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oC 7th ::
:: KP - 비슬 ::
:: KPC - 권 혜성 ::
:: PC - 이 현 ::
:: 플레이 일자 - 2020.05.15.금 ::
:: 플레이 타임 - 약 7시간 ::
연합 정부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의 생산공장을 올해 안으로 2배이상 늘릴것이며 감염자에 대한 수용시설 또한 확충할 것임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치료제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원인은 찾지 못하고 있으며…...
당신은 건조한 표정으로 어제자 재방송인 뉴스 화면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습니다.
병동 앞 대기실은 tv화면의 뉴스 소리나 간간히 들리는 대화 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합니다.
좀비 사태가 발발한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4시간 안에 감염된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는 이대로 멸망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좀비 사태 이후 25개월이 지난 후인 12월 25일,
학자들에 의한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인류는 이를 희망이자 구원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치료제의 공식이 적힌 낡은 노트를 작성한 사람이 혜성이고 그것을 가져온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은 아주 소수의 정부 관계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요.
당신은 가방에서 며칠 전에 당신 앞으로 온 편지를 꺼내 펼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 내용을 거의 다 외워버린 편지는 구겨지다 못해 너덜거립니다.
(편지에 적힌 혜성의 이름을, 한 번 더 손끝으로 쓰다듬는다. ...어떤 모습으로든, 내 곁으로 돌아왔다ㅡ 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지. 현은 애써 웃어보려 하지만, 자꾸 눈가가 시큰해져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연합정부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전면적으로 공표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갖기도 잠시, 사람들은 또 한 번의 절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를 투여받은 후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치료제를 투여했음에도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비활성화 상태로 몸 안에 계속 남아있는 사람들 또한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바이러스에서 돌연변이 같은 것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이 치료제를 조금씩 바꿔나가며 계속해서 실험을 거듭했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해 치료제가 효과를 보이지 않는지에 대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직면한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습니다.
만들어져야 하는 치료제의 양에 비해 인력과 자원은 부족했습니다.
또한, 치료제를 투여한다고 무작정 감염자들이 인간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니,
결국 정부는 그들을 수용소에 모은 후 생존자들에 의해 신원이 확인된 이들에게 순차적으로 치료제를 투여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연합정부는 당신의 말에 따라 노트의 작성자인 혜성을 찾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알다시피 정부는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으니까요.
멸망 이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 세계는 평화로웠던 시절보다 모든 것이 몇 배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당신 역시 세계를 재건하기 위한 생존자의 일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정부는 수용소의 좀비들 중에서 혜성을 찾아냈고,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다른 감염자들과 다르게 그에게는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치료제의 투여가 결정된 것입니다.
이곳 아리마테아 병원은 당신이 사는 곳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지대 외곽에 위치한 병원입니다.
좀비 사태 이후 폐병원이 된 곳을 건물 통째로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들을 위한 시설로 쓰고 있으니 병원보단 수용소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와 함께 본인 확인을 거치고 접수를 마친 당신은 혜성이 있다는 7층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감염자들이 입원하고 생활하는 병동은 외부의 출입이 차단된 폐쇄 병동인지라,
병동 앞 면회실에선 당신을 포함한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저 안에 있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긴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슬 (GM):(To GM)rolling 2+1d5
=7
정오를 넘기고 오후 1시에 가까워질 때, 당신은 비로소 직원이 당신을 호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현:(기대감과 불안감이 뒤섞인 얼굴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 감사합니다.
짧은 복도를 지나, 당신은 굳게 닫힌 철문 앞에 도착합니다.
직원이 카드를 찍자 문이 열리며 병동의 모습이 보이네요.
중앙 스테이션을 주위를 둘러싸는 병실들과 처치실, 면회실,
직원은 빠른 발걸음으로 당신을 한 진료실로 안내합니다.
진료실은 한쪽 벽 가운데 널찍한 유리창이 있는 것만 빼면 평범합니다.
이 현:지능기준치: | 90/45/18 |
굴림: | 6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특수유리로 만들어진 듯한 창을 통해 반대편 방을 볼 목적으로 설치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자리에 앉자 손에 든 차트를 확인한 의사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레나 리센:안녕하세요. 저는 72병동 담당의사 레나 리센입니다.
권혜성님의 보호자, 맞으시죠?
이 현: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맞아요. 권...혜성...의 보호자... ...이 현입니다.
레나 리센:권혜성님은 이미 DNA나 지문등을 이용해 본인 확인을 거쳤지만... 그래도 보호자분께서도 확인을 해주시는 것이 원칙이니 잠깐 확인해주시겠습니까?
...보기 괴로우실 수도 있으십니다.
이 현:...네...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며, 레나를 바라본다) 괜찮아요, 준비 됐어요.
그렇게 말한 의사는 책상 옆에있는 리모콘의 한 버튼을 누릅니다.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불이 켜진 유리창 너머에는 혜성이 서 있습니다.
헤어진 후 처음 보는 혜성은 당신이 기억하던 그가 맞나요?
그를 뒤로 하고 내달렸던 그 날, 홀로 남겨질 시간을 위해 필사적으로 눈에 아로새겼던 그 모습인가요?
그와 다시 만날,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끊임없이 그려냈던...
(혹여나 눈물 때문에 그를 더 자세히 보지 못할까, 애써 울음을 꾹 눌러 참으며 당신을 바라본다. 떨리는 손으로 유리창을 더듬고서, 그저, 당신의 이름, 그리고, 헤어지기 몇 시간 전에서야 겨우 불러보았던 오빠, 라는 호칭을,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또 중얼거린다)
창문 너머에서는 익숙한 기억 속에서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자의 낮은 신음이 들리고, 창과 맞닿은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뭉개집니다.
환자복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유리창 너머에 서 있는 혜성.
그는 당신을 알아본 걸까요, 아니면 그저 빛에 반응한 걸까요.
보드랍고 사랑스러웠던 금발엔 거슬거슬하고 탁한 빛이 들었고,
당신을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푸른 두 눈은 희게 번뜩거립니다.
맞...아요.... 혜성 오빠...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애써, 무언가를 눌러참기라도 하듯이)
그는 당신의 대답을 듣고 차트에 무언가를 적더니, 다시금 버튼을 누릅니다.
불이 꺼지자 좀비, 아니, 혜성이 어둠 속으로 삼켜지고,
레나 리센:...보시다시피 지금 상태에선 면회가 불가능합니다.
이 현:(멍하니 유리창을 바라본다. 아마 그 너머에 있을, 혜성이 혹시 보이기라도 할까, 싶어) ...면회... 면회는 어렵더라도... 조금만 더, 볼 수는 없을까요...
너무... 너무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정말로... 아주 잠깐이라도...
레나 리센:...면회가 허용되는 건 3단계부터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원칙적으로 대면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편지에 동봉된 안내자료를 보셨겠지만... 치료제는 어제 오후 1시에 투여된 상태로, 현재 권혜성님은 2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현:불만, 잠깐 켜주세요... 선생님... 조금만... 조금만이라도 더 보고 싶어요... 그것도 어려울까요...?
레나 리센:잘 알고 계시겠지만, 바이러스 감염자는 시력이 퇴화한 만큼 빛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내일이면 면회가 가능해질테니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저도 가능하면 도와드리고 싶지만, 연합 정부의 정책이라서요.
이 현:알겠습니다...... (...내 욕심 때문에 당신이 혹시라도 아프다거나, 괴롭게 되는 건 두고볼 수가 없다. 또다시 불이 켜졌을 때 당신이 혹시라도 다치게 된다면... 아, 그것만은 싫어. 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은, 접어두자. 당신을 볼 수 있는 게 지금 뿐인 건 아니잖아. 당신이 없는 3년 5개월, 잘 기다려왔는걸. 하루, 하루만 더 기다리면 돼)
레나 리센:...그럼 설명을 이어서 해드려도 괜찮을까요?
레나 리센:치료제를 처음 투여받은 환자, 그러니까 좀비는 100시간 동안 1단계부터 4단계를 거치며 서서히 인간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00시간 후 5단계가 되어 완치판정을 받을 경우 퇴원이 가능합니다.
첫 치료 시 완치율은 대략 30% 정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치료를 통해 5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면 이곳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게됩니다.
완치된 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좀비일 때는 의식도 기억도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치료제가 투여된 이후부터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죠.
레나 리센:현재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학자들은 바이러스 감염 후 좀비가 될 때 파이로젠 바이러스가 뇌에 침입하여 기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약물 부작용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아직 모르지만 3, 4단계의 환자들이 가끔 액팅 아웃,
그러니까... 발작을 일으키고 공격성을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그 경우 진정제를 투여한 후 독방에 얼마 동안 격리합니다. 수 시간 내로 괜찮아지므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레나 리센:기본적인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질문이 있으십니가?
최대한 대답해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대기 인원이 많아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현:...혹시라도 5단계를 넘어가지 못해 격리 치료를 받게 될 때에도, ...면회는 가능한 건가요?
레나 리센:네, 가능합니다. 실제로도 많은 보호자분들께서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환자분들을 면회하러 오십니다.
이 현:...알겠습니다. ...혹시,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레나 리센:...저희도 아직까지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는 핵심적인 요인이 무엇인지 연구중인 단계에 있습니다.
이 현:...그렇군요... ...바쁘신데 설명 감사해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면 되는 거죠?
레나 리센:네, 내일 이 시간에 찾아오시면 다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 현:알겠습니다. ...고생이 많으세요.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미련 가득한 눈으로 유리창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웃어보인다)
레나 리센:이게 제 직업인걸요. 고생은 보호자분들께서 더 많이 하실텐데요.
짧은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가자 직원은 당신을 출구로 안내합니다.
그가 입구 옆에 출입 카드를 찍자 병동의 자동문이 열리고,
당신을 앞서 밖으로 나간 요원이 다음 차례의 대기자를 호명하는
당신의 뒤에서 달려온 누군가가 당신을 밀치고 문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이 현:민첩기준치: | 30/15/6 |
굴림: | 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벽을 짚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을 밀치고 병동을 뛰쳐나간 건 환자복을 입은 ‘보균자’ 입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비틀거리면서도 날쌘 걸음으로 복도를 달리는 그를 피해 복도의 대기자들이 홍해처럼 갈라집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지원 요청을 듣고 반대쪽 복도에서 나타난 보안요원의 손에 붙잡히고,
곧이어 병동에서 달려온 다른 직원들에 의해 사지에 억제대가 채워집니다.
이 모든 과정이 5분도 안 되는 찰나에 이루어지고,
짧은 탈출이 끝난 그는 장정들의 손에 들려 병동 안으로 짐짝처럼 운반됩니다.
“나가게 해줘, 나는 인간이야, 갇히기 싫어, 나가게 해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는 무거운 철문 뒤로 사라지고, 복도엔 무거운 적막이 감돕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직원은 다음 차례의 보호자를 호명하고,
하지만 아마 여기 있는 모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죠.
바이러스에서 완치되지 못한다면, 내 소중한 누군가는 평생을 저 안에 갇혀 지내야 할 것이라는 것을요.
과연 당신의 신, 당신의 희망은 당신 곁으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돌아오는 길의 하늘엔 꼭 당신의 마음처럼 먹구름이 가득 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릴 것만 같은 하늘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당신은 거실의 소파에 쓰러지듯 눕습니다.
하루 종일 날이 흐린 탓에 불을 키지 않은 널찍한 거실은 어둑합니다.
지금 당신이 살고있는 이 집은 연합정부가 생존자들에게 제공한 안전지대 안의 아파트, 그 중에서도 제일 넓고 좋은 축에 드는 곳입니다.
4인 이상 가족들에게 주어지는 넓은 아파트에서 당신은 혼자 살고 있는 것이나, 매달 나오는 지원금 같은 것…
멸망 이후의 이 과도기에 당신은 부족한 것이 없게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야 노트를 완성한 것은 혜성이지만 노트를 가져온 것은 당신이니까요.
그러나 혜성이 곁에 없다면 이런 모든 것들은 무슨 상관일까요.
이 현:...혼자서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거니까...
...기다리고, 버티고 있어요...
얼른, 돌아와요...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집안을 둘러보니 정돈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혜성의 소식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 집안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100시간이 지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72시간.
언젠가 그가 당신 곁으로 돌아올 때, 엉망인 집으로 돌아오게 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 정리하자.
돌아왔을 때... 따뜻하고 깨끗한 집에서 밤을 보내야지.
소파 위에 켜켜이 쌓인 겉옷들, 탁자 위의 다 마신 컵들, 구석구석 먼지들도 가득이네요.
이 현:손놀림기준치: | 10/5/2 |
굴림: | 73 |
판정결과: | 실패 |
바닥엔 먼지가 살짝 덜 닦였긴 하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봐줄만 합니다.
매일 잠을 자는 곳이니 그만큼 정돈되지 못하는 공간이죠.
이 현:손놀림기준치: | 10/5/2 |
굴림: | 16 |
판정결과: | 실패 |
(...집안일엔 재능이... 없나봐...)
살짝 삐딱한 이불과 카펫, 몇권의 책이나 서류는 그대로 올려져 있는 책상.
언제 마지막으로 정리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냉장고와 며칠은 밀린 설거지거리, 꽉 찬 쓰레기통, 당장 청소를 해야겠네요.
이 현:손놀림기준치: | 10/5/2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마음이 급한 탓인지 조금은 대충 닦인 그릇들과 덜 닦인 식탁, 분류하는 걸 까먹고 한 번에 돌려버린 세탁기…
(괜찮...겠지...?)
청소를 끝내고 마무리로 환기를 시키기 위해 거실의 창문을 엽니다.
하늘은 붉게 물들어 조금씩 어두워져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간간이 메꾸는 것은 윗집에서 들리는 티비 소리, 옆집 가족들의 대화 소리, 웃음소리…...
거실을 돌아보면, 한 발자국만 내딛어도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無)의 공간일 것만 같아요.
이 넓은 공간과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호젓한 외로움이, 여전히 너무나 낯설기만 합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툭 울음을 떨군다. 홀로 남았다, 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밀려오는 한없이 거대한 고독의 파랑은 몇 번이고 발끝을, 그 몸뚱아리와 정신까지 갉아먹는 것 같았다. 매 여명과 황혼의 시간마다 제 옆에 당신이 없단 것을 깨닫는 것은,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를 않는 일이라서. 현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창가로 걸어갔다가, 이내 풀썩 주저앉았다. ....아, 보이지 않지만 존재함을 알던 희망만큼이나, 눈에 보이는 희망도 아프다)
이 넓은 공간과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호젓한 외로움에, 당신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합니다.
마치, 일찍 잠에 들면 내일이 더 빨리 올 거라고 믿는 어린 아이처럼.
잠들기 전 언젠가 캘버리로 향하던 길에 혜성과 함께 이스트베일의 마을에서 나란히 누웠던 침대가 문득 떠오르네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잠시 잠을 청한 그곳의 낡은 침대 위에서 그 때 우리가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그와 함께한 시간을 되짚어보면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비슬 (GM):(To GM)rolling 2+1d5
=3
다음 날 당신은 시간에 맞춰 병동으로 도착하였습니다.
어제와 같은 직원이 오늘은 당신을 사무실이 아닌, 혜성이 있다는 병실로 안내합니다.
이 현:...네... 수고가 많으세요. 고맙습니다.
작은 병실 안은 낮인데도 커튼을 쳐 놓아 어둑합니다.
유일한 광원인 정면의 tv에선 대기실에서 나오던 것과 같은 뉴스가 틀어져 있고
작은 화장실과 냉장고, 벽에 붙은 서랍장, 그리고 방 안을 제일 크게 차지하는 침대에 홀로 앉아있는 혜성이 보입니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tv화면을 바라보다 정확히 당신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헤어진 후 이렇게 만나는 것은 몇 년 만인가요.
가까이서 본 그는 당신이 기억하던 마지막 모습보다 훨씬 마르고 수척한 모습입니다.
좀비로 변한 이후에 생긴 상처인지, 몸 군데군데엔 반창고가 붙여져 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그의 시선은 어딘가 초점이 잡히지 않아 멍한 느낌입니다.
당신이 사랑했던 그의 푸른 두 눈은 여전히 뿌옇게 흐리기만 하네요.
이 현:......(멍하니 당신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어본다) 오빠, 잘 지냈어...? ...잘, ...지냈냐고 묻는 건 좀 이상한 질문인가. ......
......보고싶었어요......
권 혜성:...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다.) ...미안해요, 나는 아직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서...(보고싶었다고 말하는 당신에게는 조금 잔인한 말이었으려나, 싶었지만 그로써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당신을 본 기억이 있어요. 아직 시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흐릿한 형상밖에 보이지 않지만... 어제, 나를 보러 왔던 것은 당신이었죠? 한 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 환한 빛이 들어섰을 때, 그 때 유리창 너머에 있던 당신을 보았던 것 같아요.
이 현:......아직... 그렇구나. (그래도 미소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그래, 예전에도 그랬잖아. 소나기가 내리던, 그 날에도... 당신은 날 기억하지 못했고, 나는, 당신에게... ...그러니까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이번에는 좀 더 쉬울 거야. 다시... 되찾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나 우리는 사랑을 했으니까.) ...어제 보러 왔었어요. 기억이 나요? 다행이다. 괜찮아요, 천천히 찾아가면 돼요. 내가 허락되는 한은 계속 옆에 있을 거니까요. 언제든지 떠오를 수 있도록, ...계속 얘기해줄 테니까요. (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당신에게 다가간다) ...잠자리는 편안해요? 식사는요, 입에 맞구요?
권 혜성:(당신은 대체 누구길래, 제게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 옛날의 그가 그러했든 그의 표정은 한없이 무난한 것이었다.) 이곳은 모든 것이 규칙적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어찌보면 규칙만 지키면 되는 것이니까.... 편하다고 해야하려나요. 다른 사람들은 6명이 방 하나를 같이 쓴다고 들었는데, 나는 이 방을 혼자 쓰고 있죠.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편의를 봐주는 걸로 보아, 아마 내가 그들에게 특별하거나, 이 현, 당신이 그들에게 특별하거나..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 말이 맞나요? (주위를 살펴 상황을 읽어내는 것 또한 예전과 같은 그의 모습이었다.) ...어쨌든, 다들 편의를 봐주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어요.
이 현:(변함없이 똑똑하고, 상황 파악이 빠르고. 그 모든 모습이 당신이 당신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현은 괜히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곤 당신을 향해 따스한 눈빛을 하고선, 당신의 근처에 조심스레 앉는다) 맞아요. 둘 다, 그들에게 특별하죠. 하나는 인류의 희망을 만들어냈고, 하나는 인류의 희망을 가져다 주었으니까요. ...다들 편의를 봐주고 있다니, 다행이에요. 혹시라도 불편하면 어쩌나 했어요. (현은 헤실 웃고는, 그 붉은 자안 가득 애정을 담아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것 말고, 혹시 더 떠오르는 게 있어요?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해줄 수 있는데.
권 혜성:(혹시 더 떠오르는 게 있냐는 물음에 머리에 손을 짚고 기억을 거슬러보아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기억에 먹칠을 한 것 같은 기분이야. 내가 어디에 살았었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싫어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마치, 나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지만, 분명 내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거는 없지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조금 떨려왔다.) ...그나저나, 생각나는 게 없어서 어떡한다. 아,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을 내리다 손목을 감싸고 있는 묵주를 본다.) ...내가, 신을 믿었나요?
이 현:...(아,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잃어버렸어도 제겐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현은 떨리는 손으로 당신에게 손을 뻗다가, 혹시라도 당신이 불쾌할까 머뭇거리며 손을 내렸다. 그리곤 무언가 추억에 젖은 눈을 하고서, 당신의 손목에서 잘그락거리는 묵주를 바라보았다) ...신이라... 평범한 신은 아니었어요. 세상에 신자가 단 하나 뿐인 신이었답니다. 그 신은 한 예배당에서 잠든 당신을 보며 당신 역시도 자신의 신이라고 이야기했었어요. 그리곤 당신의 손목에 그 묵주를 걸어주고서, 몇 번이고 또 기도했답니다. 당신이, 내게 무사히 돌아오기를. 얼마나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더라도, 좋으니까, 부디 돌아오기를, 하고. (현은 가만히 숨을 골랐다) ...나의 신은, 당신이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당신의 신도 나였고요. 우리는 그 멸망해가는 세계에서까지도 참으로 오래도록 사랑을 했었어요.
권 혜성:(당신이 신에 대해 말하는 동안에도 제 시선은 계속 손목을 채운 묵주를 향해 있다. 당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마치, 무언가에 사로잡힌 것 마냥, 해져서 끊어지기 직전의 묵주를 희뿌연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급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도 먼지가 잔뜩 낀 안경을 쓰고 보는 것 처럼 시야는 흐리고 사방이 어두웠다. 귓가엔 아까부터 삐, 소리만이 들려오고 흐릿한 시야 에 비치는 것은...) ...윽,
갑작스레 이상행동을 보이던 혜성의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며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리고 허공을 보며 느닷없이 괴성을 지릅니다.
이 현:...! 오빠, ...! 무슨 일이에요...!
권 혜성:……난, 나는 괴물이야. 나는 인간들의 살을 뜯어 먹으며 살아왔어, 그 감각이 너무,.생생해서.. 차라리,
죽어버렸어야… 그는 귀를 틀어막고, 몸을 웅크린 채 사시나무처럼 떨며 계속해서 중얼거립니다.
이 현:(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당신의 말을 듣자마자 굳은 얼굴로 당신을 꽉 끌어안고서 말없이 당신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아니야... 괜찮아요, 괜찮아, 전부 다 괜찮아요...
살아남겠다고... 나랑 약속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오빠...
권 혜성:아.. 아, 아니야... 안 돼,
죽지 말라고 했어, 나의 신이..., 내게, 절대 죽지 말고...
온전히, 돌아오라고 했어... 그에게 당신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듯, 혜성은 끊임없이 귀를 틀어막고 중얼거립니다.
권 혜성:가, 가야해. 돌아가야 해... 돌아오라고, 늦지 않게 돌아오라고 했어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몸을 웅크리고 몸을 덜덜 떨던 혜성이 일순간 고개를 홱, 치켜올리고 당신에게 달려듭니다.
쿵!! 하고 벽에 등이 부딪히고 혜성은, 간절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청합니다.
권 혜성:도와줘요... 나, 나는 이곳을 나가야 해요. 돌아가야만 해요.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너무 늦었을까요? 내가,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인간이 아니라, 사람의 살을 뜯어먹는 괴물이라서,
그래서, 잃어버린 걸까...?
간절하기만 했던 그의 목소리에서는 당신이 모를 수가 없는,
절망이 조금씩 묻어나고 있었고, 표정엔 형용할 수 없는 살기가 어렸습니다.
...다음 순간, 그는 두 손으로 당신의 목을 조릅니다.
이 현:...! (놀라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아니에요, 오빠. ...괜찮아요, 정말로 다 괜찮아요. 지치지 않았어요, 잃지도 않았어요.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요. ...아, ㅈ...
권 혜성:(To GM)rolling 1d100
=96
권 혜성:(To GM)rolling 1d3
=1
당신을 노려보는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서 흐르는 건 눈물입니다.
이 현:(당신에게 목을 졸리는 동안에도, 그 눈빛에서 애정도, 슬픔도, ...결코 거둬지지가 않는다)
권 혜성:어, 어떡하죠... 잃어버렸어... 절대, 잃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보안요원들과 의료진들이 방안으로 뛰어들어옵니다.
보안요원이 당신에게서 혜성을 떼어내고 진정제를 맞추는 사이 직원 중 한 명이 당신을 방 밖으로 내보냅니다.
직원: 괜찮으신가요? 잠시 나가 계셔야 겠습니다.
당신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문밖으로 밀려납니다.
문 너머의, 병실 안쪽에선 혜성의 울음 섞인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오다가, 뚝, 하고 끊겨 조용해집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얼추 정리된 듯, 문을 열고 나온 레나 리센은 당신에게 말합니다.
레나 리센:...어제 말씀 드렸던 액팅 아웃입니다.
진정제를 주사했으니 곧 괜찮아지겠지만, 원칙적으로 이런 상황이 있으면 최소 24시간 동안 면회가 제한됩니다.
레나 리센:안타깝지만, 내일은 면회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상태가 안정되는 것을 지켜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주세요.
이 현:그렇군요......(기운 없는 목소리다. 시선은 계속해서 닫힌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당신은 소파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날이 흐린 탓에 불을 켜지 않은 집 안은 어둑합니다.
불과 몇 시간 전, 혜성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 찰나의 환상같이 느껴집니다.
닫힌 문의 틈새에서 새어나오던 혜성의 울음 섞인 절규와 의료진들의 급박한 대화 소리….
소란스러웠던 병동과 다르게 어제와 같은 적막함이 집 안에 가득 차올라 마치 그 속에서 익사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소파의 한구석에 올려져 있는 tv의 리모콘이 보입니다.
tv라도 틀면, 이 적막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당신이 tv를 틀자 최초로 치료제에 의해 인간으로 돌아온 A씨에 대한 인터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을 해볼게요. 선생님이 파이로젠 바이러스에서 완치하실 수 있게 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치료를 받을 때 제 아내가 매일같이 병원을 찾아왔어요. "
"옛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여주면서 제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해주고, 저를 지지해줬어요. "
"아내의 정성이 통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인간이라는 확신이 들고 아내 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서히 시력이 돌아오면서 아내의 얼굴이 처음으로 다시 또렷하게 보였던 그 순간… "
"제 아내가 없었으면 저는 아직도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그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는 사람의 손을 꼭 붙잡았고, 화면엔 잔잔한 나레이션과 함께 감성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 기억이 되돌아오도록 도와주는 것….
어쩌면 이것이 혜성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물건은 이 집엔 헤성이 작성하던 낡은 노트 한 권 뿐입니다.
이 현:(...그걸론... 모자랄 것 같아.)
(더......)
혜성에게 중요한, 혜성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있을 곳...
그와 당신이 미국에 함께 자리를 잡았던 집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인터넷으로 집 주소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해당 구역은 오염구역이므로 일반인들은 출입을 삼가주세요.]
...좀비 사태를 조금씩 해결해나가기 시작한 이후 세계는 가장 크게 세 가지 구역으로 나뉘었습니다.
캘버리 교도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이 생활하는 도시 [안전구역],
좀비들을 모두 ‘청소’했지만 아직 사람들이 살지 않는 빈 도시인 [청결구역],
그리고 여전히 좀비들이 남아있는 [오염구역].
당신은 혜성과 헤어진 이후 쭉 안전구역에서 생활했지만, 아직 바깥엔 좀비들이 거리에 돌아다니는 곳이 남아있습니다.
이 현:......하지만...... 되돌려놓아야해.
무모한 짓을 하는 건, 오빠와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되겠지만...
......
눈 앞에 희망을 두고도 절망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래, 가자.
자신을 믿는 자를 구원하는 건, 신의 몫이야. 그러니까... 나는... 나는, 오빠의 신이니까. 그 때엔 오빠가 나를 구원했지. 이번엔 내가 해야만 해.
혜성과 함께 안전지대를 향해 떠돌던 시절에 사용했던 배낭은 여전히 튼튼하네요.
배낭 안엔 그때 사용했던 물건들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오래된 라디오, 기스가 잔뜩 난 보온병, 유통기한이 지난 약 상자 등…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한다. 다시 꺼내보면 도저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리 두었던 시간들이었다)
(현은, 배낭 안에 든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늘어놓으며 무언가를 담을 공간을 만들어갔다)
...가는 길도 찾아두어야지.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아... 메모해두자)
아까 인터넷에 검색했던 기록을 따라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메모해봅니다.
아마, 얼마 되지 않는 교통 수단인 버스를 타고 나가야겠죠.
...일단 나가볼까. (베낭과 메모한 종이를 챙겨서 버스 정류장까지 나가자)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고, 서서히 어둠에 물들어 갈 때까지
아마, 저녁 이후 부터는 운행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일 가야하나...
(버스 정류장에는 시간표가 붙어있나?)
이 현:9시. 그래, 내일 아침에 다시 오자.
(돌아오는 버스 시간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이곳까지 돌아오는 마지막 버스는 5시임을 확인한 후, 당신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당신은 내일의 여행을 생각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비슬 (GM):(To GM)rolling 2+1d5
=4
다음 날 아침 당신은 일찍이 도시의 버스정류장으로 향합니다.
목적지는 당신이 있는 도시의 안전지대로부터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또 얼마간의 거리를 걸어야 하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야, 둘은 살아남기 위해 원래 살던 곳을 버리고 긴긴 여행을 했으니까요.
이 현:......(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오래도 떠나왔었구나. ...그래도, 그런 삶 속에서도 영원히 둘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었지. .......)
며칠간 흐린 날씨가 이어졌던 반면, 오늘은 고기압으로 맑은 날씨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선 내일 저녁과 밤 사이로 짧게 비가 내릴 수도 있겠습니다. …
라디오에서는 일기 예보가 끝나고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엔, 세상이 이렇게 되기 이전에, 혜성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며 라디오로 들었던 노래도 섞여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고 이제 버스 안의 승객은 당신뿐입니다.
(이렇게 혼자일 때면 당신이 곁에 있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그 날, 변해버리는 당신을 무사히 그 캘버리의 벽 너머로 데려올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 그것이 참으로 순진한 소망이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현은 물끄러미 스쳐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틀에 올려둔 팔이 도로를 따라 덜컹,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마치 해류에 온 몸을 내맡긴 해파리처럼, 버스가 흔들리는대로 멍하니 바깥을 바라본다)
덜컹거리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면 버스가 도시를 빠져나가며 고속도로를 달리고,
도로에 군인들 태운 군용 트럭이 버스를 지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긴 긴 도로를 달려 마침내 종점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당신이 버스에서 내리자, 버스 기사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버스기사: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오염 구역인데요. 알고 가는 겁니까?
몰랐다면 다시 태워줄 테니 돌아가요.
이 현:...알고있어요. 해야할 일이 조금 있어서요. 괜찮아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 ...말씀은 고마워요.
버스기사: 그렇다면야 뭐, 조심이나 하세요. 좀비한테 물리지나 말고.
그는 당신의 대답을 듣더니 어께를 으쓱하고 운전대를 돌립니다.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방향을 돌린 버스는 곧 지평선 너머의 점으로 사라집니다.
당신은 버스가 떠난 쪽을 잠시 바라보다 지도를 보며 버스가 향한 반대쪽인 서쪽을 향해 걷습니다.
어제와 다르게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아래 햇빛이 쨍하게 비치고, 아스팔트에선 더운 열기가 올라옵니다.
이 현:(함께 떠나왔던 길을 혼자 걷는 기분... 정말 괴롭긴 하네.)
(돌아올 땐, 함께이길 바랐는데.)
이렇게 도로 위를 걸으니 3년 전, 혜성과 함께하던 시간들이 풍경에 겹쳐 떠오릅니다.
낮에도 밤에도 지도를 보고 길 위를 걸으며 하루하루를 생존해 나갔습니다.
힘들고 불안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둘은 함께였는데요.
그때를 떠올리면서 한시간 정도를 걸으면, 마침내 당신은 도시의 입구에 도착합니다.
간판을 보면 [여기서부터 —— 입니다.] 라고, 오염구역임을 나타내는 빨간 해골 마크가 도시의 이름을 가리고 있네요.
도시 안으로 들어가 얼마간 걸으니 곧 익숙한 거리와 풍경이 보입니다.
(한국을 떠나올 때엔, 이 모든 게 참 설레고 행복한 풍경이었는데.)
(이젠 그저 외롭고 쓸쓸한 풍경이 되어버렸어. ...오빠...)
도시의 뼈대는 당신이 기억하던 것과 같지만 5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곳은 적막하고 황량합니다.
잔뜩 긴장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걷지만, 이 텅 빈 도시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당신뿐이에요.
당신의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질 때쯤, 눈앞에 드디어 익숙한 집 한 채가 보입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의 쓰레기들과 망가진 내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그런 흔적들마저 두꺼운 먼지에 덮여있는 게,
마치 이 안에 5년이라는 시간이 고여 있는 것 같아요.
주방과 이어진 [거실], [침실]과 [서재]. 가구들과 벽지…
모든 게 당신이 기억하던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이 현:(정신 차리자, 이 현. 여기까지 온 목적을 잊으면 안 돼.)
(거실을 먼저 살펴보자.)
당신이 거실에서 집안을 둘러보던 그때, 끼이이익-하며, 경첩의 마찰 소리가 뒤에서 들려 옵니다.
……..아까 들어올 때 문을 닫고 들어왔었던가요?
언제든 좀비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곳입니다.
마른침을 넘기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면 그곳엔…
녀석은 당신을 보고도 경계하지 않고 당신에게 다가와 다리에 몸을 부빕니다.
오렌지색 털은 부드럽고, 목에는 토비, 라는 작은 이름표가 걸려 있는 게 원래는 사람 손에 키워졌나 봅니다.
이 현:(물끄러미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한숨처럼 웃곤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토비, 네 이름이 토비구나.
5년이나 여기 있었던 고양이인가?
당신의 의문따윈 아랑곳하지도 않고 오랜만에 만나는 인간에게 잔뜩 애교를 부리던 녀석은 이내 소파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습니다.
이만 집을 마저 돌아볼까요. 다시 버스를 타려면 적어도 5시 전엔 이 집에서 떠나야 할 테니까요.
거실 바닥엔 쓰레기와, 오래 된 발자국들이 남아 있습니다.
창문에선 반쯤 쳐진 커튼 너머로 햇빛이 거실로 쏟아져 들어와 긴 그림자를 남깁니다.
거실 한쪽에 놓인 것은 긴 소파, 그 앞에 놓인 긴 수납장 위에는 먼지 쌓인 [액자]가 놓여 있습니다.
이 현:액자... (액자를 들어 먼지를 쓸어내고... 액자 속 사진을 바라본다)
액자에는 먼지가 가득 끼어서 사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먼지를 쓸어내자 그제야 희끗해진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혜성과 함께 둘이서 별을 보러 갔던 겨울 밤의 사진입니다.
앞에서 추위로 발개진 얼굴로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한 당신과,
그런 당신을 웃으며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혜성이 사진 속에 담겨있어요.
(괜히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아 고개를 들어 눈을 깜빡거린다. ...그래, 이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사람이었지. 그 3년의 꿈에서조차도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은 적이 없었다. 현은 입술을 꾹 깨물고서 다시 액자를 소중하게 쓸어보곤,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하아...
(낡은 신문을 들어보자. 언제의 신문이지?)
신문은 맨 위에 [속보-정체 불명의 바이러스 전 세계 창궐] 라는 헤드라인이 큼직한 글씨로 적혀있고,
아래로는 좀비사태에 대한 뉴스 기사가 적혀 있네요.
오래 전 신문이라 글자들이 드문드문 번지고 닳아 있습니다.
이 현:관찰력기준치: | 95/47/19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전부 다 읽을 순 없지만 그나마 선명한 문단 하나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비 사태가 막 시작될 즈음이구나.
그 때 우리는......
(물끄러미 신문을 바라보다가, 그것 역시 챙겨넣는다)
...
거실에서 챙길만한 건 다 보았을까?
거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제 딱히 없어보입니다. 전부 먼지가 잔뜩 쌓인 잡동사니들 뿐이에요.
침실로 가보자.
(침실로 들어간다)
급하게 짐을 싼 흔적이 남아있는 침실엔 곳곳에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고,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스산합니다.
[옷장]의 문짝은 거의 떨어질 듯 삐걱거립니다.
(옷장을 열어보자)
이 현:행운기준치: | 70/35/14 |
굴림: | 74 |
판정결과: | 실패 |
생존자들이 다녀간 후라 옷장의 옷이 남아있는게 없고, 그나마 있는 것은 걸레짝같이 상태가 나쁜 것들이네요.
(하긴, 5년이나 되었는데.)
(침실에 널브러진 옷가지들도 마찬가지로 상태가 안 좋은가?)
침실에 널브러진 옷들은 더욱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니까요.
(침실에 더 둘러볼 수 있는 건 없을까...)
문고리가 뜯어져 나간 서재는 관리되지 않은 오래된 책들의 냄새가 방안에 짙게 배어있고,
책상 위엔 책 대신 쓰레기들과 구겨진 종이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책장을 살펴볼까. 혹시 내 전시회의 도록이나, 오빠의 전공책... 같은 게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
이 현:관찰력기준치: | 95/47/19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서재를 둘러보던 당신은 책꽂이의 책들 사이에서 눈에 익은 노트를 발견합니다.
펼쳐보면 5년 전의 시간엔 간단한 메모와 함께, 페이지들 사이사이엔 당신과 함께 본 연극이나 영화 티켓, 영수증, 브로슈어 등이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습니다.
다이어리 뒷부분의 노트엔 드문드문, 짧막한 일기 같은 글들이 적혀 있네요.
(읽어보자)
(멍하니 다이어리를 내려다본다. 아, ....... 그는 그런 고민을 끝없이 하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그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거래도 흔쾌히 받아들인 거겠지. 100시간의 순례와도 같은 길 위에서, 고통과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그 끝에 제게 남는 것은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는 길 뿐인 걸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자신을 위해 노트를 써내려갔었다. '잘' 살아야만 한다고. ...이것을... 희망이라고 하자고. 현은 입술을 꾹 깨물며 다이어리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시야가 일렁이며 흐리게 번져왔다. 아, 나는, 늘 당신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정말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을까. ...당신은... 나를 사랑한 걸 후회한 적이 없었을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후회하였다ㅡ는 가정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 현은 더 가슴이 죄어오는 것 같았다. 이 사랑에, 당신이 발을 들이면 좋겠다 기도했던 것도 자신이라, 그 모든 게 다, 제 탓인 것만 같아서. ......) ......오빠....... 나도, 그 어떠한 것보다 오빠가 소중해. 그러니 정말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치만...... 그래서... 오빠가 나 때문에 힘든 걸...... (기어코 뚝, 눈물이 쏟아졌다)
......그가 당신을 사랑한 것을 후회했을 리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랬을 리가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오빠, 나는 정말, ...그렇게 사랑받을만한 사람이었어요? ......
내가 정말......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현은 슬픔이 가득 들어찬 눈으로 다이어리를 내려다본다)
......
이 현:아니야, 이렇게 주저앉아있을 수는 없어. 그렇게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는 데에 모든 걸 쏟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했던 거야. 더 주저앉아있는 건 정말로 후회하라고 옆에서 굿이라도 하고 있는 꼴이 된다고.
(현은 굳센 얼굴로 다이어리를 배낭에 집어넣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최대한 많이 찾아서 들고 가야해. 시간이 모자라. 쓰레기 뿐인 것 같긴 하지만, 책상엔 뭔가가 없을까?
책상 위에는 쓰레기밖에 없어 보이지만, 책상 밑으로 서랍 두개가 보입니다.
(차례대로..)
첫번째 서랍을 열자, 혜성이 사용하던 고가의 카메라를 발견합니다.
(이, 이건 좀 손 떨리는데)
(이거 지금은 만들기도 어려운 거 아냐?)
(......잘 들고 가보자...!)
(소중하게 챙겨본다)
카메라를 소중히 배낭 안에 넣고 두번째 서랍을 열어봅니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반지 케이스 입니다.
혜성과 처음 만난 그 날로부터 햇수로는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22살에 처음 만나서, 벌써 당신의 나이가 32이니까요.
그러나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시간 중, 둘이 행복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따지자면, 행복했던 시간보다는 슬픔에 잠겨있는 시간이 더욱 길었을 겁니다.
그러니 이건, 그 긴 시간 중에 미처 당신에게 건네지 못했던 반지입니다.
케이스를 열어보면 당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푸른 빛을 띄는 투명한 보석이 중앙에 박혀있는, 은색의 반지 한 쌍.
오랜 시간 방치되었음에도, 반지는 그 빛을 잃지 않고 당신을 반깁니다.
이 현:(멍하니 반지를 바라본다. ......아, ...아. 이런 걸... .......)
...........
아..........
진짜 어쩌면 좋아.......
(정신이 어질했다. 분명 이걸, 당신에게 직접 받았다면 행복에 눈물부터 터져나왔을 것 같은데, 나는,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을 찾다가, 과거의 당신으로부터 받아버렸어. 그게 견딜 수 없이 아파서, 현은 떨리는 손으로 반지케이스를 다시 닫아버렸다. 돌아오면, 그래, 그 떄에, 돌아오면 함께 이 반지를 나눠끼고서, 산책을, 바다를, 별을.......)
(현은 다시 한 번 반지 케이스를 매만져보곤, 소중하게 배낭 가장 깊은 곳에 밀어넣었다)
꼭, 돌아와줘요, 오빠. 내가 과거의 오빠가 준비했던 선물 가지고 돌아갈 테니까, 꼭 돌아와서 나한테 선물해줘.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지만, 그래도.
(서재에 더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있나?)
서재에서 볼 수 있을 만한 것은 다 살펴본 것 같습니다.
그럼, 가자.
아.
혹시 물감하고 붓... 조금 남아있으려나.
5년이나 돼서 다 굳었을까..
글쎄요, 있다고 하더라도 쓸만한 상태는 아닐 겁니다.
서재를 빠져나가려고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보입니다.
(뭐지?)
도톰하고 질 좋은 검은 천으로 덮힌 그것은, 벽에 걸린 것으로 보아 커다란 액자인 것 같습니다.
서재의 책상에 앉았을 때,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액자를 가리는 검은 천을 들추면 보이는 것은...
그 옆으로 놓인 천체망원경과 비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그림 속 풍경.
미국에서 유학하는 몇 년 동안 함께 지낼 집에 가져갈 이삿짐을 챙기던 날,
다른 건 몰라도 이 그림은 꼭 가져가고 싶다고 했던 혜성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커다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었기에 챙겨가기 힘들 것이 분명했음에도 혜성은 고집을 꺾지 않았죠.
단 하나의 혜성을 위해 그려진 그림은 여전히 옛날의 감정들을 그대로 발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있자면, 서로가 서로의 세계임을, 서로의 사랑과 애정에 후회따위가 자리잡을 공간은 조금도 없음을.
이 현:진짜... 바보같이... 그런 그림... 몇 장이고... (울컥, 하고 뜨거운 것이 밀려나온다. 아, 당신은 왜 항상 내게 이렇게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내비치게 만드는 걸까. 어째서 항상, 이렇게 거대한 사랑을 주어서... 당신이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걸까. ...처음 마주한
오롯하게 자신의 의지로 바란 사랑인 당신은, 언제나 제 생각, 제 상상을 훨씬 더 뛰어넘은 곳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너무 달고 행복해서, 나는, ....... 그래, 나의 희망, 나의 신, 나의 세계, 나의 행복, 나의, ......모든 것. 당신이 나를 기억해내지 못해도 좋아. 나는 여전히 당신을 기억할 테고,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테니까.)
(그림을... 챙길 수 있을까? 없다면, 아까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가자.)
다소 큰 그림이지만,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현:(그치만, 힘들다고 이걸 두고갈 수는 없어.)
(할 수 있다, 이 현!)
(그림을 들고 가자!)
오랜 시간 방치되었음에도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림은,
급히 집을 떠나야하는 상황에서도, 훗날 모든 사태가 진정되고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당신이 준 선물을, 당신과 함께했던 옛날의 감정을 그대로 기억하기 위해,
먼지가 쌓이지 않게 혹여 빛에 변색되지 않게 검은 천으로 덮어두고 갔음이 분명했습니다.
하여간에, 진짜......
사람 감동시키는 데엔 뭐가 있어요, 우리 오빠.
돌아오면 뽀뽀부터 마구 해버릴 거야.
그 때, 당신의 주머니에서 정적을 깨는 요란한 멜로디가 들립니다.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보니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네요.
(전화를 받자)
“안녕하세요, 이현님. 권혜성님의 상태가 다시 안정되어 내일, 어제와 같은 시간에 방문해주시면 면회가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내일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레나 리센의 말대로네요. 내일 5시에 100시간이 끝나게 됩니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면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 현:아,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가야지.
(버스 타러 돌아가자.)
오후의 햇빛은 아까와 다를 게 없는 텅 빈 거리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 냅니다.
커다란 그림을 들고 가느라,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있습니다.
그때, 골목을 걷던 당신은 문득 당신의 그림자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춥니다.
태양을 등지고 선 당신의 앞으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는 유독 길고 흔들리는게, 마치 또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겹친 것 같습니다.
이 현:(또 고양... 이일 리는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진짜... 아...)
(어떡하지...)
이윽고, 그것은 괴성이 되어 점점 더 가까이서 들려옵니다.
(나 여기서... 죽나?)
(그래도 다행이다. 오빠 보고 좀비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24시간이랬잖아...)
좀비가 당신에게 달려들고, 중심을 잃고 쓰러진 당신의 머리 위에서 딱, 딱 하며, 침과 피가 뒤섞인 이빨이 맞부딪힙니다.
번들거리는 희뿌연 눈동자에 당신의 표정이 반사됩니다.
이 현:(이런 틈 사이에서... 그 시간을...)
(...미안해, 오빠...)
이대로 좀비가 되어버리고 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하는 총성이 들리고 좀비는 피를 쏟으며 당신 위로 쓰러집니다.
총성이 들린 쪽을 바라보니 중무장한 군인이 성큼성큼 골목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게 보입니다.
이 현:행운기준치: | 70/35/14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 맞아)
...가,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는 당신 옆에서 움찔거리는 좀비를 보더니 다시 한번 총을 들어 총알을 두어발 더 머리에 발사하고,
시체를 발로 몇번 건드려본 후 가슴에 매달린 무전기에 대고 짧게 말합니다.
물렸습니까?
아, 아뇨...
물릴 뻔은 했지만, 아직......
군인: (무전기에 대고) 생존자, 민간인 발견. 안내하겠다.
따라오시죠.
(그림이랑... 암튼 주섬주섬 챙겨서 따라간다)
그는 죽은 좀비를 다리 한 쪽을 잡은 채로 골목 밖으로 끌고 나가 도로 한 구석에 던져놓습니다.
당신의 앞길엔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함께 검붉은 발자국이 새겨집니다.
밖으로 나오니 도로에는 큼직한 군용 트럭과 몇 명의 군인들이 보이네요.
아까 이곳으로 올 때 봤던 것과 같은 종류의 트럭입니다.
군인들은 당신을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눕니다.
이 현:듣기기준치: | 51/25/10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저 사람은 감염이 안 된거 확실하고?’
대화를 마쳤는지 그들 중 한 사람이 당신에게 걸어와 말합니다.
군인: 감염자는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검사를 좀 하겠습니다. 손을 좀 주시겠습니까.
(손을 내민다)
저건, 안전지대 안의 ‘감염자’들을 가려낼 때 사용했었던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키트네요.
잠시 후 당신이 비감염자임을 확인한 군인은 당신에게 말합니다.
군인: 민간인이 오염구역에서 뭘 하고 있던 겁니까. 태워드릴 테니 안전지대까지 같이 가시죠.
(그림과 배낭을 꼭 껴안고서, 고개를 숙여보인다)
맨 뒷자리에 당신을 태운 트럭은 도시 몇 곳을 들린 후 도시를 떠납니다.
먼지 쌓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뻥 뜷린 도로와 황무지는 석양빛을 받아 온통 불타오르는 것만 같아요.
트럭 안은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와 화물칸의 좀비들이 내는 기괴한 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합니다.
이 현:(화,화물칸에서 왜 좀비 소리가 나...?)
아마 저 좀비들은 치료소에 가기 전 단계인 수용소로 가게 되겠지요.
어느새 지평선 아래로 해가 완전히 가라앉아 주위가 어두워지고, 트럭은 안전지대에 도착합니다.
이 현:(......아까 전 일 때문에 내가 겁을 먹었나보다...)
군인들은 당신에게 사는 곳을 묻곤 당신을 적당한 곳에 내려주며 앞으로는 함부로 오염구역에 접근하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밤이 되어 쌀쌀해진 공기가 습하고 무겁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은데, 그저 하늘은 흐리기만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다 당신은 문득, 골목의 한 담벼락에 빼곡히 붙어 있는 크고 작은 종이들을 보고 발걸음을 멈춥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가족을 찾고 있어요] [위와 같이 생긴 사람을 보신 분은 연락 주세요] 따위의 글씨와 함께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대체로 행복해 보이는 사진 속 얼굴들과 절박함이 느껴지는 글씨들이 적힌 종이들은 어두운 가로등 조명 아래에서 밤바람에 쓸쓸히 팔락입니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과 헤성은 운이 좋은 편이라는 것, 당신들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엔 훨씬 많다는 것을요.
피가 묻은 옷을 벗어두고 샤워를 하고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옵니다.
…...눈을 뜬 당신은 더럽고 해진 옷을 입고, 낯설지만 어딘가 눈에 익은 거리에 서 있습니다.
손에 쥔 쇠파이프에선 핏방울이 떨어지고, 당신의 발밑엔 좀비들의 시체가 즐비합니다.
이곳은 당신이 생존하며 지나쳐 온 수 많은 장소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르게 당신 곁에는 아무도 없어요.
이것이 과거의 기억이고 꿈속이라면 혜성 또한 당신 곁에 있어야 하는데…
혜성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찰나, 또 다른 좀비 한 무리가 당신을 공격해옵니다.
팔과 다리가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손에 쥔 무기를 휘두릅니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좀비들이 쓰러지고, 허공엔 살점과 핏방울이 흩날립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당신을 공격하던 좀비가 무기에 맞아 천천히 쓰러질 때
그는 당신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희미한 목소리로 당신을 부릅니다.
번쩍, 하고 꿈에서 깨어나면 방 안은 아직 어둡습니다.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숨을 크게 몰아쉬고 나면, 아직도 생생한 손끝의 감각에 양손이 떨려옵니다.
지금 시간은 오전 5시, 아무래도 다시 잠들긴 그른 것 같아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여니 새벽의 습하고 짙푸른 공기가 방안에 가득 찹니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도시의 건물들 너머로 마치 그날처럼 서서히 동이 터옵니다.
어두운 밤의 장막을 걷어내는 아침 해를 뒤로하고, 캘버리를 앞에 둔 채로 당신에게 ‘입맞춤’ 하던 혜성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잘’ 살겠다는 약속과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약속.
그것들이 당신을 지금까지 버티게 했다는 것에는 틀림없겠죠.
그리고 마침내, 당신에겐 또다시 100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 현:......(멍한 얼굴로 아침의 태양을 바라본다. 12시간, 당신이 내게로 돌아올 때까지, 남은 시간. 우리, 오래도 사랑했는데, 함께한 시간은 너무나도 적지 않아. ...그러니 돌아오면, 꼭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자. 비어버린 몇 년의 시간을 다시 덧그리고, 또 채워넣듯이......) ...금방, 구하러 갈게, 오빠. (내가 기댈 곳이 당신의 곁인 것처럼, 당신이 기댈 곳도 내 곁이니까. 우리의 세계는 서로고, '인류'의 희망이 아니라, 서로의 '희망'을 위해 여기까지 온 거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그곳에서 기다려줘)
비슬 (GM):(To GM)rolling 2+1d5
=4
악몽으로 일찍 깬 탓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 밖을 나섭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올 때에 당신의 곁에는 혜성이 함께할 수 있을까요.
산책이라도 할 겸, 평소 다니던 길과 다른 길을 걸으니 처음 보는 꽃가게와 베이커리를 발견합니다.
(사가도 되나?)
그에게 줄 선물을 사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현:(꽃다발과... 초콜릿, 달지 않은 게 있을까.)
(그리고... 허기를 달랠 빵도 조금 있으면 좋겠는데)
(음음, 꽃가게 먼저 가보자)
꽃집은 가게를 연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꽃들의 종류가 다양하진 않지만,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꽃들과 식물이 보입니다
(뭘... 사가야 좋을까.)
(어렵다.)
(노란색... 파란색... 보라색... 하얀색...)
음..............
...
이 현:(노란색하고 하얀색... 섞어서 만들까....)
저, 여기... 꽃다발을 선물하려고 하는데요...
꽃집주인: 꽃다발이요? 어떤 꽃으로 하시려고요?
추천... 해주실 수 있나요...?
하얀색과 노란색이, 섞여있는 걸로 하고 싶은데...
꽃집주인: 노란색과 흰색이요? 으음... 그렇다면 데이지 꽃다발은 어떠세요? 요즘같은 시기에 사람들이 가장 바라게 되는 꽃말을 갖고 있거든요.
그걸로, 주시겠어요?
(느리게, 웃어보인다)
꽃집 주인은 능숙하게 꽃과 리본, 천을 엮어서 꽃다발을 만들어 당신에게 건네줍니다.
(물끄러미 꽃다발을 내려다보다가, 슬 웃어보인다. 당신이, ...받고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아많이 파셔요. (꽃다발 값을 계산하고, 빵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갓 구운 빵의 달콤한 냄새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빵과 디저트, 샌드위치, 케이크들이 보입니다.
카운터 옆 진열장에는 초콜렛이나 쿠키같은 간식들도 보이네요.
조촐하게 카페도 겸하고 있는지 가게 안쪽엔 테이블과 의자들도 놓여있네요.
아침을 먹고 오지 않았다면 여기서 먹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이 현:...(귀엽다. 다 나으면, 같이 오자고 해야지.)
저어, 혹시 여기, 덜 단 초콜릿도 있나요?
점원: 음.. 잠시만요. 이게 가장 달지 않은 건데... 시식해보시겠어요? 카운터 아래에서 포장되지 않은 작은 초콜릿을 꺼내준다.)
이 현:아, 감사합니다. (초콜릿을 받아 입에 넣어본다. ...어떤 느낌이지? 카카오... 몇 프로?)
이 현:행운기준치: | 70/35/14 |
굴림: | 5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입에 넣고 굴려본 초콜릿에서는 단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면서 쌉싸름한 맛이 납니다.
이걸로, 이걸로... 주세요.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 하여간 많이 가져가자. 다섯 병...!
거기에, ...(아직 아침을 안 먹었으니까...)
카페라떼... 바닐라 시럽 7펌프에 샷 4번 추가해주세요... (슬 주변을 보다가) ...샌드위치도... 하나는 포장해주시구 하나는 먹고 갈게요...
점원은 당신의 커피 주문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진동벨을 건네줍니다.
잠시 기다리자, 징,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울리고,
점원이 제법 크기가 큰 봉투 하나와 샌드위치와 커피를 올려둔 트레이를 카운터 위에 올려줍니다.
이 현:감사합니다...(꾸벅 인사하고 진동벨을 드린 뒤, 트레이를 받아 적당한 자리에 가서 앉는다)
...음...
(내가 연필과 종이를 챙겨왔을까?)
오, 그보다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현:지능기준치: | 90/45/18 |
굴림: | 8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집으로 돌아갔다가 챙겨서 나갈 시간이 충분할까?!)
이 현:행운기준치: | 70/35/14 |
굴림: | 3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집으로 갔다가 챙겨 나갈 시간은 아슬아슬 할 것 같습니다.
양손에 들고가야할 꽃다발이나 베이커리 봉투는 포기해야겠죠.
이 현:(그... 베이커리 봉투는 배낭에 안 들어가나?)
(초콜릿 한 통 정도는... 배낭에 들어갈 것 같은데)
이 현:나머지는 집에서 먹자고 하면 되겠지!)
지능기준치: | 90/45/18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현의 뇌리를 스치는 것은 이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 하지 않을만한 방법이었습니다.
(퀵을 부르자)
(퀵을! 부르고! 혜성오빠! 되찾자! ...약간 구호 같다)
기왕이면 무겁고 들고가기 어려운 그림을 맡기는 편이 좋으려나요.
당신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간단하게 퀵 번호를 알아내어 그들에게 그림을 부탁하기로 합니다.
아찔한 위기를 넘기고나니 슬슬 병원으로 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병원 앞으로 향하던 당신은 병원 앞 횡단보도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피켓과 판넬, 확성기 같은 것을 들고 있네요.
이 현:민첩기준치: | 30/15/6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횡단보도를 건너던 당신은 병원 앞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에 부딪혀 그만 베이커리 봉투와 꽃다발을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습니다...
이 현:.................................................
사람들의 신발에 여린 꽃잎이 마구 짓밟힙니다.
(진짜 가만 안 둔다)
당신을 밀치고 지나간 사람들은 병원 앞에 모여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일제히 구호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거대하게 꿈틀대는 악의가 형상화한 것 같습니다.
치료제가 개발되고,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그렇게만 된다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혜성이 설령 인간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가 이전처럼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이 현:(인정?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우리의 세계는, 우리 뿐인걸.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여긴다면, 그걸로 우리는 인간인 게 되겠지. ...어떤 세상의 악의가 당신을 향한다고 하더라도, ......난, 당신을 지킬거야. 그 누구도 당신을 해칠 수 없도록.)
복잡한 마음으로 병원에 들어서면 어쩐지 대기실 분위기가 많이 침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병실의 문을 열면 그제처럼 방안의 침대에 앉아있는 혜성이 보입니다.
병실 안의 tv에선 아까 그 시위 장면이 뉴스로 보도되고 있네요.
혜성은 여전히 흐릿하고 멍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감염자들을 위한 치료시설 중 하나인 아리마테아 병원 앞에서 오늘 아침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들은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대한 특별 입법안 중 4단계의 환자들이 제한적으로나마 시설 밖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신설 조항에 반대해 시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시위대는 해산되었지만 이 조항에 반대하는 자들이 많은 탓에 연합정부는 다른 시위가 열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tv를 꺼버린다)
권 혜성:(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왔어요?
(당신에게로 천천히 다가간다. 퀵은 도착해있나?)
권 혜성:오느라 고생했겠네. (뉴스내용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어보인다.) ...별로 달라진 건 없어. 그냥, 옛 기억이 조금 돌아왔는데... (그것을 당신 앞에서 말하기가 참으로 조심스럽다. 몇 없는 기억 속에서 당신은 괴로워보였으니까.) ...목은 괜찮아? (며칠 전, 당신의 목을 조른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은 눈치다.)
이 현:고생은요. 오빠를 보러 올 수 있다는데, 그게 어디였든 간에 오는 길은 늘 행복했을 거예요.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다가, 당신의 옆에 툭 앉는다) 목... 네에, 괜찮아요. 예전엔 늘 초커를 하고 다녔었어서, 그런 느낌은....... (당신의 손목을 바라보다가) ...그, 기억은 많이 돌아왔어요? 어제, 우리가 원래 지내던 곳에 다녀왔거든요. 거기서 이것저것, 기억을 떠올릴 만한 것들을 챙겨왔어요. 지금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은데, 오빠가 미국으로 오면서도 꼭 가져가야만 한다고 했던 것도 오고 있어요. (현은 괜찮다는 듯이, 부드럽게 웃으며 당신을 바라보았다)
권 혜성:...정말 그래? (기억 속 당신과 지금 제 눈 앞에 있는 현실의 당신과의 괴리감에 표정에 의문이 깃든다. 어째서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초커. 그러고보니, 그랬던 것 같네. 붉은 색 초커 맞지? (희미한 기억속 당신의 목에는 장미꽃 모양의 참을 달고 있는 붉은 초커가 자주 걸려있었다.) 원래 지내던 곳...? 한국이 아니었나? (기억에 없는 정보를 들은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간다.)
이 현:네, 정말로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애정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맞아요. 지금, 손목에 걸고 있나요? 마지막에 헤어질 때, 그것도 묵주랑 같이 감아줬었는데. (몇 번을 다시 떠올려도, 그 순간은 괴로웠지만, 현은 가만히 웃었다. 지금 당신 앞에서 울어버리면, 당신이 쥐어주었던 희망과 함께 뱉었던, '잘' 살라는 말을 어기게 되는 것 같아서. 현은 당신의 말에 눈을 깜빡인다. 아, 옛날 것들을 떠올렸구나. 우리가, 이곳에 온 뒤로의 기억은 아직 없구나.) 원래는 그랬는데,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오빠도 학위 따고, 해서... 같이 미국으로 유학을 왔었어요. 오빠, 엄청 유명했던 거 알아요? 세기의 천재! 하면서, 말이에요. 그 때에, 여기저기서 엄청 인터뷰 요청도 들어왔었는데, 항상 저녁 시간엔 나랑 같이 있어야한다고 전부 거절했었잖아요. (다시 떠올려도 즐거운 기억이라, 현은 가벼이 웃었다) 그러다 한두 개 정도는 함께 하러 갔었고요.
권 혜성:(그는 당신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왜 당신은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걸까. 어떻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잠시 시선을 내려 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해진 묵주팔찌만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잃어...버렸나봐.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은, 잃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묵주팔찌를 바라보고 있자면, 아주 오래전 그 자리에 있었던 실팔찌가 떠올랐다. 끊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그것을 누가 저에게 주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의 기분이 한없이 침잠했다.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보면, 당신은 가만히 웃고있었다. 가라앉고 있던 기분이 끌어올려지는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거였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천재라는 소리에 멈칫한다.) ...내가? 그거 참... 믿기 힘든 소리인데...
이 현:진짜요? 오빠는, 항상 천재였는걸요. 그래서 같이 별을 보러 갈 때에도 늘, 별자리를 찾는 법이나, 그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 천체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하나씩은 해줬었어요. 나는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전부 잊고싶지가 않아서 하나씩 그려두었었다니까요. 천문대에는 같이 별을, 행성들을 보러 가고, 바닷가에 앉아 하늘을 보기도 하고, ...오빠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뛰어난만큼 참 빛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오빠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 굉장한 사람이었거든요. (현은 살풋 웃으며 당신에게 조금 더 바짝 가까이 다가갔다) 잃어버렸어요? 괜찮아요, 그래도 오빠가 돌아왔으니까. 나중에 내가 하나, 다시 만들어줄게요. 차암, 예전에 끊어진 실팔찌도 하나 다시 만들어줄까요? 돌아온 기념으로 소원을 하나 더 빌어보는 거예요. 이번엔 나도 같이 해야지. 그 때엔, 괜히 사리사욕 챙기는 것처럼 보일까봐 나는 못 찼단 말이에요. (묵주팔찌가 감겨있는 손목을 잠깐 짚었다가, 현은 다시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깊은 애정과, 신뢰. 그것은 모두 오롯이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참, 그거 알아요? 내가 지금 입고 있는 거, 오빠 옷인 거? 그 때,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요. 배낭을 내가 메고 있었잖아요. 오빠 옷 여분이 하나 남아있었거든요. 그래서 혼자 아끼고, 또 아끼다가...... 오빠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꺼내입고 왔어요. 늘 이 색의 폴라티를 입고, 흰 가운을 걸치곤 했잖아요. 그거 알아요? 오빠가 이 옷을 입은 모습을 나는 참 좋아했어요. 아, 과학자 권 혜성의 모습이로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의 모습이구나. 싶어서요.
권 혜성:(To GM)rolling 2+1d5
=5
권 혜성:(점점 커져만 가는 기억 속 자신과의 괴리감에 혼란이 가중되었다.빛나는 사람, 사랑, 무엇하나 믿기 어려운 당신의 말 속의 자신은... 자신이 그렇게나 바라고 바랐던 이상 속의 자신과 닮아있어서,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실팔찌. 네가 준 거였구나. 아, 그래. 그랬어. (흐릿한 기억 속 제 손목에 팔찌를 채워주던 당신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시력이 돌아오지 않아 일그러진 형상으로밖에 당신을 볼 수 없지만, 분명 기억 속의 여학생은 '이 현'이었다. 자신을 올려다 보는 당신의 두 눈에 깃든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왜...) ......그게 좋겠어. 손목을 보고 있으면, 자꾸 허전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거든. ...아, 듣고 보니 그러네. 자주 입었던 기억이 있어. 왜 그렇게까지 그 옷을 자주 입었더라... (문득 스치는 기억에 그는 생각을 더 깊게 하지 않고 떠오른 대로 말을 내뱉었다.) 그건, 내가 그 옷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그 모습을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더 자주 입었던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제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없던 것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간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듯했다. 이것을 더 알고 싶다. 분명, 이것이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이야기 좀 더 들려줄래? 옛 이야기가 효과가 좋네. 아, 원래 지내던 곳에 다녀왔다고 했던가?
이 현:...네에, 원래 지내던 곳엘 다녀왔어요. (당신의 모습에, 조금 울음이 밀려올 것도 같았으나, 현은 미소지었다. 조금씩 찾아가는 기억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당신의 기억 속에서, 당신과 내가 행복하던 그 시절, 보여주었던 모습부터 떠올릴 수 있도록) 거실을 둘러봤었어요. 거기엔 액자가 있더라구요. 먼지를 좀 뒤집어써서, 색이 바래기는 했는데, 그래도 제법 멀쩡해요. 우리가 같이 바다에 가서 찍은 사진에요. 아직 잘 보이지는 않죠? ...사진을 보고 있자니, 오빠 생각이 더 많이 나더라구요. 항상 이렇게,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지, 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보는 눈빛으로, 늘 변함없이. 그렇게... 그렇게 사랑받고 있었지, 나. 하고. ...오빠가 없는 시간 동안, 매일 밤 꿈에 오빠가 나왔었어요. 그리고 그 때마다, 오빠는,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줬었고요. 그 덕에 살아왔던 것 같아요. 다시, 오빠를 만나고, 그렇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
희망을 믿으면서. (손을 뻗어 당신의 손등을 가만히 덮었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왔던, 당신의 곁이다) 침실엔, 옷장이 있었는데... 다들 들렀다 갔던 모양인지, 우리 옷은 없더라고요. 그건 좀 아쉬웠어요. 한 벌이라도 남아있었으면 가져올 수 있었을 텐데, 싶어서요. 뭐, 그래도 오빠 옷을 내가 입고왔으니 그건 괜찮으려나요? (장난스레, 배시시 웃는다) 그리고... 서재에선, 오빠가 쓰던 카메라랑, 오빠의 다이어리랑, ......반지...... 그리고, 그림을 찾아냈어요. 나, 진짜 놀랐지 뭐예요. 떠나면서 두고 간 거라, 많이 망가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질 좋은 검은 천으로 덮어두어서 5년이나 방치되었다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쩡했어요.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이었냐면요... (현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잠깐 숨을 골랐다) 우리, 만난지 300일 되었을 때요, 오빠를 데리고 제 갤러리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 때에, 갤러리 가장 안쪽에 걸어두었던 그림이에요. 밤하늘, 혜성, 그리고, 그 아래에는 오빠랑 나. 늘, 그랬잖아요. 내 재능은, 불행 속에서만 꽃피고, 불행이 없으면 창작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괴로워야만 한다고. 그런데, 오빠 덕분에 나는 행복 속에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됐거든요. ...그래서... 내 가장 행복한 감정, 내가 그토록 오래 가지고 있던 희망, 그리고, ...사랑...을 담아서, 캔버스 위를 칠했었어요. 내가 당신을 만나 이토록 행복하다ㅡ고, 말해주고 싶어서.
권 혜성:(애틋하게, 절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 집에 얽힌 둘의 추억을 이야기 하는 당신을 보고 있으니 괴로웠다. 애써 웃으며 언젠가의 자신과 함께 했을 추억들을 홀로 되짚는 당신을 보는 것에...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는 것에, 자괴감이 드는 것도 같았다. 흐릿한 시야 속 당신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떨림과 호흡을 잔뜩 머금은 그 목소리가, 울고 있는 것만 같아서, 말없이 천천히 손을 뻗어서 당신의 뺨을, 눈가를 쓸어주었다. 지나간 일을 함께 추억하며 웃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흐린 형상이 아닌, 선명한 시야에 당신을 담을 수 있었다면, 그리하여 기억 속 당신보다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른 당신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괴로움에 어떻게든 기억을 떠올려보려 했음에도 떠오른 것은 그래, 당신의 갤러리에 간 적이 있었더랬지, 하는 불투명한 기억뿐이었다. 뺨을 쓸어주던 손으로 당신의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아픈 웃음을 지었다.) ...미안, 네가 혼자 기억하게 해서 미안해. (기억에 없는 그림을 상상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 안에 담겼다는 사랑이나 희망을 그려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자신이 저를 만나 그토록 행복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는 당신의 말은, 어째서 자신이 그 그림을 꼭 미국까지 가져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건 마치, 당신을 사랑해도 된다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겠지.)
이 현:...아! 세상에, 오빠, 그림, 도착했나봐요. 잠깐만요, 금방 가져올게요! (당신의 웃음을 보며 슬픈 표정을 하던 현은, 퍼뜩 눈을 뜨고서 네에ㅡ하고 소리쳤다. 제 머리칼을 매만지는 손길을 다정스레 감싸, 그 손바닥에 짧게 입을 맞추고, 현은 도도도 뛰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이리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권 혜성:(당신이 그림을 가지러 가는 동안에, 잠시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마주보았다. 이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성을 잠재우는 폭력적이고 거센 감정. 경외롭고 경탄스러운, 신비로워 그 정체를 알고 싶어지는, 그 감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폭력적이고, 동시에 나른할 정도로 평온한 감정. 그것은 마치 우주를 바라보는 것과도 같은 감각이었다. 그러나, 분명... 우주를 마주할 때 보다도 더 중요한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다. 손바닥에 남은 짧은 입맞춤의 온기에, 손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자면, 더욱 거세지는 그 감정에 잡아먹힐 것만 같은데도... 그것이 싫지 않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 현:아, 정말, 그릴 때 너무 큰 캔버스에 그렸었단 말이죠. ...그치만, 이 정도 사이즈가 되지 않으면, 내 마음을 표현하기엔 한참 멀었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툴툴거리면서도 열심히 그림을 들고 당신 앞으로 다가온다. 그 얼굴엔, 묘하게 들뜬 목소리마냥 즐거운 기색이 가득했다) ...이 그림이에요. 아직, 앞이 잘 안 보이죠? 눈을 뜨게 되면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챙겨왔어요. 사실, 괜찮은 빵집도 꽃집도 있어서, 예쁜 데이지 꽃다발하고 샌드위치, ...오빠가 좋아하던, 쌉싸름한 초콜릿도 가져왔는데... 그건 사고가 나버려서 쓸 수 없게 되었지 뭐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림하고 나만 보는 걸로 해요. (열심히 재잘대던 현은, 그림을 당신의 앞쪽에 세우고선 올곧게 당신을 바라보았다) ......기억, 말이에요. 지금 바로 전부 떠올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는, 평생 함께 있을 거잖아요. 내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하나씩, 하나씩... 오빠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게 이야기해주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씩 옆에서 알려줄게요. 이야기해줄게요. 그러니까요....... (현은, 애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필사적이기까지 한, 간절함은, 부디 늦어도 좋고 더뎌도 좋으니 돌아만 오라는 듯이, 조용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가면요, 그 카페에서 같이 브런치도 먹고, 산책도 하고, 아침엔 같이 눈을 뜨고, 저녁엔 같이 눈을 감아요. 오빠가 없는 동안 집을 깨끗하게 해두려고 했는데, ...역시 혼자서는 너무 넓어요. 혼자서는, 괜히 춥고. 그러니까, 언제가 되어도 좋으니까, 꼭 같이 돌아가요. 나, 오빠랑 따뜻하게 지내고 싶어.
권 혜성:(To GM)rolling 2+1d5
=7
권 혜성:(아, 행복이었구나. 우주를 마주하는 감정에, 행복을 더한 것이 바로 이 감정의 정체였구나. 그것을 깨달은 것은, 흐린 시야 속으로 짙푸른 그림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그림에 담긴 것이 '당신을 만나서 나는 이토록 행복하다'는 감정이기에, 그리하여 그 그림 속에 담긴 감정이, 희망이, 사랑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저도 모르게, 그 그림을 처음 보았던 그 날처럼 불안정한 호흡을 내며 당신을 꼭 끌어안았다. 그 그림 안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었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이 갖고있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알아버렸기에 깨닫게 된다.) ...사랑해, 현아. (모든 기억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돌아온 것과 같았다.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을 되찾았으니까. 분명, 그런 기분이 들었다. 시야가 계속해서 흐려졌다. 눈물이, 당신의 옷자락을 뜨겁게 적시고 있었다.) 현아, 내가 너를 사랑해도 될까. 다른 이들의 생각 따위는 중요치 않아. (뉴스에서 보도되었던 시위를 떠올렸다. 좀비는 인간이 아니라고 외쳐대었던가? 그러나 저에겐 그들의 외침보다도 당신의 한마디가 더욱 소중했다.) 내가 감염자였어도, 인간의 살을 뜯어먹고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럼에도 내가 너를 사랑해도 될까. 여전히 내가 너의, 사랑이니...? (물음의 형식을 한 그것은 자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신뢰가 깃든 물음이었다.)
이 현:...왜... 왜,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해요. (현은, 드디어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3년하고도 5개월이 더 지나서야 듣게 된 사랑한다는 말에, 기어이 눈물을 터뜨렸다. 떨리는 손으로 당신을 꽉 끌어안고, 눈물로 젖어드는 얼굴을 당신의 품에 파묻고,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오빠가 내 세계고, 내 행복이고, 내 희망이고, 내 모든 것, 나의 신인데, 그곳에 타인의 판단따위가 끼어들 틈이 있겠어요? 무엇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나는 오빠가 이 세계를 백만 번 멸망시키고 다시 돌아왔다고 해도 오빠를 사랑할 거예요. ...그 모든 행동의 원인에, 그렇게 하도록 오빠를 움직인 기반에, 내가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오빠의 그 모든 것이 다, 나로 인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영원히, 오래도록, 함께해야죠. 이제 서로에게 서로가 구원인 우리니까, 오빠가 몇 명의 사람을 죽였고, 몇십 명의 인생을 망가뜨렸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신은 그토록이나 많은 인간을 죽였지만, 여전히 모두에게 구원인 것처럼, 오빠도... 여전히 내게 구원이에요. 여전히, 나의 신이에요. (현은 깊게 숨을 들이쉰다. 당신의 향기가, 밀려들어왔다. 이 순간을 그토록이나 고대했으므로, 현은, 몇 번이고 울음과 벅찬 행복이 뒤섞인 목소리로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해요, 라고)
그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책상의 전자시계에서 100시간의 종료를 고하는 알람이 울립니다.
병실로 레나 리센이 들어와 당신에게 말합니다.
레나 리센:시간이 됐군요. 몇 가지 검사를 할 테니 잠깐 나가 계시겠습니까?
(현은, 잠깐 레나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향한, 신뢰가 가득 담겨있는 붉은 자안. 곧 돌아올 것을 굳게 믿고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 ...오빠, 이따가, 꼭 봐요. 알겠죠?
문 앞에 선 혜성이 당신을 보며 웃고 있습니다.
권 혜성:이렇게 보니, 정말 3년 전이랑 전혀 안 변했네, 현아. (흐릿하기만 했던 당신의 모습이 이제는 제법 선명하게 눈에 비친다. 저녁 어스름의 하늘처럼 붉은 보랏빛의 두 눈, 애정이 묻어나는 웃음. 마지막에 보았던 네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 모습이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희고 흐리기만 했던 혜성의 두 눈에 차오른 푸른 빛입니다.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도, 그 푸른 빛을 흐릴 수는 없습니다.
이 현:오빠......! (아, 그토록 바랐던, 그 푸른 눈. 그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상냥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애정으로 가득한 그 눈동자. 현은 와락 당신을 끌어안고, 곧장 고개를 들어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뺨을 적시는 눈물을 쓸어내었다. 아, 나의 신, 나의 세계. ...드디어, 내게로 돌아온, 나의 모든 것. 현은 뚝뚝 떨어지는 눈물로도 흐려지지않는 당신의 눈동자를, 아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당신이 제게 보내는 그 애정의 깊이만큼이나 깊고, 따스한 애정을 담아서) ...기다렸어요. ...잘, 돌아왔어요. 나는, 정말, 잘 지내고 있었어요.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단 한 번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보고싶었어요, 혜성 오빠.......
권 혜성:잘 지내줘서, 고마워... 포기하지 않아줘서, 끝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숨을 잔뜩 먹은 목소리가 울음에 젖에 떨려왔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보였던 당신의 두 눈이, 선명해진 시야에서 더욱 또렷한 애정을 비추며 반짝임에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돌아왔어, 네 곁으로...
이 현:...응... 돌아왔어요, 드디어, 돌아와줬어요.... (현은 행복한 표정을 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더없이 행복한, 당신이 그 옛날 보아왔던 그 얼굴로 웃어보였다) ...이제, 돌아가요.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둘의 시간을 적어나가요. 우리가 함께 있지 못했던 시간도 전부 채우고, 또 채워서, 정말로 행복하게, 함께 걸어나가요. 그렇게 이 삶의 끝까지... 함께 있어요. 그 때에는, 정말 함께 눈을 감는 거예요. 누구도 기다리게 하지 않고,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함께, 떠나는 거예요. (현은, 당신을 잃었던 그 시간 단 한 번도 짓지 못했던 환한 웃음을 하고서, 까치발을 들어 당신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몇 가지 퇴원 절차를 밟은 후 당신과 혜성은 손을 잡고 병원 밖을 나옵니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밤의 장막이 서서히 드리우며 어둡게 그림자가 진 도시의 건물들 너머로 해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 내릴 듯, 내리지 않았던 소나기가 이제야 시원하게 쏟아져 내립니다.
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잔뜩 가라앉아있어, 손이 닿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혜성이 떠올린 것은, 어느 날의 기억입니다.
“조교님. 있잖아요, 이 작품, 소재가 소나기예요.”
“비에는, 생명과 파괴라는 두 이면이 있어서, 종결과 시작의 의미를 모두 부여할 수가 있대요.“
”그래서 소나기는, 갑작스러운 끝을 의미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의 탄생과 생장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니 지금 내리는 비는 그 모든 역경을 끝내고 다시 함께하게 된 둘을 축복하는 소나기입니다.
3년 6개월 하고도 100시간을 넘어 당신은 마침내 내게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가면 같이 저녁을 먹고, 같이 잠들고, 언젠가 혜성의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면 별을 보러 갈까요.
멸망을 겪고 나아가는 지금, 멸망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순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당신과 그는, 서로의 신이자 세계인 둘은, 앞으로도 계속 함께일 테니까요.
당신에게는 혜성이, 혜성에게는 당신이 곁에 있을 것이라는 그 사실 하나면 말이에요.