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 자료들은 용의 예언 중 두서없이 쓰인 문장에서 띄엄띄엄 드러난 단어를 바탕으로, 용이 무엇 때문에 충격을 받았는지를 추론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두서없는 내용은 거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은유하거나, 비유한 것이다. 아마 용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걸 예견하고 있고 두려워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죽음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며 불안해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하다. 아래에 그나마 온전하여 문장 전체를 명확히 해석할 수 있는 구문이.. (중략)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순환하지만, 생은 죽음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사망한 순간 대부분 이번 생을 망각한다. 때문에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 것이 아닌, 과거의 흔적을 추론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불명확한 단서를 쫓고 낯선 개념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갑작스럽다. 그렇기에 언젠가 이 순환을 멈추고자, 문 꼬리를 놓을 때가 올 것만 같다.”]

섀넌 A. 벨허스터 자료에 의하면 용은 아무래도 겨울이 오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높은 확률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겠지. 너는 용과 함께 지난 며칠을 보냈으니 이에 대해서는 짐작하는 바가 있을 지도 모르겠군.
뭐, 되었다. 그저 네 짐작에 확신을 더해주는 자료에 불과하니.
…돌아가겠다.

섀넌 A. 벨허스터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돌아가는가.

섀넌 A. 벨허스터 아, 젠장. 대체 그 새로운 방법이란 것이 무엇인지 들어나보자. 궁금해서 못 참겠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하하! 좀 앉겠나? (웃으면서 소파를 가리킨다)

섀넌 A. 벨허스터 제기랄. 하여간 분위기를 잡으면 하루를 못 가네. (풀썩 소파에 기대어 앉는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며칠 간 이것저것 조사하고 들으며 찾은 것들이 많다네. 그대가 건네준 자료대로, 아마 과거의 흔적들을 더듬는 행동이었겠지.
이 왕국의 성벽 바깥에 있다는 야만인들, 그리고 그들의 신…….
여러 곳에서 [라그나로크]라는 이름을 들었고, 제단이 바깥에 있음을 알았으며, 나와 용이 서로 얽힌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됐지.

섀넌 A. 벨허스터 핵심만 요약해서 말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평소와 같은 방법으로, 그래, 바깥의 이들이 바라는 대로 용을 '죽이면' ……. 아마도 나는 새로운 용이 될 테고, 지금의 용은 다시금 천 년의 시간을 건너 겨울이 올 때에 나타날 테야.
그래서 나는 도박을 해보기로 했다네.
'새로운 세계'를……. 이 왕국의 신이 용이라면, 용은 들어줄 수 없는 일을 해줄 다른 신을 찾아야지.
내일, 용과 함께 제단이 있는 곳까지 가볼 예정이네.
뭐,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르겠다만. 정말 그곳에 아무것도 없고, 라그나로크니 뭐니 하는 게 허황된 신화일 뿐이라면 말이지.
하지만 가만히 앉아 무력하게 운명을 기다리는 것은, 그대의 스타일이 아니지 않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말일세.

섀넌 A. 벨허스터 …그러니까, 네 말은 즉…… 용의 자리에 다른 신을 앉혀두겠다는 말인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글쎄. 그렇게 되나?
어디서 읽었는지도 이젠 기억나지 않긴 한데, …….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에게 의지하는 방법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더군.
그 신이 용의 역할을 대신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네.
그러나 이 조그마한 왕국에 똑같은 천 년의 순환을 가져올 존재라면 저토록 강대한 이들의 신으로 추앙받지도 않겠지.

섀넌 A. 벨허스터 …이봐.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어떠한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네. 신의 존재는 인류와 지성의 걸림돌이 되어 신이란 것의 보호 아래서 안주하는 인간들이 서서히 멍청하고 아둔해지는 것 밖에 더 되지 않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뭐, 그건 가봐야 아는 것 아니겠어?
그 의지라는 게 진정으로 신을 새로 받는다는 말인지, 아니면 신의 피로 겨울을 녹인다는 의미인지는, …….
아무도 모르잖나.
원래 신탁이니 신화니 하는 것들은 쓸데없이 비유나 상징이 많은 법이니.

섀넌 A. 벨허스터 도박을 할 거라면 다른 존재의 가능성에 걸지 말고 자신의 가능성에 걸어라. 째째하게 본전만 찾고 돌아갈 생각은 접고 더 큰 것을 따오란 말이야.
너는, 신을 새로 받는다는 뜻일 경우에 정말로 신을 새로 받을 생각인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협상을 좀 해볼 수는 있지 않겠나? 나를 죽이려던 그대가 결국 여기 앉은 것처럼 말이야.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라도 물고 늘어져보는 것 뿐이네.
가만히 있으면 다음 세대도 용의 신앙을 가진 채로 천 년을 이어진다. 심지어는 나를 신앙의 대상으로 섬겨야 할 텐데, 그대는 그럴 비위가 있어? …그보다는 불확실한 도박수라도 노려보는 것이 낫지.

섀넌 A. 벨허스터 네가 도박을 하러 가는 것이야 아무래도 상관 없어. 가능성에 걸고 넘어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힘이니까. 그러나 네가 새로운 신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군. 다음 세대가 용의 신앙을 가지고 천 년을 반복하든 새로운 신앙을 가지고 천 년을 반복하든 내게는 그것이 그것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가는 쪽이 신이 없는 세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절반의 가능성이 있는데도?

섀넌 A. 벨허스터 아니 말귀를 못 알아 쳐먹나!? 너는 말하는 법만 배우고 듣고 이해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건가? 그 절반의 가능성만 가지고 가서 나머지 절반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그딴 것도 이해를 못해! 어디가서 내게 배웠단 말은 꺼내지도 말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하하! 그대는 정말 누님 눈에 들지 않게 조심해야겠군. 누님이 그대 같은 타입을 참 좋아하거든.
그래, 그렇게 하지.
나머지 절반은 쳐다도 보지 않겠다.

섀넌 A. 벨허스터 하여간 조언을 해서 눈 앞에 떠다 줘도 받아 먹지를 못해. 물에 빠져도 입이 둥둥 떠오를 테니 수영을 배울 필요는 없겠다 싶더라니 머리가 돌대가리라서 소용이 없겠어. 너는 필시 봄이 오면 수영부터 배워둬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 그래. 반드시 그렇게 하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섀넌 A. 벨허스터 후…. (흥분을 가라앉히며 심호흡한다.)

섀넌 A. 벨허스터 …그 말만은 믿어보겠다. 그 도박, 나도 함께 걸어보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후후, 좋다.
내일, 성벽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될 테니 분명… 내가 용을 빼돌린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 아니, 반드시 그럴 거다. 용의 탑이라는 것은 말이 좋아 보호지, 그를 감시하기 위한 감옥이지 않았나.
들키지 않고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만…….

섀넌 A. 벨허스터 뭐, 내가 도울 것은 없겠군. 어차피 용과 함께 나가는 것 아닌가? 내가 아무리 지성이 드높다지만 천 년을 쌓은 지성과 비할 바는 아니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뭐, 그래도 도와줄 부분은 있지.
도서관의 학생들은 연구를 위해 종종 밖을 나간다지.
우리가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나?

섀넌 A. 벨허스터 흠. 뭐, 학생처럼 보이는 방법이라도 전수해주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좋은데? (키득거린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뭐, 어떻게든 나갈 수 있겠지. 나가는 것까진 알아서 해보겠다.

섀넌 A. 벨허스터 옛다. (휙, 무언가를 던진다. 받아들면 벨허스터의 인장이 새겨진 직인이다.) 대충 구질구질하게 굴면서 샘플 안 구해오면 교수님께 뒤진다고 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꽤 감동 받은 표정을 짓는다)
고맙네, 섀넌.

섀넌 A. 벨허스터 …미리 말해두겠는데 신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것도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다면 가만두지 않아. 새로운 시대고 봄이고 나발이고 너부터 찾아서 족칠 거다. 네 말대로라면 그 시대엔 네가 죽든 말든 상관 없을 테니까.
뭐, 얼음 녹은 호수에 빠뜨리면 머리부터 가라앉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뭐, 그대 약점을 손에 쥔 채로 만난 마당에 그대에게 사탕발림을 해서 뭣하나. 나는… 진심으로 새로운 걸 탐구하던 그대를 꽤 좋아했어. ……그대가 바라는 시대를 가져오지. 고맙네.

섀넌 A. 벨허스터 …그래. 이제 진짜 간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한다.)

섀넌 A. 벨허스터 아. 그렇지 참.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응?

섀넌 A. 벨허스터 받아. (아까처럼 휙, 무언가를 던진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고맙네. 근데 이건 뭔가?

섀넌 A. 벨허스터 뭐, 신뢰가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누구 주라던데 그냥 너 준다. 대충 좋은 의미가 담긴 것 같던데…….
…그런 게 있다면 도박하러 가는 놈에게 주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대와는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분명 좋은 친구가 됐을 것 같거든. 고맙네. 잘 챙겨두지.

섀넌 A. 벨허스터 이제 진짜 간다~ 너도 얼른 쳐자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 잘 자라. 내 꿈 꾸고. (부러 장난스레 키득거리며 말한다)

섀넌 A. 벨허스터 옘병하네. 저거 입 좀 못 꼬매나.

이야기꾼 학자는 구시렁거리며 처소를 나섭니다.

이야기꾼 학자가 던진 것을 살펴보면 그것은 이제는 익숙한 금속 조각입니다.
그것은 눈결정 모양이 섬세하게 양각된 모양으로, 봄의 조각 옆, 그리고 가을의 조각 윗 부분에 딱 맞게 들어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걸로 다 모은 건가? … 뭐에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험은 많을수록 좋지.

이야기꾼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내일을 대비한다면 왕자님도 슬슬 잠에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자자.

이야기꾼 자고 일어나면 내일 아침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용을 죽음을 언급했던 사람의 얼굴도, 용의 얼굴도,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도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다 문득 잠에 듭니다.
눈을 뜨면 시간은 아침입니다.

이야기꾼 문 밖은 바람소리 말고는 들리지 않지만, 너머에서 긴장 된 인기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야기꾼 곧 이어 군인들이 방문을 두드립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들어오게.

군인 채비를 마치고 내려오시면 됩니다. 마차를 준비해두었습니다. ……2왕자님의 장례에 대해서는 겨울의 일이 끝나야 그 절차와 예식에 대해 의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런가. (어딘가 씁쓸한 낯으로 잠시 창밖을 보다가) 그래. 그러면 형님을 위해서라도 어서 이 일을 끝내야겠구나.

군인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끝을 낼 때다.
……아서……. (그리운 연인의 이름을 부르는, 낮고 간지러운 목소리로 한숨처럼 그 이름을 삼키고는)
이 긴 이야기를… 끝낼 때야.
(채비를 마치고 마차에 올라탄다)

이야기꾼 마차에 타면, 최근 5일간 겪었던 일이 머리를 스쳐지나갑니다.
다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협력했고, 다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용을 죽이라고, 혹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어떤가요?
눈과 바람이 그치는 것, 왕국을 물려 받는것, 세력가들과 손 잡거나, 신앙을 갖거나, 지식을 얻는다거나…….
이런 저런 생각이 스치는 와중 마차는 탑으로 가는 문에 도착합니다.
문 앞에는 네 명의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고생이 많군.

군인 들어가 보시지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잠시 자리를 물러줄 수 있겠나? 용의 유언을 듣고 새기는 것은 단 둘 뿐인 곳에서 했으면 좋겠어.

군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왕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뜨지 말라 하셨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폐하께서…….
…….
그래, ……. 그러나 천 년의 긴 숨을 걷는 순간에마저 이토록 숨 막히는 곳에서라니…….
조금, ……안타깝지 않나.

군인 안타깝기는 하여도… 제게는 겨울로 인해 얼어 죽는 이들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 겨울을 끝내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려는 것 아닌가.

군인 ……어느 쪽이든 명령을 어길 수는….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되었다. 개의치 마라. …다만……. (쓸쓸한 낯으로 잠시 군인들을 바라본다) …그를 사랑했던 자로서 진심을 담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을 뿐이네. 내게는… 이제는 영영 보지 못할 사랑이지 않나.

군인 …알겠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다가 이를 들키면 크게 문초를 당할 테니 되도록 빨리 일을 마치고 나와주십시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고맙네.
(탑의 안으로 들어선다)

이야기꾼 탑으로 올라갈수록 냉기가 온 몸을 감싸옵니다.
두터운 털 옷도 죽음의 한기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용의 방 문을 열면, 이불을 두른 채 책을 하나씩 분류하고 있는 용을 볼 수 있습니다.
엉망진창으로 쌓여있던 책들은 거의 대부분이 차례차례 탑의 벽면을 따라 꽂혀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아서 아, 제이. 슬슬 올 때라고 생각했네.
그래, 준비는 되었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네. (웃으며 당신을 올려다본다)

아서 흐음, 그래. 고민을 전부 떨친 듯한 표정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조금은 섭섭하다면 웃기려나. (당신을 벽난로 앞으로 데려간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섭섭한가요? ……그런 모습에 기뻐하면 너무 이기적이려나. (당신이 이끄는대로 따라 걸으며, 나긋하게 웃는다)

아서 제이, 이미 너도 알만한 것은 모두 알고 있겠지만… 전해야 할 말은 모두 전하는 것이 옳겠지. 그대가 준비가 끝났다니, 내가 아는 것을 모두 말해도 좋겠다 싶기도 하고…….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가 진 짐의 무게를 넘겨 받을 때로군요.

아서 음,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진 짐이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네요, 내 사랑.

아서 겨울은 용이 죽어야 끝나는 것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겠지. 죽음이라는 거창한 말을 쓰긴 했지만 그건 그저 이번 세대의 용이 쉬러 가는 것에 불과해. 그러니까, 내가 죽는다니 뭐니 했지만… 내게는 쉬러가는 것과 같아. 그를 위해 북으로부터 불어오는 겨울을 막는 용의 직책을 떠넘겨야만 한다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못마땅해도 어쩌겠나, 나도 그대도 세계를 버리면서까지 영원한 휴식을 가질 만큼 겨울의 혹한을 닮지 못한 것을.

이야기꾼 용은 그리 말하며 벽난로 위에 있는 그림에 손바닥을 가져다댑니다.
그러면 벽난로 위에 있던 [용 한 마리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던 원 모양]은, [용 두 마리가 서로 상대방의 꼬리를 물고 원이 된 모양]이 됩니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14. 서로의 꼬리를 문 용]

이야기꾼 재가 씻겨져 나가면, 벽난로에는 두 마리의 용이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본래의 그림이 나타납니다.
그래요, 왕자님도 짐작했다시피 용은 애초부터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아서 …우리는 저주를 받아 천 년의 시간을 두고 죽고 다시 태어나길 반복하며 왕국을 지켜오고 있지. 하지만 그 오랜 시간과 기억 속에서 미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 그러기에 우리는 죽음으로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게 된다…….
그것이 다시 봄을 맞고, 직책을 계승하고, 계약을 지키며, 용의 꼬리를 이어가는 일이야.
나는 지난 며칠 동안 그대가 스스로 이 사실을 알아내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다렸어. 겨울에 대해 말하려면 믿을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니 뭐니 말했지만, 나는 애초부터 그대를 믿었으니 다 헛소리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 저주를 풀 방법은 아직도 찾지 못한 거죠? 그래서 아서가 자신의 죽음을 이리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하고 있는 거잖아요.

아서 이 저주를 건 것은 다름 아닌 태초의 우리 자신이야. 그 저주를 건 것은 우리였지만, 환생을 거듭하며 기억을 잃은 지금의 나로서는 까마득한 수준의 고대 마법이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군요. 그러면 우리의 힘으로는 이 저주를 풀 수가 없다는 이야기겠네요.

아서 …안타깝게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렇다면, 이 바깥에는 무엇이 있어요? 바깥에 있는 제단의 이야기를 더 해줘요.

아서 바깥에는 서리거인과 설원의 악귀들이 돌아다니지. 북쪽에 있는 제단에는 완성된 시계를 끼우는 홈이 있어. 그곳에 간다면, 가장 차가운 신과 만나게 되겠지……. 그러나, 만에 하나 가야만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둘이 가야 할 거야. 제단을 작동시키는 건 두 명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완성된 시계……. 시계를 꽂아야 가장 차가운 신을 만나게 되는 거군요. 신을 만나고 나면 어떻게 되나요? …우리는 죽게 되나요? 아니면, 그게 아서가 말했던 희박하지만 존재하는 또다른 희망인가요?

아서 높은 확률로 죽게 되겠지. 나의 지나가버린, 유실되어버린 무수한 시간들처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당신도 시도해본 일이로군요.
그러나 우리가 아직 살아서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아서 나의 용을 살리기 위해, 수없이 많이. 그러나 그 무수한 시도들은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나, 당신이 했던 그 무수한 시도들을 시도해볼까 해요. (짧게 웃으며 당신의 손을 맞잡고 고개를 댄다)

아서 ……. 그래. 어쩐지 표정이 밝더라니.
나의 시도는 그대를, 나의 용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 시도가 매번 실패하였고 그것은 결국 나의 용을 그 만큼 더 죽이게 되는 일에 불과했어.
그대가 나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당신은 내가 당신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질 거란 걸 알았죠?
광장에 이는 불꽃처럼 생동하는 붉은 머리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녹음을 떠올리게 하는 녹빛 눈동자. 상냥하고 다정한 시선과 얼어붙은 심장에서 쏟아지는 따스함.
그것들을 보고도, 다시 당신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 리가 없죠.
아서, 나는 최선을 다해볼 거예요.
그 시도들이 나를 괴롭게 해도 좋아요. 당신이 노력했던 것처럼, 나도 노력하려고요.

아서 …그래.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해 본 바 있으나, 그대에게는 그런 적이 없지. 그대에게도 최선을 다 할 기회를 줘야 마땅해.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제, 입 맞춰 줘요, 아서.

아서 저런, 안타깝게도 그대가 최선을 다 할 생각인 듯 하니 그것은 뒤로 미루어야 할 것 같은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런, 완벽한 동기부여인데요?
좋아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줘요.
아서, 당신이 어떻게 시도했는지를.

아서 그 전에, 제이. 내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가 사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 문제가 생긴다면 나는 나보다도 그대를 살릴 거야. 나의 최선에서 나의 용이 그러했던 것처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래요. 그러면 나는 또 당신을 살리러 달려갈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의 숨은 서로 이어져 있는 게 되겠어요.

아서 그래. 그러니, 나의 시도에 대해 말하기 전에… 꼬리를 잇는 일에 대해서 마저 전하지.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15. 겨울을 끝내는 방법]
사악한 마법을 막고 있는 자와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접촉 한 뒤, ‘잘자. 눈을 뜨면 다시 만나.’ 라고 인사한다. 이 의식을 통해 상대방이 가진 보호 주문을 이어받을 수 있다. 다만 보호 주문을 이어받는 것은 끔찍한 지식을 흘려받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평범하고 정신이 약한 사람들은 이 기운을 견디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번성하는 존재이니, 절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보호 주문을 이어받은 자는 다음 세대의 ‘용’이 되고, 천년간 삶을 유지하며 영혼을 묶은 자가 되돌아오길 기다려야 한다. 저주는 영원히 깨지지 않은 채…

아서 나의 용을 껴안았을 때, 그 때가 나의 첫 키스였으니 나 역시도 그대에게 그러한 방식으로 입을 맞춰줄까하였지. 그러나 그대는 이 방법을 잠시 미뤄두겠다 하였으니, 지금은 이런 것이 있다는 것만 알아두어도 좋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우와아……. (왠지 부끄러워져서 새빨개진다)

아서 그대가 기회를 찾아 시도를 해보고 싶다면… 숲으로 가야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좋아요, 아서, 그러면, …….
떠나요. 지금 당장. 시간이 없어요!

이야기꾼 그렇게, 왕자님은 용과 함께 탑을 떠나 미지의 숲 속으로 도주하는 길에 오릅니다.

이야기꾼 사전에 미리 군인들을 물려둔 덕분일까요? 둘은 별다른 제지 없이 밖으로 나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죠?

아서 호숫가의 게이트로 가야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어젯밤 섀넌에게 좋은 걸 받았답니다. 쉽게 지나갈 수 있을 거예요.
호숫가로 가요, 어서. (웃으며 당신의 손을 잡는다)

이야기꾼 호숫가 근처에 있는 게이트는 경비병을 통해 지나갈 수 있습니다.
게이트에는 경비병들이 둘이 서로 떠들며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언제든 위급할 때는 문을 닫을 수 있는 위치입니다.

경비병1 요새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죽겠어.

경비병2 아 그 희미한 비명소리 말이지?

경비병1 비명인지 괴성인지… 하여튼 야만인 놈들이란… 이래서 성벽 경비랑 시내 경비를 교대하는구나.

경비병2 그런데 그 괴성… 근래 성도 북쪽에서 자주 들리지 않아?

경비병1 말세다 말세.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성도 북쪽……?)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슬쩍 몸을 낮추며 어제 받은 인장을 주머니에서 꼭 쥐고 아서와 함께 경비병에게 다가간다)
……저어, 경비병님! 고생이 많으세요. 헤헤…….

경비병1 음? 누구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저는 저기 도서관에서 섀넌 님 밑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요…….
(슬쩍 가까이에서 귓속말을 하듯 목소리를 낮춰 말을 잇는다) 글쎄, 새로운 연구 자료가 필요하다면서 오늘 아침에 급하게 나갔다 오라고 하시지 뭐예요…….
경비병 분들께 이걸 보여드리면 된다고 하시던데…….
(섀넌에게 받은 직인을 몰래 경비병에게 보여준다)

경비병1 아, 벨허스터님이 어제 새벽에 급히 전언 하셨던 그건가? 생각보다 좀 늦었군?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무래도 밖에 나가는 일이다 보니 혼자는 너무 위험해서……. 같이 나가줄 사람을 구하느라요.

경비병1 후딱 다녀와라. 너무 깊이 들어가면 안되는 건 알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이, 당연하죠! 헤헤, 감사합니다, 경비병님!

아서 제이, 그대는 왕자가 아니었더라면 분명 연극을 했어도 됐을 거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랬을지도요. 어라, 우리 둘이서 극단을 하는 것도 제법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키득거리며 함께 성 바깥으로 향한다)

아서 음, 그런가. 그러나 매번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극단에는 조금 질려서 말이지…. (너스레를 떨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여기를 나와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이야기꾼 이곳은 왕도를 둘러싸고 있는 방대한 숲입니다.
왕자님과 용이 지나온 높고 굳건한 성벽을 경계로 타락한 야만인들이 산다고 하며, 실제로 종종 숲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무언가에 배를 뚫려 죽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숲 바깥으로 나오니 사방에 있는 자작나무와, 전나무, 그리고 나무들에 달린 고드름에 눈이 갑니다.
세상은 희거나 검고, 그런 흑백의 얼룩으로 가득한 지평선 저 너머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깊은 숲 너머에서는 연신 어떤 소리가 들려오고, 발치에는 나무 뿌리가 엉켜 자칫하면 넘어질 듯 합니다.
어쩐지 왕도와 멀어질수록 점점 더 추워집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 생각보다 더 으스스하네요. (목소리를 낮춰 장난스레 이야기한다)

아서 이제라도 돌아가고 싶어졌는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럴 리가요. 그럴 거였으면 어제 미뉴어트 공이나 섀넌한테 그렇게 입을 나불대지도 않았어요.
저기서 움직이는 것들이 분명 성 안의 사람들이 야만인이라고 부르던 것들이겠죠……. 들키지 말아야겠어요. 몸 상태가 안 좋은 아서한테 모든 걸 맡길 순 없으니…….
……우리는 제단이 있는 쪽으로 가야 해요. 아버님의 방에서 봤던 지도에는 분명 그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북쪽이었지. …그러고보니 경비병들이 북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많이 들린다고 했는데. 그쪽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아서 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북쪽을 향해 가야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가요, 어서. (북쪽으로의 걸음을 재촉하며 당신의 손을 꽉 쥔다)

이야기꾼 원시에 가까운 자연림, 모든 나무가 수천년간 생장했을 만큼 높다랗게 솟아있어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숲의 보여주는 참혹함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나아갑니다. 더 깊은 곳을 향할수록 쏟아지는 눈발이 거세집니다.
눈보라가 강해집니다.
하얀 안개가 눈 앞을 뒤덮어,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윤곽이 흐릿하고, 바람이 강해 걷기가 힘듭니다.
눈은 아주 두껍게 쌓여, 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눈보라 너머에서 무언가가 세상을 저주하는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움찔 몸을 떨며 당신의 팔을 거의 껴안다시피 붙잡는다)

이야기꾼 그 목소리는 하늘 위에서 들려와 마치 천둥 같은 자연 재해처럼 들리고, 영혼을 긁어내는 듯한 악의와 괴로움이 섞여 있습니다.
또한 강력한 추위가 분노처럼 앞에서부터 몰아쳐옵니다.
[이성 판정] (1/1d6)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55 이성체크 (1D100<=5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62 > 62 > 실패
1d6 (1D6) > 2

아서 cc<=50 이성체크 (1D100<=5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62 > 62 > 실패
1d6 (1D6) > 3

system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SAN : 55 → 48

아서 …오랜만에 들으니 참 소름끼치는 소리야.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으, ……. 정말로 저것을… 생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요?

아서 살아있는 것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러지 않겠나.
…그래도 계속 북쪽으로 갈 생각인 거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나는 당신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요. 나아갈 거예요.

아서 ……그래.

이야기꾼 왕자님과 용은 북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습니다.
어느덧 눈보라가 잠잠해지고 눈 앞에 녹색과 푸른색의 커튼처럼 일렁이는 빛이 보입니다.

아서 오로라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아서 제이, 그대가 보는 것은 처음이겠지. 그래도 제법 낭만이 있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걸었는데 벌써 밤이 되었을 줄이야.

이야기꾼 별들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맑은 하늘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고, 생물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게요. 아서와 이런 풍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낭만적이라 좋아요. 비록 상황은 거칠고 험난하지만서도. (느릿하게 웃으며 당신의 팔에 잠시 기대었다가 떨어져, 당신과 두 손을 맞잡은 채로 걷는다)

이야기꾼 북쪽 숲의 중앙에는 거대한 둔덕이 보입니다. 눈으로 쌓아 올린 듯한 이것은 크기가 매우 거대해, 마치 작은 언덕이나 동산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와……. 눈이 이만큼 쌓인 걸까요?

아서 이곳은 단 한 번도 봄이었던 적이 없을 테니까. 이 정도의 눈이 쌓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러네요. …영원한 겨울이라는 건 이런 거군요. 도대체 얼마의 시간 동안 쌓여온 걸까요?
우리가 계속해서 생과 죽음을 반복하기 전부터? 아니면, 시작한 후부터? …거기까진 잘 모르겠네요.

아서 나 역시 거기까지는 잘 모르는 일이야. 이미 몇 번의 망각을 거쳤으니….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세월이란 제법… 무서운 구석이 있네요. 망각하지 않았다면 분명 미쳐버렸겠죠, 이런 시간이라면…….

아서 그래. 틀림없이 그랬겠지. 반복되는 시간과, 끝없는 추위는 정신을 나약하게 만드니….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수도 없이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을 거라는 게 제법 낭만적이기도 하고요. (장난스레 웃는다)

아서 눈이 내려서 그런가, 별빛이 쏟아져서 그런가… 그도 아니면 어느 쪽이든 끝이 다가와서 그런가, 상당히 낭만적인 사람이 되었구나, 그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저 원래 낭만적인 사람인데요, 아서가 몰라서 그렇지. …천 년 전엔 아니었어요? 아서가 기억하는 저는 어떤 사람, 아니, 용이었는데요?

아서 …지금의 그대와 다르지 않았어. 그래, 그대의 말대로 태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는 변화 속에서도 우리 둘만은 그대로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낭만적인 것일지도 모르겠군. 비극 속에서도 낭만은 피는 법이니.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그럼요. 그리고 전 어려서부터 그 낭만이 가장 예쁜 꽃으로 피어나는 이야길 좋아했어요. 다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종종 하기는 했지만, ……. 그래도요.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서와 함께면, 그런 꿈같은 얘기도 함께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아서 그래. 나의 취향은 비극 없이도 피어나는 낭만이지만, 나와 그대가 이미 비극의 무대 위에 올랐으니 벗어날 생각이라도 해보아야겠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함께요. 꼭 함께 봄을 맞아요, 우리. 신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숭배 받거나 하는 건, 지쳤잖아요. 그냥 둘이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함께 살까요. 동물을 기르고 나무를 길러서, 그냥 그렇게요.

아서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 무대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대의 말대로 하자. 달콤한 희망이구나. …그대의 말대로 나는 지쳤어. 용이 된다는 것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 아니야. 그저 용의 직책을 가진 인간이 될 뿐이지. 천 년은 한 명의 인간에겐 너무 긴 시간이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제이, 그대 만큼은 살려낼 테니까. 그러니 지금은 그저 그대의 최선을 다하도록 해. 그러다 결국 그대가 지친다면…그 땐 그저 다시 한 번 우리 순환을 반복하기로 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으니, 그대가 용이 되고 천 년 후에 내가 인간으로서 그대를 찾아가도… 그때의 나도 분명 최선을 다 할 테니까. 영원한 시간이란 분명 감옥이고 비극의 무대지만, 다른 말로는 영원한 기회이기도 하잖나.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당신은 참 다정해요. 내가 다시 나아갈 힘을 주고,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주죠. 그러면서도 내가 버겁다면 기꺼이 그 짐을 넘겨받겠다고, 다음을 약속해줘요. 이런 당신을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나긋한 웃음.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후드 안쪽, 당신의 뺨을 매만졌다. 체온은 차가웠고, 성에가 뚝뚝 떨어져 손끝을 베는 것마냥 아려왔으나, ……) 아서, 우리 한 번 더 나아갈까요, 그럼.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진실이 저 너머에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없이 반복되었으나 다시 시도될 희박한 희망을 향해 가볼까요? (그는 눈을 감았다. 당신을 잠시 끌어안고, 가만히 숨을 고르다가, 당신을 올려다 보았다)

이야기꾼 용은 왕자님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자신의 뺨을 만지던 손을 잡고서, 눈 앞의, 숲 중앙의 둔덕을 올랐습니다.
그 중앙에는 둥그런 모양의 홈이 있는 거대한 바위가 있으며, 홈 주변에는 생전 본 적 없지만 읽을 수 있는 글씨들이 얼음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글씨를 바라보고 있자니, 기괴한 기분이 스멀스멀 전신을 사로잡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이건…….

이야기꾼 …글씨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왕자님이 적절한 능력을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자세히 글씨를 살피다 보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꾼 [관찰력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75 관찰력 (1D100<=75)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47 > 47 > 보통 성공

이야기꾼 여기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쓰여있는 듯 합니다.
북쪽에 가까운 눈 쌓인 땅에는 불타는 얼음과 추위를 다루는 서리거인, 위대한 옛 것이란것이 있는데, 서리거인은 뿔이 달리고 다리가 여섯 개인 부족을 땅 위에 풀어 놓고, 황무지를 배회하며 다음 장난감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거인을 얼음 아래에 봉인 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16. 이야기를 맺는 방법]
영원한 겨울의 지배자를 깨우거나, 다시금 북쪽의 만년설, 빙하의 가장 깊은 곳으로 되돌리는 내용에 대해 적혀 있습니다. 그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시간을 구성하는 장치를 바위에 꽃고 이야기의 주연과 함께 손을 잡은 채,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눈과 바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열 때가 되었다!”라고 반복해 외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를 얼음 안으로 돌려보내는 길을 여는데에는 기본적으로 7의 마력이 필요하며, 송환 확률은 기본적으로 5%입니다. 마력을 추가로 1 더 소모할 때마다 송환 확률이 5%씩 늘어납니다. 최대 확률은 99%를 넘을 수 없습니다.

이야기꾼 또한, 이 위대한 서리거인을 ‘이타콰’로 지칭하며, 그를 따르는 부족을 ‘노프케’라고 지칭한다는 것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꾼 이타콰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제물로 바쳐진 사람은 운이 좋다면 생존 할 수 있지만 제정신은 아닐 것이며, 삶이 끝났다면 시신은 대부분 몇 주 후, 혹은 몇 달 후에 눈보라가 휩쓸고 지나간 설원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알 수 있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여기까지 와본 적 있죠?

아서 ……그래. 그리고 높은 확률로, 이쯤에서 등장하는 것이 있지.

이야기꾼 급격히 차가워지는 공기에 숨을 쉬기가 힘들어 집니다.
공기중에 떠도는 습기가 얼어붙어, 얼음결정을 만드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이야기꾼 그리고는 눈 앞에, 둔덕 아래에서 기어 온 듯한 거대한 손 하나가 불쑥 올라옵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이야기꾼 그것을 시작으로 투구벌레에 사람의 팔이 여섯개 달리고 온 몸에 털이 난 듯한 생물 하나가 다가옵니다.

이야기꾼 [이성 판정] (0/1d10)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48 이성체크 (1D100<=48)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63 > 63 > 실패
1d10 (1D10) > 7

system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SAN : 48 → 41

이야기꾼 [지능 판정]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90 지능 (1D100<=90)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60 > 60 > 보통 성공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1d10 (1D10) > 4

이야기꾼 :: 사고 정지 ::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된다. <아이디어> 및 대인 기능 판정 불가능, <지능> 판정에 페널티 다이스 1개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

아서 제이. 이것이 이번 순환에 마지막으로 주어진 선택의 시간이야. 네가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지 정하도록 해. 나는, 어느 쪽이든 그걸 따를 테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멍하니 기이한 것을 들여다보던 눈은 차츰 흐릿해진다. 무얼 상상하고나 있었나. 무얼 '생각' 씩이나 하고 있었나. 그는 제 옆에서 속삭이는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제게 말을 거는 그 사랑스러운 연인과 눈을 맞추었을 때에는, ―…)
……아, 내 사랑, ……. (흐린 눈동자가 간절한 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서, 나의 가장 사랑하는 봄과 함께 떠나야 한다. 아서, 아서, 아서. 나의 가장 빛나는 봄. 나의 가장 소중한 봄.)
(텅 빈 사고를 지배하는 것은 아집에 가까운 맹목. 서리와 눈에 새파랗게 짓이겨진, 시야를 잃은 이의 집착. ―그와 함께여야 한다. 그가 없는 곳은 의미가 없다. 그는 손을 뻗었다. 당신의 손을 잡고는, 천천히, 웃어보인다. 섬뜩하기까지 한 미소였다)
빌어먹을 책을 덮을 시간이에요, 아서!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 이제 그 작은 머리통에는 당신과 둘이 이 빌어먹을 순환에서 벗어나겠다는 집착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서 …그래. 겨울을 상대하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구나. 좋아, 제이. 그대가 하고자는 일이 무엇인가,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도록 해. 그러기 위한 무대는 내가 마련할 테니까.

이야기꾼 용은, 마수를 뻗어오는 기이한 존재를 향해 나스 티크의 주문을 외웁니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용의 생명으로 빚어진 이 방벽이 저 괴이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벌어줄지는 모르겠습니다.
왕자님, 서둘러야 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바위에 조각을 모았던 회중시계를 꽂는다. 그리고는 당신의 손을 꽉 쥐고는, 입을 열어 크게 외쳤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눈과 바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열 때가 되었다!

이야기꾼 얼어붙은 사고를 뚫고서, 오로지 이 이야기를 끝내버리겠다는 생각 하나로 왕자는 무작정 주문을 읊습니다.
뒤늦게 그런 왕자님의 손을 잡고서, 용이 함께 주문을 외웁니다.
왕자와 용은, 같이 손을 잡은 채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선언을 합니다.
맹렬한 추위 속에서 잡은 손만이 내가 살아있고,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합니다.
이야기를 맺는 첫 선언을 하자, 뼈 속까지 얼어붙는 추위가 둘을 뒤덮습니다.
주변에 있던 노프케들은, 마치 아주 거대한 위험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 이리저리 흩어집니다.
두번째로 외치자, 저 하늘 위에서 구름 사이로 두개의 커다란 별이 나타납니다.
파랗게, 하얗게 불타오르는 그것은 마치 얼음이 불타는 듯 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선언을 하자…
저 하늘 위에 있던 두 개의 별이, 둘의 앞으로 떨어집니다.
아니, 자세히 보면 그것은 별이 아니라 거대한 인간의 눈 한쌍입니다.
구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단지 서 있는 것으로 해를 덮을 만큼 거대한 인간의 몸뚱아리입니다.
서리거인의 숨결에서는 가장 추악한 질투같은 냉기가 흘러나오고, 그 질투는 명확히 왕자님과 용을 향하고 있습니다.
서리거인이 몸을 굽혀, 발 아래 있는 작고 미미한 생명체들을 바라봅니다.
그의 푸르고 거대한 눈동자에서 나오는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 없습니다.
냉정한 시선이 둘을 향해 조리개를 잡듯 초점을 맞추고선, 이내 다시 그 얼음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듯 분노 가득한 함성을 지릅니다.
둘은, 이것이 겨울의 근원, 들려오던 괴성의 근원임을 깨닫습니다.

이야기꾼 [1. 둘은 주문에 사용한 만큼의 마력과, 체력을 감소합니다.]

system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마력 : 11 → 0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체력 : 9 → 1

이야기꾼 [2. 이타콰를 처음 본 왕자는 1d10/1d100의 [이성]을 감소합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cc<=41 이성체크 (1D100<=41) 보너스, 패널티 주사위[0] > 12 > 12 > 어려운 성공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1d10 (1D10) > 2

system [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 SAN : 41 → 39

이야기꾼 [3. 위 과정이 끝난 후, 주문이 성공하는지 롤을 굴려 확인한다. 주문에 추가적으로 사용한 수치를 포함하여 1d100<65]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1d100 (1D100) > 25

이야기꾼 쏟아지는 눈보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길고 지루한 겨울의 장은 끝날 때가 되었습니다.
눈과 바람, 불타는 얼음이 녹을 때가 온 것입니다.
서리거인은 분노에 차, 거대한 손을 우리에게 뻗습니다.
하지만 그 손톱 끝이 우리에게 닿기 전, 서리거인의 발 아래에 세찬 물보라가 입니다.
녹은 얼음은 더 이상 거인의 무게를 견딜 수 없습니다.
거인은 이럴 수 없다는 듯 발버둥을 치지만 그 괴로운 함성도 곧,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 버립니다.
다시 누군가 거인을 불러내기 전에는 저 차가운 바다 아래, 빙하의 가장 깊은 곳에 갇혀 후일을 기대할 수 밖에 없겠지요.
정신을 차려보면, 둘이 함께 서 있던 둔덕 위에 빛의 장막이 일렁입니다.
아, 어느새 눈보라는 그치고, 저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부드럽고 따뜻한 물… 아니, 비가 내려 왕국을 녹입니다.
멀리서부터 퍼지는 연두빛의 일렁임.
겨우내 잠 자던 새싹이 일제히 움을 터, 둘의 주변까지 밀려듭니다.
하늘에는 별이, 땅에서는 꽃이, 그리고… 눈 앞에는…….
처음 용을 만나던 날이 떠오릅니다.
귀한 비단에나 쓰일 법한 선명한 붉은 색의 머리카락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신록이 깃든 것 같은 외눈.
찰나의 눈맞춤에 스치는 동요.

아서 정말… 끝난 건가…….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서.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믿고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내 사랑. (와락 당신을 끌어안으며 뺨을 부빈다)

아서 …그래. 그럼, 이제 포상의 시간인가? (제게 뺨을 부벼오는 당신의 바라보았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다 생각했던 희망이, 이렇게 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참으로 낯설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아하하, 포상이라니, 그보다는 좀 더 낭만적인 말을 쓰고 싶어요. (당신을 올려다보며 눈을 휘어 웃는다) ……희망을 누릴 시간이에요.

아서 그래. …무대에서 내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연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진정한 해피 엔딩이니까.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진정한, 해피 엔딩. (느리게 눈을 감으며, 당신의 목덜미를 감아 안는다)

아서 (천천히 눈을 감고서, 제게 기대어 오는 이의 온기를 느끼며… 천 년만에 추위를 물리고 따스함 속에서 뛰기 시작한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당신의 입술 위로 입을 맞추었다. 겨울의 중심에서 주문을 외며 얼어붙었을 입술이 부드러운 온기에 녹는 듯 하였다. 천 년만에 되찾은 온기는, 따스한 햇살의 맛이 났다. 별이 쏟아지는 밤인데도 한낮의 태양 앞에 서있는 듯… 그러한 착각마저 들었다.)

제레미아 W. 로흐파르샤 (제레미아는 당신을 감아 안은 손에 힘을 준다. 길고 긴 겨울이었다. 냉기와 함께 태어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위해 자라온 삶. 그리고 그 탑에서 처음 당신을, 이전 생의 깊이 사랑하던 연인을 보았던 순간, 제 운명이 그것임을 진작부터 알았더라도 내던질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쏟아지는 빗물 아래 비를 맞으며 선 두 연인이 입을 맞춘다.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나는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뻐. 당신과의 찰나를 곱씹으며 천 년의 외로움을 견디지 않아도 되어서 기뻐. 그리고 당신에게, 잔인한 다음을 약속하지 않아도 되어서 기뻐. 그 모든 벅찬 마음을 담은 입맞춤은, 한낮 꽃밭 위로 내려앉는 햇살만큼이나 따스하다) ……사랑해, 사랑해요, 아서. 이제는 정말 놓지 않아요. 영원히, 이 숨이 마침내 이 땅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이야기꾼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가 끝났다면, 주연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오래전 했던 약속이 왕자님을 파고듭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는 어두운 마법을 이해하는 마법사였습니다.
우리는 곧 다가올 신들의 전쟁, [라그나로크]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 동안 신적인 존재에게서 살아남고 싶지만, 둘은 늦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고로 우리는 영혼을 묶는 계약을 했습니다.
수십 수천 번의 죽음과 생을 반복하며, 인류를 지키기 위해 떨어질 수 없는 저주를 받기를…
처음이자,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집니다.

이야기꾼 [세계의 페이지 17 完. 최초이자 최후의 약속]
둘은 고대의 마법사로, 다가올 신들의 전쟁 [라그나로크]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무시무시한 겨울이 닥치면서 시작된 전쟁은, 곧 태양을 삼키고, 하늘을 쪼개 모든 것을 살육으로 이끌지만, 끝내 모든 것이 영원한 불길에 잊혀 사라질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인류를 남기고 싶더라도 근본적으로 둘은 때를 늦출지언정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감정을 떨치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결국 우리는 어둡고 끔찍한 마법을 견디며 미치지 않기 위해, 시간과 망각, 환생을 이용해 수많은 삶과 시간을 지속하며 살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야기꾼 계약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면 기억나지 않는, 혹은 아직 겪지 않은 감정이 소용돌이칩니다.
어깨를 누르는 중압감, 포기하려 했던 순간들, 외로움과 무료…….
…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고, 몇 번이고 실망하고,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세계이지만……
…지켜내어서 다행이다. 그리 말 할 수 있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어느덧 둘은 깊은 후드를 눌러쓴 채, 이야기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인공은 완결이 난 순간 이야기의 주인공도 무엇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됩니다.
이야기를 마친 그들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다르지 않습니다.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왕자님은 막 태어난 자기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선, 왕에게 후계자로 정하기를 청하고, 용의 가까이로 갈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자신의 방에 시계를 던져 넣고, 사람들에게 조각을 가져다 줍니다.
어떤 때는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었고, 어떤 때는 따뜻한 불길이 되어 스스로를 돕습니다.
그래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왕국을 줄곧 돕고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나 자신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과거의 자신이 끔찍한 일을 겪더라도, 좌절하거나 깊은 외로움에 휩싸여 있더라도 그것은 쓸모없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이 순간을 위해…….
[ENDING 3-3]
[그리고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세계의 페이지가 덮힙니다.
심장이 얼어붙은 용 이야기를 마칩니다.

제레미아 아서! 나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같이 도와줄래요?

아서 음?

제레미아 섀넌 말이에요, 제자를 잃었다고 너무 슬퍼했거든요.

아서 그렇다면 구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제레미아 이야기의 바깥으로 나가기 전, 우리가 지켰던 이들의 행복을 위해 조금만 더 머물다 가요.
그리고 그것들이 다 끝나면, 정말 오두막이라도 하나 지을까요?

아서 그래. 정원이 넓은 곳에 오두막을 두고 같이 살자. 같이 살아가자. 햇살이 잘 들어 꽃이 피고 나비가 노니는 그런 곳에서.

제레미아 좋아요! ……아서. 사랑해요.
오래도록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